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운동사례] "돈 없이도 어울리는 세상? 과천품앗이가 꿈꾸는 세상!"-"과천품앗이"를 찾아
돈 없이도 어울리는 세상? 과천품앗이가 꿈꾸는 세상!
- 과천품앗이를 찾아 -
▶ 일 시 : 2008년 4월 18일(금) 오전
▶ 장 소 : 과천
▶ 인터뷰 : 박영미(과천품앗이 전 위원장)
▶ 작 성 : 김현(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과천자원봉사센터를 중심으로 품앗이 모임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가 2001년 중반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전신인 시민자치정책센터가 과천에 사무실을 두고 있을 때다. 지근거리에 있으면서 소식만 듣다 이제사 찾았다. 인터뷰를 해주신 분은 과천품앗이 초대 회장이었던 박영미 전위원장이다. 생태 안내자로 지역사회에선 꽤 알려진 분이고, 과천품앗이가 만들어질 때도 큰 역할을 했다. 과천품앗이 근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현 위원장을 찾아뵙는 것도 좋을 법했으나, 과천품앗이가 시작하게 된 배경과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 박영미 전위원장을 선택하게 됐다. 아무래도 잘 아는 관계라 속 깊은 얘기도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함께.
과천품앗이는 공식적으로 2001년 4월에 시작되었고, 과천자원봉사센터 내 회원들이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엄밀히 얘기하면 자원봉사센터가 주도하여 만들었다기보다는 관심 있는 몇 몇 사람들이 꾸준한 모임을 통해 확장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지금은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한 남성의 열성적인 관심과 참여가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었다고 박영미 전위원장은 말한다. 아무튼 자원봉사센터는 모임 공간을 제공함과 동시에 센터 회원들의 참여를 유도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초창기 몇 몇 사람들이 내놓은 품목은 공업용 미싱, 육아, 지점토 공예, 중국어와 영어 등이었다.
과천품앗이가 사용하는 화폐 이름은 ‘아리’다. ‘아리’는 과천시 시목인 밤나무로부터 왔다. 과천시가 99년에 밤나무를 상징화한 ‘토리와 아리’를 마스코트로 지정하게 되었는데, 밤톨의 ‘톨’과 ‘밤알’의 알을 한 쌍으로 연음하여 명명한 것이 ‘토리와 아리’가 되었다. ‘토리’가 단단한 남성을 뜻한다면, ‘아리’는 부드러운 여성을 뜻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여 과천품앗이는 ‘아리’를 선택한 것이다. 과천품앗이는 1시간 노동에 1만 아리를 지불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1아리’는 ‘1원’과 같은 값어치다. 모든 노동은 차별 없이 동등한 가치로 인정한다. 이를 테면, 아기 돌보기 1시간과 영어 수업 1시간, 그리고 디카 수업 1시간은 모두 ‘1만 아리’의 가치를 지닌다.
다음 해인 2002년, 과천품앗이는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하게 된다. 과천에서는 ‘학교평화만들기’에 이어 두 번째 등록이다. 과천품앗이는 대전 ‘한밭레츠’와는 다르게 의식적으로 주도한 그룹이 없었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2007년 1월에 발행된 과천시사 5권 5편의 제4장, ‘품앗이를 통해 본 과천 공동체’를 작성한 정애련 씨에 의하면 ‘경험이 없었던 주부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모임’으로 과천품앗이를 규정하였다. ‘백지에 먹물을 뿌리듯 아주 조심스럽게, 그리고 얼마간은 두려움 속에서 시작’했다고 기술한 것을 보면 과천품앗이의 출발은 매우 소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소박함 속에 매월 소식지가 나가고, 정기모임이 진행되고, ‘아나바다’ 활동을 실천하면서 회원이 조금씩 늘고 조직이 안정화돼갔다. 회원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계기는 방송을 타면서부터다.
“제 기억으로는 2005년 2월경쯤으로 생각되는데, KBS [환경스페셜]에 방송을 탄 이후, 회원이 많이 늘었던 것 같아요. 물론 그 전까지도 꾸준히 회원들이 증가하는 추세였는데, 아무래도 방송에 나간 것이 회원 확장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과천품앗이 카페(cafe/daum.net/poomasi)에 들어가면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살기”라는 프로그램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현재는 150여 명의 회원들의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거래되는 품목은 대전보다 다양하진 않지만, 영어, 일어, 논술 등 ‘학습 품앗이’, 전기보수, 노동 상담 등의 ‘전문영역 품앗이’, 컴퓨터그패픽, 컴퓨터 수리 등 ‘컴퓨터 품앗이’, 그리고 육아와 같은 ‘가사 품앗이’와 퀼트, 종이접기 등의 ‘취미 품앗이’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매월 평균 400건 정도 거래되는데, 이 중에서 교육, 학습 품앗이가 가장 활발하다.
