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내음 팀블로그/하승수의 "두서없는삶과자치이야기"

<미발표글> '처음처럼'에 실으려고 했던 '학생인권과 교권'이라는 글입니다

'녹색당' 2007. 4. 1. 12:02
지금은 나오지 않지만, "처음처럼"이란 잡지가 있었지요. 교육관련해서 그래도 좋은 잡지였는데, 나오지 못한 지가 꽤 되었습니다. 아는 분의 부탁으로 "처음처럼"에 실으려고 했던 글인데, 마침 그 때부터 "처음처럼"이 중단되는 바람에 싣지 못했던 글입니다. 우연히 발견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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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과 교권


하승수


1. 글을 시작하며


<학생 인권을 생각하게 해 보는 몇가지 장면들>


장면 1 :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쉬지 못하는 아이들

  A는 아침 8시까지 등교해서 밤 9시 30분이 넘어서야 학교를 나온다. 아침에는 0교시 수업, 밤에는 야간자율학습을 하느라고 그렇다. 그러나 9시 30분이 넘어도 A에게는 휴식이 보장되지 않는다. 학원에 가거나 집에 가서도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면 2 : 다음은 어느 학교의 용의복장 규정 중에서 발췌한 것이다.

남학생의 두발은 스포츠 및 하이칼라형으로 하되, 측두부 및 후두부 하단이 귀를 덮거나 목 부위를 덮어서는 안되며 단정해야 한다. 여학생의 머리는 긴 경우 반드시 후두부 하단에 묶어야 하며 묶은 곳에서 20센티를 넘어서는 안되고..


장면 3 : C는 농촌에 있는 학교에 다니다가 고등학교 때 도시로 전학을 왔다. C는 학교적응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는데, 그 중에 하나는 C에 대해 “촌놈”이라면서 수군거리고 암묵적으로 무시하는 다른 아이들의 태도 때문이었다. 심지어 교사 중에서도 수업시간에 C에 대해 “전에 있던 학교에서는 그렇게 밖에 못 배웠냐”며 무시하는 교사가 있었다.


장면 4 : L은 학교에서 아빠, 엄마에게 어버이날을 맞아 편지를 쓰라고 해서, 그동안 얼굴을 자주 못 보았던 아빠에게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열심히 편지로 썼다. 그런데 L은 얼마후 황당한 일을 당했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쓴 편지를 모두 열어본 후에 잘 쓴 사람에게 상을 준 것이다. 자신의 편지를 열어볼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않고 내밀한 이야기까지 편지에 썼던 L은 자신의 인권이 침해당한 것같아 불쾌하기 짝이 없다.


장면 5 : 고등학생인 M은 교육청 홈페이지에 학교의 부당한 잡부금 징수, 교감의 여학생들에 대한 부적절한 언행 등을 문제삼는 글을 올렸다. 그러다가 M은 학교에서 퇴학처분을 받았으며, 교감으로부터 고소당하기까지 했다.


장면6 : 아래의 글은 교육인적자원부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이다.

학교는 이제 즐거운 배움터가 아닙니다. 여긴 완전히 감옥같아요. 일상적인 학교폭력, 그런 아이들에게 선생은 또 폭력으로 체벌을 가해야 하고... 어떤 우리 학교의 미친 선생은 시험기간만 되면 아직 중 1인 애들에게 7시 30분까지 학교에 오게 하여 시험공부를 억지로 시키고, 성적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몽둥이로 애들을 개 패듯이 팬다는 군요. 그리고 그 선생은 유명한 변태이기도 하구요. 저는 어느날 지나가다가 떠들었단 이유로 그 남자선생에게 머리끄댕이를 잡히고 머리에 불이나도록 싸대기를 맞는 조그마한 여학생을 보았습니다. 순간적으로 그 선생을 죽여버리고 싶더군요. 하긴... 제 친구는 늙은 선생과 어깨가 부딪혔단 이유로 뺨에 손자국이 나도록 따귀를 맞았더군요... 권위적인 선생... 심한 체벌... 대체 교육이 어느정도 썩은 거죠?



