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운동사례

"민(民)과 관(官)이 만났을 때" - 푸른부천21실천협의회 -를 찾아

'녹색당' 2007. 6. 1. 15:55
"민(民)과 관(官)이 만났을 때" - 푸른부천21실천협의회를 찾아


인터뷰 : 한건희(사무국장)
작 성 : 김현(상근 운영위원)


92년 브라질 리우에서 개최된 “유엔환경회의(UNCED)"는 국가의 환경정책 프로그램과 더불어, 지방정부 차원의 환경 프로그램의 실행을 권고하고 있다. 지역 차원이 지탱가능하지 않다면 국가는 물론이고 지구환경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지방의제21’를 통해 지역 차원의 행동계획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다소 늦게 시작된 우리나라의 경우, 지역적 편차는 있지만, 벌써 10여 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흔히 ‘지방의제21’을 대표적인 민관협력사업으로 평하고 있다. ‘지방의제21’은 지역의 다양한 주체가 하나의 기구를 구성하고, 동등한 입장에서 토론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유지할 수 있는 지역사회의 의제를 설정∙실천한다는 내용을 주요 뼈대로 담고 있다. 이미 지방의제21을 구성한 대부분의 지역은 여러 영역의 의제를 설정하고 실천 중에 있으며, 환류하여 보완, 수정하고 있는 지역도 많이 있다.
이번 지역운동사례는 푸른경기21실천협의회에서 활동하는 한 실무자의 추천을 받아, 민관협력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부천의제(정확한 명칭은 ‘푸른부천21실천협의회’이다. 이하 ‘부천의제’) 사무국을 찾았다. 최근 시민사회 내에 유행어가 된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말도 민관협력의 다른 말이라고 볼 수 있는데, 어떤 단어를 채택하여 사용하느냐 보다는, 그간의 민관협력 사업을 평가하면서 한국적 내용과 형식을 짚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부천의제의 민관협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그 가능성을 찾아보자.

부천의 인구는 80만을 훌쩍 넘었다. 인구밀도가 우리나라 최고다. ‘부천국제환타스틱영화제’가 부천의 지명도를 높여주고 있지만, 아마도 시민사회에서는 ‘시민단체 활동이 활발한 도시’, 또는 ‘개혁적인 단체장이 있는 도시’라는 이미지가 더 가깝게 다가올 것이다. 부천의제는 99년에 준비모임을 갖고 이듬해에 정식 발족을 했다. 의제 선포식을 거쳐, 현재는 경제행정, 도시환경, 사회문화, 정책교육 등의 분과를 두고 있다. 각 분과에는 ‘작은 도서관 만들기’, ‘보행환경개선 및 자전거 활성화’, ‘아동인권조례제정’ 등의 구체적 사업을 실천하고 있는데, 한건희 국장의 설명에 따르면, 이들의 성격은 네트워크의 개념이라고 한다.

“저희는 설정된 의제 중에서 몇 가지 사업을 선택해서 네트워크를 구성했는데, ‘학교 숲 만들기’, ‘자전거이용 활성화’, ‘작은 도서관 만들기’, ‘아동인권조례’ 등이 그것입니다. 이 네트워크에는 지역의 여러 단체와 자원들이 참여하고 있고, 이 곳에서 제안된 정책이나 사업을 부천시에 건의함으로써 제도화시키기도 합니다.”

부천의제의 특징이라면, 구체적인 사안을 지역사회와 네트워킹해서 문제점들을 해결하는데 있다. 이를테면 ‘작은 도서관 만들기’ 사업은 2001년 봄부터 시작하여 각 동마다 하나씩 설치한다는 목표 하에 현재, 10여 개의 도서관이 설치, 운영되고 있다. ‘보행환경 및 자전거 활성화’ 관련 사업은 이미 작년 초에 ‘자전거 활성화 조례’를 제정한 바 있다. ‘아동인권조례’ 제정도 내년을 목표로 간담회 개최, 선진지 방문 등의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이렇게 각 네트워크 사업은 민관의 유기적 협력을 강하게 요구하는 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 민이든 관이든 지방의제21을 의사결정의 채널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부천의제의 민간협력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다.

