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삶을 위한 여성들의 모임’(이하 녹색삶)은 뭔가 특별하다. 그곳에는 활기가 넘치고 웃음이 있다. 그 활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몇몇의 희생적인 노력만으로 녹색삶이 만들어진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창립 과정을 봐도 그렇고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봐도 그렇다. 보통 상식적으로 하나의 사업을 진행할 때 실무자들의 배치를 고민하지만 녹색삶은 그것을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로 진행하고 있다.
2001년도에는 ‘찾아가는 이웃 상담원’이라는 활동을 새롭게 시작했다. 상담교육과 훈련을 받은 지역여성들이 저소득 가정을 직접 방문하여 긍정적인 지지와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심리적, 정서적 안정을 되찾게 해주는 것이었다. 또한 ‘열린 숙제방’ 프로그램은 갈수록 지역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이제는 지역의 문화복지센터가 방학중 지역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운영을 녹색삶에 위임할 정도이다(그리고 그 활동을 통해 녹색삶은 그 외연을 더 넓힐 수 있었다고 한다). 녹색삶은 2002년도 열린 숙제방의 계획을 ‘마을 속 작은 학교’로 확대 개편할 계획을 세우고 의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래의 내용은 녹색삶의 간략한 소개와 정외영 공동대표님과의 인터뷰이다.
●역사: 1995년 4월 22일 창립→1998년 5월 열린 숙제방, 강북 녹색가게 설립→1998년 9월 주민도서관 개관→1999년 5월 주부환경극단 동아리 활동 시작→2000년 12월 청소년 공부방 시범운영 시작→2001년 2월 청년문화단체 ‘해울’ 창단
●소식지: ‘녹색조직’
●의결기관: 총회(연1회), 운영위원회, 사무국
●주요활동: 1. 지역주민 접촉 및 참여 창구로서의 강좌 사업, 2. 지역사회 문제해결을 위한 사업, 3. 지속적 참여 및 지도력 발휘 기회가 되는 소모임 활동, 4. 내부 지도력 강화를 위한 지도자 교육 프로그램, 5. 지역사회의 주체를 확대해 나가는 활동.
●시정참여사업: 2001년 서울시정사업 참여(인형극을 통한 어린이 환경교육)
※인터뷰 (정외영 공동대표님과의 인터뷰)
1) 녹색삶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가리킵니까?
=> 녹색이라는 것은 단순히 환경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건강한 삶, 공동체 지향성’을 가리킵니다. 녹색삶도 그런 삶과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녹색삶은 ‘강북․도봉 지역에 거주하는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여성 자신의 발전과 함께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통해 보다 살기 좋은 지역사회 건설에 이바지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설립되었습니다.
2) 주요 연혁을 보면 이슈의 발전이 처음에는 환경에서 시작해서 교육, 복지, 정치 분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이런 발전을 생각하고 계셨던 것인지, 아니면 이렇게 발전해 나간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그리고 지나치게 사업이 확장될 우려가 있는데 어떻게 대처하실 생각입니까?
=> 활동가 스스로는 나름대로 구상을 할 수 있겠지만 활동하게 되는 계기는 철저히 현장의 요구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즉 어떤 계획 하에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요구를 바탕으로 그것을 프로그램화하는 것이 중요하고, 주민들 스스로 결정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사업의 기본방향은 각 부분이 전문화되면 분리시킨다는 방침입니다(열린 공부방도 곧 분리예정). 분리된 단체는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조직적인 면에서만 녹색여성모임과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시민운동의 한계로 백화점식 활동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역운동에서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주민들이 전문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지역에 밀착되어 있을수록 다양한 욕구를 반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지역주민 스스로가 자신의 욕구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접촉창구를 다양화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예를 들어, 지역에서 거창하게 환경운동을 벌이면 몇 사람 밖에 참여하지 않지만 녹색가게 같은 것은 큰 준비없이 실행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실행되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은 주민 스스로의 발전과 그 활동의 사회적 의미를 깨닫게 해주기 때문에 주민활동가를 만드는 중요한 과정이 됩니다.