  1980년대까지는 성인의 인권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런 마당에, 학생의 인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많은 중,고등학교에서는 일부 교사들에 의해 상습적인 체벌이 행해졌고, 가방검사, 몸수색, 두발단속 등의 일들은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또한 심야야간자습과 보충수업 때문에 청소년들의 '쉴 권리'는 보장받을 수가 없었고, 학교 내에서는 성적 등에 따른 차별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다.

  1980년대 후반에 민주화 과정을 겪으면서 인권상황이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그리고 청소년 인권을 둘러싼 제도의 변화도 있었다. 세계적으로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이 마련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고, 한국에서도 변화의 조짐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사회에서 청소년들, 특히 초ㆍ중ㆍ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겪고 있는 인권현실이 얼마나 변했는지는 의문이다. 앞에서 살펴본 장면들만 보아도 그렇다. 인문계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은 최소한의 휴식권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장면 1). 그리고 학생들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정해지는 불합리한 교칙은 학생들의 개성을 억누르고 있다(장면 2). 뿐만 아니라 권위주의적인 학교는 청소년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는 곳이고(장면5),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곳이다(장면4). 또한 인권에 둔감한 어른들의 영향으로 학생들 스스로도 다른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장면 3). 그리고 교사에 의한 체벌은 아직도 없어지지 않고 있다(장면6).

  이런 장면들을 생각하면,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우리 사회는 아직도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학생은 ‘사람’이고 ‘시민’이며 인권을 가진 주체이다. 비록 성숙하는 과정에 있는 인격체이기는 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것은 청소년도 사람이고  인권을 가진 온전한 주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학생도 교사와의 관계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맺는 모든 관계속에서 자신의 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2. 학생인권에 관한 규범

  현재 청소년 또는 아동으로 표현되는 만 18세 미만의 인간에게 적용되는 인권과 관련된 규범들이 국제적, 국내적으로 존재한다.


  가. 국제적 규범

  현재 아동인권에 관한 가장 보편적인 규범은 유엔아동권리협약이라고 할 수 있다. 1989년 11월 20일 유엔총회는 ‘유엔 아동권리 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 CRC)’을 채택하였다. 그 이전에도 아동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이 있었지만, 이렇게 국제조약의 형태로 만들어진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여기서 ‘아동(child)’은 우리나라에서 보통 쓰는 말로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합친 것과 비슷한데, 18세 미만의 사람은 모두 ‘아동’에 포함된다.

  ‘유엔 아동권리 협약’은 전문과 52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는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 생명권, 신체의 자유, 표현의 자유, 사상ㆍ양심ㆍ종교의 자유, 결사ㆍ평화적 집회의 자유, 사생활의 비밀보호, 정보접근권, 휴식권 등의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엔 아동권리 협약’에는 1995년까지 모두 190개 국가가 가입을 한 상태이다. 그러나 ‘유엔 아동권리 협약’이 만들어지고 많은 국가가 그 조약에 가입을 했지만, 아직까지도 아동의 인권은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 조약은 효력을 발생하였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그런 조약이 있다는 것조차도 모르고 있다. 조약의 정신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모든 교사, 부모, 시민, 청소년들이 조약의 내용을 이해하고, 거기에 공감하며, 그 실현을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보아도 그런 수준에 도달해 있는 국가가 있을까란 의문을 갖게 된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한국도 1991년 이 조약에 가입했다. 한국이 가입함으로써, '유엔 아동권리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 헌법 제6조 제1항이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도 ‘유엔 아동권리 협약'의 내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한국 아동인권의 현실을 보면, 유엔 아동권리 협약의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점차 아동인권과 관련한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규범으로 정착되어 가고 있다. 따라서 국내의 법령이나 교육현실속에서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정신과 내용을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지가 각국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이행을 위하여 5년에 한번씩 협약가입국의 정부로부터 보고서를 제출받아 심사한 후에 권고의견을 내고 있다. 지난 1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Committee on the Rights of the Child)는 한국정부에 대한 권고문을 발표했다. 권고문에서는 * 모든 아동관련 정책과 프로그램에 대한 조정책임을 지는 상설적인 기구를 구성할 것, * 국가인권위원회 내에 아동권에 관한 소위원회를 설립하거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중에 적어도 한명의 아동권 전문가를 둘 것, * 경제적으로 취약한 집단에 속한 아동의 권리보장을 위해 “가용자원의 최대한도까지” 예산을 우선배정할 것, * 한부모가정 아동, 혼외출생아동, 장애아동, 이주노동자의 자녀, 여아에 대한 차별을 제거하기 위한 혁신적인 조치를 취할 것 * 아동의 표현의 자유와 아동의 참여를 촉진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 * 장애아동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장애아동의 공공영역, 공공건물에 대한 접근권을 향상시키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 등을 권고했다. 특히 학교와 관련된 내용으로는, * 학생의 표현ㆍ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교육부 지침, 학교 교칙을 개정할 것 * 학교에서의 체벌을 금지할 것 * * 교사 등에게 아동권리협약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을 실시할 것 * 아동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서 아동이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를 보장할 것 * 취학 전 교육과 중등교육에서의 비용을 감소시키고 무료화하기 위한 전략을 추구할 것 등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정부의 보고서와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권고 등 관련문서를 널리 배포하고 전체 대중뿐 아니라 아동이 알 수 있도록 할 것을 권고했다1).


