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당' 2007. 6. 25. 18:49

지역사회 비전만들기



이 호(한국도시연구소 주민운동실장)



논의의 제기 배경

1990년대 들어오면서 사회의 변화를 추구하고자 하는 세력들은 지역사회를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그 이유는 정치적 정당성을 추구하던 80년대의 운동이 그 효력을 잃어가면서 점차로 사회적 정당성을 추구하는 시민운동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회적 정당성 건설의 가장 핵심적 요소는 시민들의 직접 참여에 의한 대안적 사회만들기이다. 그러나 전국적 이슈를 통해서는 시민들의 일상적이고 주체적인 참여가 가능하지 않았다. 반면, 지역사회는 지역주민들의 생활에 기반한 이슈로 인해 시민들의 직접 참여를 이끌어 낼 가장 유력한 공간으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지역사회운동은 여전히 그 운동의 주체인 주민들로부터 유리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사회에 그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기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주민들에게 뿌리를 내리는 것이었다. 이러한 뿌리내림 없이 지역사회를 어떻게 변화・발전시킨다고 하는 논의는 또 다른 정치엘리트들의 주도성을 유지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당시에 전문가 및 전문적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지역사회운동은 지역에서 일정한 세력으로 성장하는 데에는 성공할 수 있었지만, 지역주민들의 주체적 참여를 이끄는 역할은 미흡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만으로는 지역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데에 한계가 있음이 많은 지역사회운동가들에게 인식되고 있었다. 아무래도 사회의 변화는 외적인 조건의 변화보다는 그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와 그를 통한 주체의식의 성장을 통할 때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주민들의 일상적인 문제에 착근한 지역사회운동의 성과들을 서서히 만들어 내기 시작하였다.

뭔가 새로운 세상이 올 것만 같던 2000년도 훌쩍 5년이나 지나, 이제 2000년대라는 것이 별로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 진부함이 관성이 되어가던 시기에 여기저기서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고민들이 있었으니, 그것은 지금까지의 성과들(물론, 아직도 풀뿌리에 기반한 성과는 매우 미약하다)이 과연 사회운동의 입장에서 어떤 의의를 갖느냐 하는 것이다. 즉, 개별 단체들 및 모임들의 성과들은 하나 둘 쌓여가지만, 결국 이러한 성과들이 지역사회를 건강하게 변화시켜 나가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다양한 활동의 영역들이 개발・구축되어 왔고, 또한 그러한 활동 속에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 또한 과거에 비해 활성되어 가고 있지만, 그것이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활동으로 힘을 발휘한다고 바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개별적인 모임과 활동들 자체도 그 속성을 들여보면, 분명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러한 활동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결집되는 흐름은 아직 부족한 것이 또한 사실이다.

지역사회 비전만들기는 바로 이러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즉, 지역사회 비전만들기는 기존의 활동성과들을 비판하면서 출발했다기보다는, 지금까지의 활동성과들을 보다 사회운동의 지향성에 따라 질적인 발전으로 이어가고자 하는 실천계획 전략 차원으로 고민되어지고 제기되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역사회 비전만들기는 지역사회의 단편적 쟁점들의 해소보다는 종합적이고 균형 잡힌 지역사회의 발전을 지역사회운동이 주도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지역사회의 개별단체의 활성화와는 조금 달리 접근할 문제이다. 물론, 사회발전의 지향을 지니는 개별적 사회운동단체의 활성화가 지역사회의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발전과 긴밀한 관계를 갖는 것이 사실이나, 실상 이는 가능하지도 그리고 바람직한 것이라 볼 수도 없다. 지역사회의 비전과 이를 통한 발전은 지역주민들 다수의 공유와 참여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비전을 만들고 실천하는 것은 개별 단체 차원보다는 지역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도출되고 실천될 수 있도록 고안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고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지금까지의 성과를 기반으로 실천적 비전을 만드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상 그러한 기반 없는 비전 만들기는 또 하나의 그림그리기에 불과할 수 있다.


지역사회 비전만들기의 주체

지역사회 비전만들기는 바람직한 정책의 나열과는 다르다. 물론, 정책의 나열 자체도 실천을 전제로 한 것이기에 전혀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들을 나열하는 것은 실상 그리 새로울 것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지역사회에서는 지방의제21을 만들고 선포했기 때문이다. 정책적 차원에서 실천을 매개하기 위한 것은 바로 이 의제에 그 핵심적 내용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많은 지역에서 이 의제를 작성하고 실천하는 과정에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그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지역사회의 비전을 만들고자 하는 주체와 의제를 작성한 주체들 사이에는 그리 차별성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왜 또 새삼스럽게 지역사회 비전을 만들자고 하는가?

