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청소년 인권 보장 없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없다.

'녹색당' 2007. 9. 28. 16:18
*이 글은 청소년개발원에서 내는 청소년 소식 2005년 1월호에 실린 글을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홈페이지에서 옮긴 것입니다.
 


청소년 인권 보장 없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없다.

하승수(풀뿌리자치연구소 운영위원)

한국사회의 청소년들에게 인권은 있는가? 2004년에는 이런 질문을 던져보게 하는 사건들이 많았다.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며 단식까지 했던 강의석군 사건, 사회 전체에 충격을 던져준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 그리고 어린 아이들이 가난이나 가족적인 상황 때문에 생명을 잃는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사회가 민주화되었고, 인권현실도 많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사건들을 겪으면서 한국사회에서 청소년들의 인권현실은 아직도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인권침해가 너무나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당연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권침해에 있어서 가장 위험한 상황은 가해자나 피해자가 인권침해에 무감각해진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인권 현실을 개선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다. 그리고 특별한 사람만이 가해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늘 일상속에서 부딪히는 사람이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년전부터 중ㆍ고등학생들을 상대로 인권교육을 할 기회들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누가 자신의 인권을 가장 많이 침해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았을 때에, 가장 많은 답을 받은 사람은 “엄마”와 “교사”였다. 청소년들이 가장 밀접하게 부딪히는 사람들이 바로 청소년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주체라는 것이 청소년 인권문제의 중요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과연 “엄마”와 교사들은 청소년들의 이런 대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도 “아이들이 아직까지 철이 없어서”라고 한탄하거나, “내가 자기들의 미래를 위해서 그러는 것인데, 너무 몰라준다”고 섭섭해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사람에게도 항상 변명이나 명분은 있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인권의 주체인 청소년들은 엄마나 교사들에 의해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특별한 엄마나 특별한 교사만이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도 청소년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을 수 있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보자. 청소년들이 성장단계에서 적절한 휴식을 하고, 문화.예술에 대한 접근을 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많은 청소년들은 이런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0교시 수업, 보충수업, 야간 자율학습 때문이다. 교사들에게 왜 0교시 수업, 야간자율학습을 하게 되느냐고 물어보면, 부모들의 요구가 있기 때문이라는 답이 나온다. 이것이 얼마나 진실에 부합하는지는 엄밀하게 따져보아야 하겠지만, 실제로 많은 부모들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붙잡아두고 공부를 시키길 원한다. 그렇게 문제의 원인을 찾아나가다 보면, 결국 청소년들의 휴식권을 침해하는 사람은 부모일 수 있다. 그러나 아마 0교시 수업, 야간자율학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런 자신의 생각과 요구가 아이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인권을 침해하면서도 전혀 인권침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한 상태가 바로 문제의 핵심이다. 
  이런 점들을 생각해 보면, 청소년 인권문제의 해결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단지 법제도를 바꾼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부모들의 생각, 교사들의 생각, 더 나아가 모든 어른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고서는 청소년들의 인권을 보장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지금 부모와 교사들을 비롯하여 청소년들과 일상적으로 부딪히는 사람들의 의식속에는 중요한 전제가 깔려 있다. 그것은 “청소년들에게는 어른들이 허용하는 만큼의 권리만 보장된다”라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인권의 측면에서 보면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이런 생각을 따라가면, 청소년들에게는 어른들이 허용하지 않으면 휴식권도 없고, 종교의 자유도 없고,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도 없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하에서는 어른들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청소년들의 인권이 너무나 쉽게 제한당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판단하는 어른마다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는 것도 물론이다. 그래서 교사에 따라 체벌을 사용하는 횟수와 강도가 다르고, 아이들의 두발에 대한 규제가 다르고,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는 시간도 학교마다 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인권이 이렇게 원칙과 기준없이 흔들린다면, 과연 그것이 온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만약 어른들의 인권을 경찰관 마음대로 침해할 수 있다면, 과연 어른들은 그것을 납득할 수 있을까?

