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생명연대가 주관하고 지리산권시민단체협의회가 주최한 <지리산권공동학습프로그램> 제1강좌에서 세계화와 풀뿌리 지역 운동의 대안으로 강의를 해주신 강수돌 교수의 발제 원고입니다.
이제 ‘세계화’라는 말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 대부분에게 낯설지 않은 말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90년대 들어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총체적 분석이 결여된 채 ‘국제화’니 ‘세계화’를 국정의 지표로 외치기 시작했고, 97년엔 마침내 ‘IMF 사태’라는 ‘위기’ 국면까지 맞게 되었다. ‘국민의 정부’를 거치면서 공식적으로는 ‘IMF 졸업’이 선언되었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는 ‘세계화의 덫’으로부터 빠져나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재의 ‘참여 정부’ 역시 한칠레투자협정이나 쌀 개방 문제에서도 보여주듯 ‘세계화’를 거역할 수 없는 대세로 수용하면서도 동북아중심국가 구상에서 보이듯 ‘세계질서의 사다리’에서 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나라가 발전하고 백성이 행복해진다는 기본 입장에서 별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 사회가 지닌, 일제와 미군정기의 경험 등 ‘약소국’으로서의 경험은 한국 사회로 하여금 깊은 ‘피해의식’(恨)을 갖게 했는데, 이 ‘사다리 올라가기’는 ‘집단적 한풀이’의 한 표현이다, 때로는 이것이 ‘세계 제일’ 등 구호의 형식으로, 또는 해외 한국 기업의 반인권적, 반환경적, 공격적 ‘세계 경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사실, ‘세계화’ 개념을 둘러싸고도, 자본주의는 처음부터 세계화 과정이었는데 새삼스럽게 최근에 등장한 것처럼 야단이냐는 주장과 최근에 이뤄지는 세계화는 자본주의 발달 단계에서 새로운 차원을 내포하고 있다는 주장 사이에 논쟁이 있었다. 나는 자본주의가 ‘노예무역’ 내지 ‘삼각무역’, 그리고 나중에는 ‘식민지 개척’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보이듯 처음부터 세계적 차원에서 전개되었음을 인정하면서도 인류학자 스탠리 다이어먼드에 따르면, 문명은 ‘안에서의 억압과 바깥으로의 정복’을 의미한다. 예컨대 500년 전 콜럼버스 일행이 카리브해 섬 타이노에 도착했을 때 토착민들은 춤과 노래, 높은 수준의 공예문화를 이루며 거의 낙원에 살다시피 했는데, 이들을 노예화하여 강제노동을 시키고 무자비하게 살육했다. 이것을 ‘세계화’의 시원이라 할 수 있다.(<녹색평론>. 2003. 9-10. 김종철.) 최근의 세계화가 ‘신자유주의 세계화’로서 예전의 발달 단계와는 다른 특성을 내포하고 있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최근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그 기원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으나 현실적 힘으로 부상하여 우리에게 ‘실재(實在)’로 다가온 것은 대체로 1980년대 이후의 현상이다. 필리핀대학의 월든 벨로가 올바르게 지적하듯, ‘신자유주의’ 이념이나 이론 자체는 이미 1920-30년대에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 등에 의해서 공식화되었으나 그것이 현실화되는 데는 사회적 세력관계의 변화와 사회적 내면화 과정이 필요했다. 월든 벨로 저, 이윤경 역, 어두운 승리, 삼인, 1998, 24-5쪽. 즉,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경제대공황, 소련 사회주의의 등장 등을 거치면서 (선진) 자본주의는 케인즈식 복지국가 자본주의로 변모하는데, 이는 국가가 경제에 적극적 행위자로서 개입하는 한편, 노동과 자본, 그리고 국가 사이에 일종의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 제3세계와 생태계의 희생을 바탕으로 ‘공존’을 도모한 것이었다. 생산방식에서 컨베이어 라인으로 상징되는 대량생산의 고생산성과 그를 통한 고이윤, 그것의 결과인 고임금과 대량소비 체제가 선순환을 그리는 축적 체제를 ‘포디즘’이라 한다. 한마디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의 새 문화를 포디즘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대체로 1930년대 이후의 미국과 이차대전 후의 유럽에서 현실화되는데, 그 위기가 도래한 1970년대 중반까지 약 30-40년간 지속되었다. 이러한 합의 체제에 기초한 자본주의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때가 1970년대 초반이고, 마침내 1980년대 초반에 이르면 케인즈주의 대신 신자유주의가 현실적 힘으로 떠오른다. 1980년에 권좌에 오른 영국의 대처 수상과 미국의 레이건이 그 예다. 특히 대처 수상은 ‘대안은 없다’(TINA; There Is No Alternative)를 기치로 내걸며 신자유주의의 선봉에 섰는데, 지금까지 이것이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되어 있다. 그러나 ‘대안’은 만들어가는 것이지 주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등장은 단순한 인물의 교체가 아니라 사회적 세력관계의 변화를 상징한다. 하이에크 등의 신자유주의 이론이야 이미 존재했고, IMF나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기구들이 그런 입장을 바탕으로 수십년간 세계체제의 재편을 도모하려고 케인즈주의의 물밑에서 조심스레 탐색 중이었는데 이미 1973년에 칠레의 군부 피노체트 정권(진보적 아예데 정부를 폭력으로 전복)은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폈으나 아직은 세계적 붐을 이루진 못했다. 그러다가 1982년 중반 남미에서의 외채위기 발생은 지불기한 연장을 조건으로 세계자본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강제할 찬스를 제공했다. 마침내 케인즈주의 자체의 한계와 모순 컨베이어 노동으로 상징되는 노동의 소외에 대한 노동자의 저항, 석유 등 원자재 가격을 강제로 낮게 유지하려는 제국주의에 대한 3세계의 저항, 고비용의 복지국가 체제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증가하는 재정적자 등의 문제들이 그 대표적 증거들이다.으로 파열이 생기고 신자유주의를 내면화한 정치세력이 보수 중산층을 등에 업고 권력을 장악하게 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본격 현실화할 때가 온 것이다.
