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내음 팀블로그/이호의 "투덜투덜"

우리나라 풀뿌리 자치의 실상과 과제-1

'녹색당' 2007. 7. 25. 10:52

* 이 글은 지방행정연구원에서 발간하는 [자치행정] 8월호에 실은 원고로, 앞으로 2회에 걸쳐 추가로 연재할 예정이다.

우리나라 풀뿌리 자치의 실상과 과제①


이 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작년 초, 안식년을 맞아 동남 아시아 지역으로 배낭여행을 갔다 한국에서 온 초등학교 선생님 몇 분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분들은 휴가철도 아닌 시기에 배낭여행을 하고 있는 내 정체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무슨 일을 하느냐는 질문에, 풀뿌리 자치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일을 주로 한다고 대답하였다. 그랬더니 그 분들이 대뜸 하시는 말씀은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말은 들어봤지만, ‘풀뿌리 자치’라는 말은 처음 들어봤다”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용어의 차이와 유사점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개념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오해를 먼저 지적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오해는, 지방자치제가 실시됨으로써 풀뿌리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방자치제는 단지 풀뿌리 민주주의가 가능할 수 있는 제도적 틀에 불과하다. 그 틀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그 내용마저 자연스럽게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지방자치제의 실시와 풀뿌리 민주주의는 상호 연관성은 있으나, 같은 것으로 등치시킬 수 없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형식적인 지방자치제도의 내용을 채우려는 일련의 노력을 통해 정착시켜야 할 핵심적인 내용이다.

두 번째 오해는, 풀뿌리 민주주의는 지역 주민들의 의사를 올곧게 대표하는 사람들을 잘 뽑고, 이들이 그 의사를 존중해서 정치를 잘 하면 이루어진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풀뿌리’라는 용어를 잘 살펴보면 충분치 않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풀뿌리’라는 용어는 ‘풀의 뿌리’라는 뜻으로, grassroots 라는 단어의 순 우리말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단순히 ‘풀의 뿌리’라는 뜻 이외에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풀뿌리(grassroots)는 ‘정치권력으로부터 소외된 다수 대중’, ‘보다 근본적인 원리’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단순히 주민들이 자신들의 대표자로 선량(善良)들을 뽑고, 이들이 자신의 통치행위를 잘 한다는 차원에서 사용하는 것은 너무 폭 좁은 해석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용어 자체를 단순하게 설명하려는 시도는 많은 오해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풀뿌리 민주주의의 중요한 핵심은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다수 시민들이 참여하는 민주주의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역의 시민들이 스스로 민주주의의 주체로서 일상에 참여하고 이를 통해 지역사회의 실질적인 의사결정과정을 주도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풀뿌리 자치’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이러한 점을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풀뿌리 자치, 풀뿌리 민주주의는 지방자치제도가 내포하는 가장 중요한 의미 중 하나인 주민자치와 그 맥을 같이 하는 용어이다.

하지만, 우리의 지방자치제도는 주로 단체자치를 중심으로 그 제도 및 운용이 이루어지고 있어, 일반 시민들 즉 우리 사회의 풀뿌리들이 민주주의의 주체로서 정치적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단지 선거일에만 자신들이 속해 있는 사회의 주인으로서의 자기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이는 많은 정치사상가들로부터 정치의 주체여야 할 시민들을 정치로부터 소외시키는 비민주적인 현상이라 비판받고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와 풀뿌리 자치는 일상적으로 시민 대중, 특히 지역사회의 일반 시민 대중들이 정치적 의사결정권을 행사하거나 또는 최소한 그러한 의사결정과정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민주주의의 형태와 운영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지방자치제도가 달성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이다. 그러한 목표가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명확히 제시되거나 일상적으로 발현되지 못하는 것이 일반 시민들로 하여금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오해 또는 풀뿌리 자치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 볼 수 있겠다.