  나. 국내의 학생인권 관련 법령

  현재 국내법중에서 아동인권과 관련하여 가장 규정을 많이 두고 있는 법은 아동복지법이다. 아동2)복지법은 2000년에 전반적으로 개정되었는데, 그 때에 아동 인권과 관련된 내용들이 많이 첨가되었다. 아동복지법의 많은 내용은 아동학대를 예방하거나, 학대받는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 "아동학대"란,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에 의하여 아동의 건강․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성적 폭력 또는 가혹행위 및 아동의 보호자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유기와 방임”을 말한다. 따라서 아동학대의 개념은 매우 포괄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아동복지법이 운영되는 것을 보면, 아동복지법은 주로 보호자에 의한 아동학대 방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학교에서의 인권침해 문제나 근로청소년의 인권침해 문제 등은 아동복지법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

  초ㆍ중ㆍ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의 인권과 관련하여서는 교육법에서 몇가지 규정을 두고 있다. 우선 교육기본법 제12조에서는 “① 학생을 포함한 학습자의 기본적 인권은 학교교육 또는 사회교육의 과정에서 존중되고 보호된다 ② 교육내용ㆍ교육방법ㆍ교재 및 교육시설은 학습자의 인격을 존중하고 개성을 중시하여 학습자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강구되어야 한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초ㆍ중등교육법 제17조에서는 학생의 자치활동은 권장ㆍ보호된다고 규정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인권의 측면에서 보면, 한국의 교육법은 상당히 후진적이다. 앞서 언급한 몇가지 선언적 규정을 제외하고는 학생인권의 보장을 위한 실효성있는 규정(인권교육이나 학생인권침해에 대한 구제조치 등에 관한)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ㆍ중등교육법 시행령 제31조 제7항에서 사실상 체벌을 허용하는 듯한 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학교의 장은 학생에 대한 지도를 하는 때에는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지 아니하는 훈육ㆍ훈계 등의 방법으로 행하여야 한다”라고 하여,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에는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체벌도 가능한 것처럼 되어 있기 때문이다.



