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운동사례

"중촌동마을어린이도서관 짜장 이야기"

'녹색당' 2008. 3. 18. 12:03
 

사람 냄새가 풍기는 마을만들기

- “중촌동마을어린이도서관 짜장”의 민양운 씨를 만나다



만난 날짜 : 2008년 3월 12일(수)

작     성 : 김현(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얼마 전, ‘초록과 진보의 새로운 정당을 위한 집담회’에 대전여민회 민양운 씨가 토론 발표자로 나온다는 얘길 듣고, 마침 ‘중촌마을어린이도서관 짜장’의 사례를 듣고 싶었던 터라 집담회 끝나고 인터뷰에 응해줄 수 있냐고 넌지시 물었다. 돌아온 답은 물론 OK였다. 집담회에 참여한 분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인터뷰를 했기 때문에, 나 혼자 민양운 씨을 독차지한 점은 상당히 미안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어쩌랴. 시간 아끼고 돈 절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않는가? 좌중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우린 1시간 이상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짜장’이 만들어진 과정


이미 언론지면을 통해서도 몇 차례 소개된 바가 있는 ‘중촌마을어린이도서관 짜장’(이하 ‘짜장’)은 ‘사)대전여민회’ 회원들이 2007년 2월에 중촌다목적복지회관 1층에 개관한 도서관이다. 이제 1년을 갓 넘겼다.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짜장’은 ‘과연’, ‘정말로’라는 뜻을 지닌 순 우리말이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이름이다. 온 국민의 인기 음식 짜장면(맞춤법은 ‘자장면’이지만, 누가 ‘짬뽕’을 ‘잠뽕’이라 하겠는가?)을 떠올리면 ‘짜장’은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이름이 성격을 규정짓는다면, ‘중촌마을어린이도서관 짜장’은 스스럼없이 다가가고 어울릴 수 있는 오래된 벗과 같은 느낌이다. 입에 달기 쉽고 아이들에게도 인기다. 그러나 나이 많은 어르신들은 가볍게 부를 수 있는 이름이 마음에 안 드셨던 모양이었다. 개관식 하기 전 날까지도 개명해야 한다고 얘기하시던 분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그런 얘길 꺼내는 이는 없다.


                         사진 : http://blog.naver.com/mvpid/80036038928

대전여민회 내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동화 읽는 엄마들의 소모임이 있었다. 이 소모임 회원들은 좋은 책을 함께 읽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대전여민회가 개최하는 다양한 행사들에도 관심과 참여를 보여주었다. ‘나눔장터’와 ‘어린이경제교실’, ‘책잔치’ 등 각종 문화 행사를 가까운 공원에서 진행할 때도 소모임의 역할이 컸다. 이렇게 3-4년 활동 경험들이 모이면서 대전여민회 내 5-6평의 작은 공간에 ‘어린이 책사랑방 도토리’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그 과정에서 독자적인 어린이도서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그 때가 전국적으로 작은 도서관 짓기 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난 시기이기도 했다. 때마침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어린이도서관을 지원하겠다는 공고를 내게 됐고, 지원금은 도서관 리모델링비로 3천만 원 가량의 큰 규모였다. 엄마들은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현재의 작은 공간에서 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는 매우 힘든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지원금을 받기 위한 조건은 25평 남짓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공간이 없으면 지원 자체가 힘든 상황이었다.


“........도서관을 하고 싶었지만 공간을 임대할 자금도 없고, 여민회 공간을 더 넓힌다는 건 무리한 일이었죠. 그러나 대체로 소모임 회원들은 어정쩡하게 활동하는 것보다는 장기적으로 도서관을 운영하는 것이 좋다는 판단들이 있었죠. 그래서 동사무소 동장님께 얘기를 했어요. 우리의 사정을 얘기하고 우리가 쓸 수 있는 공간이 있는지 물었죠. 지금 사용하는 도서관 공간에 발마사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30여 평 규모의 공간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동장님도 현재 발마사지는 이용률이 떨어지니까, 도서관에 관심을 많이 보였어요.”


