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일반
선거제도의 변화와 지방자치의 개혁
'녹색당'
2007. 9. 28. 15:28
* 이 글은 자치발전연구원 2004년 4월호에 실린 글로,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홈페이지로부터 옮겨온 것입니다.
선거제도의 변화와 지방자치의 개혁
하승수(풀뿌리자치연구소 운영위원)
1. 대의민주주의와 선거제도
민주주의는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정치제도이다. 문제는 모든 국민이 직접 국가의 정치결정과정에 참여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에 있다. 초기 그리이스에서는 모든 시민이 직접 정치적 결정과정에 참여했다지만, 오늘날의 인구규모로 볼 때에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국민들이 선출한 대표들로 하여금 정치적 결정을 대리하게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고, 이를 대의민주주의라고 한다.
문제는 선출된 대표자들이 국민의 뜻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챙기거나, 국민의 뜻과는 상반되는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에 이를 통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대의민주주의하에서는 대표자를 어떤 방법에 의해 선출하고, 이들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가 핵심적인 문제로 대두된다.
대표자를 선출하는 문제는 결국 선거제도의 문제이다. 그리고 일단 선출된 대표자를 통제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권력기관간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의해 상호통제하는 방식과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의미에서의 부분적 직접민주주의의 도입’으로 시민으로 하여금 직접 대표자들을 통제하는 방식을 취할 수 있다. 특히 지방자치의 영역에서는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기 위해 주민투표, 주민발안, 주민소환 등의 주민직접 참정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이다. 그럼으로써 지방자치 영역에서부터 대표자들이 주민들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선거제도이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지금까지도 국회에서는 비례대표를 늘리느냐, 지역구 의석을 늘리느냐, 지역구를 어떻게 조정하느냐의 문제로 선거법 개정안이 국회를 표류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보면, 대의민주주의를 취하고 있는 국가에서 선거제도만큼 민감한 문제도 없는 것같다.
가장 이상적인 선거제도는 투표를 하는 유권자의 의사가 가장 잘 반영되는 선거제도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선거제도는 그렇지 못하다. 민주주의의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국회의원 선거제도처럼 1등만이 당선되는 선거제도에서, 1등을 찍지 않은 나머지 유권자들의 표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비례대표제도조차 취하고 있지 않은 미국에서 소수파에 속하는 유권자들은 전혀 자신들의 대표를 국회에 진출시킬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게다가 지역구를 임의로 조정하는 게리맨더링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얼마든지 왜곡시킬 수 있다. 선거구를 어떻게 획정하는가에 따라 당락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경우에 부분적으로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어 있기는 하지만, 비례대표의 비중이 전체 국회의원 수의 20%남짓한 수준이다(현재 국회의원 의석 273석 중에서 비례대표는 46석에 불과하다). 따라서 전체 의석수의 80%에 달하는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1등만이 당선되므로, 소수파 유권자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기 힘들다. 또한 이런 선거제도 하에서는 정당별 득표율과 실제 의석비율간에는 차이가 많이 날 수 있다. 극단적으로는 전국적으로 10%나 20%의 평균지지율을 얻은 정당이 지역구에서는 단 1석도 당선되지 못할 수도 있다. 1등 만이 당선되는 지역구 선거에서 골고루 얻은 10%나 20%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 정당은 10% 내지 20%의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10%나 20%의 의석은 획득하여 자신들을 지지하는 국민들을 대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대 정치가 정당정치이고, 한국의 현실에서도 정당의 공천이 선거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데, 이처럼 정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과 의석비율 간에 상당한 괴리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은 큰 문제이다.
