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내음 팀블로그/하승수의 "두서없는삶과자치이야기"

부패는 복지.인권을 잡아 먹는다(인도의 풀뿌리 정보공개운동)

'녹색당' 2007. 8. 8. 11:12
몇년전에 일본에서 아시아의 '정보공개'와 관련된 워크샵이 있었습니다. 그 때에 인도의 어느 여성변호사가 와서 발제를 했는데, 제 영어실력이 짧아서 그 때는 잘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 때 받은 자료를 나중에 와서 읽어보니 소개할 만 해서 예전에 참여연대에서 발간하는 참여사회에 글을 실었었습니다.
'반부패'라는 이슈는 한국에서 흘러간 이슈라고들 하는데, 제가 보기에 양극화가 진행될 수록 부패는 구조적으로든 돌출적으로든 사회적 약자의 복지와 인권을 침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때에 참 감명받았던 것이 인도에서는 정보공개운동도 풀뿌리운동으로 하더군요. 그 때 보여준 비디오중에 농촌 부락의 주민들이 "right to information"을 외치며 주먹을 드는데, 그 강렬한 인상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나중에 비디오를 구해 보고 싶었으나, 역시 저의 짧은 영어실력때문에 포기했었지요). 아래의 글을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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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아시아를 위하여

1987년 여름 인도의 황량한 불모지대인 라자스탄주의 한 조그마한 마을에 있는 초라한 오두막집으로 세 명의 풀뿌리 활동가가 들어갔다. 그들의 목적은 가난한 농촌지역 사람들과 삶과 투쟁을 같이 하려는 것이었다.
이 세 사람의 활동가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아루나 로이(Aruna Roy)는 인도의 중앙정부에서 엘리트 관료로 일하다 사임하고, ‘The Social Work and Research Center’라는 NGO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단순히 농민들에게 서비스를 전달하는 차원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일을 찾던 중에, 미국유학을 그만두고 농촌사회에서 운동을 하려고 하던 닉힐 데이(Nikhil Dey), 뛰어난 유머감각으로 농민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던 샹카 싱(Shankar Singh)과 함께 라자스탄으로 뛰어든 것이다.
이들이 뛰어든 지역은 높은 문맹율(여성의 1.4%, 남성의 26%만이 문자해독능력이 있었다), 낮은 임금으로 고통받고 있던 지역이었다. 이들은 농촌의 가난한 사람들과 힘을 합쳐 「머즈도어 키산 사크딕 상가탄」(Mazdoor Kisan Shakti Sangathan, 약어로 MKSS라고 부르며 ‘노동자 농민의 힘’이라는 뜻)이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농촌지역의 빈민들에게 최저임금을 보장하기 위한 투쟁을 하던 MKSS는 1994년 겨울부터 그들의 투쟁을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어 갔다. 바로 정보공개라는 새로운 수단을 이용하여 부패와 싸우게 된 것이다. 인도정부는 농촌지역의 빈민들을 구제하기 위해 공공사업을 벌이는 등 많은 예산을 사용해 왔다. 그러나 문제는 부패한 관리들에 의해 중간에 공금이 착복당하고, 실제로 농민들을 위해 사용되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데에 있었다. MKSS는 공공사업에 관한 문서 등 정부가 가지고 있는 정보에 대해 공개를 요구했다. 공개된 문서를 바탕으로 해서 주민들을 상대로 일일이 확인한 결과, 공금이 착복된 사실을 밝혀 냈다. 운하를 건설한다고 해서 돈이 지출 되었는데 해당 지역에 가보면 운하 건설공사를 한 흔적조차 없었다. 빈민들을 고용해 사업을 하고 이들에게 월급을 준 것으로 장부에는 기록돼 있는데 실제로 빈민들은 일을 한 사실도, 돈을 받은 사실도 없다는 것을 밝혀냈다. 인도에 만연한 이런 부패상은 바로 높은 문맹률과 철저하게 봉쇄돼 있는 정보접근권(right to information)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MKSS는 주민공청회(public hearing)를 통해 문맹인 주민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는 운동을 벌였고, 이들의 노력은 부패척결과 ‘알 권리’ 보장에 큰 기여를 했다. 마침내 인도의 라자스탄주에서는 이들의 노력에 의해 2000년도에 정보공개법(정식 명칭은 ‘The Rajasthan Right to Information Act, 2000’이다)이 주법으로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아시아는 부패와 전쟁중

