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운동 사례]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②
아줌마들의 즐거운 수다를 통해 건강한 지역사회를 꿈꾸는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
②
모임의 위기와 극복
모임을 재미있게 진행하다가, 단비가 2005년부터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다.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높다보니 아이들 심리 및 상담에 관한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대학원을 다니면서 모임을 기존과 같이 활성화시키기가 힘들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물론 총무가 있기는 했지만, 단비가 모임을 거의 주도적으로 이끌어오고 있었고, 모임 장소 또한 대부분 단비의 집에서 이루어졌다. 이에 모임을 1개월에 1회로 줄였다. 사실, 단비를 대신해서 모임을 예전대로 진행하도록 역할을 나눌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 단비는 미처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것 정도로는 긴밀한 멤버십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또한 2006년에서 2007년으로 넘어올 때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단비 역시 마음으로 의지하던 열성회원 몇 명이 멀리 이사를 가는 일까지 생겼다. 그렇게 중심적으로 활동하던 회원 서너 명이 이사를 갔고, 그 외에도 여러 명이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회원 수도 줄고 모임도 자연스럽게 주춤하게 되었다.
모임이 이렇듯 쇠퇴하게 된 배경은 단지 회원들의 이사로 인한 것뿐이라고 할 수 없다. 회원들의 이 모임에 대한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초창기에는 모임 자체가 좋아 열성적으로 참여하던 이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열성이 조금씩 시들해 지게 된 것이다. 그러한 정체성의 혼란은 보다 발전된 실천활동으로 연계하는 데에 어려움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물론, 단비에게는 이 모임을 잘 발전시키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으나, 지역사업의 발전이 열망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회원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자는 얘기도 있었지만 논의만 무성할 뿐 실제사업으로 추진되지 못하면서 오히려 회원들이 활동에 느슨해지기도 한 것처럼 보였다. 또한 함께 공부하는 책- 주로 환경과 교육 관련- 중 일부 책에 대해서는 어려워하기도 하고 너무 이상적이라는 생각을 갖기도 했다. 이러다보니, 한 회원의 경우에는 남편이 이 모임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아내가 읽는 책을 보고 “아이를 잘 키우고 싶으면 그 모임에 가지 마라. 단비 그 아주머니가 당신을 의식화시키려고 하는 것 같다. 아이 교육은 그냥 하던 대로 쭈욱 한 길로 지도하고 키우는 것이 낫다”며 이 모임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일도 발생했다.
그래도 모임은 한 달에 한 번씩 꾸준히 진행되었다. 하지만, 몇몇 회원들이 이사를 가고 남은 회원들도 다른 단체 활동을 시작하면서 이중, 삼중의 멤버십을 가지며 바빠지고, 모임에 대한 열정이 식어갔다. 2007년에는 한 권의 책을 세 달 동안 읽은 적도 있다고 한다. 그것은 모임 때마다 참석자들이 너무 적어서 진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 달에도 참석자는 매우 적었으나 그냥 강행하였다.
이에 단비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과연 이 모임은 주부들의 고급스러운(?) 독서 계모임에 불과한 것인가? 그렇다면 내가 왜 이렇게 애를 써야 하는가? 그만 접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고민을 하면서 모임 창립 회원들을 찾아가 얘기를 나누고 까페 등에 자신의 심경을 비추었다. 회원들은 지금껏 해온게 아깝다는 의견이었고, 멀리 거제도로 서울로 이사간 회원들도 까페 글을 보고 답글을 달거나 전화를 걸어왔다. 그곳에 있을 때는 그 모임이 얼마나 소중한 모임인지 몰랐다고. 그 모임을 통해서 자신이 성장할 수 있었노라고. 밖에서 보니 참 훌륭한 모임이라고. 또, 출산을 얼마 남기지 않은 회원 한 명이 이야기를 걸어왔다. 자신이 지금 산달을 얼마 앞두지 않아 도와줄 수는 없지만, 이 모임을 통해 자신이 많이 성장한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래서 이 모임이 지속되기를 희망한다는 것이었다. “언니, 내가 애 낳은 다음에 도와줄 테니 두세 달만 더 버텨...”