그리고 이처럼 1등당선의 소선거구제에서는 유권자들이 ‘당선가능성’을 고려하여 투표를 하기 때문에, 새로운 정치세력이나 소수파 정치세력이 원내에 진출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게 된다. 반면 독일의 경우처럼 기본적으로 각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가 배분되는 선거제도를 취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신생정치세력의 원내진출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독일의 경우 연방하원의원 선거에서, 의원의 절반은 소선거구의 지역구에서 선출하고, 나머지 절반은 정당명부에 의해 선출한다. 유권자는 지역구 후보와 정당명부에 각각 투표(1인2표제)한다. 소선거구(지역구)에서의 당선자결정은 단순다수제에 의해 최고득표자가 당선된다. 그러나 정당명부에 의한 당선자결정은 전국적으로 집계되어 각 정당의 득표비율에 따라 각 정당의 소선거구 당선자를 포함한 전체 의석수가 비례배분된다. 이때 유효투표 5%이상을 획득하지 못한 정당은 정당명부 의석배분에서 제외된다(5% 봉쇄조항). 이러한 선거제도 하에서는 5%의 진입장벽만 넘으면 의회진입이 가능하다. 물론 5% 진입장벽 자체도 낮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5%라는 목표만 달성하면 의석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에 신생정당의 활동력을 높이고 유권자들의 ‘사표방지심리’도 줄일 수 있는 등 유리한 점이 많다. 그래서 신생정당이던 독일 녹색당은 1983년 연방의회선거에서 5.6%의 득표율로 27명의 연방의원을 배출할 수 있었다.
또한 1등 당선의 소선거구제는 여성의 정치진출에 불리한 조건이다. 1등 당선의 소선거구제에서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기 어렵고, 대부분 여성후보자들은 자금 등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조건에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주의의 기본 룰(rule)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제도를 어떻게 정하느냐는 민주주의 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 점에서 지금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비례대표 확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당장 비례대표가 확대되지는 않더라도 그것이 가야할 방향임은 분명하다. 유권자들의 표심이 보다 잘 반영되는 선거제도, 정책대결이 가능하고 여성들이나 신생정치세력의 진출이 보다 쉬운 선거제도로 나아가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지방자치 선거제도의 문제점
그러면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을 뽑는 선거제도에는 문제점이 없는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의 경우에는, 기초지방자치단체장 선거시에 정당공천제를 유지할 것인지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기초지방자치단체장의 경우에는 생활자치를 실현해야 하므로, 중앙정치로부터의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정당공천을 배제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도 일리는 있으나, 정당공천을 법률로써 배제하는 것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오히려 그것이 생활정치를 위한 정책선거보다는 자금력이나 이미지에 의한 선거로 흐르지는 않을 지에 대한 염려가 제기되고 있다.
또한 지방의원 선거제도도 논의의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기본적으로 소선거구제를 취하면서 1등당선자를 의원으로 뽑는 지방의원 선거제도는 국회의원 선거제도와 동일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특히 기초의원의 경우에 읍ㆍ면ㆍ동을 기본단위로 하여 선출하다보니, 하나의 지방자치단체내에서도 유권자들이 던지는 1표의 가치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도ㆍ농복합지역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도.농복합지역인 지방자치단체의 경우에는, 신규로 조성된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한 도시지역에 전체 인구의 1/3 내지 1/4 정도가 모여사는데, 그 지역에서 배출되는 의원의 의석비율은 1/10도 안되는 경우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경우에는 도시지역에 사는 유권자의 1표는 농촌지역에 사는 유권자의 1표보다 1/2 내지 1/3의 가치도 안되는 것이다. 