여러 지역에서 만들어 진 지방의제21은 여러 가지 장점과 한계를 안고 있지만, 이 논의와 관련해서는 그 의제를 만드는 과정이 시민들에게 개방되고 널리 소통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다. 또한 그 실천계획에 있어 지역사회의 주인이자 지역사회 비전만들기와 발전의 주체인 주민・시민들의 구체적 참여계획이 이들로부터 도출되지 않음으로써 단지 선언적 실천계획에 그치고 말았다는 것도 지적할 수 있겠다.

따라서 지역사회 비전만들기가 새롭게 주장되는 것은 시민들의 참여와 소통이라는 점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논의에 있어 가장 걱정되는 것은 우리의 논의가 또 다시 사회운동가들의 논의와 실천에 매몰되어 버리는 것이다. 즉, 시민의 참여를 표방하지만 결국 시민운동단체, 그 중에서도 시민운동 활동가들만의 참여에 그치는 것이다. 시민운동단체의 참여가 곧바로 건강한 시민들의 참여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양적인 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그러하다. 비록 시민단체들이 다수 시민들을 대변한다고 하는 점에서는 이의를 달 수 없겠지만, 그리고 시민운동단체들이 소수 주민만을 대변하기보다는 공공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겠지만, 다수 시민들이 시민운동단체에 자신들을 대표하도록 위임한 적도 없었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일반 시민들의 참여와 시민운동단체, 특히 전문화된 시민운동 활동가의 참여에 대한 역할이 구분되어 정립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 양자 간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으면, 몇몇 시민운동 명망가 또는 활동가들의 참여가 시민들이 참여로 둔갑될 위험이 높다. 그럴 경우 시민운동은 오히려 시민들을 주체적 참여의 과정에서 소외시키고 무임승차자로 만드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음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물론, 세상에 어느 시민운동단체도 일부러 시민들의 참여를 가로막고자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나름대로 갖은 방법들을 동원하곤 한다. 하지만,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안은 산적함에도 시민들의 참여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시민운동단체들은 당연히 시민사회 일반의 이해를 ‘대변(advocacy)’하는 운동방식을 채택하곤 해왔다. 그렇다면 시민들의 대중적 참여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인가? 아니면, 시민운동의 방법이 잘못된 것인가?

솔직히 고백하자면, 시민운동가들이 시민의 참여를 목청높이 외치는 것만큼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가 하는 것 자체에 대해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과제 중심의 사고는 만연했지만(task oriented),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과정 중심의 사고(process oriented)는 미약했다고 판단된다. 세상에 권한 없는 참여를 매력적이라 느끼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는 시민운동단체나 시민운동가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일반 시민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권한이 주어지지 않은 동원 대상임에도 그 참여행위에 대해 지속적인 기쁨과 보람을 느낄 사람은 없다. 기쁨과 보람(혹은 돈?) 없이 참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쁨과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는 참여의 행위에 권한을 부여해 주어야 한다. 그러하지 못한다면, 시민운동 진영이 정부의 행동에 대해 ‘동원’이라 비판하는 것으로부터 우리 자신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대안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주체는 일반 시민 또는 주민 대중이다. 시민운동단체와 전문적 시민운동가는 그러한 주체를 형성하는(자치적 역량을 갖추도록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즉, 이들은 시민을 대표하거나 대변하는 주체이기보다, 일반 시민대중의 참여를 조직하고 매개하고 지원하며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것이 중앙시민운동이 아닌 지역의 시민운동이 지닌 장점과 특징을 잘 살리는 것이다. 물론, 모든 시민운동이 이러한 대중운동으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고 강변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지역사회의 비전을 만드는 데에 있어서 조차 이러한 풀뿌리적 관점을 간과한다면, 지역사회의 시민운동은 또 다른 엘리트운동으로서의 자기 전망밖에는 갖지 못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문가의 역할 역시 이와 마찬가지이다. 총체적인 지역사회의 비전을 만든다고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이 그 비전을 가장 잘 만들 수 있을 듯한 전문가를 섭외해야 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일반적 과정이었다. 전문가는 자신의 분야에서 깊은 지식과 고민을 쌓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 뿐이다. 비전은 전문가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일반 시민들의 욕구와 바램을 통해 비전은 만들어 지는 것이다. 전문가는 그러한 시민들의 욕구와 바램을 현실 가능한 것으로 정리하고 체계화하는 역할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간혹 또는 자주 이러한 전문가의 역할이 일반 시민 대중의 역할 영역까지 침범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또 다른 엘리트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소치이다.