이 회원의 눈물 섞인 자기고백은 단비에게 큰 깨달음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굳이 모임의 의미를 큰 곳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한 두 사람이라도 이 모임이 의미가 있고, 그냥 같이 성장하고 그러면 되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즉, 목적의식적으로 무엇을 하고자 하기보다는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과 함께 긴밀한 인간적 관계를 형성하고 또한 자신 및 사회의 문제를 인식해가는 ‘과정’ 그 자체가 좋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물론, 그 전에도 그런 마음을 갖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이야기 하긴 했지만, 그것이 내면화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단비는 모임 자체에 대한 조급한 마음이 많이 여유로워 질 수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과정이 나에게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의미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냥 가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이 한 두 사람만 있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단비가 힘들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나 혼자만 이 일을 꾸려나가야 하는가?” 하는 것과 더불어 “이 모임이 나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인가?”하는 회의가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본인이 일을 나누지 못하고 혼자만 이 모임을 잘 꾸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활동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활동가로 위치 짓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후에는 여러 가지 일들을 회원들에게 의지하기도 하는 등 모임 운영이 체계화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일도 더 잘 진행되었다.
물론, 이전에도 회원들의 주체적 참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전부터 동네에서 전통놀이도 하고 좋은 책 전시 등의 사업도 했었다. 이 일들은 모두 회원들이 역할을 나누어 진행한 것들이다. 한 회원은 아무도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투호놀이를 위해 동네를 돌아다니며 나뭇가지들을 주어서 그것을 깎고 다듬어서 투호를 만들기도 하였다. 책전시를 맡은 회원은 책 선정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등의 일을 매우 주체적으로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단비 본인은 이러한 회원들을 전적으로 믿기보다는 자기가 항상 도와주어야 한다는 자기 암시에 걸려있었던 듯하다. 그러니 다른 회원들도 단비에게 그런 역할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단비에게 너무 많은 하중이 걸리게 되었고, 그래서 더욱 힘들어 했던 것 이다.
이렇듯 단비의 일방적 헌신에 의해 모임이 발전하다보니, 정작 다른 회원들은 술 한 잔 먹을 때 가끔 물어보기도 했다. “너는 왜 이런 일을 해? 나는 네가 우리를 민노당 지역 사업 차원에서 민노당에 가입시키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단비는 한 번도 다른 회원들에게 민노당에 가입하라는 등의 권유를 해 본적이 없었다. 다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단비는 “내가 좋은 바이러스라면, 주위에 이런 삶을 감염시켜 이웃들과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고 싶다. 동네에서 같은 지향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 더불어 살고 싶은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 하지만, 이는 당위론적 대답일 뿐이었다. 앞서와 같은 스스로의 위기가 찾아오기 전에는 ‘과정’을 중요시하고 즐기는 것이 지금보다 덜했다. 결국 이러한 위기는 단비 자신을 변화・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한 차례의 심각한 고비를 겪은 후 모임은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 변화는 운영위원회가 꾸려진 것이다. 활동체계에 대한 고민과 분화는 2008년에 시작되었지만 운영위원회는 2009년도에 처음으로 꾸려졌고, 이를 통해 단비가 회의에 빠져도 회원들 스스로 모임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각자 팀장 등의 역할을 맡는 등 적극적 역할을 하는 회원들이 늘어났다. 물론, 모든 회원들과 팀장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변화는 분명 있었다. 실제, 행사를 앞두고 이를 준비하기 위한 회의에 단비가 빠진 적이 있었는데, 까페에 올라온 회의결과는 놀라웠다. 단비가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세밀하고 밀도 있는 회의가 진행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단비가 없으니까 자기들이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또 회의에 오지 않은 이들이 많자 위기의식을 갖고 일을 하나씩 더 맡기로 한 것이다. 그전에 단비는 자기가 모임을 빠지는 것에 대해 불안해했다. 하지만, 회원들 중 이 일이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 실제 이런 과정을 통해 회원들의 적극적 참여정도는 매우 높이 고양되었다. 2008년에는 처음으로 대표를 선출하기도 했는데, 단비가 그 과정을 통해 대표로 선임되었다. 사실 대표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는 못했는데, 외부에 도움을 받는 과정에서 항상 대표자가 누구냐 하는 등의 요구가 있어 그냥 대표를 뽑자고 한 것이었다.
