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소환제의 내용과 활용가능성
주민소환제의 내용과 활용가능성
하승수(시민자치정책센터 운영위원)
1. 주민소환제의 의의
오랫동안 지방자치 개혁의 중요한 과제로 이야기되어 온 주민소환제도가 지난 5월 24일자로 도입되었다. 그에 따라 2007년 7월 1일부터 선출직 지방자치단체장 및 지역구 지방의원에 대해서 주민소환이 가능해질 예정이다.
주민소환(recall)은 지방자치단체의 장이나 지방의원과 같은 지방선출직 공직자에 대해 일정한 수 이상의 유권자가 서명하여 해임을 청구하면, 해임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하여 과반수 이상의 찬성으로 해임시킬 수 있는 제도이다. 앞으로 시행될 예정인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주민소환절차는 1) 일정한 수 이상의 유권자가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하는 절차(서명수집, 소환투표의 청구) 2) 주민소환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 실시(주민투표 발의, 투표운동, 투표) 3) 주민소환 이후의 후속절차(보궐선거 등)의 순으로 진행되게 된다.
이러한 주민소환제도의 도입은 시민운동, 특히 풀뿌리 지역시민운동이 노력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동안은 제도가 도입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여러 지역에서 주민소환제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운동들을 벌여 왔었다. 그리고 2003년 광주광역시에서는 시민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주민소환에 관한 조례를 주민발의하는 시민운동을 전개하여, 2004년 4월 광주광역시 의회에서 조례가 통과되기도 하였다. 비록 이 조례는 대법원에서 무효판결을 받았지만, 광주광역시에서의 이러한 시도는 이후 국회에서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안들이 발의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2005년 8월부터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참여한 ‘주민소환제 입법운동본부’가 활동하여 국회가 주민소환제를 입법화하도록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이런 활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주민소환제이기 때문에, 주민소환제는 시민운동의 성과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도입된 주민소환제도가 과연 풀뿌리민주주의의 실현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현재 도입된 제도의 내용을 볼 때, 실제로 시민사회에서 활용하기에는 지나치게 까다로운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지역사회의 실정을 고려할 때, 주민소환제가 역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최근 미국 등지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오히려 주민소환제도가 금권과 조직을 동원할 수 있는 기득권세력에 의해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그것이다. 실제로 2003년 10월에 있었던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주민소환투표에서는 민주당의 그레이 데이비스 주지사가 소환되고 공화당의 아널드 슈와제네거 후보가 당선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래서 시민사회의 입장에서는 현재 도입된 주민소환제도의 주요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앞으로 이 제도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은 제도도입에 초점을 맞추어서 논의가 진행되어 왔지만, 불충분할 지라도 일단 제도가 도입된 이후에는 이 제도가 어떻게 작동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모아져야 할 것이다.
2. 주민소환제도의 주요내용
1) 주민소환의 대상
비례대표 지방의원이나 교육감, 교육위원을 주민소환의 대상에 포함시킬 것인지도 논의가 되었었다. 또한 지방의회 해산청구제도(투표에 의해 지방의회 전체를 해산시킬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할 것인지도 논의가 되었었다. 그런데 국회를 통과한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에서는 이런 부분들이 모두 제외되고, 지방자치단체장과 지역구 지방의원으로 주민소환의 대상을 제한하였다.
그러나 앞으로 지방교육자치제도가 개선되어 교육감이나 교육위원 직선제가 도입된다면, 교육감이나 교육위원을 주민소환의 대상으로 포함시키는 문제가 다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참고로, 올해 7월 1일에 출범한 제주특별자치도의 경우에는 이미 교육감 직선제가 도입되었으며, 교육감도 주민소환의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
2) 주민소환의 사유
흔히 주민소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해는 범죄나 부패행위 같은 것을 저지른 경우에만 주민소환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민소환은 형벌제도가 아니라 주민의 직접 참여에 의해 선출된 대표자를 통제하고자 하는 직접민주주의 제도이다. 제도의 성격이 그렇기 때문에 부패나 범죄행위를 저지르지 않더라도, 주민들의 의사에 반해서 독선적인 정책결정을 하는 경우, 잘못된 정책판단에 의해 지방재정이나 주민들의 삶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 등도 주민소환의 사유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주민소환의 사유에는 특별한 제한이 없다. 실제로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의 임무는 매우 종합적이고 광범위하기 때문에 주민소환의 사유를 미리 예상하여 구체적으로 규정하기도 불가능하다.
