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최순옥(사무국장) 작 성 : 김 현(시민자치정책센터 상근 운영위원)
‘갈곡리를 사랑하는 주민모임’(이하 ‘갈사모’)은 꽤 유명한 지역조직(?)이다. 최근 몇 몇 언론이 ‘삶터 가꾸기’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주민자치모임으로 소개하면서 그 위상도 높아졌다. 대외적으로 알려짐으로써 뒤따를 부담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내부적인 자부심이 활동의 동기를 더 탄탄하게 만들었다고 최순옥 국장은 말한다. ‘갈곡리’라는 지명은 현 은평구 갈현1동 인근을 예스럽게 부르는 말이란다. 이 곳에는 조금한 공원이 하나 있는데, 말하자면 조금 큰 놀이터이다. 이를 ‘갈곡리 공원’이라 부른다. 놀이터가 일정 규모가 되면 ‘공원’이라고 명명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갈사모’와 ‘놀이터’의 만남,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갈곡리 놀이터는 3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 기본적으로 시설이 낡은 건 말할 것도 없지만, 주민들을 더욱 속상하게 만든 것은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재활용 쓰레기 때문이었다. 행정기관이 동네에 마땅한 유휴지가 없다는 이유로 쓰레기 적치장으로 사용하게끔 허용한 것이다. 놀이터가 주민에게 소중한 문화시설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거나, 아예 그런 마인드조차 없었던 모양이다. 아이들과 하루 일과를 보내야 하는 주부들이 불만을 가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 4년 동안, 항의전화도 하고 민원도 제기했지만, 행정기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주부들의 생각도 관에서 해결해 줬으면 하는 눈치였지, 조직적인 흐름을 선뜻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그러던 것이 2000년 4월, 놀이터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닌 몇몇 주부들이 ‘원래의 공원으로 돌려 달라’는 취지로 주민 서명을 받게 되고, 삽시간에 500명을 채우게 된다. 그런 와중에 주부모임도 만들고, 발족식도 거행하게 된다. 그러나 허탈하게도(?) 일이 너무 빨리 해결됐다. 은평구청이 주부들의 요구사항을 모두 받아들인 것이다. 첫 모임이 4월이었고, 구청장의 지시가 떨어진 시점이 7월이었으니까. 약 3개월 만에 전격 해결된 것이다. 공사도 청산유수였다. 구청장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공사가 시작됐고, 8월에 끝났다. 4개월 만에 예전보다 더 깨끗한 놀이터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여기에 은평구 추경예산에 놀이터 개조비용이 추가되면서 지금은 남부럽지 않은 공원이 되었다. 방치되고 죽어 있던 공간이 새로 태어났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그 이후 이곳은 갈곡리 주민들의 문화공간이 된다. 영화제도 개최하고 각종 문화행사도 개최하고 그림그리기 행사도 전개한다. 무엇보다 해맑게 웃음 짓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넉넉함 그 자체다.