3. 학생의 인권과 교권과의 관계

  본래 교권(敎權)이란 교사가 정치나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독립되어 자주적으로 교육할 권리를 말한다. 따라서 교권은 학생과의 관계보다는 정치권력이나 사립학교 설립자, 학부모와의 관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원론적으로 보면, 학생의 인권과 개별교사의 교권은 상호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존중되어야 하는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개별교사는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면서 교육하고, 학생은 그런 교육을 통해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해 나가는 상상을 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원칙적으로 생각하면,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면서 교육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고, 학생의 인권이 존중된다고 해서 교사의 ‘교육할 권리’가 침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현실은 이런 원칙과 상상과는 거리가 멀다. 많은 개별교사들은 체벌, 비교육적인 언행, 성적 등에 의한 차별, 사생활 침해 등의 학생인권 침해행위를 하고 있고, 일부 교사들은 그에 대한 문제의식조차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를 개별교사와 학생의 대립관계로 보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왜곡할 수 있다. 문제의 본질은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구조적 모순들에 있기 때문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교권에 대한 공통의 침해와 위협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학생의 인권이 단지 개별교사에 의해 침해되는 것보다는, 현존하는 학교의 철학과 구조, 교육제도와 행정의 모순에 의해 침해당하는 측면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교사도 그러한 모순의 희생양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학생들의 휴식권을 침해하는 0교시 수업과 반(半)강제야간자습, 방학중 반(半)강제보충수업은 한편으로는 학생의 인권에 대한 침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교사의 교육권에 대한 침해일 수도 있다. 교사의 입장에서도 부당한 초과노동을 강요당하면서, 자주적으로 교육을 준비하고 충전을 할 시간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0교시 수업에 지각을 하는 학생을 막기 위해 지각생에 체벌을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교사의 체벌이 단지 개별교사의 인권의식의 문제로 치환될 수는 없다. 현재의 학교가 교사로 하여금 학생을 체벌하게끔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학생의 등교시간이 적절한 수준으로 늦추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교사가 지각을 막기 위해 체벌을 해야 하는 일은 많이 없어질 것이다.

  따라서 교육의 구조적인 모순 때문에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교권은 동시에 침해당하고 있고, 이런 모순을 극복해야 할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이것 또한 상당히 원론적인 이야기이고, 실제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 많은 교사들은 이미 스스로를 구조 속에 꿰어 맞추고 있고, 스스로 가해자의 시각과 논리에 파묻혀 있기 때문이다. “때려서라도 공부시키는 것이 아이들을 위해서 좋은 것이다”, “학교의 1차적 목표는 아이들을 대학에 많이 보내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학생인권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교사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한편 학부모들의 권리도 보호받아야 하지만, 현실의 많은 학부모들은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교권에 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 많은 학부모들은 학교가 학생의 인권을 침해해서라도 공부를 시키기를 원한다. 많은 학부모들은 학교가 자식들을 일찍 집으로 돌려보내기 보다 밤늦게 붙잡아두기를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원론적으로 보면, 이런 학부모들에 대해서도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교권은 동일한 이해관계 선상에 서 있다. 



4, 학생인권에 관해서 생각해 볼 몇가지 문제

  학생인권의 현실에 대해 많은 실태조사자료가 있지는 않지만, 최근 몇가지 의미있는 자료들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2002년도에 발간한 『교사의 인권의식 조사연구』보고서(이하 “인권위 조사결과”라고 한다)3)와 2002년도에 푸른희망군포21실천협의회에서 경기도 군포시의 학생과 교사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이하 “군포의제 조사결과”라고 한다)4)를 주로 인용하면서 몇가지 중요 현안에 대해 살펴본다.


  가. 하나의 현실, 상반된 인식 : 체벌

  교사에 의해 이루어지는 체벌이 폭력임은 분명하다. 상식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체벌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 행하는 폭력이다. 이런 폭력의 불가피성이나 정당성에 대해 논란은 계속 있어 왔다. 체벌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체벌은 “교육적 효과를 올리기 위하여”,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된다. 그러나 체벌을 당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체벌은 비인간적이고 비교육적이다.

  2002년도에 이루어진 군포의제 조사결과에 의하면, 설문조사에 응한 학생들중에서 “일주일에 2-3번 정도 체벌을 당한다”로 응답한 비율이 19.2%, “수시로 당한다”로 응답한 비율이 15.3%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비율을 보면 체벌은 아직까지 상당히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권위 조사결과에서도 응답한 교사의 41.5%가 학생의 동의하에 또는 동의없이 체벌을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교사들은 체벌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같다. 군포의제 조사결과에 의하면, 교사들은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요소중에서 어떤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느끼느냐란 질문에 대해, “집단따돌림이나 학교폭력”으로 답한 비율이 40%(41명), “불합리한 학칙으로 인한 사생활침해”로 답한 비율이 28%, “교사나 학생에 의한 언어폭력”이라고 답한 비율이 28%인 반면, “교사의 체벌”이라고 답한 비율은 4%에 불과했다. 즉 교사들은 체벌이 학생인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한편 체벌의 필요성에 대해 교사들은 대부분 긍정하고 있다. 군포의제 조사결과에 의하면, 응답한 교사들은 “학생에 대한 체벌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조금은 필요하다”가 82%(151명), 반드시 필요하다가 14%(25명), 잘모르겠다 2%, 절대로 필요하지 않다가 2%로 응답했다.


