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내음 팀블로그/김현의 "잡동사니"

신종플루 집단휴교, 가벼운 발상

'녹색당' 2009. 11. 18. 17:25
2010net.tistory.com에 올린 글입니다. 여기 올린다는 걸 깜빡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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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군포의왕교육청’은 지난 10월 초, '신종인플루엔자 A[H1N1] 예방 및 관리에 대한 학원대응지침'을 통해 네 가지 기본방향을 제시했다. 교육∙홍보를 통한 예방관리, 환자 발생감시, 환자 등원 중지 등의 확산방지,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 환자의 확산으로 수업이 곤란할 경우 휴교를 검토하라는 것이 그것이다. 어느 시점과 어떤 상황에서 휴교하라는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지침의 내용만으로는 개별 학교 재량에 맡긴 것처럼 보인다. 결국,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학교장의 판단으로 4일간의 휴교에 들어갔다. 감기증상 아동이 급증했다는 것과 확진환자가 발생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고, 최종적으로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해 결정을 내렸다. 덕분에 딸아이는 외할머니와 함께 집에서 휴식을 취했다.


하루 동안 9천여 명이 신종플루 감염자가 발생할 정도로 신종플루에 대한 불안감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시점에서 학교의 집단휴교 결정은 자연스런 수순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집단휴교는 전체 구성원들의 조건을 감안하지 않고 결정된 편의적이고 탁상공론적인 발상일 수 있다. 맞벌이 부부들은 집단휴교 결정에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아이를 어디에 맡길지 원초적인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식아동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신속한 행정처리가 이루어지지 않아 밥을 굶은 아이들이 더욱 소외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솔솔 나온다.


학교는 상황과 처지가 다른 많은 구성원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만족하는 정책이란 애초에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정책결정자들의 고심은 미뤄 짐작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단휴교는 학교의 권위적인 결정에 개별 구성원들의 각기 다른 상황과 처지를 종속시키려는 전체주의적 발상에 다름 아니다. 왜냐하면 약자를 포함한 모든 구성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이기 때문이다. 약자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다.


집단휴교는 우리 사회에 여러 모로 생각해볼 점을 던져준다. 먼저, 왜 우리는 몇 가지 선택지를 제시하지 않고, 모든 구성원들이 하나의 방침만을 따르도록 결정하는가? 예컨대, 확진환자가 아닌 대다수의 아동들을 예비 확진환자로 취급하여 관리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인가? 우리 사회는 이미 복잡한 매트릭스 사회가 돼버렸고, 매우 다양한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도 아니면 모’식의 정책결정은 다양성의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퇴물이다. 확진환자가 아닌, 대다수 아이들에겐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몇 가지 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감염이 걱정되는 이들에겐 집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등교를 원하는 이들에겐 별도 학급을 운영토록 해야 한다. 이 정도의 조치가 복잡한 사회를 포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안이다. 


또 하나 곱씹어볼 점은, 학교 운영은 누구의 목소리를 대변하는가? 아니면 누가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가? 이를 검증할만한 데이터는 없다. 그러나 맞벌이 부부 혹은 수급권자와 같은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는 열외임에 틀림없다. 학교장이나 교사들은 물론이고, 자녀교육에 유달리 애정을 보이는 사람, 학교교육에 참여할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 아마도 이런 구성원들의 목소리가 전체를 대변할지도 모른다. 과연 이들이 소수자들의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고 있는가? 나는 이 부분에서 고개가 갸우뚱한다.


국가재난 사태로까지 번지는 신종플루 문제를 잘 이겨내는 것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가 생략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도 결과만큼 중요하다.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소외받는 소수자가 없는지, 보다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성숙한 사회’는 나를 넘어 너를 생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