“그 동안 살면서 아무도 하지 않은 일들을 주부들이 했던 거죠. 뜻밖에 일이 쉽게 끝나긴 했지만 주부들의 결속력은 더욱 돈독해졌죠. 공원에서 문화행사를 하고 아이들 모아서 견학을 가고, 하는 것들은 이전에는 거의 불가능한 것들이었어요. 공원이 제 모습을 찾으니까 가능해진 것이고, 망가지지 않고 사람들이 다 와서 노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 같아요. 저희가 여러 가지 행사를 하지만, 그런 행사를 한다고 문화가 확 바뀌는 것은 아니잖아요. 단지 행사를 하면 관심 갖고 와서 변화된 것을 보고 즐기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어른들은 어릴 적 고향의 모습을 떠올리곤 하잖아요? 우리 애들한테도 그런 추억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어요. 지역에 대한 애정도 생기고. 엄마들도 마찬가지죠. 이런 주민활동을 통해 즐거워하고 보람을 느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결과적으로 동네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던 것 같고, 지역의 여러 일들에 작은 매개가 됐다는 느낌을 심어준 것 같아요. 삶의 질이란 어떤 시설을 하나 만들고 도로를 만들고 하는 식의 택지개발로는 성취되지 않잖아요? 사는 동안 이 동네를 떠나고 싶지 않고, 소소하게 문화행사도 하고, 직접 참여하는 것, 이런 것이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주부들의 ‘삶터 가꾸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저, 관에서 해결해주길 기다리는 민원인에 그쳤다면 이루기 힘든 일이었다. 참여와 실천은 작은 동네를 바꾸었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렇게 ‘갈사모’는 4년째를 맞이한다. 정회원이 17명 정도, 준회원은 30여 명이 된다. 은평시민회의 최순옥 사무국장도 창립멤버다. 한 달에 한 번 정기 모임을 갖고, 때가 되면 문화행사를 개최하고 아이들과 견학을 간다. 얼핏 들으면, 4년여 세월 동안 ‘갈사모’가 견고한 조직적 틀을 지니고 있으려니 생각하겠지만, 이에 대해 최순옥 국장은 손을 가로젓는다.
“조직의 형태를 보면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여요. 시민운동에 몸담고 있는 저 자신도 조직에 대한 상이 뚜렷하지 않아요. 그래서 고민이 되긴 하지만, 또 뭐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발전될 것이라고 믿어요. 의식적으로 구체적인 상을 만들어놓고 끌어 올리려고 하다보면 무리가 따르기 마련이잖아요. 목표를 만들어가는 거지, 목표를 딱 두고 그 목표에 맞춰 끌어가는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지금 현재 2003년도는 지금의 수준으로 합의되는 것이고, 세월이 흘러 10년이 지나면, 아마도 더욱 발전된 형태로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최순옥 국장은 지역주민모임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십수 년간 이질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공통의 관심사를 유지해나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잘 훈련된 활동가가 아니라면 말이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도 힘든 세상에, 너와 내가 잘 살아보자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묵묵히 해나간다는 것은 참 버거운 일이다. 이웃간의 소통이 단절된 현대도시생활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자식에게 맡겨져 있는 사회에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나의 동네’가 아닌 것이다. 아이가 클 때까지 잠시 머물러 가는 곳일 뿐이다. 정주의식은 이미 우리 마음속에 사라진 잃어버린 단어다. 그래서 주민모임이란 더디고 하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이런 풀뿌리들의 모임이 소중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지구를 지키는 ‘병구’가 있듯, 동네에는 ‘아줌마’가 있다. ‘병구’에게 물파스와 때밀이 수건이 외계인을 물리치는 강력한 무기지만, ‘아줌마’에겐 생활자들의 정서와 진정성, 그리고 직감이 있다. 부천담배자판기 금지조례를 제정하게끔 정책을 유도했던 사람들, 천안 쌍용3동의 아파트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원주 협동조합운동을 살아 숨쉬게 만드는 사람들, 놀이터를 주민들의 문화공간으로 리로드시킨 강북구 미아3동의 사람들, 그늘진 아이들과 희망을 이야기 하는 ‘녹색삶’의 사람들, 이 모든 일의 한 가운데에는 아줌마가 있다. ‘아줌마의 힘!’은 풀뿌리에서 강하다. 풀뿌리란 무엇인가? 이 사회를 이루는 근간이다. 아줌마는 풀뿌리를 튼튼하게 만드는 자양분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풀뿌리가 중요한가? 최순옥 국장은 이렇게 말한다.