또한 유권자수가 1만명이 넘는 읍지역에서도 의원은 1명만 선출되고, 유권자수가 2천명도 안되는 면지역에서도 의원은 1명이 선출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게되면 읍지역 유권자의 1표가 가지는 가치는 면지역 유권자의 1표가 가지는 가치의 1/5 내지 1/10에 불과하게 된다. 이처럼 현행 지방의원 선거구 제도는 국회의원 선거보다도 더 투표가치의 불균형이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기초의원의 경우에 지역(읍ㆍ면ㆍ동) 대표성이 필요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기초의원이 하는 일은 읍ㆍ면ㆍ동 단위의 일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전체의 정책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것이다. 읍ㆍ면ㆍ동의 민원을 해결하는 일이 필요하다면, 옴부즈맨 같은 제도를 둘 것이지 지방의회와 같은 기구를 둘 일이 아니다. 지방자치를 하면서 지방의회라는 심의ㆍ의결기구를 둔 것은 그 지방자치단체 전체의 법(조례)를 만들고, 예산을 심의하고, 집행부를 견제ㆍ감시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을 보면 기초의원들로 하여금, 시ㆍ군ㆍ구의원이 아니라 마치 읍ㆍ면ㆍ동의원인 것처럼 행동하게 하고 있다. 기초의원들로서는 다음번 선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투표권이 있는 자기 지역구(읍ㆍ면ㆍ동)유권자들의 입맛에만 맞게 활동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기초의원으로서는 자신에 대한 투표권이 없는 다른 읍ㆍ면ㆍ동 유권자들의 눈은 별로 의식할 필요가 없다. 이런 현상 때문에 지방의회가 정책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지방의원들이 민원해결에나 매달린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 현재 광역의원 선거제도에만 도입되어 있는 비례대표제는 상당한 호평을 받고 있다. 비례대표로 진출한 광역의원들은 지역구에 매달리지 않고 정책심의에 충실하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비례대표제 덕분에 원내로 진출한 소수정당인 민주노동당 소속 의원들은 의정활동에 있어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이런 현상들을 보면, 지방의원들로 하여금 자기 선거구에 매달리지 않게 하는 것이 지방의회 기능 정상화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됨을 알 수 있다.
3. 선거제도의 변화와 지방자치 개혁의 가능성
지금은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여론의 관심을 끌고 있지만, 총선이 끝나고 나면 2006년 지방선거때까지 현재의 지방자치제도를 어떻게 손볼 것인지가 본격적인 과제로 대두될 것이다. 지난 2002년 지방선거 이전에도 지방선거제도를 손보기 위한 논의가 있었지만, 아무런 결론이 내려지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본격적으로 부활한지 10년이 다되어 가는 지방자치제도를 살리고, 지방분권에 대응한 지방의 역량을 기르기 위해서는 지방선거제도에 대해 본격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그동안 지방자치 시행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지방선거제도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지가 논의되어야 한다.
특히 풀뿌리 지방자치의 근간을 형성하는 지방의원 선거제도는 현행의 제도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극도로 불균형한 상태를 보이고 있는 유권자들의 투표가치를 평등하게 만들어야 하고, 지나치게 소지역대표성을 띠고 있는 지방의회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소지역대표성을 완화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의회 선거에 있어서도 명부제의 전면도입이나 중ㆍ대선거구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현재 광역의원 선거에 있어서만 비례대표제가 부분도입되어 있지만, 그것으로는 불충분하다. 독일과 같은 전면적인 명부제의 도입이나 일본의 지방의회 선거에서 볼 수 있는 중ㆍ대선거구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방의회가 정책심의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지방의회 인사권도 독립시키고 지방의원 유급화도 실시해야 한다. 이런 조치들은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그동안 누누이 지적되어 온 과제들이지만, 여러 가지 장애요소로 인해 실현되지 못해 왔다. 이제 2006년 선거 이전에는 이런 제도적인 보완조치들이 마무리되어야 한다.