두 번째 변화는, 비록 초기의 전성기 때만은 못하지만, 회원들이 다시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초창기 때의 회원들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은 몇몇 열성 회원들이 먼 곳으로 이사한 것에도 원인이 있지만, 최근 어려워진 경제사정 등으로 일을 하는 주부들이 늘어난 것도 중요한 원인이었다. 그러다보니 오전에 열리는 모임에 참여하는 회원들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에 2009년부터는 직장에 다니는 회원들을 위해 매달 한 번씩 밤 모임을 시작하였다. 이 밤 모임에는 대여섯 명의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처음 만들게 된 계기는 한 회원이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다. 밤 모임 역시 중요한 내용은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이다.
현재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에 회비(월 5,000원)를 내며 참여하는 회원 수는 16명 정도이다. 2009년 3월에 시작한 품앗이는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과 별개로 운영되고 있는데, 약 22여 가구 정도가 참여하고 있으며 주변에서 관심을 가지고 문의를 하는 주민들도 꾸준히 생겨나고 있다. 이들 중에서 새로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에도 회원으로 가입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회원으로 가입할까 망설이고 있는 이들도 6~7명 정도 되고 있다. 또한 동네 어린이집 바자회 때나 녹색마당 등을 통해 홍보 리플렛을 주민들에게 나누어주면서 몇 명이 회원으로 새로 가입하였다. 사실, 기존 회원만으로는 관계가 권태로워지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였는데, 이렇듯 새로운 회원이 가입하면서 모임에도 새로운 활력이 되고 있다.
그 외에도 <아름다운 가게>를 통해 지원 받은 ‘식품안전교실’ ‘어린이생태교실’ 사업도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위기를 극복하고 안정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즉, <아름다운 가게>에 대한 공모신청이 선정되면서, 회원들은 자신들의 활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의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또한 연속 4강으로 이루어진 주민교육인 ‘식품안전교실’은 광우병 파동이전이었음에도 성황리에(26~30명 정도의 주부 참여) 이루어져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당시 <아름다운 가게>에서는 사업 내용에 비해 지나치게 적은 액수의 지원신청에 대해 모임 회원들의 교육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신청액에 추가 금액까지 지원함으로써, 회원들의 사기를 높이는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회원 참여 과정과 구성
초기에는 단비가 동네 정자에서 주부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 책읽는 모임에 가입하기를 권유하거나 회원들의 입소문을 통해 회원들이 주로 가입을 하였다. 그러던 중 <굴포천 살리기 시민모임>의 하천생태학교 참여를 통해 같은 동네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만나 이들 역시 회원으로 참여하였다. 그러다 모임이 한 차례 위기를 겪은 후인 2007년부터 새로 가입한 회원들은 주로, 앞서 언급한 바자회나 녹색마당 등의 행사 때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새롭게 결합한 이들이다.
초창기 회원들은 주로 전업주부들 중심이었으나, 현재는 직장에 다니는 회원들도 상당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회원들의 밤 모임을 새로이 만들어 진행하기도 하고, 2007-2008년에는 책모임을 새내기 회원모임과 기종 회원모임으로 나누어 따로 운영하고 월1회 전체모임에서 모임운영과 관련된 전반적인 회의를 진행하였다. 전체회의에서 새내기 회원들이 적을 때에는 기존 회원들의 ‘끈끈한’ 인간관계 때문에 새내기 회원들이 소외감을 느끼는 등의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는데, 기존 회원들이 대부분 직장을 다니면서 그만두거나 밤모임으로 옮기게 되면서 이러한 문제가 없어졌다.
회원들의 구성은 매우 다양한 편이다. 대학을 나온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지만, 몇몇을 빼고 대부분은 ‘사회운동’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이다. 이들은 이 모임을 통해 책도 읽고 생태교육, 식품안전 교육도 받으면서 새롭게 자아의 성장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