“그 동안 우리가 사회운동을 하면서 지금까지는 틀을 바꾸고 제도를 바꾸고, 큰 흐름을 만드는데 주력을 했고, 그것에 의해 상당히 많은 제도와 사람들이 변화를 했잖아요. 그렇다면 맨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로 내려가 보면, 모두 다 그 제도를 즐기고 향유를 하고 있느냐면, 꼭 그렇지도 않거든요. 80년대부터 지금까지 20년이 넘게 흘렀는데, 묵묵히 개인의 삶을 살아왔던 풀뿌리로 들어가면,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거든요. 회의라든가, 민주적인 합의의 과정, 토론, 이런 것들 자체가 안 되어 있는 거죠. 그런데 이런 문화는 가정에서도 그대로 반영이 되는 거고, 부모 자식간에서도 그런 문화가 반영된다는 것이죠. 국가 단위에서 구청, 학교, 기관, 지역사회로 들어가면 아직도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그럼 과연 누가 바꿀 것인가? 선언과 제도만으로 절대로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이런 것이구나, 결국 우리 엄마들이 지역에서 이런 모임을 하면서 회의도하고, 조정하고, 교육도 하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문화로 녹아들어간다고 보는 거죠. 그렇게 따지만, 저희가 하는 활동방식은 굉장히 더디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봐요. 그렇게 하면서 사회가 조금씩 변하니까요.”
국가담론의 한계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다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제도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실천도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람의 변화 없이는 국가적 담론은 의미가 없다. 최순옥 국장의 문제의식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최순옥 국장은 시민운동가로서의 삶과 생활인으로서의 삶을 분리시키지 않으려한다. 직업과 생활의 삶이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갈사모’의 활동은 동네 주민으로서의 역할이고, 은평시민회의 활동은 시민운동가, 즉 직업이기 때문이다. 두 개의 삶을 동시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남다른 무엇인가가 있을 것 같아, 넌지시 물어보았다.
“저는 지금의 삶이 만족스러워요. 동네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것은 이웃과 소통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 저는 동네와 소통의 매개가 있고, 시민운동가라는 직분도 있잖아요. 개인의 삶으로 보면, 지금과 같이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지금도 시민운동가라는 타이틀이 상당히 부담스럽고, 그렇게 불려지는 것이 힘들 때가 있어요. 시민운동가는 삶의 대의나 가치중심적인 삶을 살도록 강요받는 반면, 개인의 삶은 질곡 받거든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것은 자기중심이 있어야 하는데, 내 삶과 그 지향이 어느 정도 합치되는 것을 끊임없이 고민을 할 필요가 있는 거죠. 물론 완전히 합일된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요. 나 아닌 어떤 것을 강요받거나 그런 가치지향적인 삶을 강요받는다면 힘들지 않겠어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이런 모임을 하면서 한 해 한 해 발전하고, 진전되고 성숙되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거죠.”
그렇다고 최순옥 국장은 자신을 ‘사람을 변화시키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주제 넘는 일이라고 단호히 말한다. 단지 이런 모임을 통해 한 해 한 해 변해가는 ‘보통사람’일 뿐이다. 20명 내외의 회원이지만, 이들과 더불어 변해가고 작게라도 동네를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물론 여전히 우리 사회는 남성의 문화와 남성의 언어가 주도하고 있다. 매스컴과 인터넷의 확장으로 이런 문화가 서서히 변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소통하는 공간은 여전히 남성의 문화와 언어가 지배한다. 그러나 동네에는 여성의 문화와 언어가 살아 숨쉰다. 온 동네로 확장시키지는 못했지만, 사회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동력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갈사모’가 희망하는 것도 그들의 활동을 지역사회로 좀 더 확장시키는 것이다. 내년부터 주민자치센터를 접수(?)하겠다는 계획도 이런 것에서 나온 의지의 산물이다.
‘갈사모’ 회원들은 초등학생을 둔 엄마들이 대부분이다. 당연히 비슷한 환경에 비슷한 고민을 한다. 그런 점이 그들을 더욱 가깝게 하는지 모르겠다. 무엇인가 같은 마음으로 이야기꽃을 피운다는 것이 정말 보기 좋다. 10년 후엔 나뿐만 아니라 동네가 변해 있을 거라는 그들의 작은 소망대로, 변하지 않고 늘 그렇게 조금씩 전진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갈사모’가 소통하는 공간은 http://cafe.daum.net/GalSaMo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