또한 풀뿌리 생활자치인 지방자치의 특성상 전국정당이 아닌 지역정치조직도 자기 이름으로 후보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일본의 경우 local party라고 부를 수 있는 지역정치조직이 관심을 끌고 있는데, 전국정당이 가진 권력화의 위험성을 피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문제는 지금 한국의 정당제도에서는 정당이 아닌 정치조직은 선거에서 후보를 낼 수 없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생활정치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최소한 지방선거에서는 문호를 개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런 선거제도의 변화를 통해서 지방자치가 뿌리를 내리고 주민자치의 실현이 보다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지방분권이 지향하고 있는 ‘분권화되고 민주화된 사회구조’로 한걸음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민주주의는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정치제도이다. 문제는 모든 국민이 직접 국가의 정치결정과정에 참여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에 있다. 초기 그리이스에서는 모든 시민이 직접 정치적 결정과정에 참여했다지만, 오늘날의 인구규모로 볼 때에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국민들이 선출한 대표들로 하여금 정치적 결정을 대리하게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고, 이를 대의민주주의라고 한다.
문제는 선출된 대표자들이 국민의 뜻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챙기거나, 국민의 뜻과는 상반되는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에 이를 통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대의민주주의하에서는 대표자를 어떤 방법에 의해 선출하고, 이들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가 핵심적인 문제로 대두된다.
대표자를 선출하는 문제는 결국 선거제도의 문제이다. 그리고 일단 선출된 대표자를 통제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권력기관간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의해 상호통제하는 방식과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의미에서의 부분적 직접민주주의의 도입’으로 시민으로 하여금 직접 대표자들을 통제하는 방식을 취할 수 있다. 특히 지방자치의 영역에서는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기 위해 주민투표, 주민발안, 주민소환 등의 주민직접 참정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이다. 그럼으로써 지방자치 영역에서부터 대표자들이 주민들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선거제도이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지금까지도 국회에서는 비례대표를 늘리느냐, 지역구 의석을 늘리느냐, 지역구를 어떻게 조정하느냐의 문제로 선거법 개정안이 국회를 표류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보면, 대의민주주의를 취하고 있는 국가에서 선거제도만큼 민감한 문제도 없는 것같다.
가장 이상적인 선거제도는 투표를 하는 유권자의 의사가 가장 잘 반영되는 선거제도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선거제도는 그렇지 못하다. 민주주의의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국회의원 선거제도처럼 1등만이 당선되는 선거제도에서, 1등을 찍지 않은 나머지 유권자들의 표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비례대표제도조차 취하고 있지 않은 미국에서 소수파에 속하는 유권자들은 전혀 자신들의 대표를 국회에 진출시킬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게다가 지역구를 임의로 조정하는 게리맨더링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얼마든지 왜곡시킬 수 있다. 선거구를 어떻게 획정하는가에 따라 당락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경우에 부분적으로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어 있기는 하지만, 비례대표의 비중이 전체 국회의원 수의 20%남짓한 수준이다(현재 국회의원 의석 273석 중에서 비례대표는 46석에 불과하다). 따라서 전체 의석수의 80%에 달하는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1등만이 당선되므로, 소수파 유권자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기 힘들다. 또한 이런 선거제도 하에서는 정당별 득표율과 실제 의석비율간에는 차이가 많이 날 수 있다. 극단적으로는 전국적으로 10%나 20%의 평균지지율을 얻은 정당이 지역구에서는 단 1석도 당선되지 못할 수도 있다. 1등 만이 당선되는 지역구 선거에서 골고루 얻은 10%나 20%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 정당은 10% 내지 20%의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10%나 20%의 의석은 획득하여 자신들을 지지하는 국민들을 대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대 정치가 정당정치이고, 한국의 현실에서도 정당의 공천이 선거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데, 이처럼 정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과 의석비율 간에 상당한 괴리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은 큰 문제이다.