3) 재정현황은 어떻습니까? 2001년 서울시정 사업(인형극을 통한 어린이 환경교육)에 참여하신 것은 재정적인 이유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녹색여성모임만의 재정마련 노하우같은 것이 있습니까?
=> 처음에 2평 남짓한 짜투리 공간에서 시작했습니다. 그 후 동사무소, 웨딩홀, 보험회사 등 남는 공간을 주로 빌려서 썼습니다. 그러다 주부들의 쌈지돈을 모아서 공간을 대여하고 열린숙제방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아직까지는 회비와 후원금 녹색가게 운영비, 프로젝트 수행비 등으로 큰 재정적 어려움 없이 운영 가능합니다. 시정 프로젝트에 지원하는 것은 행사를 치루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4) 별도의 소식지는 없습니까, 소식지가 없다면 회원간의 유대를 어떻게 형성하고 있습니까?
=> 실무자의 손이 모자라기 때문에 별도의 소식지를 만들 여력은 없고 매월 ‘녹색소식’이라는 짤막한 유인물을 만들고 있습니다. 필요성은 느끼지만 따로 편집을 담당할 일손이 없습니다. 홈페이지 역시 필요성은 느끼지만 일손이 모자라서 못 만들고 있다. 대신 다음에 까페를 운영중입니다(http://cafe.daum.net/glife95).
5) ‘열린 숙제방’같은 활동은 매우 의미있는 지역활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런 활동은 관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앞으로 어떻게 운영하실 생각입니까?
=> 지역활동을 시작할 때 제일 먼저 눈에 띤 것이 저소득층의 아이들입니다. 너무 시급한 문제였기 때문에 해결 주체가 누구여야 하는가를 따질 겨를도 없었습니다. 저소득층에는 편부나 편모가정이 많고, 특히 편부가정은 양육과 관련된 지식이나 정보가 결여되어 있었고 아이들은 가정만이 아니라 학교나 지역사회와도 단절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담임선생님을 방문해서 아이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고 구청도 관련자료를 활용했습니다. 반응이 매우 좋았기 때문에 숙제방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습니다(현재 공간상의 한계로 22명이 있지만 대기자로 26명이 더 있다). 일단은 가정과 官, 학교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형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워낙 관청의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사업을 진행함에 있어 특별한 마찰은 없었고, 녹색여성모임은 100% 지역주민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관청도 일방적으로 대립구도로 가지 않습니다.
6) 관악사회복지의 경우 ‘관악구 사회복지지도’를 발간함으로써 복지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녹색삶은 그런 시도를 준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복지가 아니라면 환경지수를 중심으로 환경지도를 발간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생각하고 있는 계획은 없습니까?
=> 주민자원봉사자로 운영되는 제한된 인력 때문에 아직 시도해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7) 지역내에서 여성들의 활동이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녹색여성모임의 활동자료를 보면 지역의 욕구와 목표를 확인하고 난 뒤 ‘촉진집단’의 형성과 활동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다른 지역의 여성활동가들을 위해 이런 촉진집단을 형성하고 활성화시킬 수 있는 노하우가 있다면 말해 주세요.
=> 일단은 공동욕구를 형성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안이 있을 때 타지역에서 어떻게 그 문제를 풀어갔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만 얘기하는데 시간을 보내기 쉽고 패배주의를 극복하지 못합니다. 다행히 예전에 비해 주민활동을 교육하는 워크샵이나 프로그램이 많아졌습니다(한국도시연구소나 한국주민운동정보교육원에서 그런 실무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지역운동의 성격이 지역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조금씩 보편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8) ‘주부 환경극단’같은 사업은 매우 독창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왜 기획하게 되었고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 환경에 대한 생활습관, 태도 등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리면 어릴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환경연극은 이미 3년째 실시해 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열린 숙제방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소규모로 공연을 했습니다. 그런데 평가가 너무 좋았고 지속적인 교육의 필요성을 느껴서 계속 확산되고 있습니다. 9월 달에 3개 초등학교에서 공연할 예정입니다. 대본은 주부들이 서로 토론해서 직접 구성하고 소품도 만듭니다. 연극에 대한 열정을 가진 주부들이 마음껏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문성 강화를 위해 7~8월 동안 전문강사에게 연기지도를 받을 예정입니다.