“절대적인 측면에서는 불만족스러운 점도 있긴 하지만, 그나마 다른 지역보다 민관협력 시스템은 잘 돼 있다고 봅니다. 민간의 제도적인 참여나 행정부의 적극적인 협력은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 민간 진영에서 주도적인 실천을 해왔기 때문인데, 이미 지방의제21을 구성하기 전부터 민간에서는 음식물 사료화 운동을 모범적으로 펼쳤고, 분리수거 같은 경우도 부천에서 처음 제안한 정책입니다. 종량제도 처음 실시했고, 다 아시다시피 담배자판기설치금지 조례의 경우도 부천 시민사회의 건강성을 방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민간의 움직임이 행정부와 잦은 마찰을 빚기도 했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바라보는 시선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많은 공무원들이 시민단체를 새롭게 보고 있고, 정책을 생산하는 과정에 시민단체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습니다.”

민간의 자발적인 노력이 결국은 행정부를 움직였고, 현재의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다. 한건희 국장의 지적대로 민간과 행정은 지방의제21을 대화채널로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대화는 서로의 거리를 좁히는 구실을 한다. 시민단체를 의도적으로 배제했던 예전과는 달리, 동등한 파트너로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높은 점수를 줄만하다. 그래서 한건희 국장은 가능하면 민간과 공무원이 서로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만들려고 한다. 각종 워크숍이나 연수 프로그램 시 공무원들의 참여를 필수적이다. 의견을 교류하는 과정이 바로 서로간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이다.

물론, 앞서 지적했듯, 부천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평가는 무의미하다. 즉, 원혜영 시장의 개혁성은 이미 시민사회가 높이 평가하고 있고, 그런 단체장의 마인드가 의제사업을 추진하는데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래서 역으로 한건희 국장에게 물었다. “만약 현재의 단체장과 마인드가 상당히 다른 분이 단체장으로 취임하면, 현재와 같은 민관협력시스템이 유지되겠는가?”

“.......말씀하신 대로 현재 시장이 계속해서 연임을 했기 때문에 그 동안은 민관파트너십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지방자치단체장이 바뀌었을 경우, 부천의제의 민간파트너십이 장기적으로 갈 것이냐는 아직 미지수가 아닌가 싶습니다........그래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제사업을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최근 논의가 활발한 ‘지속가능위원회’의 설치라든지 지방의제21에 대한 지원조례 등이 고민되어야 하겠지요. 그렇지만 지방자치단체장이 누가 되든, 사회적 흐름들을 거스르는 일은 하지 못할 거라 봅니다. 진행 정도가 차이는 있겠지만 되돌려가 가는 일은 쉽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한건희 국장이 걱정하는 것은 지방의원들의 발목잡기다. 이미 지방의제21 사업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이 구비되었기 때문에 단체장 개인이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사적인 영역을 넘어섰다고 본다. 그러나 34명으로 구성된 부천시의회 의원들이 지방의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매우 복잡하다. 정치적으로 이용될 경우, 사업의 지속성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라도 지방의제21의 제도화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제도화의 과정은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집행부와 지방의원의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천의제는 제도화의 전단계로 ‘정책협의회’를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간혹 어떤 지역에서는 의제에서 결의한 환경계획이 행정부에서는 전혀 다른 계획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자연형 하천을 조성하자는 의제의 결의와 무관하게 복개를 통해 주차장을 만들겠다는 행정부의 계획이 발표되기도 한다. 이럴 경우 행정부는 시민사회와 부딪칠 수밖에 없다. 지방의제가 설정한 계획대로 얼마나 집행되었느냐는 민간협력을 평가하는 좋은 지표가 된다. 부천의제의 경우는 의제사업과 관련된 각 과의 사업을 매년 평가하는 기구를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정책협의회’인데, 부천시의 국장급들, 그리고 분과 위원장들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매년 분기별로 모임을 갖고 평가를 수행하고 있다. 작년 말에 구성되어 벌써 두 차례 진행되었다. 이러한 채널은 서로가 의제를 이해하는데 기초가 된다. 지방의제21이 설정된 의제를 얼마나 잘 이행하느냐로 평가된다면, 관련 집행부와의 긴밀한 평가와 조율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한건희 국장은 이 ‘정책협의회’를 지속가능위원회의 전단계로 보고 있다. 물론 ‘정책협의회’가 민간에게 오픈된 협의기구는 아니다. 부천시와 의제와의 협의체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협의회가 구성된 지역은 거의 없다. 시행착오 없이 ‘지속가능위원회’를 준비하는 것보다는 사전 협의의 과정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민주적인 의사소통의 경험이 많이 부족하다. 목소리 큰 사람의 의견이 채택되는 그런 시대는 지났지만, 여전히 합리적 토론의 경험들을 쌓을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생태공원’이 무엇이냐를 놓고도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한건희 국장도 관점의 차이가 민관협력의 가장 큰 저해요소라고 말한다.