최근 한국에서 지역운동이 주민소환을 거론했던 사안들을 보면, ‘독단적으로 핵폐기장을 유치신청한 경우’, ‘비리를 저지른 경우’, ‘특혜성 정책결정을 한 경우’, ‘난개발ㆍ예산낭비’를 저지른 경우 등이 있었다.
3) 주민소환투표의 실시 청구를 위한 서명요건
주민소환을 할 것인지(선출직 공직자를 해임할 것인지)는 주민소환투표를 통해 결정된다. 주민소환투표에서 3분의 1 이상 투표와 유효투표 총수 과반수의 찬성이 있으면, 투표결과가 공표된 시점부터 주민소환투표의 대상이 된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은 해임된다.
이런 주민소환투표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하는 자가 일정한 수 이상 주민들의 서명을 받아 주민소환투표의 실시를 청구하여야 한다. 그런데 어느 정도 수의 주민서명을 받도록 요구할 것인가가 중요한 쟁점이 된다. 만약 주민소환투표를 요구하기 위해 서명을 받아야 하는 수가 지나치게 많다면 주민소환제도는 사실상 사문화되기 쉽다. 주민소환투표의 실시를 청구하려고 하는 주민의 입장에서 볼 때에, 현실적으로 서명을 받기가 불가능한 정도의 많은 숫자를 요구한다면 주민소환투표의 실시를 청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주민소환제의 남용을 우려하는 입장에서는 서명을 받아야 하는 숫자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해서 국내에서도 ① 유권자 3분의 1의 서명을 요구하는 안, ② 유권자의 10%내지 20%로 하되 인구수에 따라 달리 정하는 방안, ③ 유권자 4분의 1의 범위 내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20세 이상 주민수로 정하는 안, ④ 유권자의 8~12% 수준으로 하는 안 등이 다양하게 제시되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 국회를 통과한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에서는 시ㆍ도지사의 경우에는 주민소환투표청구권자(19세 이상 주민과 19세 이상 외국인 중 일정한 자격이 있는 자)의 10%이상,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의 경우에는 15%이상, 지역구 지방의원의 경우에는 20%이상의 서명을 받아야만 주민소환투표를 실시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한국 지방자치단체의 인구규모가 매우 큰 것을 감안하면, 이 숫자도 지나치게 높다고 할 수 있다.
4) 주민소환투표 청구의 제한기간
주민소환투표 청구가 남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정한 기간제한을 두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었다. 임기가 개시하자마자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한다든지, 임기가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다만 시민단체에서 주장해 온 방안은 선출직 지방공직자의 임기개시일로부터 6개월이 경과하지 아니한 때, 그리고 임기만료일로부터 6개월 미만이 남았을 때에는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할 수 없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서는 6개월을 각각 1년으로 늘려서 “선출직 지방공직자의 임기개시일부터 1년이 경과하지 아니한 때”와 “선출직 지방공직자의 임기만료일부터 1년 미만인 때”에는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할 수 없도록 하였다. 또한 해당 선출직 지방공직자에 대한 주민소환투표를 실시한 날부터 1년 이내인 때에는 다시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할 수 없도록 하였다.
결국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지방의원의 임기 4년 중에서 앞의 1년과 뒤의 1년 동안에는 주민소환투표 청구를 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주민소환투표 청구를 할 수 있는 기간은 4년의 임기 중 중간의 2년으로 제한되었다.