  2002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교육부 학생생활규정(안)에 대한 권고문을 내면서 체벌을 허용한 조항을 삭제하고 체벌을 금지할 것을 교육인적자원부에 권고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나 교육인적자원부는 교육계의 여론을 수렴한 결과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많았다는 이유로 ‘체벌금지’를 수용하기를 거부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체벌을 금지해야 하는 이유로 ① 체벌은 학생들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도 처벌적 태도보다는 대화ㆍ협력ㆍ건설적 방향으로의 행동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고, ② 교사는 학생을 통제하기 위하여 체벌을 하지만, 당사자인 학생들은 거의 대개가 체벌 때문에 생긴 불안감, 우울증, 학교강박증, 적개심 등 부정적 감정을 버리지 못하며, ③ 체벌은 통제와 권위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인간을 양성할 위험이 크고, 교육공동체는 회초리를 들지 않고도 교육적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것을 들었다. 이러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는 아동인권에 관한 보편적인 규범을 다시 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28조도 “당사국은 학교 규율이 아동의 인간적 존엄성과 합치하고 이 협약에 부합하도록 운영되는 것을 보장하기 위한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현실적인 이유로 체벌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은 ‘현실적인 이유가 있으면 어른의 신체를 임의로 구속해도 된다’는 논리와 전혀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체벌을 금지한다고 해서 체벌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체벌을 금지하고 있지만, 체벌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체벌이라는 현상이 나타나게 한 교육현실은 바뀌지 않는데, 단지 법이나 교육부 지침으로 체벌을 금지한다고 해서 체벌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 교사들로 하여금 체벌이라는 수단을 선택하게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나. 0교시 수업과 야간학습

  한국에서 ‘쉴 권리(휴식권)’는 중ㆍ고등학생의 권리로서 아예 인정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등교시간은 8시 이전으로 정해져 있고, 아직도 많은 학교에서 반(半)강제적인 야간자습을 시키고 있다. 고3학생들에 대해서는 일요일도 인정하지 않는 고등학교들이 있다. 심지어 한달에 한번의 일요일만 등교시키지 않고 나머지 일요일들은 모두 등교하게 하는 학교도 있다고 한다.

  하루에 학교에서 13시간, 14시간을 보낸 후에 다시 학원을 가는 학생들도 있다. 이처럼 장시간의 학교생활과 타율적인 학습강요는 “아동학대”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어른에게 적절한 휴식이 필요한 것처럼, 학생에게도 적절한 휴식이 필요하다. 오히려 성장기에 있는 아동에게는 정신과 육체의 균형있는 발달을 위해 ‘쉴 시간’, ‘놀 시간’, ‘생각할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타율적인 인간이 아닌 자율적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생활과 시간을 통제할 능력을 어릴 때부터 기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도 “당사국은 휴식과 여가를 즐기고, 자신의 연령에 적합한 놀이와 오락활동에 참여하며, 문화생활과 예술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아동의 권리를 인정한다(제31조)”라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교사들은 학생들을 공부시키는 것이 최선이고, 0교시 수업이나 半강제야간자습도 학생들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정해진 틀을 거부하는 학생을 인정하기 보다는 교사의 권한으로 그들을 억누르고 있다. 또다른 많은 교사들은 학생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지각을 하는 학생들을 제재하고, 야간자습을 회피하는 학생들을 제재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런 교사들은 입시위주 교육의 또다른 희생자들이다.