“예를 들면 ‘작은 도서관 만들기’ 사업과 같은 경우, 이 사업을 위해 시립도서관과 운영에 대한 깊은 논의가 있어야 하고 협약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문구 하나 하나의 이해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협약서 하나를 작성하는 대도 많은 시간이 소모됩니다. 민간 쪽에서는 공무원의 행정적 절차에 대해 잘 모르면 강하게 어필하는 경우도 있고, 공무원의 경우도 지금까지 가져왔던 권위적인 태도가 아직까지는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나타나는 차이가 많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희는 매년 해외 연수를 한 차례 갑니다. 여기에 민간 반, 공무원 반이 참여합니다. 그 곳을 보면서 서로 이야기를 하고 대화를 하는데, 연수를 갔다 와서 사업에 반영하는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민관협력의 과정은 참 어렵다. 민관협력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부천의제만 하더라도 여전히 지속성에 대한 확신은 없다. 또한 현재의 시스템을 구축하기까지는 시민사회의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단체장의 마인드는 하나의 변수일 뿐, 지역사회의 성숙도가 크게 좌우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사회의 활발한 활동과 건강성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천뿐만 아니라 광주, 대구 등에서 보여주고 있는 민관협력(‘마을만들기’사업)사업이 어쩌면 이런 흐름을 뿌리내릴 수 있는 바로미터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사업이 가지고 있는 한계도 있다. 상층 구조를 얼마나 극복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좀 더 아래로 끌어내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건희 국장이 설명한 아래와 같은 사례처럼 말이다.

“제가 일본에 가서 마을만들기를 사례를 본 적이 있습니다. 공간 구성을 새로 하는데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 우리와는 전혀 다르더군요. 공원 하나를 만드는 과정에서 처음부터 도면을 갖다 놓고 시민들이 공원을 둘러보고, 시민들과 도면에 공원의 그림을 직접 그려봅니다. 그리고 평가를 해보면서, 이건 너무 아니다 싶으면 바꿔보기도 하면서 작은 형태의 모형을 만들어 보더라구요. 그리고 그 모형을 가지고 이야기를 다시 합니다. 이건 좀 그렇다, 이건 좀 아니다, 그러면 전문가들이 그 의견을 받아들여서 기본안을 만들더군요. 이런 과정이 시민들이 참여하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상황을 보면, 처음부터 딱 만들어 놓고 의견을 들으려 하는데, 그림을 보면 잘 만들어져 있거든요. 거기에 어떤 의견을 들을 수 있냐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공청회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지방의제21이 말하는 과정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는 거죠.”

그런 과정을 차근히 밟기를 기대해 본다.

※ 푸른부천21실천협의회의 홈페이지는 http://www.pc21.or.kr/home.htm입니다.
(2003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