물론, 우리 사회의 지방정부 및 정치인들도 시민들의 참여가 중요하다는 것을, 남에게 뒤질세라, 강조하고 있다. 그러한 대표적인 사례가 각종 위원회를 구성하여 시민들을 참여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각종 주요한 계획 과정에 공청회 등을 통해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려는 노력도 시민참여의 주요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행정과 정치권의 합리화 전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먼저, 각 지방정부마다 수 십개, 거의 1백 여개에 이르는 위원회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형태를 살펴보면, 왜 이러한 비판이 정당한가를 잘 알 수 있다. 먼저, 권한 범위에 있어서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대부분의 위원회는 단순한 자문형태의 권한밖에 주어져 있지 않다. 자문이란 결정권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아무리 위원회에서 이야기를 해도, 결국 그를 채택하느냐 마느냐의 여부는 행정 담당자 또는 단체장 및 정치인들이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이런 상태를 풀뿌리 자치의 한 형태라 볼 수 없다. 자치의 권한이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위원회들은 실제로, 자신들의 결정을 위원회라는 기구를 통해 전문가 및 시민의 의견을 수렴한 것이라는, 자기 합리화의 도구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는 참여하는 시민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를 지적할 수 있겠다. 위원회에 참여하는 위원은 대개 관련된 업무를 처리하는 행정이나 그와 관련된 정치세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지명・위촉된다. 이런 상태에서는 각종 위원회에 참여하는 위원들에게 시민의 대표성을 부여할 수 없다. 이는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에 전문가를 위촉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전문가는 자신의 영역에서는 전문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시민들의 욕구와 생활에 대해서도 전문성을 갖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이들의 의견이 시민들의 의견을 대표한다고 볼 수 없다. 또한 그 전문성이라고 하는 것도 객관적인 것이 아니다. 나름대로 자타가 공인한다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각종 사안들에 대해 전혀 다른 입장들이 개진되는 것을 봐도, 그 전문성에 대해 객관적인 가치를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심지어는 관련 이해 당사자가 위원으로 참여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작금의 위원회 구성 방식으로는 위원회가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통로라고 할 만한 근거를 찾기 어렵다.

세 번째는 운영 형태를 지적할 수 있겠다. 실질적으로 위원회는, 일부 위원회를 제외하고는, 매우 부정기적으로 열리고 있으며, 각 자치단체마다 1년에 1회 모임을 갖지 않는 위원회도 다수 있는 실정이다. 그것은 많은 위원회의 위원장이 시장 또는 부시장 등의 공무원이 맡는 경우도 있어, 행정의 편의에 따라 위원회 개최 여부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행정의 각종 정책에 대해 시민들로부터 직접 의견을 듣기 위해 시행하고 있는 공청회 역시 시민참여를 통한 풀뿌리 자치, 풀뿌리 민주주의의 의의를 충실히 시행치 못하고,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먼저, 공청회가 열리는 시간이 주로 낮 시간대라는 것을 지적할 수 있겠다. 이미 시간대에서부터 직장에 다니는 시민들의 참여를 원천봉쇄하고 있다. 그리고 공청회는 주로 전문가들의 말잔치로 시작해 말잔치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이 쏟아 붓는 어려운 전문용어들은 참여자들을 주눅들게 하고, 이는 결국 행정과 함께 작업해 왔던 전문가들의 말잔치로 끝나곤 한다. 이 과정에서 그 이해당사자들인 일반 시민들의 의견을 듣고 반영하려는 세심한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이러한 절차는 매우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 자신들의 역할을 잃어버린 시민들이 이러한 과정에 참여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권한이 없는 곳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시민들의 참여의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참여의 동기를 제공해 주지 못한 것에 일차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단지 몇몇 가지 현상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다음 호에서는 각종 행정문건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거버넌스가 실제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 등을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이 연재의 마지막에서는 민간으로부터 풀뿌리 자치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과 그 과제 등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