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내음 팀블로그/하승우의 "일상과 자치"
선택과 집중의 함정
'녹색당'
2008. 3. 6. 14:12
선택과 집중의 함정 | ||||
| ||||
신년이 되면 사람들의 눈길을 가장 많이 끄는 것도 이런 전략들이다. 서점에 가면 이런 전략을 다루는 책들이 항상 인기이다. 전장의 병법을 이용한 전략이나 시간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전략, 다른 사람의 감수성을 존중하고 칭찬하는 전략 등 수많은 전략들이 우리 삶의 지침을 제공한다. 그런데 전략이라는 말 자체에는 이미 경쟁을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기는 생각이 담겨 있다. 그래서 어떤 전략을 택하든 우리는 누군가를 이겨야 한다. 심지어 타인과의 공감과 공생을 중요하게 여기는 전략을 택한다 해도, 전략을 실천하는 '우리'의 경계 내로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전략의 대상이나 희생양이 된다. 최근 몇 년간 정부의 보고서나 시민사회단체의 자료집, 기업의 경영전략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전략이 바로 '선택과 집중'이다. '될성 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있듯이, 이 전략은 크게 될 만한 것에 힘을 팍팍 싣고 그렇지 않은 것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향후 한국사회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게 될 한미FTA에 깔려있는 기본 인식이 바로 이 전략이고,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균형발전전략도 이런 인식이며, 이명박 정부가 주장하는 실용주의 선언 역시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시민사회단체들이 전문성을 강화시켜서 언론에 띄울만한 이슈나 자기들의 대표사업에 집중하겠다는 인식도 마찬가지이다. 대기업들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정당화시켰던 논리도 바로 선택과 집중이었다. 이 전략이 내포하는 승자독식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선택과 집중의 가장 큰 문제점은 만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전일적(全一的)인 인식을 부정한다는 점이다. 승자가 모든 걸 차지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어느 한 부분이 지나치게 성장하면 다른 쪽이 부족할 뿐 아니라 그런 불균형이 결국에는 전체의 공멸(共滅)을 부른다는 점이다. 몇몇 지역이나 전략산업을 선택해서 집중하면 당장은 어느 정도 균형발전이 이루어지고 GNP나 GDP 규모도 커질지 모른다. 하지만 가장 근본이 되는 농촌과 농업을 포기할 경우 그 균형과 경제규모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일 뿐이다. 농촌을 도시와 대비되는 주거지역으로, 농업을 '1차 산업'이나 '식량안보'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허약한 국가의 인식은 우리 삶의 본질을 건드리지 못한다. 그리고 운동의 전문성을 강화시켜서 사업을 키우고 정책화한다는 인식은 자신의 뿌리를 망각하게 한다. 운동은 대중이라는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릴 때에만 자랄 수 있는데, 갈라진 마음의 홈을 메우면서 연대의 다리를 놓을 때 그 뜻을 실현할 수 있는데, 선택과 집중은 그 기본을 놓치게 한다. 또한 1, 2위를 하는 사업만 남기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업을 외주로 돌리는 대기업의 경영전략이 지금 당장은 합리적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머리가 뛰어나다고 머리만으로 생존할 수 없듯이, 그 성장전략은 중소기업이나 영세한 사업장의 희생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개별 기업의 차원에서는 이득일지 모르지만 전체의 경제구조로 보면 그것은 특정 부분의 기형적인 성장일 뿐이다. 선택과 집중의 전략이 상식처럼 되어버린 지금, 우리 사회는 심각한 공멸의 위기를 이미 맞이하고 있다. 특정 호르몬이 과다분비되면 심각한 질병이 되듯이, 특정 부분의 지나친 성장은 전체의 건강성을 해칠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는 현명해져야 한다. 소수의 잘난 놈을 키워주는 게 아니라 다수의 못난 사람들을 보살펴야 한다. 농촌이 스스로 힘으로 생존할 수 있도록 도시와 농촌의 연결망을 강화시키고, 대중이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운동이 새로운 정치적인 공간을 마련하고 그들을 돕고, 노동자나 영세기업이 소외되지 않고 발전할 수 있는 시장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
경인일보에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