따라서 지역사회 비전 만들기는 비전을 만드는 주체를 형성화는 과정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지역사회의 비전을 만들기 위한 지금의 논의가 당장 내년 선거에 써먹을 공약을 만들고자 한다면, 거창하게 지역사회발전 비전이라기보다는 출마자들의 공약을 만드는 것으로 그 위상을 축소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굳이 시민의 참여니 하는 것들을 고려할 필요 없이, 바람직한 정책을 도출해 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 실천은 그 이후에 생각해도 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진정한 지역사회비전을 만들고자 한다면, 그 과정에서부터 풀뿌리적 관점을 견지하기를 제안한다. 그럴 경우, 내년 6월 지방선거 이전까지 총체적인 지역비전이 도출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 지금 우리가 계획하는 것이 정치인이 만드는 지역사회비전이 아니라 시민들이 만드는 지역사회비전이라면 말이다. 우리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종종 가장 중요한 것들을 흘려보내는 일을 반복해 오지 않았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비전만들기의 실천

최근에 우리가 시도하고 있는 지역사회 비전만들기는 일단 지역사회에서 중요하게 쟁점이 될 만한 주제들을 골라 이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는 수준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런데 이렇듯 주제분류를 통해 지역사회 비전만들기를 접근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 주요한 내용을 규정하게 되고, 나머지는 전문가들의 작업에 일정한 조언과 수정을 가하는 것 정도에 그칠 위험이 매우 높다. 이는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정책을 만드는 과정으로는 매우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비전만들기는 정책만들기와 전혀 다른 개념이어야 한다.

비전만들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정책적 수위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우리가 상정한 목표를 달성해 나갈 것인가 하는 실천계획을 수립하고 직접 실천해 나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몇 가지 주제들을 나열하고 그 주제에 맞는 정책 및 실천적 과제를 도출하는 식의 방향은 지역사회의 총체적인 비전의 내용들을 나열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즉, 비전만들기를 위한 참고서로서의 기능 정도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정작 지역사회 비전만들기는 지역사회 주민들로부터 그 의제가 제기되고 또 그 실천의 내용이 도출되어야 한다. 그것이 실천적 만들기의 바람직한 경로이며, 또한 이 시기에 우리가 지역사회 비전만들기를 논의하는 주요 이유이기도 하다.

이를 실천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역사회의 시민들이 참여하여 자신들의 바램과 욕구를 쏟아 붓는 장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나서, 그 쏟아져 나온 시민들의 욕구와 바램을 체계적으로 정리・분석하여 다시 검증받는 등의 기회를 여러 차례 가지자. 이것은 지역사회운동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지역조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에 가능한 대로 많은 다양한 시민들이 참여하도록 조직하고 중재하자. 최소한 몇몇 전문가와 활동가들에 의해 비전을 만드는 과정이 이루어지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럴 경우, 그 결과물은 우리 지역사회의 비전 만들기가 아닌 지역발전 ‘정책’의 제시에 그칠 것이다. 물론, 이 결과물은 선거시에 공약으로 활용하기에는 안성맞춤일 것이다. 그럴 바에는 따로 지역사회비전을 만들기보다 현재 있는 지방의제21을 수정하는 작업이 보다 효율적일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과정을 밟는 방법으로는 마을만들기에서 많이 활용하는 다양한 디자인 게임의 기법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워크숍의 진행에서부터 시민참여자들이 스스로 지역사회의 문제와 개선방향을 조사하고 제시하며 이를 가시적이고 구체적으로 체계화하여 공유하는 법, 우선순위의 도출과 향후 실천계획의 수립 등등에 있어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지역조사의 과정에 시민들이 참여하고, 그 조사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실천계획까지 수립하게 되는 과정이 지역사회에서 가장 바람직한 지역조사이자 실천계획 수립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이를 PAR(Participatory Action Research)라 한다).


비전을 만들기 위한 힘(power)의 형성

지역사회의 비전을 구체적으로 만들어(실천해) 가는 힘은 당연히 지역사회의 정치적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가능하다. 문제는 이 정치적 권력을 어떻게 형성해 가느냐 하는 것이다. 가장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현재 제도적으로 주어진 권력에 제도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즉, 지방의원 또는 자치단체장 선거에 후보를 출마시키고 당선시키는 과정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민의 참여를 전제로 하지 않는 이런 시도는 무모할 뿐이며, 설령 그러한 전제 없이 제도적 권력을 일정 정도 차지할 수 있다 하더라도 지역사회비전 만들기가 제대로 진행될 리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비전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 그 자체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주장하지 말자. 지금까지 이러한 시도들이 낳은 결과는 정작 엉뚱한 곳으로 우리를 이끌 뿐이었다.

