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내음 팀블로그/김현의 "잡동사니"

[가족일기] 딸아이가 당황스럽게 했던 사건들

'녹색당' 2007. 9. 21. 10:59

해가 떨어지면 아파트 16층으로(현재 사는 곳은 15층) 올라가는 계단 사이에 귀신이 나타난다고 철석같이 믿는 딸아이와 옆집 친구들은 날이 어두워지면 하나 둘 모여 귀신을 잡겠다고 난리를 핀다. 한 아이는 죽도를 들고 나오고, 또 한 아이는 등산용 지팡이를 들고 나오고, 어떤 아이는 장난감 칼을 들고 나온다. 내 딸아이가 긴 막대 우산을 들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복도를 지나 살금살금 어두운 계단 밑으로 집결한다.


얼마 후, ‘딱! 딱!’ 소리가 복도 한복판에서 들려오고, 무슨 일인가 슬그머니 나가보면 자기들끼리 칼싸움을 하고 있다. 귀신이 나오든 말든, 애초부터 아이들은 귀신을 잡기 위해 모인 것은 아닌 듯싶다. 죽도와 지팡이가 부닥치고 우산이 장난감 칼과 부닥친 후, 다시 우산과 죽도가 부닥친다. 그렇게 저녁만 되면 둔탁한 소리가 스산하게 정적을 깬다.


복도는 제일 좋은 놀이터......


다음 날. 울산에 갈 일이 있어 아침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섰다. 하늘을 보아하니 머지않아 비가 올 것 같았다. 그래서 어제 딸아이가 갖고 놀았던 긴 막대 우산을 집어 들었다. 지하철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우두둑 비가 내린다. 나는 얼른 쥐고 있던 우산을 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우산을 받친 쇠 철사가 우두둑!!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우산이 도저히 펴지질 않는다. 허걱! 짧은 시간이긴 했지만, 나는 비를 흠뻑 맞아야만 했다. 순간, 어젯밤 딸아이의 행동이 떠올랐다. 무지막지한 칼싸움........바로 그것이 원인이었다. 이런 된장!!!!!!


그보다 조금 더 오래된 일이다. 내 주변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황당한 일.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 내 휴대폰으로 사진 찍고 동영상 촬영하는 것이 취미인 내 딸아이가 사건이 벌어진 전날 밤에도 열심히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뭔가 열심히 버튼을 누른다. 그날따라 꽤 열심히 버튼을 눌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음 날. 너무나 평화로운 날이었고,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사무실에서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에게 연락할 일이 생겼다. 난 얼른 휴대폰에 저장된 누군가의 연락처를 찾기 위해 검색을 했다. 그런데 이름은 뜨지 않고 ‘목록이 비어 있음’이라는 메시지만 뜨는 것이 아닌가? 그때까지 난 절대로 당황하지 않았던 것 같다. 검색어를 잘 못 눌렀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반복했다. 결과는 똑같았다. 뭔가 스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혹시........하면서 전체 저장된 목록을 봤다. 저장된 이름이 하나도 없었다. 400명가량 저장되었어야 할 휴대폰에 단 한 사람의 전화번호도 없었던 것이다. 상황을 파악한 후, 난 큰 소리로 경악하고 말았다. “으~~~악~~~” 화장실에서 용무를 보고 있던 경송 형이 바지도 추스르지 않고 화장실 문을 뛰쳐나왔다. “무슨 일이야?” 내 비명 소리에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뛰쳐나왔던 것이다. 상상했겠지만, 내 딸아이가 저장된 모든 번호를 한 큐에 삭제시켜버린 것이다. 나에겐 천일공로 할 만행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런 된장!!!!!


어느 날 오후 시간이었다. 낯선 번호가 휴대폰에 떴다. 통화 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 “아빠, 난데, 있잖아........” 그러더니 전화가 끊기는 것이 아닌가? 몇 초 후, 다시 전화가 걸려온다. “아빠, 전화 끊지 말고 내 말 들어봐........” 하면서 전화가 또 끊겼다. 조금 다급한 목소리의 딸아이였다. 그렇게 서너 번, 딸아이의 목소리는 점점 다급해졌다. 나는 필히 딸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추측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린이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지금 이 시간에 어린이집에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원장님, 다빈이 좀 바꿔주실래요?” 그런데 딸아이가 없단다. “아직 피아노 학원에서 안 왔는데요?” 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머리가 하얗게 변한 것 같았다. 이를 어쩌지.......이를 어쩌지.......하는 순간에 또 다시 그 낯선 번호가 떴다. 얼른 전화를 받았다. 딸아이였다. “아빠, 난데, 전화 끊지 마!” 하더니, 얼마 후 한 안내원의 멘트가 나오는 것이었다. “콜렉트콜입니다.......계속 통화하고 싶으면 아무 버튼이나 누르세요.”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딸아이는 피아노 학원 앞 공중전화를 이용해 콜렉트콜을 한 것이다. 내가 머리 털 나고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공중전화 콜렉트콜을 딸아이는 용감하게 눌러버린 것이다. 딸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불안감이 없어지긴 했지만, 또 한 번 당했다는 생각에 조금 화가 나려고 했다. 그런데 더 화가 났던 것은 딸아이의 용무였다. “아빠, 몇 시에 찾으러 올 거야?” 허걱!! 그거 물어보려고 콜렉트콜을 이용했단 말인가? 이런 된장!!!



애교 섞인 황당함.....혼내줄 수 없는 저 표정......

나에겐 잊지 못할 일이기도 하고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애교 섞인 황당 사건들이었다.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딸아이와 얼굴을 마주쳤을 땐,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 딸아이가 조금 얄미웠지만, 그래도 어쩌랴! (아빠가 되는) 성장통이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