이제 대학, 기업, 교회, 정당, 언론 등 사회제도를 통해, ‘(노조 및 국가를 배제한) 자유 시장은 국민 전체에게 행복을 준다.’고 하는 ‘시장 이데올로기’가 전파된다. 이런 이데올로기는 먼저 기득권층이 내면화하고 다음으로 선전과 선동, 교육과 언론을 통해 국민 대중에 내면화된다. 그리하여 기존의 노동운동이나 여성, 환경운동 등 시민사회운동 세력 중에서 실질적 포섭이 가능한 분파들을 끌어들이는 동시에 포섭과 타협이 어려운 분파들을 강력 배제하고 주변화시킨다. 이런 점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음모이론’(일부 집단이 세계 지배를 목적으로 밀실에 앉아 원격 조종)으로 설명하는 것은 ‘대세이론’(세계화는 발전을 위한 세계사적 필연이라고 보는 입장)과 꼭 마찬가지로 편협하다. 세계 변화의 과정은 보다 복합적인 변수들이 얽히고설킨 사회정치적 과정을 동반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 글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우리 삶의 문화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물론 그러한 영향은 결코 일방적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세계 도처에서 무수한 저항과 대안의 시도들이 솟아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세계화’ 물결은 결코 종결되거나 이미 결정된 것이 아니라 여러 차원에서 한창 각축이 이뤄지는 사회적 과정으로 보는 것이 옳다.................
이제 ‘세계화’라는 말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 대부분에게 낯설지 않은 말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90년대 들어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총체적 분석이 결여된 채 ‘국제화’니 ‘세계화’를 국정의 지표로 외치기 시작했고, 97년엔 마침내 ‘IMF 사태’라는 ‘위기’ 국면까지 맞게 되었다. ‘국민의 정부’를 거치면서 공식적으로는 ‘IMF 졸업’이 선언되었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는 ‘세계화의 덫’으로부터 빠져나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재의 ‘참여 정부’ 역시 한칠레투자협정이나 쌀 개방 문제에서도 보여주듯 ‘세계화’를 거역할 수 없는 대세로 수용하면서도 동북아중심국가 구상에서 보이듯 ‘세계질서의 사다리’에서 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나라가 발전하고 백성이 행복해진다는 기본 입장에서 별로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 사회가 지닌, 일제와 미군정기의 경험 등 ‘약소국’으로서의 경험은 한국 사회로 하여금 깊은 ‘피해의식’(恨)을 갖게 했는데, 이 ‘사다리 올라가기’는 ‘집단적 한풀이’의 한 표현이다, 때로는 이것이 ‘세계 제일’ 등 구호의 형식으로, 또는 해외 한국 기업의 반인권적, 반환경적, 공격적 ‘세계 경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사실, ‘세계화’ 개념을 둘러싸고도, 자본주의는 처음부터 세계화 과정이었는데 새삼스럽게 최근에 등장한 것처럼 야단이냐는 주장과 최근에 이뤄지는 세계화는 자본주의 발달 단계에서 새로운 차원을 내포하고 있다는 주장 사이에 논쟁이 있었다. 나는 자본주의가 ‘노예무역’ 내지 ‘삼각무역’, 그리고 나중에는 ‘식민지 개척’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보이듯 처음부터 세계적 차원에서 전개되었음을 인정하면서도 인류학자 스탠리 다이어먼드에 따르면, 문명은 ‘안에서의 억압과 바깥으로의 정복’을 의미한다. 예컨대 500년 전 콜럼버스 일행이 카리브해 섬 타이노에 도착했을 때 토착민들은 춤과 노래, 높은 수준의 공예문화를 이루며 거의 낙원에 살다시피 했는데, 이들을 노예화하여 강제노동을 시키고 무자비하게 살육했다. 이것을 ‘세계화’의 시원이라 할 수 있다.(<녹색평론>. 2003. 9-10. 김종철.) 최근의 세계화가 ‘신자유주의 세계화’로서 예전의 발달 단계와는 다른 특성을 내포하고 있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최근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그 기원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으나 현실적 힘으로 부상하여 우리에게 ‘실재(實在)’로 다가온 것은 대체로 1980년대 이후의 현상이다. 필리핀대학의 월든 벨로가 올바르게 지적하듯, ‘신자유주의’ 이념이나 이론 자체는 이미 1920-30년대에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 등에 의해서 공식화되었으나 그것이 현실화되는 데는 사회적 세력관계의 변화와 사회적 내면화 과정이 필요했다. 월든 벨로 저, 이윤경 역, 어두운 승리, 삼인, 1998, 24-5쪽. 