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와 풀뿌리운동
대통령 선거와 풀뿌리운동
이 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이제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각종 언론에서는 매일 같이 어떤 후보가 어떤 비리에 연루되었다거나 그렇지 않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 반복되고 있으며, 여타 후보들 역시 이 논쟁 속에 스스로를 빠뜨리고 있다. 그러다보니 선거국면이라는 공간을 통해 국민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하는 후보들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실상 비리의혹이 짙은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는 것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달갑지 않지만, 그렇다고 오로지 권력을 잡겠다는 일념으로 탈당과 통합 등을 반복하고 있는 모습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각 정당의 후보들은 국민들에게 희망을 전달하기 위해 대통령이 되려 하기보다는 자신이 권력을 잡으면 대한민국이 발전할 것이라는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은 비단 이번 대통령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이들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시민사회운동 진영을 비롯한 우리 사회 그 어떤 세력도 이렇듯 암울한 시기에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메시지를 던지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번 대통령 선거의 관심은 오직 누가 누가보다 낫고, 그러니 좀 더 나은 누구를 뽑아주어야 한다는 논리만이 무성해 있다. 이에 국민들은 이번 선거에서 희망의 한 표를 행사하거나 우리 사회에 희망의 싹을 보듬기 위한 어떠한 행동을 계획하기보다 누구를 뽑아줄까 하는 단순한 선택의 논리 속에 자신을 점점 깊숙이 빠뜨리고 있다.
그러나 한 번 가만히 되짚어 보자. 과연 우리가 좋은 대통령, 아니면 보다 덜 나쁜 대통령을 뽑는 것이 우리에게 우리 사회에 희망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물론, 좋은 대통령 또는 좀 덜 나쁜 대통령을 뽑는 것이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 또는 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우리 국민, 시민들은 오랜 동안 이러한 논리에 세뇌당해 왔다. 물론, 아직 우리 사회에 정치적 정당성이 확립되지 않았던 독재정권 시절에는 정권의 정통성과 민주성을 획득하는 것만도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이러한 정치적 정당성을 보위해야 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참으로 암울하다. 실상, 우리 시민사회운동 진영에 있어 지난 10년, 아닌 지난 20여년의 시기는 우리 사회에 사회적 정당성을 건설하기 위한 노력의 시기였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은 아직도 불완전한 채 여전한 과제로 남아있다. 그러나 선거 시기, 특히 대통령 선거 시기만 되면 이러한 그간의 모든 노력은 무시되고, 다시금 누가 권력을 잡느냐 하는 정치적 정당성의 논란에 휩싸이고 만다. 물론, 선거 특히 대통령 선거라는 사안은 일상적인 것과는 조금 구별되는 특수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특수한 상황 역시 뚜렷하게 확립된 우리 사회의 발전 전략의 과정과 범주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보여지는 많은 모습들은 여전히 권력을 누가 잡느냐 하는 논리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실상, 우리 사회의 권력은 우리 사회를 건전하게 발전시키고자 노력하는 시민들에게 있다. 그리고 작금의 사회운동에서 필요한 사회적 정당성은 바로 우리 사회의 권력을 주인들에게 되돌려주고 그 권력을 시민들이 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그 역량을 강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선거는 이러한 전략적 관점을 종종 묻어버리곤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통령 선거는 역대 그 어느 선거 때보다도 국민과 시민이 실종된 권력다툼의 양상으로만 전개되고 있는 듯하다.
최근 시민사회운동 진영에서 자주 거론되는 풀뿌리운동은 우리 사회의 풀뿌리, 즉 민초(民草)들이 우리 사회를 변화・발전시키는 주인이자 주역임을 선언하고, 이를 현실화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을 의미한다. 즉, 우리 사회를 건전하고 건강하게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은 막강한 권력을 잡고 이를 자신의 논리대로 국민(시민)들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특정 인물 또는 정치인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풀뿌리운동은 그 권력을 우리 사회의 풀뿌리들과 공유하고 그 풀뿌리들이 진정으로 우리 사회를 변화・발전시키는 주역이 되도록 보듬으려는 노력을 통해 진행된다는 믿음과 전망을 이야기 한다.
어느 술자리에서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풀뿌리운동을 이야기 하는 후보는 무조건 찍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하지만 그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내가 권력을 잡기만 하면 너희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겠다’는 정치인은 풀뿌리운동을 이야기 할 수 없다. ‘내가 권력을 잡으려는 이유는 너희들과 권력을 나누기 위해서이다. 함께 이 권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이야기해보자’는 후보가 진정으로 풀뿌리운동을 이야기 하는 후보라 할 수 있다.
과연 우리는 언제쯤 되어야 이러한 후보를 기대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이러한 후보를 기대하고 고대하는 염원이 깊어야 그 염원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