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운동 모범사례 : '어머니 지리산' 희망씨앗 찾기
'어머니 지리산' 희망씨앗 찾기
<시민사회신문-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기획> 풀뿌리시민운동 모범사례를 찾아서
어리석은 사람도 머무르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고 하는 산이 있다. 가수 안치환은 그 산에 가려면 온몸을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의 마음으로 올라야 한다고 노래했다. 소설 태백산맥의 주인공들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그 산에서 투쟁했고 죽었으며 다시 존재했다.
지리산, 그곳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렇게 특별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정작 지리산에서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은 힘겹기만 하다. 사람들은 떠나고 주머니 사정은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다. 이런 상황은 결국 돈 있고 권력 있는 몇몇 사람들에 의해 지리산권 지역의 문제들이 좌지우지되면서 악순환을 만들어냈다.
생명과 평화의 산으로 불리는 지리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현실을 극복하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내고자 고심했다. 지난 1997년 전국적으로 큰 방향을 일으키면서 결국 백지화까지 이끌어낸 지리산댐 건설 반대운동의 경험이 이들에겐 있었다. 당시 중심활동을 펼쳤던 지리산살리기국민행동이 지난 2002년 이름을 바꾼 지리산생명연대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의 주민들이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지난 2005년 문화관광부의 지리산권 관광개발 계획에 반대하며 조직된 지리산권시민사회단체협의회의 소속 단체들도 지역운동, 주민자치운동을 하기 위해서 지역의 활동가들과 주민들의 역량을 키우자는 데에 뜻을 같이 했다.
개발반대가 시작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 제5회 풀뿌리시민운동 사례공모에서 풀씨상을 받은 지리산권 공동학습 프로그램 ‘지리산희망씨앗찾기 I’이다.
주민들도 떠난 지역에서 주민자치를 하려면 어떤 고민에서 출발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서로 던지던 중 그전까지 지리산권 지역에서 주민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라고 해봐야 농민강연이나 노동자강연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최화연 지리산생명연대 총무부장은 “일회성이거나 일방적인 강의가 아닌,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심도 깊은 공동체적 학습이 필요하다는 데에 관계자들이 모두 동의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커리큘럼과 학습 방식이 문제였다. 주최 측에서 일방적으로 프로그램을 완성하기 보다는 지역에 정말 필요한 구체적 사안에 대해 큰 그림을 그려주고 싶었다.
이번 사업의 필요성에 공감한 전국의 전문가들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10여 차례에 걸친 회의를 통해 커리큘럼이 짜여졌다. 남원, 구례, 하동, 산청, 함양의 5개 시·군에 걸쳐 있는 광범위한 지리산권을 아우르면서 지역 활동가와 주민들이 자신들의 지역에만 함몰되는 게 아니라 생각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했다.
“직접 참여하기”
총 6회의 강연에 참여한 사람들은 70~80명 정도였고, 매번 강의를 빠지지 않고 열정을 보인 사람들은 20명 정도였다. 풀뿌리운동, 지방자치단체의 발전계획 분석, 지리산권관광개발계획, 지방자치단체 예산분석, 주민조직화 방법, 주민자치 사례연구 등 실무적인 내용의 강의들이었다.
올해 진행한 ‘지리산희망씨앗찾기 II’는 이때 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직접 대안을 모색해 실천가능한 사업을 도모하고 현재 실행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배우는 사업이었다. 구례의 사포마을, 남원 생협의 직장인모임, 구례북중학교 등에서 작게 나마 주민자치의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주민자치와 풀뿌리운동이 무엇인지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 사업을 진행할 때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구체적인 지역에서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런 내용들을 참고해 지난 9월부터는 하동지역에서만 2차 교육이 진행됐다.
협의회는 느슨한 사안별 연대를 지향한다. 향후 ‘지리산대안포럼’의 형태로 나아갈 예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협의회가 딱딱한 사업만 진행해온 것은 아니다. 협의회 소속 단체들이 중심이 돼 지난해부터 지리산문화제를 열고 있다. 제1회는 지난해 11월 구례의 산동 들녘에서 진행됐다. 주민들이 스스로 음식을 만들고 현수막을 꾸민 순수한 주민잔치였다. 올해는 지난 8월 벚꽃길로 유명한 섬진강변 19호선 국도에서 열렸다. 하동군에서 19호선 국도를 확장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주민들의 반대 뜻을 담은 행사였다. 매회 1천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순수하게 주민들이 만드는 축제를 즐겼다. 주민축제의 장 마련 계속해서 지리산 지역을 개발하고자 하는 세력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지리산을 사랑하고 지리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을 지키고 지리산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상 지리산은 계속해서 어머니 산으로, 전라도와 경상도를 연결하는 소통의 장으로, 민족의 성지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
구례=전상희 기자 sang2@ingopres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