그리고 이처럼 1등당선의 소선거구제에서는 유권자들이 ‘당선가능성’을 고려하여 투표를 하기 때문에, 새로운 정치세력이나 소수파 정치세력이 원내에 진출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게 된다. 반면 독일의 경우처럼 기본적으로 각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가 배분되는 선거제도를 취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신생정치세력의 원내진출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독일의 경우 연방하원의원 선거에서, 의원의 절반은 소선거구의 지역구에서 선출하고, 나머지 절반은 정당명부에 의해 선출한다. 유권자는 지역구 후보와 정당명부에 각각 투표(1인2표제)한다. 소선거구(지역구)에서의 당선자결정은 단순다수제에 의해 최고득표자가 당선된다. 그러나 정당명부에 의한 당선자결정은 전국적으로 집계되어 각 정당의 득표비율에 따라 각 정당의 소선거구 당선자를 포함한 전체 의석수가 비례배분된다. 이때 유효투표 5%이상을 획득하지 못한 정당은 정당명부 의석배분에서 제외된다(5% 봉쇄조항). 이러한 선거제도 하에서는 5%의 진입장벽만 넘으면 의회진입이 가능하다. 물론 5% 진입장벽 자체도 낮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5%라는 목표만 달성하면 의석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에 신생정당의 활동력을 높이고 유권자들의 ‘사표방지심리’도 줄일 수 있는 등 유리한 점이 많다. 그래서 신생정당이던 독일 녹색당은 1983년 연방의회선거에서 5.6%의 득표율로 27명의 연방의원을 배출할 수 있었다.
또한 1등 당선의 소선거구제는 여성의 정치진출에 불리한 조건이다. 1등 당선의 소선거구제에서는 여성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기 어렵고, 대부분 여성후보자들은 자금 등에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조건에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민주주의의 기본 룰(rule)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제도를 어떻게 정하느냐는 민주주의 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 점에서 지금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비례대표 확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당장 비례대표가 확대되지는 않더라도 그것이 가야할 방향임은 분명하다. 유권자들의 표심이 보다 잘 반영되는 선거제도, 정책대결이 가능하고 여성들이나 신생정치세력의 진출이 보다 쉬운 선거제도로 나아가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지방자치 선거제도의 문제점
그러면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을 뽑는 선거제도에는 문제점이 없는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의 경우에는, 기초지방자치단체장 선거시에 정당공천제를 유지할 것인지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기초지방자치단체장의 경우에는 생활자치를 실현해야 하므로, 중앙정치로부터의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정당공천을 배제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도 일리는 있으나, 정당공천을 법률로써 배제하는 것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오히려 그것이 생활정치를 위한 정책선거보다는 자금력이나 이미지에 의한 선거로 흐르지는 않을 지에 대한 염려가 제기되고 있다.
또한 지방의원 선거제도도 논의의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기본적으로 소선거구제를 취하면서 1등당선자를 의원으로 뽑는 지방의원 선거제도는 국회의원 선거제도와 동일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특히 기초의원의 경우에 읍ㆍ면ㆍ동을 기본단위로 하여 선출하다보니, 하나의 지방자치단체내에서도 유권자들이 던지는 1표의 가치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도ㆍ농복합지역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도.농복합지역인 지방자치단체의 경우에는, 신규로 조성된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한 도시지역에 전체 인구의 1/3 내지 1/4 정도가 모여사는데, 그 지역에서 배출되는 의원의 의석비율은 1/10도 안되는 경우들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경우에는 도시지역에 사는 유권자의 1표는 농촌지역에 사는 유권자의 1표보다 1/2 내지 1/3의 가치도 안되는 것이다. 또한 유권자수가 1만명이 넘는 읍지역에서도 의원은 1명만 선출되고, 유권자수가 2천명도 안되는 면지역에서도 의원은 1명이 선출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게되면 읍지역 유권자의 1표가 가지는 가치는 면지역 유권자의 1표가 가지는 가치의 1/5 내지 1/10에 불과하게 된다. 