* 이 글은 월간 자치행정 2007년 10월호에 실은 원고입니다.
우리나라 풀뿌리 자치의 실상과 과제③
이 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풀뿌리 자치를 위한 노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자치’의 개념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사전적으로 자치는 “스스로 다스림”이라 정의된다. 따라서 풀뿌리 자치는, 첫 번째 연재에서 정의 내렸듯이,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다수 시민들이 스스로 다스리는 행위”를 의미한다. 더불어, 풀뿌리라는 말이 “근본적 원리”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풀뿌리 자치는 민주주의의 근본적 원리라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풀뿌리 자치는 대의제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간접 민주주의와 반대되는 직접 민주주의라는 개념과 매우 가깝다.
그렇다면, 풀뿌리 자치의 강조는 직접 민주주의의 부활을 주장하는 것인가? 얼핏 생각해 봐도 현대 사회, 특히 산업화된 도시지역과 같이 이웃 간에도 복잡하고 매우 다양한 이해를 갖고 살아가는 지역에서 직접민주주의는 가능해 보이지도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도 생각되지 않는다. 따라서 흔히들 대의제 민주주의에 문제가 많다면 주민참여제도를 마련함으로써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도 외형적으로는 대부분의 주민참여제도를 마련하여 실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민참여제도만으로 자치의 의미를 희석시킬 수는 없다. 자치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단점을 보완하는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민주주의 본연의 가치를 찾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 날 실천적 의미에서의 자치는 과연 어떠한 형태를 지칭하는가? 그에 관한 본격적 논쟁과 설명을 이 글에서 소개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치라고 하는 것은 구체적이고 완벽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라기보다, 지향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풀뿌리 자치는 정태적인 개념이기보다는 현실의 조건들을 자치라는 이념에 맞추어 끊임없이 변화시켜 나가려는 ‘운동(運動)’, 동태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치의 주체가 정치권력이나 행정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풀뿌리 자치는 일반 시민들이 벌이는 풀뿌리 자치‘운동’으로서의 위상을 가지는 개념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에서 풀뿌리 자치가 성숙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풀뿌리 자치를 현실태에서 육성하고 강화하려는 다양한 움직임이 전개되어야 한다. 그러한 움직임은 이미 지역사회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물론, 지역사회 시민사회단체들의 활동에 모두 풀뿌리 자치운동이라는 위상과 격(格)을 부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풀뿌리 자치운동은 일반 시민사회운동 중에서도 몇 가지 특징적인 활동들을 지칭한다. 그 특징 중에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 첫 번째 특징은 누군가에게 한시적이고 즉자적인 요구나 반대가 아니라, 지역사회 시민들이 스스로 지역사회 발전의 대안을 만들고 실천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특징은 이러한 활동이 가시적 성과를 얻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들의 역량을 강화(empowerment)하는 과정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풀뿌리 자치의 움직임은 오래 전부터 여러 지역에서 민간의 자발적 노력으로 진행되어 왔다. 널리 잘 알려진 유명한 사례로는, 대구 삼덕동에서는 주택가의 주차문제를 주민들 스스로 담장을 허물면서 해결한 것이다. 그런데 이 사례는 단순히 담장을 허물면서 주차문제를 해결했다는 차원에 그친 것이 아니다. 이 사례가 보다 주목받을 필요가 있는 것은 담장을 허문 공간에 주민들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다양한 활동과 프로그램을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활동은 시민들 스스로가 살기 좋은 지역사회의 대안을 만들었다는 것과 더불어, 그 활동의 성공으로 인해 이에 참여한 주민들이 ‘우리도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지역사회발전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즉, 주민들의 참여역량이 강화되는 경험을 한 것이다. 이는 지속적인 지역사회 발전의 가장 중요한 기반을 형성한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서울시 강북구의 <녹색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은 지역주민들의 자발적 모임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자구적 활동을 벌이다 점차로 지역사회 저소득층 자녀들의 문제에까지 관심의 영역을 넓혀 나갔다. 