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참여제도/주민투표
부안 공무원들의 처신에 대해
'녹색당'
2007. 9. 28. 15:17
* 이 글은 2004년 2월3일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홈페이지에 게시된 글을 옮긴 것입니다.
지난 94년, 지방자치법 13조 2에는 주민투표법 제정의 근거를 마련하면서 따로 법률로 제정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지난 94년과 96년, 여당과 야당에서 각각 주민투표법안을 제출하였으나, 임기만료에 의해 자동 폐기되면서 주민투표법은 공중에서 배회하게 된다. 그 후로도 ‘국민의 정부’는 100대 과제로 추진하였으나 실패했고, 지난 2002년 초, 국회정개특위에서 제도도입을 천명했을 뿐, 이렇다할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그렇게 10년이 흘러, 얼마 전, 주민투표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빛을 보게 되었다.
주민투표법이 부침을 거듭했던 이유는 국민의 안녕을 누구보다 위하는(?) 정치인들의 걱정 때문이었다. 지역분열이 심할 것이라거나 정치적 이용 가능성, 그리고 현 정치체제인 대의민주제 훼손의 우려가 있다는 걱정이 그것이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 국민 수준은 아직 멀었다’로 요약된다. 뭣도 모르는 국민이 이렇게 훌륭한 법을 제대로 인식이나 하고 있을까? 그래서 지체 높으신 정치인들은 국민의 수준을 감안하여 지금까지 보따리를 풀지 않았던 것이다. 얼마나 갸륵한 지성인가?
본디 주민투표법이라는 것은 주민이 지역의 주인이므로, 지역의 중요한 문제는 알아서 주민끼리 결정하라는 메시지이다. 주민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칠만한 중요한 사안을 공무원 니들끼리 다 하지 말고, 당해 지역의 주민 의사에 따라 자주적으로 결정하라는 것이 주민투표법의 기본 취지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주민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핵발전소를 건설하고 거기서 나오는 폐기물을 처리하기 위해 핵쓰레기처분장을 일방적으로 건설하려고 한다. 쓰레기 매립장이나 대형 소각장을 건설할 때도 반대하는 주민에게 ‘지역이기주의’라고 쏘아 붙일 뿐이다. 혹은 지역발전 지원금이라는 얄팍한 사탕발림으로 주민여론을 왜곡하거나, 간혹 협박까지 일삼는다. ‘국책사업을 방해하는 이들에게 불이익, 또는 법적 대응’을 하겠노라고.
평화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부안 방폐장 유치 찬․반을 위한 주민투표 행사에 공무원들이 재를 뿌리는 모양이다. 좀 알만한 사람들까지도 ‘위법’이니, ‘불법’이니 가당찮은 언어사용을 남발하고 있다고 하니 어이가 없을 뿐이다. 현행 법체계에서 ‘주민투표’를 실시하지 말라고 명시된 법률이 도대체 어디에 존재하는가? 주민투표법이 발효가 안 됐기 때문에 모든 것이 위법이라면, 경남 통영시에서 진행된 관광케이블카 설치 주민투표나 울산시 북구에서 개최된 화장장 설치 주민투표, 그리고 서울시 광진구에서 진행된 지하철 출입구 위치를 위한 주민투표 등 여타의 지방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추진한 주민투표가 모두 위법이란 말인가? 몇 년 전, 55층 주상복합건물 찬․반 투표를 성공적으로 마친 고양시 백석동 주민들에게 위법시비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상기해보자. 대부분의 언론은 주민들의 의식수준을 높게 평가하면서 ‘민주주의 승리’라고 일컬었고, 시민사회는 그들의 용기에 큰 박수를 보냈다. 고양시 공무원들의 어떠한 방해도 없었음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 어느 주민투표보다 공정하게 진행되는 부안 방폐장 유치 찬․반 주민투표를 공무원들이 집단적으로 방해하는 처사는 이해할 수 없는 전근대적 행태이며, 주민들에 대한 인권침해이다.
현행 주민투표법에도 국가의 주요시설 설치 등 국가정책 수립에 관하여 주민의 의견을 듣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주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니까, 현행 법 하에서도 국책사업에 대한 주민투표는 주민의 의사를 충분히 듣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자문적 의지가 묻어 있는 것이다. 현재 부안에서 진행되는 주민투표도 이와 동일하다. 주민들이 스스로 주민투표를 실시하든, 중앙행정기관에 의해 실시하든, 그 결과에 대해서는 동일한 정치적 효력을 지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무원들의 처신은 어떠해야 하는가? 귀중한 업무시간에 얼토당토 않는 유인물을 길거리에 뿌릴 것이 아니라, 주민투표가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아니, 협조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주민들의 행사를 지켜만 봐라. 정, 자신의 주장을 펴고 싶다면, 정정당당하게 합리적인 토론의 장으로 나와라. 부안 방폐장 유치 찬․반 주민투표관리위원회는 주민들의 자유롭고 공정한 토론회를 위해 공론의 장을 만들어 놓고 있다. 그런 다음, 투표장에 가서 자신의 입장을 담은 투표용지를 기표소에 넣으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10년간, 선출직 공무원(국회의원)들에 의해 주민투표법이 유린당한 것을 지켜보았다. 바로 이런 정치인들의 처신으로 인해 정치인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하늘을 찌르고 있고, 국민들은 그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또 오늘, 직업적 공무원들에 의해 부안군민의 정당한 권리가 유린당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직업적 공무원들에 대한 불신이 높아질수록, 국민 심판의 칼자루가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역사는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앞으로 흘러간다.
