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운동 모범사례 : "아시아의 풍물, 지역민과 함께 만끽해요"
"아시아의 풍물, 지역민과 함께 만끽해요"
<시민사회신문-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기획> 풀뿌리시민운동 모범사례를 찾아서
“피부색과 문화는 다르지만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이웃입니다. 외국인 노동자라는 말 대신 한 사람 한 사람 서로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용인 다문화 축제장에 들어서는 시민들이 도우미의 안내에 따라 선언문을 낭독하고 손도장을 찍는다.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서 한국으로 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기 위한 준비는 이제 끝났다. 참가자들이 인도네시아 출신의 마리아 린니 씨와 정답게 인사를 나눈 후 축제장으로 들어선다.
2007 용인다문화축제에 참가한 어린이와 부모가 축제장에 들어서서 도우미의 안내에 따라 "'외국인 노동자' 대신 한 사람 한 사람 서로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라는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아시아는 우리, 우리는 아시아’라는 주제로 지난달 9일 경기도 용인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용인다문화축제에는 아시아 각국의 전통놀이와 음식을 체험하고, 각국의 전통공연을 볼 수 있는 다양한 행사들이 마련됐다.
우리는 아시아다
종합운동장 주변으로 네팔, 몽골, 방글라데시, 베트남, 스리랑카,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필리핀, 한국 등 아시아 9개국의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상설부스가 마련됐다. 각 나라의 전통놀이와 전통 의복, 그리고 인형 등은 9개 나라 이주민 공동체 사람들이 직접 준비한 것들이다.
참가자들은 안내 팜플렛을 들고 각 나라 문화체험부스로 가서 ‘미션’을 수행한 뒤 도장을 받아오면 예쁜 기념품이 주어진다. 미션은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네팔 인사말인 ‘나마스떼’를 그 나라 글자로 써보기, ‘앗쌀람 알라이꿈’이라 하면 ‘와알라이 꿈 쌀람’이라 대답하는 파키스탄&방글라데시 식으로 인사해보기, 스리랑카 ‘코끼리눈 찾기’ 게임, 인도네시아 ‘까멘’, 베트남의 ‘제기차기’ 등의 전통놀이를 직접 체험해 보는 것이다.
알까기’ 놀이와 비슷한 까멘을 익힌 아이들이 인도네시아 도우미 아저씨들과 시합에 나섰다. 재밌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유재선(도원초등 5학년)군이 만족스럽다는 듯 대답한다. “네! 재밌어요. 해외로 나가지 않고도 아시아 여러 나라의 놀이나 문화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종합운동장 밖에는 각 나라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먹거리 체험장이 마련됐다. 각 나라 이주민 공동체 사람들이 즉석에서 음식을 만들어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었다. 또한 음식의 이름이나 만드는 법, 그리고 어떤 때 이 음식을 즐겨 먹는 지 등 음식에 대한 상세한 설명문도 정성스레 꾸며놓아 아시아 음식박람회를 연상케 했다.
3년 전부터 용인에서 인쇄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스리랑카 출신의 너렌드러 더갈(31)씨가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또박또박 적어주며 이번 행사에 대한 소감을 말했다. “한국 사람들도 우리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좋았어요.”
각국 문화가 모인 한판 축제
종합운동장 중앙에 마련된 무대가 대중가요 노랫가락으로 떠들썩하다. 이주민들의 한국어 노래자랑에 이어 아시아 전통문화 한마당에서는 네팔의 전통춤 ‘학삐레’, 방글라데시 전통악기 연주와 노래, 필리핀 전통춤 ‘강사’, 몽골의 전통노래 ‘고향의 노래’, 인도네시아 마까사르 지역 전통춤 ‘보사라’, 스리랑카 전통춤 ‘캔디앤&기미씨씨라’, 한국 전통 사물놀이 ‘울림굿’ 등이 차례로 펼쳐졌다.
공연을 하고 있는 동안 한국에서 낯선 이방인으로만 살아가고 있는 이주민들 스스로 자신들의 전통과 문화에 대해 자부심이 충만해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이날 용인다문화축제를 다녀간 사람들 모두가 더 이상 이주노동자, 이주민이 아니라 그들을 우팔리 씨, 더갈 씨, 덜진 씨라 이름을 불러 주며 진정한 ‘이웃’으로 생각하는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됐음을 확인하고 있었다.