동장은 대전여민회라는 특정한 단체에 공간을 줄 수는 없다고 하면서, 대신 주민자치위원회와 공동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할 것을 주문했다. 이렇게 해서 잘 활용이 안 되는 공간이 어린이도서관으로 훌륭하게 바뀐 것이다. 대전여민회 입장에서도 회원들의 참여율을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동네 아파트마다 거주하는 회원이나 어린이프로그램에 참여해왔던 우호적인 엄마들에게 적극적으로 참여를 제안했고, 아파트 부녀회 등에 별도의 설명회도 몇 차례 개최했다. 이미 소모임 활동의 경험들은 도서관 운동의 속도와 탄력을 증가시켰고, 또한 그간의 ‘대전여민회’ 활동이 동네 주민들로부터 큰 신뢰를 얻었기 때문에 도서관 개관까지의 과정은 그리 큰 걸림돌은 존재하지 않았다. 도서관을 홍보하는 짧은 시간에 많은 주민들을 만난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고 민양운 씨는 말한다.


도서관 운영과 활동 주체


도서관은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그리고 오전 11시부터 5까지 문은 연다. 7명의 사서자원 활동가들이 사서 일을 하고 정기적으로 4명의 자원활동가들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런 자원활동가들은 대부분 도서관이 개관한 후 새롭게 구성된 주부들이다.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은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3학년 이하의 아이들이다. 도서관을 찾는 엄마들은 아이들의 연령대에 맞춰져 있다.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월평균 500명 정도가 도서관을 이용하고 있다. 그림책 읽는 모임, 초등학교 엄마들의 ‘체험강사단 모임’, ‘동무동무 책동무’라는 책읽기 모임 등 소모임과 사서 자원활동가 팀, 운영위원회, 책 읽어주는 엄마들, 독후감 도와주는 엄마들 등 일주일 단위로 모임은 굴러간다. 도서관을 찾는 엄마들은 30대 중반 정도의 젊은 엄마들이고 아이들과 함께 일과를 보내야 하는 전업주부의 경우가 대부분이다.


“.........참여하는 엄마들이 꼭 중산층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30대 중반 정도의 엄마들이 대부분이죠. 보통 엄마들이 전문직을 갖거나 허드렛일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두 가지를 비껴나 있는 엄마들이라고 보시면 되요. 이기적이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자 하는 호기심도 많고, 약간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까요. 그런 엄마들이에요.”


자원활동 하는 엄마들의 특성은 도서관이 자리한 중촌동이라는 지역적 특성과 크게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인구 2만 명 정도의 구도시인 중촌동은 신도시 서구와 맞닿아 있다. 경제적 여건이 생기면 서구로 이동하는 주민들도 꽤 된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신도시에 비해 활력이 넘치는 동네는 아니다. 그러나 도서관이 들어서고 난 후, 조금씩 활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젊은 엄마들이 동네에서 뭔가를 시작한다는 긍정적인 시선이 많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엄마들은 무엇 때문에 도서관 활동에 열성일까?


“........그 엄마들의 아이들이 도서관을 이용한다는 점이 무척 매력적인 일이죠. 엄마 입장에서도 도서관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공간인 거죠. 아이들은 또래 아이들과 같이 놀 수도 있고 언니 오빠의 관계도 맺을 수 있죠. 도서관에 오는 엄마 중에 아이 한 명만 키우는 엄마가 있었는데, 생활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해요. 도서관을 중심으로 남편과도 할 얘기가 많아졌고, 보람도 느끼고, 엄마가 변하니까 아이도 즐겁고.......그런 점에서 도서관은 많은 장점을 주는 것 같아요.”


엄마들은 재정과 시간이라는 개인적 비용을 지불하고 있지만, 그것을 통해 얻은 편익은 수치로 계산할 수 없을, 일종의 ‘행복’과도 같은 것을 얻고 있다. 믿을 수 있는 공간에서 아이가 뛰놀 수 있고, 남편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고, 개인적으로는 보람과 자기계발에도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잠깐 든 생각은, 사회참여의 편익과 비용에 대한 연구가 객관적인 수치로 이루어진다면 재미있고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경험적으로 봤을 때, 그러한 편익은 개인적 편익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개인적인 편익이 적다하더라도 공익에 부합된다면 참여의 동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어쨌든 이 부분은 주민참여와 관련해서 연구해볼 만한 일이다.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것은 사람과의 관계


어느 조직이든 활동하는 과정에 갈등이 없을 수는 없다. 도서관 ‘짜장’이 이제 돌을 지나긴 했지만, 그 이전부터 준비했던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도서관을 두고 조직 내의 갈등도 있었다. 그 갈등은, 예컨대 도서관의 정체성을 어디에 둘 것인가와 관련된 것이다. 도서관의 고유 기능을 중심에 놓고 문화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사람을 만나고 조직하는 운동의 수단으로써 도서관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이들도 있다. 어떻게 보면 이 두 부분은 맞물려 있다.