“과천은 작은 도시지만, 질적인 인적자원이 풍부해요. 그것이 회원들에겐 큰 매력이죠. 생활 속에서의 욕구와 잘 맞아떨어지는 대목이죠. 이곳에 누가 오든 ‘아리’를 안 받고 노동을 제공하겠다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이것이 과천품앗이가 활성화된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한편으로 과천이 교육열이 높다보니까 품앗이의 경우도 학습과 관련된 품목이 가장 활발해요. 제가 담당하고 있는 생태 영역은 거의 안 팔리죠.(웃음) 영어나 피아노 같은 것이 잘 팔리는 품목인데, 과도하게 학습에 집중되었다는 점은 단점이라고 볼 수 있죠.”
박영미 전위원장이 언급한 대로, 수학, 영어, 과학, 논술지도 등이 과천품앗이의 주된 거래 품목이다. 그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의료나 농산물의 거래가 활발한 대전 ‘한밭레츠’에 비한다면 학습 품앗이가 월등히 높다는 것이 박영미 전위원장의 얘기다. 특히 수학이나 영어는 가르칠 사람이 부족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다양한 품목으로 확장되어야 하는 것이 극복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대전 ‘한밭레츠’처럼 과천품앗이도 3개월 단위로 만찬을 준비한다. 맞벌이 부부를 위해 저녁 7시에 시작하고 각자 먹을 만큼의 반찬을 준비해온다. 회원들과 아이들을 포함해 대략 40여 명이 참석하는 친목의 자리다. 매월 월례회의도 개최한다. 월례회의에는 모든 회원들이 참석하는데, 이곳에서 물물교환이 이루어진다. 옷, 치약, 책 등등 가정에서 사용 안 하는 생필품들을 가져와 저렴하게 거래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때 박영미 전위원장은 장바구니를 준비한다고 한다. 덤으로 월례회의에 참석하는 회원들에겐 5천 아리의 수당까지 지급된다. 회원들 간 친목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알뜰한 주부들에겐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매력적인 모임이다. 과천품앗이 회원이 되면 1만원의 회비를 내야 한다. 이 회비는 조직을 운영하는데 사용된다. 그러나 현재 과천품앗이는 사무실도 없고 전화기 한 대도 없다. 자원봉사센터 회의실을 빌리거나 여름철에는 야외에서 모임을 갖곤 한다. 과천품앗이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사무실 공간이 시급한 편이나, 현재로서는 자원봉사센터 공간이 고마운 존재이다.
회원이 되면 내부 규정에 의해 신입교육을 받아야 한다. 회원 축하 선물로 대안생리대가 제공된다. 물론 회원이 되면 내부 활동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여성의 날 시민주간에 대안생리대를 시민들과 함께 만든다거나 퀼트로 차받침 만드는 일, 혹은 학교에 들어가 학생 대상으로 교육을 하는 일 등에 자원봉사를 해야 한다. 이런 활동들은 팀웤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고 자연스럽게 각종 소모임으로도 발전하게 된다. 회원의 성비를 보면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전체 회원 중에 남성이 5명 정도 있다고 한다.
“과천품앗이에 가정형편이 어려운 사람도 있긴 해요. 그런 사람들을 위해 ‘사랑의 아리 릴레이’라고 해서 어려운 회원들에게 10만 아리를 그냥 주는 프로그램이에요. 그것을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주는 거죠.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항상 ‘아리’가 부족한 상태죠. 그러나 대체로 회원 중에는 어려운 사람이 드물다고 보면 됩니다. 대부분 중산층 여성들이 활동한다는 것이 과천품앗이의 특징이죠.”
생활이 안정된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과천품앗이의 활동은 차분하다. 들떠 있거나 이슈가 많은 조직이 아니라는 뜻이다. 당연히 갈등의 요인도 거의 없다. 월례회의에 참여하는 회원들에게 5천 아리를 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토론을 벌인 일이 갈등이라면 갈등이라고 박영미 전위원장은 대답한다. 그만큼 회원들 간에는 첨예하게 대립되는 이견이 거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비슷한 계층으로 구성된 조직적 특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이 대목에서 박영미 전위원장은 중요한 부분을 지적한다.
“부분적으로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 회원들도 있긴 하지만, 거의 소수라고 보시면 되고요, 운영위원을 서로 안 한다거나, 운영위원 임기가 짧아진다거나 이런 것이 어려운 점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갈등은 거의 없죠. 과천품앗이는 예산이 거의 없어요. 순수하게 아줌마들 노동력으로 운영한다고 보시면 되요. 헌신적인 10여명 정도의 회원들의 힘에 의해 굴러가거든요. 언제였는지 기억이 정확치 않는데, 우리도 40만 아리를 주고 간사를 한명 채용할까 하는 의견도 있었어요. 그럴 경우 네트워크가 형성이 안 된다고 판단했어요. 상근자가 있을 경우엔 이 사람을 중심으로 굴러가게 될 가능성이 있었거든요.”
