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삶과 시민운동은? - 늘 겸손하게 처음처럼
가끔 용산역 부근을 지나게 되면 옛날 참여연대가 들어가 있던 건물을 찾아 보게 됩니다. 아래층에는 호프집이 있었고, 천장에는 쥐들이 뛰어놀던 허름한 건물에 참여연대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밥을 먹으러 가면 사무처장이던 박원순 변호사님은 식당아주머니에게 '아줌마 우린 거지예요'라고 말하시곤 했지요. 전골을 조금 시키고 그 몇배나 되는 공기밥을 같이 시켜 여러 사람들이 나눠먹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만큼 그 당시 시민운동의 현실은 열악했던 것같습니다. 당시 사법연수생이었던 저는 그 허름한 건물을 들락거리면서 권력과 재벌을 감시하기 위한 자료들을 모으고 분석하고 법률안 초안을 만들고 하는 일들을 거들다가 시민운동이라는 곳에 한 발 디디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사법연수원에서는 완전히 찍히기도 했었지요.^^
그 당시 제가 보았던 참여연대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조직이었던 것같습니다. 정돈되지는 못했지만 활력이 있었고, 회원들의 모임도 꽤 활발했던 조직이었지요. 누구나 같은 탁자에 앉아서 토론할 수 있는 그런 수평적인 분위기도 있었구요. 저도 그 때 '청년마을'이라는 회원모임에 참여하기도 했었습니다.
참여연대 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단체들이 그랬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 때가 가끔 생각납니다.
제가 얼마전에 시민사회신문에 쓴 글을 읽고 몇 분이 메일을 보내주시기도 하고 답글도 달아주셨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고 의견을 주신 것에 감사드리구요. 저도 더 깊이 고민해 보겠습니다.
사실 시민사회신문에 글을 쓰기 전에 작년 11월쯤엔가 아름다운 재단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에서 부탁해서 쓴 글이 있었습니다. 두 글에서 모두 저는 시민운동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하구요. 저는 희망을 말하고 싶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한 것같습니다. 그런 변화를 만들 수 있다면 희망은 현실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공감' 뉴스레터에 썼던 글을 아래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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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일 때문에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가끔 생각이 나면 메일을 보내 안부를 묻다가 만나기도 한다. 별로 사람만나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인데, 자꾸 사람을 찾는 걸 보면 뭔가 허전한 것이 있나 보다.
사람을 만나다보면, 사람이 변한 것도 보게 된다. 스스로는 안 변했다고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변한 것 같은 사람도 있다. 바람직하게 변한 것 같은 사람도 있지만, 별로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러면서 나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 걸까? 되돌아보게 된다.
변해야 하는 것과 변하지 말아야 할 것
무위당 장일순 선생께서 남긴 짧은 글 중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영성적인 절대만을 유일한 진리라고 생각하여 상대적인 현상을 무시하는 삶도 아니고, 상대적인 다양한 현실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삶도 아닌 바탕에 공동체적인 삶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곱씹어 보면, 변해야 하는 것과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 것 같다.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람이 삶을 사는 기본자세다. 사람을 대하고 자연을 대하는 기본적인 삶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다면, 다른 것은 현실에 따라 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장일순 선생의 말씀에 따른다면 “아낌없이 나누기 위하여 부지런히 일하고 겸손하며 사양하며 검소한 삶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인간과 자연과의 사이에 있어서 기본이 되는 삶의 모습”이다. 추상적인 이념이나 이상보다도, 머릿속에 든 당위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삶의 모습이 아닐까? 이런 삶의 모습이 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처음처럼’의 의미를 묻다
그런데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가끔 어지러울 때가 있다. 과거에 내 주위에도 거대한 이념이나 거창한 이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런 사람 중에 상당수는 빨리 변했다. 오히려 그 때에 이야기하는 것과는 반대로 사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을 가볍게 대하고 스스로의 자만에 빠져 삶과 사회를 ‘경쟁’과 ‘물질중시’라는 편협된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들의 생각에서 ‘협동’이나 ‘공동체’란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장식물에 불과한 듯하다.
물론 묵묵하게 자신의 삶의 중심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도 많이 있다. 묵묵히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해 온 사람들, 농촌에 들어가 엘리트들이 버린 농촌과 농업을 부여잡고 있는 사람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시민운동, 사회운동의 뿌리를 튼튼히 내려 온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런 사람들의 삶을 보면 변하지 않는 삶의 태도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을 ‘처음처럼’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요즘 ‘풀뿌리 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이런 사람들의 삶과 운동을 표현하기에 ‘풀뿌리’라는 말이 적당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 의해 우리 사회에는 그나마 희망이 있는 것 같다.
겸손하게 늘 ‘처음처럼’
요즘 환경운동연합의 횡령사건으로 인해 시민단체들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물론 다른 시민단체들, 특히 열악한 상황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작은 시민단체들이나 풀뿌리지역단체들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일이다.
사실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단체 중에 작은 단체들이나 지역 시민단체들은 보증금 천 만원 남짓에 겨우 사무실을 유지하고 있는 단체들이 많다. 활동가들의 활동비는 아직도 생활을 꾸려나가기 힘든 수준이다. ‘억’이라는 돈은 들어보지도 못한 단체들이고 활동가들이다. 이런 단체나 활동가들이 있기에, 우리 시민운동 전체를 폄하하려는 일부 정치인들이나 언론의 태도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더구나 지금 시민단체들을 비난하는 정치인들이나 언론인들은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밤을 새가면서, 작은 활동비에 생활이 쪼들리면서, 우리 사회의 문제를 시민단체들만큼 절박하게 부여잡고 있었던가? 물론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시민단체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겸손하게 ‘처음처럼’ 다시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단지 지금의 국면을 모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현실을 대하고 답을 찾아 나가기를 기대한다. 지금 한국의 시민단체들은 그럴 힘과 자존심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사실 초심을 유지하면서 살아가고 활동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겠지만, 그것만큼 가치있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 삶을 타인에게 요구할 자격은 아무에게도 없겠지만, 그런 삶을 서로 의지하며 함께 꿈꾸어가는 것이 시민운동일 것이다. 아직도 그런 희망은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많은 시민들이 시민운동에 대해 기대를 걸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