시민들의 참여 없는 제도적 권력의 배분은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또 다른 행동만을 낳을 뿐이다. 제도적 권력은 시민 대중의 권력을 형성하는 전략적 목표를 위해 채택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으로 지역사회 시민들이 주체가 되고 또 이를 통해 실천하고자 하는 비전을 만들고자 한다면, 시민들의 참여를 어떻게 활성화시키고 이를 어떻게 정치적 힘으로 표출할 수 있을까를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똑똑한(?) 몇몇이 시민들을 위해 살기 좋은 지역사회를 만들겠다고 한다면, 대다수 시민들은 또 다시 지역정치(권력)의 주변인으로 남도록 강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바람직한 정치권력을 형성하는 방법은 시민대중의 정치적 권력을 새롭게 창출하는 것이다. 만약 내년 지방선거가 바람직한 지역사회를 실천할 수 있는 좋은 정치적 계기라고 판단한다면, 누구를 출마시키고 당선시켜 우리가 원하던 바를 이루자고 해서는 안 된다. 시민들의 참여를 활성화시키고 이들에 의해 권력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에서 그 하나의 역할로 누군가 제도적 권력을 분점할 수 있는 지방정치인이라는 지위를 통해 이 일을 하도록 하자는 식으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즉, 제도정치인을 만들고자 하는 논의는 그 제도정치인을 통해 지역사회의 비전을 만들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라, 그 제도정치인의 역할을 지역사회비전을 만드는 주체를 형성하고 비전을 실천하는 데에 있어서 하나의 역할을 맡기기 위해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즉, 역할분담의 차원으로 고려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민대중이 정치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정치조직을 지역 내에 건설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누누이 강조하듯이 이 정치조직의 가장 큰 목적은 시민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는 것이지 기존 정당과 같이 많이 출마시켜 제도화된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아니다. 많이 출마시켜 제도화된 정치권력을 장악하고자 하는 것은 기성 제도정당의 역할이다. 이들에게는 그런 목적이 있으며, 그것이 잘못이라 볼 수 없다. 이러한 정당과 시민사회운동과의 바람직한 관계설정은 긴밀한 연대 또는 네트워킹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보적) 정당과 연대한다는 것은 시민사회운동의 역할이 정당과는 명백히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또 달라야 한다. 시민사회의 활성화를 통해 스스로 대안적인 지역사회를 만들어 나가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시민대중권력의 창출, 그것이 시민사회운동이 기성정당과 달리 지향해야 할 바라 하겠다. 이 권력은 기존의 제도화된 권력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의미의 권력인 것이다. 즉, 시민사회운동은 기존의 권력을 우리가 차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고자 하는 지향을 가져야 할 것이다.

시민대중의 정치조직을 지역 내에 건설하기 위해서는 지역 내 다양한 자원들 간의 네트워크 건설이 필요하다. 어차피 개별 시민운동단체가 지역사회 발전의 총체적 비전을 실천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까지의 시민운동을 평가하면서, 개별 단체의 발전이 곧바로 그 지역사회 전반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 역시 아니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의 총체적인 발전을 위한 비전은 그보다는 이러한 개별 자원과 성과들을 해당 지역사회의 발전이라는 하나의 지향으로 연결시키는 작업을 통해 수행될 수 있을 것이다.

네트워크는 연대(회의체, 협의회, 연합 등)와는 다른 개념이다. 연대는 상시적으로 함께 한다는 개념인데 반하여 네트워크는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자가 가진 일정 자산(재능)만을 공유하는 것이다. 따라서 네트워크에서는 그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각 부분들이 크든 작든 자신들의 역할을 나누어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즉, 지역사회의 다양한 인적・물적 자원들이 하나의 지향 하에 각자의 역할분담을 통해 지역사회비전을 만들기 위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그 성과를 하나로 모아 또 다시 골고루 분배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지역사회비전을 만들기 위한 네트워크는 단체 간 네트워크보다는 인적 네트워크가 현 시기에서는 더욱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것이라 여겨진다. 아무래도 단체가 네트워크의 주요한 부분을 이루게 되면, 이중적 의사결정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래서야 네트워크가 원만히 운영되기 힘들다. 그리고 아무래도 단체들은 현실적으로 자신들의 활동 전면에 정치적 활동을 내거는 데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단체 간 네트워크는 기존 단체에 참여하지 않는 일반 시민들의 참여를 제한하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역사회비전 만들기는 어느 일방에 의해 주도되기보다는 지역사회를 시민의 도시로 만들기 위한 지향에 동의하는 지역사회의 광범한 자원들의 네트워크 건설을 통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방법이라 볼 수 있겠다.


글을 나오며

이 발제문의 한계는 지역사회의 비전을 만들기 위한 구체적 상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보다는 그 과정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들을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구체적인 상들은 이어지는 워크숍을 통해 참여자들이 그려보았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앞서 제안하고 주장한 내용들을 간단히 정리하면 아래의 그림과 같이 표현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