  그래서 사고의 기본전제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다. “청소년도 사람이다. 사람이면 당연히 사람으로서 누려야할 권리가 있다.”라는 것에서 모든 논의를 출발해야 한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청소년들도 어른들과 동일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모든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물론 이것이 무조건적으로 청소년들도 어른들과 똑같은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문제에 접근하는 시각을 바꾸자는 것이다. 그래야만 하나하나의 문제들에 제대로 접근하고 토론할 수 있다.

  이렇게 기본전제를 바꾸면 하나하나의 문제들에 전혀 다른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다. 두발 규제를 가지고 생각해보자. 지금은 많은 어른들이 “학생들에게 두발의 길이를 몇센티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한다. 그러나 출발점을 바꾸면, “학생들의 두발을 어른들과 다르게 규제할 필요가 있는지,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정말 두발의 길이나 모양이 학교교육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진지한 토론과 고민을 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정말 학생들의 두발을 규제할 필요성이 인정된다면, 그 다음 단계로 “어느 정도로 규제하는 것이 합리적인지”에 대해 다시 고민과 토론을 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청소년들의 의견을 들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권리에 대해 주장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친다면 청소년들도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고민과 토론의 과정이 없이 “학생이니까, 청소년이니까 두발은 단정해야 한다”라는 식으로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 식으로는 청소년들의 인권이 보장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을 납득시킬 수도 없다.

  지금 청소년인권이 침해당하고 위협받는 이유는 청소년 인권문제에 대한 규범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이미 청소년들의 인권에 대한 보편적인 규범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 규범에 비추어 볼 때에 한국에서는 무엇이 문제인지도 정리되어 있다. 문제는 사람들의 의식과 행동이 변화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 있다.

  한국이 1991년에 가입한 ‘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 CRC)’은 청소년들의 인권에 대한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이다. 그리고 이 협약에 따라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에 대해 청소년들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를 권고해 왔다. 만약 이 권고의 내용만 제대로 지켜져도 한국의 청소년 인권현실은 대폭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내용중 몇가지만 살펴보면, 청소년들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것, 청소년 참여를 촉진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 학생의 표현ㆍ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교육부 지침, 학교 교칙을 개정할 것, 학교에서의 체벌을 금지할 것, 교사 등에게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을 실시할 것, 청소년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서 청소년이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를 보장할 것, 매우 경쟁적인 교육시스템을 개선하여 경쟁성을 감소시킬 것 등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지적은 한국 정부의 보고서와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권고 등 관련문서를 널리 배포하고 청소년들까지도 알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권고는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와중에 청소년 인권 현실은 오히려 점점 나빠지고 있는 것같다. 이제는 청소년들이 청소년들의 인권을 잔인할 정도로 침해하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학교폭력 문제, 청소년간의 성폭력문제, 언어폭력, 사이버 폭력 등이 계속 사회적 문제로 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에 대해 사후적이고 즉자적인 수준의 처방으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청소년간의 폭력문제는 결국 청소년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 사회의 문제가 반영된 것이다. 또한 청소년들에 대해 인권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교육의 문제이다. 근본적으로 보면, ‘경쟁’과 억압을 통해 학습을 시키겠다는 현재의 교육 목표가 바뀌지 않는 이상 청소년들의 인권을 실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개인적인 의견으로, 손쉬운 방법만을 택한다면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생각한다. 법을 하나 만드는 것은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것보다도 쉬울 수 있다. 그러나 법만으로 인권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최소한 법을 바꾼다면, 그 바뀐 법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그런 법을 만들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인권에 대한 교육과 홍보가 중요하다. 청소년들에게 스스로의 인권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 스스로의 인권에 대해 깨우쳐야만, 다른 사람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교사나 부모들에 대한 교육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일상적으로 행하는 일을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되돌아보게 하는 과정을 밟아나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의 청소년들을 걱정한다. 그러나 정작 걱정해야 하는 것은 청소년들이 아니라, 어른들이다. 어른들이 청소년들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어두울 수 밖에 없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여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