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정치

"‘지역’없는 정당체제와 풀뿌리 민주주의의 위기"-정상호

'녹색당' 2007. 5. 21. 14:52
2006년 7월 5일(수) 오후 3시, 배재대학교 학술지원센터에서 개최된 "지방선거 이후의 풀뿌리지역운동의 방향과 과제"라는 시민사회연구회[풀뿌리정책포럼] 발표글입니다. "‘지역’없는 정당체제와 풀뿌리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주제의 한양대학교 제3섹터연구소의 정상호 박사님의 글입니다.



이 글은 5.31 지방선거의 과정과 결과를 ‘지방정치’(local politics)의 관점에서 해석해 보고자 하는 시도에서 이루어졌다. 이 글에서는 중앙(national)정치의 대칭 개념으로 지역이 아닌 지방정치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지역이 동질성을 공유하는 지리적 단위를 지칭한다면, 지방은 중앙으로부터의 독립성과 특성을 강조한다.  5.31 지방선거는 몇 가지 점에서 중요한 사회과학적 질문거리를 남겨 놓았지만 한나라당의 압승과 집권당의 완패로 규정되는 이론의 여지없는 압도적 결과 때문인지 정치전망 이상의 정치학적 분석 대상으로 인식되지 않고 있다.

필자는 지방정치를 둘러싼 기존의 논쟁 지형이 대단히 협소하게 이루어져 왔다고 생각한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정치권은 여ㆍ야,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오늘의 ‘지역없는 지역정당체제’에 별다른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필자는 한국정치가 이중의 위기에 당면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최장집(2002, 2006)의 지적대로 노동 없는 민주주의, 보다 구체적으로는 사회경제적 기반을 갖지 않는 정당체제의 문제이다. 이에 대해서는 충분한 공론화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부연할 필요가 없다. 다른 하나는 ‘지역없는 지역정당체제’가 야기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왜곡, 즉 풀뿌리 보수주의의 문제이다. 한국의 정당체제는 유권자들에 대한 지역주의적 호소와 동원에 기초한 지역정당체제(박상훈 2000)이며, 그 기본 성격은 불변하고 있다. 문제는 이 체제가 계급과 계층 등 사회경제적 기반을 결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일상적 소통과 미시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생활정치’의 현장으로서 ‘지역’의 발전을 심각히 저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화 이후 오히려 생활정치의 토대로서 지역이 황폐화 되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는 역설적이게도 진보정당의 평가에서 발견된다. 한 관찰자는 민주노동당의 지방정치에 대해 “지방선거의 시기가 도래하면 지역의제 발굴이나 후보발굴에 집중하고 선거 이외의 시기에는 중앙의 투쟁방침을 중심으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지구당의 현실이 문제”라고 실토하고 있다(김태근 2006, 27).

둘째, 시민운동은 이번 선거를 치루면서 지방정치의 적폐와 모순을 고발하고 이에 근거한 바람직한 지방정치 모델에 대한 공론화를 유도하기보다는 지엽적인 논쟁과 수동적 의제설정으로 일관하였다. 이번 선거과정에서 도입된 정당공천제에 대한 강력한 비판적 인식이 시민운동 진영의 보편적 정서인 것 같다. 미리 말하자면, 정당공천제와 중선거구제가 시민운동 진영의 선거에 미친 영향은 박근혜 대표의 칼날피습사건이 열린우리당의 득표에 미친 파급력과 대동소이하다는 점이다. 후술하겠지만 문제는 선거제도(외인론)가 아니라 지방정치, 그리고 지방정치와 지역운동의 관계와 위상에 대한 체계적 비전과 이를 실천할 능력의 부족(내재론)에 있다. 이름도 생소한 메니페스토 운동 역시 중앙에 치우치고 언론과 전문가에 의존한 수동적 운동방식의 한계를 여전히 답습하였다.
셋째, 학계에서 지역과 지방정치는 아직 시민권조차 못 얻고 있다. 정치학은 지역주의 전략과 지역정당체계에 머물러 있고, 행정학은 자치와 분권의 효율적 통치양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당ㆍ지자체ㆍ시민운동ㆍ토호 등이 전개하는 권력 작용과 상호 관계에 대한 엄밀한 분석은 턱없이 부족하다. 정책선거로서 지방선거의 거듭된 실패는 정당은 물론 학계에서조차 지역 현안과 지역 정책에 정통한 전문가 집단의 결핍에도 원인이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필자는 바람직한 한국형 지방정치 모델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먼저, 한국의 지방정치의 실상을 정리한 후 그간 대안으로 거론되어 온 몇 가지 모델들의 타당성을 검토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