이런 인도에서의 경험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아시아의 공통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대다수의 아시아 시민들은 불투명한 정부에서 발생하는 부패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만, 경제적 수준이 높은 국가에서는 그것이 국민들에게 생존의 문제로 다가오지는 않지만, 경제적으로 낙후된 국가에서는 국민들의 기본적인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아시아 각국에서는 정부의 투명성을 확보함으로써 부패한 관료들을 견제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실현시키기 위한 정보공개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정보공개를 위한 기본적인 법·제도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정보공개는 21세기 아시아 시민사회의 큰 ‘의제’로 대두되고 있다.
1996년 12월에 한국에서 아시아 최초로 정보공개법이 만들어진 이후, 1997년 9월에 태국에서 정보공개법(정식 명칭은 ‘The Official Information Act’이다)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일본은 1999년 5월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정보공개법을 만들었고 2001년 4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또한 인도에서도 국가 차원의 정보공개법(The Freedom of Information Bill)이 2000년도에 제정되었다.
이런 법제정의 이면에는 이를 위한 NGO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태국의 경우에도 1992년 5월에 있었던 민주화운동에서 흘린 엄청난 피의 결과로 헌법을 전면적으로 개혁하게 되면서, 정보공개법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경우에도 정보공개법의 제정은 20년 동안 시민운동을 벌인 결과이다.
또한 아직까지 정보공개법이 만들어지지 않은 국가들에서도 이를 요구하는 시민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 환경법센터(Indonesian Center for Environmental Law)가 중심이 되어 정보공개법 제정운동을 벌이고 있고, 필리핀에서 NGO들이 국가 차원의 정보공개법의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정보공개 위해 아시아 NGO 연대해야

아시아에서 정보공개운동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정보공개법이 이미 만들어진 나라에서는 이 법을 활용해 정보공개운동을 벌이는 것이 시민운동의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런 정보공개운동의 확산은 아시아의 정치권력, 관료조직, 시민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물론 어떻게 운동을 해나가는지에 달려 있겠지만, 정보공개의 확산은 시민사회와 정치권력, 관료조직과 각각의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밀실 속에 있던 정보가 공개되면서 정치권력과 관료조직의 부패와 권위주의는 서서히 깨져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정보공개운동의 참여 경험을 통해 각성된 시민들과 시민운동조직들이 생겨날수록 시민사회의 깊이는 깊어지고 폭은 넓어질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아시아의 시민들이 교류하고 연대할 필요가 있다. 우선 정보공개운동의 여러 가지 경험을 교류하고, 각 나라의 법·제도를 비교하여 자기 나라의 제도에서 부족한 점들을 고쳐나가기 위해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한국에서는 공개되지 않는 정보가 태국에서는 공개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대학입학시험의 성적을 공개해 달라는 학부모의 청구가 거부되었고, 1심 소송에서도 패소했다. 그런데 태국에서는 특권층들이 다니는 명문 초등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려다가 좌절된 한 학부모가 다른 학생들의 입학성적을 공개해 달라는 청원을 내 정보공개위원회(Official Information Commission)에 의해 받아들여졌고, 이것이 최고재판소에서 확정되었다. 그래서 태국에서는 학교 입학시험의 결과와 답안지가 모두 공개되고 있다. 입학시험은 사생활이라기보다는 공적인 관계 속에서 행해지는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이런 태국의 사례는 관료들이 애매모호한 ‘사생활’ 개념을 무차별적으로 확대하려고 하는 한국의 상황에서는 좋은 선례가 될 것이다.
또한 한국의 경우에는 정보공개를 거부하는 행정관청들에 대해 지리한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태국의 경우에는 정보공개위원회와 정보공개재판소(Infor-mation Disclosure Tribunal)가 있어서 정보공개와 관련된 분쟁을 전문적이고 신속하게 해결하고 있었다. 이렇게 상호간의 법·제도를 비교해 보면, 자기 나라 법·제도의 어떤 점이 부족한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은 각기 다른 역사적 경험과 경제적, 정치적 조건에 처해 있다. 그런데도, 21세기를 맞으면서 정보공개가 공통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아시아의 정치권력과 관료조직이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부패에 취약하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과 싸우는 NGO들에게 ‘연대’는 당위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