  무책임한 교육부는 ‘공식적으로는 0교시 수업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고 있고, ‘반(半)강제적 야간자습은 금지되어 있다’고 하면서도,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0교시 수업이나 반(半)강제적 야간자습을 방치하고 있다. 그리고 지역에서는 교장단회의를 통해 학교장들이 등ㆍ하교시간과 야간자습, 보충수업에 대해 합의하기도 하다. 또한 많은 학부모들은 0교시 수업이나 반(半)강제적 자율학습을 통해 학교가 많은 시간동안 아이들을 붙잡아 두고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0교시 수업과 반강제 야간자습을 폐지하는 것에 반대하는 학부모들이 많다.


  다. 두발, 복장, 사생활과 교육

  “공부하는 학생이 무슨 무스를 바르냐”, “공부하는 학생이 복장이 그게 뭐냐”라는 이야기는 교육현장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학생들은 다양한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고 싶어하고, 교사들은 그러한 학생들의 욕구를 억누른다. 그리고 아직도 학교현장에서는 소지품검사, 가방검사가 이루어진다. 만약 바깥의 사회에서 함부로 소지품검사, 가방검사를 한다면 아마 인권침해라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학교는 아직도 그런 시비로부터 자유로운 “외딴 섬(최소한 인권이란 측면에서는)”과 같은 존재이다.

  실제로 군포의제 조사결과에 의하면, 두발, 복장, 개성 등을 선택하고 자유롭게 표현하는데 있어 학교로부터 침해받은 적이 있는가란 질문에 대해, 응답한 학생들중 “많다”가 51.8%(380명), “조금 있다”가 33.7%(247명), “전혀 없다”가 8.9%(65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기나 소지품 등을 교사로부터 검사받는 등의 사생활권 침해를 받은 적이 있는가에 대해서도 “많다”가 16.1%, “조금 있다”가 40.1%(295명), “전혀 없다”가 33.1%(243명), “잘 모르겠다”가 10.7%(79명)로 나타났다.

  인권운동사랑방이 2001년에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93.7%의 학교에서 학생들의 두발을 규제하고 있다. 그리고 남학생의 경우 ‘스포츠형이나 상고머리’로, 여학생의 경우 ‘단발, 커트, 한 갈래로 묶는 머리’로 머리모양까지 제한하고 있다. 또한 전체학교의 77%가 학생들의 신발에 대해서까지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은 이제 더 이상 자신들을 억누르지 말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두발, 복장을 단속하는 것이 교육과 무슨 관련성이 있는지에 대해 묻고 있다. 머리길이나 머리모양, 복장이 학교교육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증거가 있는지, 무차별적인 소지품검사나 가방검사가 교육적이고 합법적인 수단인지에 대해 묻고 있다. 이런 학생들의 질문들에 대해 학교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본래 두발, 복장에 대한 단속과 소지품검사, 가방검사는 그 자체가 교육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다. 많은 학생들을 모아놓고 통제를 하면서 획일적인 교육을 하려고 하면, 외양적인 것에서부터 통제가 들어가기 마련이다.



5. 학생인권 침해의 근본 원인에 대한 탐색

  학생들의 인권이 침해되는 원인이 개별교사의 인권의식이 부족하기 때문만이라면 교사에 대해 인권교육을 하는 것이 처방일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의 인권이 침해받고 있는 근본원인은 개별교사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개별교사들에 대한 인권교육이 어느 정도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겠지만, 교육제도와 교육행정, 학교운영 전반에 내재되어 있는 관료성, 획일성, 폭력성이 치유되지 않는 이상 학생들의 인권실현은 요원한 일이다.

  물론 개별 교사들중에서는 유달리 학생인권에 대한 개념이 없고, 그 수준이 통상적인 도를 넘어서는 경우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 교사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현재의 교육구조가 그런 행위들을 용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권침해를 해서라도 아이들을 휘어잡기”를 관리자(교장, 교감)나 학부모가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생인권 침해의 문제는 개별 교사의 인격적 문제로 치부될 수 없다.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학생들도 자신들의 인권이 침해되는 이유를 구조적인 곳에서 찾고 있다. 군포의제 조사결과를 보면, “청소년 인권을 위해 국가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입시제도 개선 31%, 청소년 인권 관련 법규제정 25%, 교사들에 대한 인권교육실시 15%의 순으로 응답이 나왔다.