인터뷰- 김소령 이주노동자인권센터 국장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존중하기”
다문화축제장 한켠에서 행사 진행에 여념이 없는 김소령 국장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이주노동자 노래자랑이 진행되는 동안 이주노동자 정책에 대한 ‘다문화운동’의 성과와 전망을 물었다./편집자
-다문화축제를 열게 된 계기는.
▲지난 2003년 센터 자체적으로 이주민 공동체와 함께하는 축제를 용인에서 처음으로 열었고, 이듬해 지역 내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 축제를 진행했다. 점차 센터 활동가가 중심이 되기보다는 이주민공동체가 주체가 되어 지역 내 다문화를 전하고 지역주민과 이주민이 만나는 ‘아시아의 날’ 행사나 ‘다문화이해교육’으로 변화해 나갔다. 올해 초 용인에 있는 용인이주민쉼터와 논의를 통해 14개 시민사회단체와 기관이 참여하는 ‘용인다문화축제기획위원회’를 꾸리고 축제를 열게 됐다.
▲애초에는 상담을 통한 임금 체불이나 산업재해 등 이주노동자들의 당면한 문제 해결이 중심이었지만 지난 10여 년간 시민단체의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상담을 통해 사업주를 포함한 사회 전반적인 인식이 다소 향상됐다. 국내 거주 이주민이 100만 명에 달하는 지금 노동권에 제한하여 개선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준비’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이주민에 대한 이해, 인식을 전환해가는 운동을 하고자 했다. 다문화 이해 확산을 위한 활동은 한국인 활동가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주민공동체와 함께 진행해야 가능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다문화운동 중 ‘이름을 불러요’는 상징성이 큰 것 같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처음에는 소식지의 한 코너로 ‘이름을 불러요’에 문제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소개하는 글을 실었다. 그러다가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아니라 수렌드라 씨, 우팔리 씨 등 이름을 부르며 존중하고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만나가는 것이 센터 전망을 실현하는 기본 철학이라 생각하고 소식지 이름 자체를 ‘이름을 불러요’로 바꾸었고, 이제 센터 이름도 ‘이름을 불러요’로 바꾸기로 했다. 센터 이름을 바꾸는 시점을 계기로 이주민과 지역주민이 서로의 고유한 이름을 부르며 존중하며 만나가자는 캠페인을 열어가고 싶다.
-요즘 매스컴에서도 ‘다문화’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는 것 같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얼마나 변화되었다고 생각하는지.
▲여러 정책들이 발표되고 기금이 늘어나고는 있으나 다문화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정책의 대부분이 한국사회에 이주민을 적응시키기 위한 사업들이다. 사실 한국사회 내에 다문화와 관련되어 깊이 있는 연구가 많지 않고, 고민이 부족한 상태에서 나오는 정책에 한계가 있다. 또한 다문화 관련 정책은 대체로 국제결혼가정을 대상으로 한다. 이주노동자도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고 있다. 그 기간이 몇 년이건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키우는 것은 이주민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다문화 연구가 활성화되고 이를 바탕으로 장기적으로 한국사회가 어떤 방식의 다문화사회로 열려져야 할 것인지 고민하면서 정책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주노동자 정책에 대한 정부 정책 중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미등록노동자 문제의 현실적인 해결이 시급하다. 지난 10여 년간 정부는 단속으로 일관해왔으나 고용허가제를 시행하면서 일시적으로 합법화했던 시기 외에는 미등록노동자 비율이 줄어들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단속을 통해 미등록노동자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단속과정에서 발생되는 심각한 인권침해 문제도 더 이상 당연시해서는 안된다. 이미 그동안 단속과정에서 다치고 사망한 이주노동자, 여수출입국 화재로 인한 사망사건 등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심각한 인권침해가 충분히 벌어졌다. 미등록노동자를 우선 합법화하여 고용허가제 제도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고용허가제 하에서도 지속되는 불법적인 송출수수료 문제 해결과 함께 장기적으로 3년 단기 로테이션 정책의 변화, 노동허가제로의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