9) 지역 주민들에게 지속적으로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자생적인 지도력을 형성하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민활동가가 어느 정도, 어떻게 활동하고 있습니까?
=> 거의 100%가 주민활동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들어왔다가 갈수록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깨닫게 됩니다. 올해에는 주민들 스스로가 NGO에 대한 학습을 원해서 NGO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지역사회에 대해서 주민들이 스스로 책임의식을 갖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의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연대의식을 확보하도록 만드는 것이 모임의 목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민들은 참여를 통해 관청과 지역유지들의 실상을 보고 지역사회의 새로운 부분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경험은 주민자치센터나 기타의 정책결정과정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그리고 이런 관심이 확대되면 외부교육에까지 열성적으로 참여해서 주민활동가로 됩니다.
10) 녹색삶이 앞으로 중점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 현재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이웃상담운동’입니다. 이웃상담은 저소득 가정의 여성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으로 그들에게 최소한의 심리적, 정서적 지지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입니다. 자원봉사자들을 대상으로 최소한의 교육을 실시하고 저소득층 가정과 연결시켜서 친구이자 지지자가 되어 주도록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리고 현재 진행하고 있는 아동대상 프로그램을 더 확대시켜 영육아 프로그램을 진행시키려 합니다. 그 프로그램을 통해 어릴 때부터 환경과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저소득층 가정의 양육부담을 덜어줄 생각입니다. 필요하다면 관과도 협력할 것입니다.
11) 경실련, 참여연대 같은 중앙화된 시민단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물론 이제까지의 역할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향후 역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 필요한 과정이고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중앙단체의 이슈파이팅과 여론동원은 시민단체에 대한 인지도를 상승시켰습니다. 그리고 이런 인지도 상승은 지역단체의 활동을 도와줍니다. 아직까지는 긍정적, 적극적으로 해석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단, 활동만이 아니라 조직까지 챙기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부담이 커질 것이고 지나치게 외형만 확장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가장 필요한 것은 현장과 중앙의 네트워크입니다. 그 결합지점은 다양할 것이고 많은 실험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단기간에 그런 네트워크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12) 남성들은 얼마나 참여하고 있습니까?
=> 시간적인 제약 때문에 차량봉사자나 남자아이들 목욕시키는 일에 동참하고 있고 숙제방 자원교사 활동도 합니다. 남성 자원봉사자는 너무 필요한 부분입니다. 청소년 모임인 ‘나누리’를 졸업한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어 ‘녹색마을지킴이’같은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연말에 계획하고 있는 사단법인화 작업이 되면 남성들을 고려해서 ‘녹색마을사람들’(가칭)로 명칭을 바꾸는 것을 고려중입니다.
인터뷰를 하고 있는 중에도 자원봉사자분들과 공부방 아이들로 사무실은 분주했다. 사무실의 실무자들은 더운 날씨에도 웃음 가득한 얼굴로 그들을 맞이하고 배웅했다. 이 점이 녹색삶의 가장 특징적인 면이라고 생각된다. 즉 사람들의 얼굴이 밝고 희망이 있었다. 녹색여성모임은 주민들의 자생적인 단체라는 특징만이 아니라 지역의 아이들에게 관심을 주고 보살핌으로써 희망의 미래를 준비하고 가꿔가고 있다. 또한 계속적인 단체의 확장이 아니라 어느 정도 안정되고 전문화되면 과감하게 분리시킨다는 원칙도 새로웠다. 지나치게 덩치만 커져 있는 시민단체들이 한번 생각해 봐야 할 원칙이라고 생각된다. 이제 강북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