“도서관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 주민들이 오고 그 안에서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면, 겉모양은 도서관이면서 도서관과 무관한 다른 활동을 하면 외부의 동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죠. 도서관 운영을 순수하게 보시는 분들은 너무 운동 차원으로 간다는 지적을 하시거든요. 마을의 작은 도서관은 마을에 뿌리를 내리고 관계망을 형성하지 않으면 어렵다는 것이 저의 생각이에요. 그러나 이 두 부분은 대립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요. 어떻게 잘 조화를 이룰까가 고민이죠.”


전국의 작은 도서관은 지역과 운영 주체들의 특성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단순히 책 빌리고 읽는 기능으로서의 도서관도 나름의 의미가 있고, 그것을 통해 마을 주민과 호흡하려고 하는 시도도 의미가 있다. 다만 경계해야 할 것은, 핵심 활동가들이 당위적 활동에 갇히거나 폐쇄적 운영에 의해 참여자들의 자발성을 무디게 하는 것이다. 도서관이 아주 특별한 어떤 곳으로 인식되는 순간, 주민들의 발걸음은 뜸할 수밖에 없다. 나와 상관없는 어떤 곳으로 인식하기 쉽기 때문이다. 여민회가 조심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그간 여민회 활동이 동네 주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아오긴 했지만, “여민회가 하니까, 알아서 잘 하겠지!” 하는 식의 주민들의 태도가 고착돼버리면 여민회 활동을 특별한 어떤 것으로 여길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도서관이 ‘주민들의 것’으로 비춰지게 하는 활동은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볼 때, 도서관 정체성의 문제는 결국 ‘주민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나갈 것인가와 관련이 있다. 민양운 국장이 고민하는 지점도 바로 이 지점이 아닐까 싶다.


넘어야 할 과제, 그리고 비전


자원활동으로 운영되는 도서관은 안정적인 재정 기반을 갖고 있진 못하다. ‘중촌동마을어린이도서관 짜장’의 경우, 고정적으로 월 60만 원 정도가 회비로 걷히고 재단을 통해 사업비 보조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예산은 프로그램 운영비와 약간의 자원활동가들의 활동비로 지출된다. 여민회는 이러한 재정구조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금은 여민회가 재정을 책임지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재정적 압박이 상당하다. 당장 1-2년 후가 고민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도서관 운영위원회가 실질적인 재정의 책임 단위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쉽지 않다. 재정에 있어서 여민회에 의존하는 인식이 강하고, 무엇보다 좋은 뜻에서 찾아오는 분들에게 재정 문제까지 짊어지라고 하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운영위원회가 조금씩 자신의 문제로 인식될 수 있도록 터놓고 얘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민양운 씨는 풀뿌리운동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도서관이 만들어지면서 새로운 조건들이 형성되었다는 점은 큰 변화라고 말한다. 도서관 활동이 마을 주민들에게 신뢰를 얻으면서 마을의 자생단체라고 불리는 리더들과 협력의 고리도 탄탄해지고 있다. 공동으로 마을의 다양한 축제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도시화된 마을이 가지고 있는 새로운 문제들을 생각하면 도서관을 중심으로 풀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하다. 고령화 문제는 생활 속에서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우리의 문제’가 돼버렸고, 이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해나갈 것인가도 마을에서는 큰 과제다. 또한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는 동네를 더욱 삭막하게 하고 있다. 이웃사촌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다. 여전히 한 부모 자녀들의 문제도 동네에서는 심각하다. 최근엔 이주여성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동네가 관심을 갖지 않으면 점점 소외자로 남을 가능성도 있다. 이들의 현황을 파악하는 것부터가 과제다. 물론, 도서관이 이 모든 일을 다 떠맡아 안을 수는 없는 일이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은 별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회원들이 도서관을 통해 ‘사는 재미와 즐거움’을 느꼈다고 답한 것은 도서관 활동이 생활자에게 특별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뜻을 펼치는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은 사람의 관계를 연결하는 다리 이상의 역할을 한다. “도서관 때문에 마을에서 오래 살고 싶다”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엄마들이 많다고 민양운 씨가 강조하듯,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런 마을이 도서관이 꾸는 꿈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