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당' 2008. 3. 4. 13:54
- 밤새 안녕.
- 다들 편안히 잘 계시지?
라는 아무렇지 않은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설렁설렁 대답할 수 있다는건 행복이다.

꼭 일이 닦치고 나면 시계추 처럼 왔다갔다 하는 그 쳇바퀴가
얼마나 눈물나게 아련하고 포근한지...

지난 월요일. 갑자기 겁나게 눈이 온 월요일 밤.
남편이 택시를 잡다 넘어져서 어깨 인대가 나가버렸다.

지나간 짜장면은 다시 돌아오지 않듯이
끊어진 인대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단다.

응급실에서 전문병원으로, 엑스레이 촬영에서 곧바로 입원으로
그리고 수술로...
앞으로 1주일 더 병원에 있어야 하고,
두어달 후 끊어진 인대를 뼈와 급화해하게 끼어넣은 철심을 빼야하고
어깨근육 단련 운동을 하는 재활치료가 기다리고 있다.

남편 수발과
병원에 아빠를 뺏긴 연서에게 두배의 부+모 역할
가끔 집에 들려 텅빈집의 흔적을 지우는 일
무슨무슨 일, 이런저런 일...일...일...일...

내 인생에 상대배역이 하나 빠진다는 것이
이런거였구나....싶다.

내가 한일이 갑자기 늘어났다는건
남편이 했던 역할과 존재감이 그만큼 컸다는것이기도 하겠지...라면 위로해 보지만...

열받는건 열받는거다.
연서 클때까지 우리 두 사람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또 몸뚱이로
요이땅  20년 무사고로 잘 달려줘도 시원챦은데
덜컹덜컹 사고나고
그것도 술마시고 택시잡으러 가다 덜컹 넘어졌다는것이
암만해도 '순결한 사고' 라고만은 생각 안든다.

아....이럴 땐 내가 차라리 남편의 애인이였더라면...
생활의 문제를 떠안지 않아도 되는 애인이였더라면...
글썽이며 위로해 줄 수 있을것 같다.
그러면서 같이 흉도 봐줬겠지?
- 자기야~ 자기 부인은 왜 그렇게 팅하게 부어있데? 자기가 일부러 그런것도 아니고 사고쟎아. 왜 자기를 위로는 못해줄망정 술때문이라고 박박 우기면서 아픈사람한테 소금을 뿌린데?그렇게 콧소리도 섞어가며 오리털 이불처럼 감싸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근데, 나는 부인이다.
남편도 걱정되지만, 이게 보험은 되는건지, 여유자금은 얼마가 있는거지? 부터
남편은 쌩으로 2주간 휴가는 쓸 수 있는건가?
직장에선 마땅챦아 하진 않을까?
나도 휴가를 내야하는데... 남편 머리도 감겨줘야하고...연서는? 집은?
앞으로 몇달은 주말에 연서를 데려와도 나 혼자 감당할 일이 많을텐데...
이런 저런 생각에 눈물보다 생각이 앞서는 아내다.

종국엔 이런 생각들에 짓눌려
- 왜 칠칠치 못하게 넘어져서 사고를 당하냐고
아픈사람한테 왕소금을 뿌리는 부인이다.

휴....그러나 저러나
수술은 잘 됐다고 하고, 항생제 맞는거, 어깨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거
딱 두가지 이유로 입원하는 환자인지라
오늘은 병원행을 접었다.

이러고 앉아있으니 남편이 그지경이 된것도
심지어 내가 결혼해서 애를 낳았다는것도
소설 속의 남의 얘기같다.

이 소설을 읽으며 속으로 그러겠지.
- 맞아.... 행복의 전제조건은 안전, 안심! 이였어.

밤새 안녕.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