풀뿌리조직에서 상근자의 유무 자체가 활동의 성향을 바꾸는 요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경험적으로 봤을 때 상근자가 들어서는 순간, 대부분의 정보가 상근자에게 집중되고 실무적인 부담도 상근자에게 과하게 부과되는 것이 사실이다. 자발성에 기반 한 회원들의 품도 상당 부분 상근자에게로 전이됨으로써 회원들의 활동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이 대체적인 현상이다. 상근자의 문제는 조직의 활동 시스템과 함께 고려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회원의 활동 몫을 쪼개서 상근자에게 분화시킬 것이 아니라 회원들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질 수 있도록 측면 지원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당장은 회원들이 짐을 덜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점차 회원들은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상근자로의 무임승차 의식은 개인이나 조직에게 썩 좋은 모양새는 아니다. 이런 점에서 과천품앗이가 상근자 채용을 포기한 것은 잘 한 일일지 모른다.
상근자 문제보다 더 시급한 것은 공간의 문제다. 앞서 얘기했듯이, 독립적인 공간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를 두고 회원들 간의 이견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과천품앗이는 비영리민간단체에 등록된 독립적인 자치 조직이다. 자원봉사센터 하부조직일 수는 없다. 그간 자원봉사센터의 공간을 유용하게 사용해왔지만, 언제까지 공간을 품앗이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능력만 있다면, 과천품앗이의 근거지를 마련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자원봉사센터 안에 장 하나를 빌려 사용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물품이 많아지잖아요. 쌓아둘 공간이 없는 거죠. 아마 제 생각에는 그런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가 아닌가 싶어요.”
비영리민간단체 등록 이후 자원봉사센터와 약간의 갈등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자원봉사센터 입장에서는 눈에 보이는 활동을 벌이는 과천품앗이의 존재가 큰 힘이자 자산이다. 가능하면 센터 안에 두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 게다. 그런 차에, 과천품앗이가 비영리민간단체에 등록한 것은, 어찌 보면 독립을 요구하는 모양으로 비춰질 수 있었다. 이 대목이 자원봉사센터를 섭섭하게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과천품앗이 입장에서는 자율적인 힘을 더 확장시키는 요인으로서 독립적인 공간을 필요로 하고 있다. 쌓여가는 짐을 당장 처리해야 하는 것도 당면 과제지만, 회원들의 자율성과 품앗이가 가지고 있는 가치와 의미를 사회적으로 더 확장시키기 위해서도 독립적인 공간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외부에서 볼 때도 과천품앗이에게만 특혜를 준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쓰지 않는 공간을 여러 단체와 공유한다는 것은 좋은 의미지만, 과천품앗이 이외에 여러 단체에게도 그런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자원봉사센터의 역할 중에 하나는 이런 자치 조직들을 길러내고 인큐베이팅 해야 한다. 그래야 지역사회가 더욱 활성화될 수 있는 것이다.
“제 개인 생각이지만, 품앗이 운동은 돈 없이도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한 푼 없이 살아갈 수는 없겠죠. 다만 이런 사회에서도 서로 품을 나누고 교환하고 아끼고 살아가면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 자신은 소비가 적은 사람이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삶에 크게 만족합니다. 다만, 우리 사회에 취약한 서민층이 있다고 보거든요. 이런 분들에게는 과천품앗이가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봐요. 과천은 지역 특성상, 베풀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많거든요. 요즘에 어떤 고민을 하냐면, ‘과연 도시 한 가운데서 품앗이의 가치를 의식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을까?’이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자기 현실로 돌아가면 애 키우랴, 살림 하랴, 하면서 이런 가치가 단절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쉽지 않은 운동이죠. 그러나 여러 품앗이 하는 사람들이 조금만 더 단단하게 묶일 수만 있다면 가능도 하지 않을까 싶어요. 특히 인적자원이 많은 과천에서는요. 그런 문제가 제겐 가장 큰 고민이죠.”
빈곤의 문제, 지구온난화의 문제, 그리고 최근에 광우병 문제.......이런 전 지구적인 문제를 과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바로 내가 사는 삶터에서 시민들과 실천하고 행동할 때 가능할 것이라는 게 박영미 전위위원장이 찾은 실마리다. 과천품앗이가 친분이 돈독한 몇 몇 사람들만의 전유물이라면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요원한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생활 속에 침투되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지역사회로 확장된다면 든든한 보호막을 설치할 수 있을 것이다. 더디지만, 생각보다 쉽게, 꿈은 멀리 있지 않다. 그래서 지역과 풀뿌리가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