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내음 팀블로그/하승우의 "일상과 자치"
우리가 뽑은 것은 대통령이다!
'녹색당'
2008. 5. 1. 15:21
경인일보에 쓴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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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뽑은 것은 대통령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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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미 FTA 쇠고기 협상 타결과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은 "질 좋은 고기를 들여와서 일반 시민들이 값싸고 좋은 고기를 먹게 되는 것"이라며 협상 결과를 옹호했다. 다른 얘기 같지만 그 맥락은 앞의 얘기와 똑같다. 평소 한우만 먹는 계층은 신경 쓸 일 아니지만 쇠고기를 먹고 싶어하는 서민들에게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큰 혜택(?)이다. 그 마음 씀씀이 탓에 이제 우리는 미친 소의 고기도 감사하며 먹게 생겼다. 전 국민이 '신토불이'라는 노래를 따라 부른 것이 엊그제 같은데, 대통령이 '검역주권'이라는 말의 뜻도 모르면서 협상타결을 박수치며 축하하는 상황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 이런 상황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대다수 국민과 다른 삶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생긴다. 집을 두 채 이상 가진 사람들이 이사철마다 짐을 싸야 하는 서민의 마음이나 옥탑방의 무더움이나 반지하의 꿉꿉함을 어찌 알겠는가? 평균 재산이 35억원을 넘는 사람들이 가계부를 적으며 한숨을 삼키는 어머니의 서러움과 자식 학비 마련에 야근을 마다하지 않아야 하는 아버지의 고됨을 어찌 알겠는가? 그런 점에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이 공격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말은 공직 사회에서 나올 말이 아니다. 아무런 권력을 갖지 않은 개인이 지나치게 많은 부를 축적하는 것도 문제인데, 하물며 청와대 고위 공직자들의 부가 어찌 문제일 수 없단 말인가? 하물며 공직자가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고 그 부가 대중보다 지나치게 많은 것이 어찌 문제일 수 없는가? 단지 재산만이 아니다. 그렇게 다른 삶을 살기에 그들은 대중의 삶을 이해할 수 없고 그들의 정책도 대중의 필요와 욕구를 반영할 수 없다. 며칠 전 사임한 박미석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이 "억울하지만 그만두겠다"라고 말한 건 그래서 잘못이다. 대중의 삶을 살지도, 그 삶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사회정책을 보좌한단 말인가. 이런 비상식적인 얘기들이 공공연히 나돌기 때문에 지금 정부는 위태롭다. 악의적으로 말을 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정부는 위험하다. 대통령이 자기 입으로 "나는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CEO"라고 말하는 나라이기에 이 나라의 정치는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외국투자를 유치하고 경제를 살리는 것이 아니다. 설령 경제를 살려야 하더라도 기업인의 방식과 대통령의 방식은 달라야만 한다. 사익을 극대화시켜 그 이익을 최대화하는 것이 기업의 방식이라면, 정치의 방식은 사익이 지나치게 집중되지 않도록 분배정책으로 공동체 전체를 보살피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CEO의 자세를 버리고 대통령의 자세로 돌아와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이 정부는 더 이상 권력일 수 없다. 불심검문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벌금을 매겨도, 사복체포조를 부활시키고 집시법을 강화시켜도 그것은 권력일 수 없다. 권력은 국민의 입을 틀어막는 게 아니라 국민이 자유롭게 발언하고 참여하도록 할 때 정당성을 가진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아렌트(H. Arendt)는 '폭력의 세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권력의 본질이 명령의 효과라면, 총구로부터 나오는 것보다 더 큰 권력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경찰관이 질서를 부과하는 방식은 총잡이의 방식과 다르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총구로부터 결코 나올 수 없는 것은 권력이다." 지금 정부는 폭력과 권력의 경계선에 서 있다. 하승우 (지행네트워크 연구활동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