"부안 공무원들의 처신에 대해"
김현(풀뿌리자치연구소 연구위원)
지난 94년, 지방자치법 13조 2에는 주민투표법 제정의 근거를 마련하면서 따로 법률로 제정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지난 94년과 96년, 여당과 야당에서 각각 주민투표법안을 제출하였으나, 임기만료에 의해 자동 폐기되면서 주민투표법은 공중에서 배회하게 된다. 그 후로도 ‘국민의 정부’는 100대 과제로 추진하였으나 실패했고, 지난 2002년 초, 국회정개특위에서 제도도입을 천명했을 뿐, 이렇다할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그렇게 10년이 흘러, 얼마 전, 주민투표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빛을 보게 되었다.
주민투표법이 부침을 거듭했던 이유는 국민의 안녕을 누구보다 위하는(?) 정치인들의 걱정 때문이었다. 지역분열이 심할 것이라거나 정치적 이용 가능성, 그리고 현 정치체제인 대의민주제 훼손의 우려가 있다는 걱정이 그것이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 국민 수준은 아직 멀었다’로 요약된다. 뭣도 모르는 국민이 이렇게 훌륭한 법을 제대로 인식이나 하고 있을까? 그래서 지체 높으신 정치인들은 국민의 수준을 감안하여 지금까지 보따리를 풀지 않았던 것이다. 얼마나 갸륵한 지성인가?
본디 주민투표법이라는 것은 주민이 지역의 주인이므로, 지역의 중요한 문제는 알아서 주민끼리 결정하라는 메시지이다. 주민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칠만한 중요한 사안을 공무원 니들끼리 다 하지 말고, 당해 지역의 주민 의사에 따라 자주적으로 결정하라는 것이 주민투표법의 기본 취지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주민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핵발전소를 건설하고 거기서 나오는 폐기물을 처리하기 위해 핵쓰레기처분장을 일방적으로 건설하려고 한다. 쓰레기 매립장이나 대형 소각장을 건설할 때도 반대하는 주민에게 ‘지역이기주의’라고 쏘아 붙일 뿐이다. 혹은 지역발전 지원금이라는 얄팍한 사탕발림으로 주민여론을 왜곡하거나, 간혹 협박까지 일삼는다. ‘국책사업을 방해하는 이들에게 불이익, 또는 법적 대응’을 하겠노라고.
평화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부안 방폐장 유치 찬․반을 위한 주민투표 행사에 공무원들이 재를 뿌리는 모양이다. 좀 알만한 사람들까지도 ‘위법’이니, ‘불법’이니 가당찮은 언어사용을 남발하고 있다고 하니 어이가 없을 뿐이다. 현행 법체계에서 ‘주민투표’를 실시하지 말라고 명시된 법률이 도대체 어디에 존재하는가? 주민투표법이 발효가 안 됐기 때문에 모든 것이 위법이라면, 경남 통영시에서 진행된 관광케이블카 설치 주민투표나 울산시 북구에서 개최된 화장장 설치 주민투표, 그리고 서울시 광진구에서 진행된 지하철 출입구 위치를 위한 주민투표 등 여타의 지방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추진한 주민투표가 모두 위법이란 말인가? 몇 년 전, 55층 주상복합건물 찬․반 투표를 성공적으로 마친 고양시 백석동 주민들에게 위법시비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상기해보자. 대부분의 언론은 주민들의 의식수준을 높게 평가하면서 ‘민주주의 승리’라고 일컬었고, 시민사회는 그들의 용기에 큰 박수를 보냈다. 고양시 공무원들의 어떠한 방해도 없었음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 어느 주민투표보다 공정하게 진행되는 부안 방폐장 유치 찬․반 주민투표를 공무원들이 집단적으로 방해하는 처사는 이해할 수 없는 전근대적 행태이며, 주민들에 대한 인권침해이다.
현행 주민투표법에도 국가의 주요시설 설치 등 국가정책 수립에 관하여 주민의 의견을 듣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주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니까, 현행 법 하에서도 국책사업에 대한 주민투표는 주민의 의사를 충분히 듣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자문적 의지가 묻어 있는 것이다. 현재 부안에서 진행되는 주민투표도 이와 동일하다. 주민들이 스스로 주민투표를 실시하든, 중앙행정기관에 의해 실시하든, 그 결과에 대해서는 동일한 정치적 효력을 지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무원들의 처신은 어떠해야 하는가? 귀중한 업무시간에 얼토당토 않는 유인물을 길거리에 뿌릴 것이 아니라, 주민투표가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아니, 협조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주민들의 행사를 지켜만 봐라. 정, 자신의 주장을 펴고 싶다면, 정정당당하게 합리적인 토론의 장으로 나와라. 부안 방폐장 유치 찬․반 주민투표관리위원회는 주민들의 자유롭고 공정한 토론회를 위해 공론의 장을 만들어 놓고 있다. 그런 다음, 투표장에 가서 자신의 입장을 담은 투표용지를 기표소에 넣으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10년간, 선출직 공무원(국회의원)들에 의해 주민투표법이 유린당한 것을 지켜보았다. 바로 이런 정치인들의 처신으로 인해 정치인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하늘을 찌르고 있고, 국민들은 그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또 오늘, 직업적 공무원들에 의해 부안군민의 정당한 권리가 유린당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직업적 공무원들에 대한 불신이 높아질수록, 국민 심판의 칼자루가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역사는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앞으로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