이처럼 현행 지방의원 선거구 제도는 국회의원 선거보다도 더 투표가치의 불균형이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기초의원의 경우에 지역(읍ㆍ면ㆍ동) 대표성이 필요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기초의원이 하는 일은 읍ㆍ면ㆍ동 단위의 일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전체의 정책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것이다. 읍ㆍ면ㆍ동의 민원을 해결하는 일이 필요하다면, 옴부즈맨 같은 제도를 둘 것이지 지방의회와 같은 기구를 둘 일이 아니다. 지방자치를 하면서 지방의회라는 심의ㆍ의결기구를 둔 것은 그 지방자치단체 전체의 법(조례)를 만들고, 예산을 심의하고, 집행부를 견제ㆍ감시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을 보면 기초의원들로 하여금, 시ㆍ군ㆍ구의원이 아니라 마치 읍ㆍ면ㆍ동의원인 것처럼 행동하게 하고 있다. 기초의원들로서는 다음번 선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투표권이 있는 자기 지역구(읍ㆍ면ㆍ동)유권자들의 입맛에만 맞게 활동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기초의원으로서는 자신에 대한 투표권이 없는 다른 읍ㆍ면ㆍ동 유권자들의 눈은 별로 의식할 필요가 없다. 이런 현상 때문에 지방의회가 정책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지방의원들이 민원해결에나 매달린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 현재 광역의원 선거제도에만 도입되어 있는 비례대표제는 상당한 호평을 받고 있다. 비례대표로 진출한 광역의원들은 지역구에 매달리지 않고 정책심의에 충실하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비례대표제 덕분에 원내로 진출한 소수정당인 민주노동당 소속 의원들은 의정활동에 있어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이런 현상들을 보면, 지방의원들로 하여금 자기 선거구에 매달리지 않게 하는 것이 지방의회 기능 정상화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됨을 알 수 있다.
3. 선거제도의 변화와 지방자치 개혁의 가능성
지금은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여론의 관심을 끌고 있지만, 총선이 끝나고 나면 2006년 지방선거때까지 현재의 지방자치제도를 어떻게 손볼 것인지가 본격적인 과제로 대두될 것이다. 지난 2002년 지방선거 이전에도 지방선거제도를 손보기 위한 논의가 있었지만, 아무런 결론이 내려지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본격적으로 부활한지 10년이 다되어 가는 지방자치제도를 살리고, 지방분권에 대응한 지방의 역량을 기르기 위해서는 지방선거제도에 대해 본격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그동안 지방자치 시행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지방선거제도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지가 논의되어야 한다.
특히 풀뿌리 지방자치의 근간을 형성하는 지방의원 선거제도는 현행의 제도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극도로 불균형한 상태를 보이고 있는 유권자들의 투표가치를 평등하게 만들어야 하고, 지나치게 소지역대표성을 띠고 있는 지방의회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소지역대표성을 완화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방의회 선거에 있어서도 명부제의 전면도입이나 중ㆍ대선거구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현재 광역의원 선거에 있어서만 비례대표제가 부분도입되어 있지만, 그것으로는 불충분하다. 독일과 같은 전면적인 명부제의 도입이나 일본의 지방의회 선거에서 볼 수 있는 중ㆍ대선거구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방의회가 정책심의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지방의회 인사권도 독립시키고 지방의원 유급화도 실시해야 한다. 이런 조치들은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그동안 누누이 지적되어 온 과제들이지만, 여러 가지 장애요소로 인해 실현되지 못해 왔다. 이제 2006년 선거 이전에는 이런 제도적인 보완조치들이 마무리되어야 한다.
또한 풀뿌리 생활자치인 지방자치의 특성상 전국정당이 아닌 지역정치조직도 자기 이름으로 후보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일본의 경우 local party라고 부를 수 있는 지역정치조직이 관심을 끌고 있는데, 전국정당이 가진 권력화의 위험성을 피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문제는 지금 한국의 정당제도에서는 정당이 아닌 정치조직은 선거에서 후보를 낼 수 없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생활정치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최소한 지방선거에서는 문호를 개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런 선거제도의 변화를 통해서 지방자치가 뿌리를 내리고 주민자치의 실현이 보다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지방분권이 지향하고 있는 ‘분권화되고 민주화된 사회구조’로 한걸음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