이에 이들은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한 공부방을 자비를 모아서 만들었고, 더 나아가 이들의 욕구를 조사하여 행정으로 하여금 보다 많은 공부방을 건립하도록 압력을 넣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현재는 주민자치센터의 공간을 활용하여 또 다른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는 경기도 과천시 주민들이 한푼 두푼 돈을 모아 지역의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한 공부방을 설립한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지리산권에서는 지리산을 보호하고 농사를 짓는 주민들의 경제적 어려움도 함께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주민들이 모여 공동학습을 하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밖에도 공동육아협동조합이나 대안학교, 보육시설의 민주적 운영을 위한 활동, 지역사회의 자원들을 모아 지역복지활동을 전개하는 다양한 사례들, 다양한 마을만들기 사업을 전개하는 사례 등등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사례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이러한 민간의 자발적 움직임에 있어 행정의 지원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서울 은평구 갈곡리 마을과 강북구 미아동 주민들이 쓰레기 적환장으로 방치된 어린이 놀이터를 스스로 개선하여 어린이들의 놀이공간과 지역주민들의 공동체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의 과정에서 관할 구청은 초기에 매우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쓰레기 적환장의 이전 문제는 행정의 협조 없이 실현하기 어려운 문제였기에 주민들은 담당 공무원과 구청장을 만나는 등으로 노력했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이에 주민들이 한 편으로는 행정에 항의를 하고 또 다른 한 편으로 자구적으로 어린이 놀이터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행정은 뒤늦게 쓰레기 적환장 이전문제와 개선비용 일부를 부담하였다. 이 정도의 지원으로도 주민들은 충분했다. 결국 주민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어린이 놀이터를 어린이들에게 돌려주는 데 성공하였으며, 더 나아가 그 공간을 주민들의 공동체 공간으로 가꾸어 나갈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공은 주민들을 고무시켜, 또 다른 활동을 모색하도록 만드는 힘이 되기도 했다.
얼마 전 유럽의 풀뿌리운동 사례를 탐방하고 돌아온 여성단체 실무자들이 유럽의 ‘돌봄과 나눔’ 활동 사례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우리 사회의 풀뿌리 자치운동 활동가들은 그 정도의 활동 사례는 우리에게서도 많이 발견된다는 자부심을 표현하였다. 하지만, 이들이 먼 거리를 비싼 돈을 들여가며 모범사례라고 조사한 데에서는 우리와 차별적인 요소가 있었다. 그것은 민간의 이러한 자발적이고 대안적인 활동에 대한 행정의 태도에서 드러난다. 유럽의 사례들에서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노력에 대해 행정이 매우 협조적인 태도로 지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행정에서는 이러한 활동에 대해 공간을 제공하는 등 행・재정적 지원을 할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이들의 활동에 소중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우리의 실정은 열악하다. 물론, 우리의 행정도 외형적으로는 시민들의 참여와 거버넌스를 강조한다. 하지만, 실제 시민들의 자발적인 활동에 높은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이들의 활동에 대한 지원을 자신들의 업무라 여기지 않는 경향이 높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앞으로도 지속적인 발전, 그것도 외형적인 성장이 아니라 실제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발전을 거듭하기 위해서는 권한의 배분을 통한 시민들의 실제적 참여를 유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는 그만큼 우리의 시민사회가 성숙해 지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또 다른 의미로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층 성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는 시민들의 참여를 집단이기주의라는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보다는, 행정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이는 시민들의 참여를 조직하는 데에 지원하고, 이들의 활동에 적절한 권한과 책임을 분배하는 것을 통해 드러난다. 정 시민들의 참여가 공적인 성격을 갖기 힘들다고 생각한다면, 최소한 믿음직한 시민들을 조직하고 육성하기 위한 노력이라도 시민사회와 함께 진행할 필요가 있다. 지금 준비되지 않았으니 아무런 권한도 줄 수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10년 후에도 똑같은 이유로 머뭇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풀뿌리 자치는 우리 사회의 풀뿌리들이 자치의 경험을 쌓으면서 발전한다. 우리는 그 과정을 지금부터라도 서서히 밟아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한 과정이 바로 지역사회가 진정한 발전을 이루는 길이며, 진정한 민주주의, 풀뿌리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길이다. 더구나 시민사회에서 자발적으로 이러한 활동들을 하고 있다면, 성가신 존재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소중한 자산으로 보듬어 안는 것이 행정의 진정한 역할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