  근본적으로 보면, 학생의 인권이 존중되지 않는 것은 학교의 목표, 학교가 추구하는 가치가 잘못된 것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더 크게 보면 교육이 추구하는 가치, 전체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6. 학생인권이 보장되기 위하여


  가. 학교의 목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

  1900년대 초에 스페인 교육은 카톨릭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고, 카톨릭 학교에서는 일상적으로 체벌이 행하여졌으며, 다수의 아이들이 열악한 교육환경속에서 고통받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유학교인 ‘모던스쿨’을 열었던 프란시스코 페레는 교사들이 체벌을 절대로 하지 못하게 했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그것은 학교가 추구하는 목표가 달랐기 때문이다. 즉 “교육의 전체적인 가치는 아동의 신체적ㆍ지적ㆍ도덕적 재능을 존중하는 데 있다”5)라는 철학을 가진 학교와 전(前)근대적인 종교의 영향력아래에서 운영되면서 억압적 체제를 유지하는데에 기여하는 학교가 추구하는 목표는 전혀 달랐다. 그 때문에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페레에 의하면 수업은 ‘연대와 평등의 원칙’에 의해 진행되어야 한다. 카톨릭 학교에서 불량한 학생들은 무릎을 꿇고 회개하면서 체벌을 당하던 것과는 달리, ‘모던 스쿨’의 교사들에게 페레는 체벌로 도덕적 물질적 징벌을 가하는 짓을 절대로 하지 못하도록 했다. 교사의 지도는 전적으로 지식을 얻고자 하는 학생들의 희망에 맞추어야 하고, 그들의 수준에 따라 교육을 받도록 하였다. 즉 학교의 목적은 학생들에게 ‘편견에 대한 지속적인 저항’을 증대시키고, ‘모든 주제에 대해 그 자신의 합리적인 확신을 형성할 수 있는 건강한 심성’을 갖도록 하는 데에 있었다”6)


  지금 교육부가 무어라고 표방하고 있든 간에, 한국의 학교가 추구하는 주된 목표는 경쟁과 통제에 의한 학습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는 교사들로 하여금 학생들을 통제하게 하고, 통제의 과정에서 인권은 침해될 수밖에 없다. 또한 엄청나게 큰 학교의 규모, 열악한 교육환경, 높은 학급당 학생수도 통제와 억압을 주된 학교운영, 학급운영의 수단으로 활용하게끔 한다. 이런 학교들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학교는 아이들을 통제해 가면서 공부만 시키면 되는 곳”이라고 학교의 목표가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학교의 목표가 “아동의 자연적 능력을 자극하고, 발달시키고, 지도하여 가치를 지닌 쓸모있는 사회구성원이 되게 할 뿐만 아니라 전체 공동체의 발전에 헌신”7)하게 하는 것이라도, 교사가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게 될까?


  나.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제도와 관행의 개혁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제도와 관행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 학교단위에서는 불합리한 교칙과 학생생활규정(용의복장규정, 체벌규정 등)을 인권적 관점에서 바꾸어나가야 한다. 또한 체벌을 허용하고 있는 초ㆍ중등교육법 제31조 제7항의 폐지가 필요하다.

  0교시수업, 반(半)강제적야간자습을 금지해야 한다. 그러나 0교시수업, 반(半)강제적 야간자습을 폐지하는데 반대할 사람들은 비단 교장단뿐만이 아니다. 상당수의 학부모들이 반대할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학교단위나 지역단위에서 풀기가 어렵다. 0교시수업, 반(半)강제적야간자습을 하지 말자고 하면, 교장들이 하는 답은 ‘다른 학교에서(또는 다른 지역에서) 하는데 우리만 안 할 수가 있느냐’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제도와 관행의 개혁을 위해서는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교사든 학부모든 “체벌을 안 하면 어떻게 아이들을 통제하느냐”, “0교시 수업, 半강제적 야간자습을 폐지하면 아이들이 공부를 하겠느냐”라는 우려를 한다. 그러나 아이들을 강제적으로 통제하지 않는 교육을 학교가 해야 한다. 그리고 아침에는 적절한 시간까지 수면을 취하고 저녁에는 아이들이 지식공부를 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이다.