5) 주민소환투표청구의 남용방지 장치
주민소환투표 청구의 남용에 관한 우려들이 제기되었기 때문에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들이 이번에 통과된 법안에서도 마련되었다. 그래서 주민소환투표의 대상이 된 자에게 소명기회를 주고, 관할 선거관리위원회는 소명요지를 공고하도록 하였다(제14조).
또한 경쟁정당이나 후보자가 악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후보가 되고자 하는 자(입후보 예정자)나 그 가족 등은 주민소환투표를 위한 서명요청활동에 관여할 수 없도록 하였다(제10조 제2항 제5호).
그리고 주민소환투표청구를 위한 서명을 대표자나 대표자로부터 위임받은 자만이 받을 수 있게 하고, 서명부도 관할선거관리위원회가 검인하여 교부한 서명부만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엄격한 절차적 제한규정도 두고 있다(제9조 제1항).
3. 앞으로 예상되는 고민들과 과제
주민소환제는 시민운동의 요구에 의해 도입된 제도이기도 하지만, 실제 운용에 있어서는 ‘양날의 칼’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우선 특정 정당이나 특정 세력이 제도를 악용할 가능성도 있다. 2003년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지사 주민소환투표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공화당 성향의 단체들이 중심이 된 주민소환운동을 통해서 공화당은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교체시킬 수 있었다.
두 번째로 금권이 개입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우선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하기 위한 서명을 받는 과정에서도 금권이 개입될 수 있다. 실제로 금권을 동원하여 몇 십만 또는 몇 만의 서명을 받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주민소환을 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찬반운동의 과정에서도 금권이 개입될 소지가 있다. 주민소환투표를 관리하는 비용은 선거관리위원회가 부담하지만 소환 찬성측과 소환 반대측이 사용하는 운동(찬성운동과 반대운동)비용은 각자가 부담하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다. 그러다 보면 결국 자금동원능력이 많은 쪽이 유리한 결과를 얻어낼 가능성도 있다. 또한 투표운동에 사용할 수 있는 비용상한선 등에 대한 세부적인 규제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자금이 풍부한 측에게 유리하게 제도가 작동할 경우에는 민의가 왜곡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사회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고민을 안게 되었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주민소환제가 유명무실한 제도가 되지 않고 지역사회의 민주적 개혁을 이끌어내는데 기여할 수 있는 제도가 되게 할 것인지”의 문제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어떤 사안에 대해 주민소환제가 활용되게 하는 것이 지역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바람직할 것인지 하는 것이다. 무분별하게 주민소환제란 카드가 사용될 경우에는 실제로 주민소환까지 가지도 못하면서 “제도가 유명무실하다”거나 “역시나 주민소환제는 남용된다”는 인식만 초래할 수도 있다.
실제로 주민소환제는 광범위한 주민참여 없이는 행사할 수 없는 제도이다. 주민소환투표청구를 위해 지역유권자의 10~20%의 서명을 받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뿐만 아니라 보궐선거의 투표율도 매우 낮아서 문제가 되는 상황인데, 주민소환투표에 전체 유권자의 3분의1이상이 참여해서 과반수가 찬성해야 소환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매우 광범위한 주민의 동의가 있는 사안이 아니라면 활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반대로 지역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매우 중요한 이슈가 발생했을 경우에, 그리고 그것이 비민주적인 지역의사결정구조 때문에 왜곡된 방식으로 결정이 되려고 하는 때에 주민소환제는 활용해 볼 만한 제도이다. 현재 한국의 현실에서 어떤 사안에 대해 주민소환제를 활용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많은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결국 주민소환제는 다른 민주주의 제도와 마찬가지로 긍정적인 작동의 가능성과 부정적인 작동의 가능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주민소환제가 한국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정착될 것인지, 그리고 풀뿌리민주주의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지는 결국 지역 시민사회의 역량과 지혜로운 판단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