즉,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경제대공황, 소련 사회주의의 등장 등을 거치면서 (선진) 자본주의는 케인즈식 복지국가 자본주의로 변모하는데, 이는 국가가 경제에 적극적 행위자로서 개입하는 한편, 노동과 자본, 그리고 국가 사이에 일종의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 제3세계와 생태계의 희생을 바탕으로 ‘공존’을 도모한 것이었다. 생산방식에서 컨베이어 라인으로 상징되는 대량생산의 고생산성과 그를 통한 고이윤, 그것의 결과인 고임금과 대량소비 체제가 선순환을 그리는 축적 체제를 ‘포디즘’이라 한다. 한마디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의 새 문화를 포디즘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대체로 1930년대 이후의 미국과 이차대전 후의 유럽에서 현실화되는데, 그 위기가 도래한 1970년대 중반까지 약 30-40년간 지속되었다. 이러한 합의 체제에 기초한 자본주의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때가 1970년대 초반이고, 마침내 1980년대 초반에 이르면 케인즈주의 대신 신자유주의가 현실적 힘으로 떠오른다. 1980년에 권좌에 오른 영국의 대처 수상과 미국의 레이건이 그 예다. 특히 대처 수상은 ‘대안은 없다’(TINA; There Is No Alternative)를 기치로 내걸며 신자유주의의 선봉에 섰는데, 지금까지 이것이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되어 있다. 그러나 ‘대안’은 만들어가는 것이지 주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등장은 단순한 인물의 교체가 아니라 사회적 세력관계의 변화를 상징한다. 하이에크 등의 신자유주의 이론이야 이미 존재했고, IMF나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기구들이 그런 입장을 바탕으로 수십년간 세계체제의 재편을 도모하려고 케인즈주의의 물밑에서 조심스레 탐색 중이었는데 이미 1973년에 칠레의 군부 피노체트 정권(진보적 아예데 정부를 폭력으로 전복)은 이러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폈으나 아직은 세계적 붐을 이루진 못했다. 그러다가 1982년 중반 남미에서의 외채위기 발생은 지불기한 연장을 조건으로 세계자본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강제할 찬스를 제공했다. 마침내 케인즈주의 자체의 한계와 모순 컨베이어 노동으로 상징되는 노동의 소외에 대한 노동자의 저항, 석유 등 원자재 가격을 강제로 낮게 유지하려는 제국주의에 대한 3세계의 저항, 고비용의 복지국가 체제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증가하는 재정적자 등의 문제들이 그 대표적 증거들이다.으로 파열이 생기고 신자유주의를 내면화한 정치세력이 보수 중산층을 등에 업고 권력을 장악하게 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본격 현실화할 때가 온 것이다.
이제 대학, 기업, 교회, 정당, 언론 등 사회제도를 통해, ‘(노조 및 국가를 배제한) 자유 시장은 국민 전체에게 행복을 준다.’고 하는 ‘시장 이데올로기’가 전파된다. 이런 이데올로기는 먼저 기득권층이 내면화하고 다음으로 선전과 선동, 교육과 언론을 통해 국민 대중에 내면화된다. 그리하여 기존의 노동운동이나 여성, 환경운동 등 시민사회운동 세력 중에서 실질적 포섭이 가능한 분파들을 끌어들이는 동시에 포섭과 타협이 어려운 분파들을 강력 배제하고 주변화시킨다. 이런 점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음모이론’(일부 집단이 세계 지배를 목적으로 밀실에 앉아 원격 조종)으로 설명하는 것은 ‘대세이론’(세계화는 발전을 위한 세계사적 필연이라고 보는 입장)과 꼭 마찬가지로 편협하다. 세계 변화의 과정은 보다 복합적인 변수들이 얽히고설킨 사회정치적 과정을 동반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 글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우리 삶의 문화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고찰하고자 한다. 물론 그러한 영향은 결코 일방적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세계 도처에서 무수한 저항과 대안의 시도들이 솟아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세계화’ 물결은 결코 종결되거나 이미 결정된 것이 아니라 여러 차원에서 한창 각축이 이뤄지는 사회적 과정으로 보는 것이 옳다.................
'풀뿌리운동 일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을 바꾸는 현장보고서"-오관영 (0) | 2007.06.04 |
---|---|
지역사회조직화(Community Organizing)의 실천사례에 관한 연구 (0) | 2007.06.04 |
지역운동에 관한 세상의 모든 지식!! - ‘(가)[지역운동포탈사이트]’가 뜬다!! (0) | 2007.06.04 |
왜 풀뿌리운동이 희망인가? (0) | 2007.05.15 |
울산시민연대 창립선언문 (0) | 2007.0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