  물론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제도와 관행을 바꾸려고 해도 학교교육이 지향하는 목표와 가치를 바꾸지 않고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현재의 학벌주의 사회, 입시제도가 유지되는 한 학생인권 침해의 근본요인은 남아 있다. 그러나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제도와 관행을 바꾸는 것은 기존의 학교교육이 지향하는 목표와 가치를 변화시키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 학생의 인권에 대한 인권교육의 실시

  최근 인권교육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학생들이나 교사들을 상대로 학생들이 가진 인권에 대해 교육을 한다는 이야기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지금 학교에서 필요한 것은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인권교육이 아니라 학생들의 인권에 관한 구체적인 교육이다. 물론 지금은 일반적인 인권교육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교사들은 교사가 되기 위한 교육과정에서 인권교육을 받지 않는다. 군포의제 조사결과에서, 82%의 교사가 ‘교사가 되기 위한 교육과정중 인권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그리고 교사가 된 이후에도 인권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응답한 교사가 87%였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들이 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교사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학교바깥에서 어른들에게 어떤 인권이 보장되는지가 아니라, 학교현장에서 학생들에게 어떤 인권이 보장되어야 하는 지를 아는 것이다. 그런데 군포의제 조사결과에서, 59%의 교사들은 한국이 유엔아동권리협약에 가입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교사교육과정에서 인권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교육기득권세력이 인권의식을 가진 교사를 원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의 인권과 타인의 인권에 대해 올바른 시각과 의식을 가진 교사로서는 현재의 학교현실에 저항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학교가 가장 꺼려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스스로의 인권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다. 학생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자각하면 현재의 억압과 통제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는 학생들에게 스스로의 인권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학교교육이 결국 사회 전체적으로 폭력과 인권침해가 난무하게 만드는 것이다. 스스로의 인권을 침해당해 온 사람은 결국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기 쉽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의 인권을 침해당해온 사람이 커서 다른 사람의 인권을 존중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또한 스스로의 인권을 존중받아보지 못한 사람일수록 우선 나 자신의 이익을 확보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게 되고, 사회적 연대나 ‘공공의 이익’은 등한시하기 쉽다.



7. 글을 마치며

  한국에서 초ㆍ중ㆍ고등학교를 마친 많은 어른들이 학교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억중에 하나는 학교에서 겪은 폭력에 대한 기억일 것이다. 불행히도 지금 학교를 다니고 있는 많은 학생들도 그런 기억을 가지고 학교를 졸업하고 있다.

  얼마전 같은 지역에 있는 어느 보수적인 사립학교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분은 “우리 학교에는 전교조가 없다. 내가 전교조를 못하게 했다. 그리고 우리학교 아이들은 고1때부터 철저하게 관리하면서 학교에 붙들어두고 공부를 시킨다. 교사들에게 내신관리도 철저하게 시키고 애들을 혹독하게 관리한다. 그랬더니 수시모집에 많이 합격되고 있다. 학부모들도 대만족이다. 학교에 대해 아무 불만이 없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 분은 자랑으로 한 이야기이지만, 그 이야기속에 문제의 본질이 담겨 있었다. 누가 통제와 억압을 원하는가? 그것은 학교의 설치자, 관리자들이다. 그리고 많은 학부모들은 동조자다. 어떻게 보면 학생과 교사 모두 희생자라고 할 수 있다. 한편은 인권을 침해당하는 자, 다른 한편은 인권을 직접 침해하는 자의 입장일 수 있지만..

  전쟁에서도 전쟁을 일으킨 자는 직접 총을 쏘지 않는다. 직접 총을 쏘아 사람을 죽이고 폭력을 자행하는 자는 말단 군인이지만, 그들중 상당수는 심각한 전쟁후유증을 겪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