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활동가와의 만남 ①
관악사회복지 이주희 간사와의 만남
이 호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1.
평상시에 내가 나이가 들었다든지 하는 생각을 하는 편은 아니지만, 언젠가부터 20대와 30대 초반의 젊은 활동가들과는 개인적 만남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이들과 내가 어느 정도의 공감대를 갖고 같은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졌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가장 대표적인 계기는 지난 해 이음에서 주관한 3년 내외 경력의 젊은 활동가들 교육에 참여한 것이었다. 당시 프로그램 중에 선배 활동가와의 만남이란 주제로 진행된 ‘3인3색 토크쇼’ 사회를 보았다.
참여자들은 내가 함께 활동해 본 경험이 별로 없는 젊은 활동가들이었고, 이들에게 뭔가 일상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 섭외한 이들은 참여자들과 나의 중간 정도 쯤에 위치한 나이와 활동경력의 활동가들이었다. 사회를 보면서 내가 교육에 참여한 활동가들에게 공감을 얻기 위해 던진 몇 가지 질문이 정작 당사자들에게는 매우 뜬금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 순간에 깨달았다. “아! 내가 이들과 일상적인 공감대가 많이 부족하구나” 한 마디로 이들을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명색이 이음은 풀뿌리운동을 지원하겠다고 설립되었다. 이러한 지원을 잘 하기 위해서는 가장 직접적으로 활동가들과 함께 호흡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음에서 상근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한창 의욕을 갖고 일하기 시작하는 젊은 활동가들에 대한 나의 무지는 결정적인 결함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올 해 들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 중의 하나가 이들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만나자고 연락한 사람은 관악사회복지에서 일하는 이주희 간사다. 이주희 간사를 처음 만나겠다고 생각한 것은 작년 연말에 있었던 관악사회복지의 한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여하면서 깊은 인상을 가졌기 때문이다. 당시 이주희 간사는 꽤 진행이 어려운 토론의 진행을 맡았었는데,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토론을 진행하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진행에 사용한 방식도 신선했다.
먼저, 관악사회복지 사무실에 전화를 해 이주희 간사의 전화번호를 알아낸 다음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여차저차 한 취지로 인터뷰를 좀 하고 싶으니 만나줄 수 있느냐는 부탁에 아주 흔쾌히 승낙을 해 주었다.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니, 자신도 최근에 선배와의 만남을 하면서 그런 부탁을 종종 했었고, 그럴 때마다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던 기억들이 있어서 그리했다고 한다. 사려도 깊다.
2.
요즘 20대와 30대 초반의 젊은 활동가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이주희 간사는 처음부터 사회운동을 하기 위해 관악사회복지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관악사회복지에 일종의 취직을 한 셈이다. 하지만 이주희 간사는 당당히 관악사회복지의 선배들로부터 스카웃 된 경우이다. 이미 그 자질을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이는 이주희 간사가 관악사회복지에서 청소년 시절부터 활동을 한 경험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악사회복지에는 ‘햇살’이라는 청소년 소모임이 운영되고 있다. 중학생이던 시절부터 이 햇살에 참여해 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햇살 모임에 참여했을 뿐 정작 관악사회복지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개념이 없었다고 한다. 다만, 햇살 활동을 하다가 사회복지가 공부하고 싶어 대학 입학할 때도 사회복지 전공을 선택했다.
그렇게 학교생활을 하던 중 관악사회복지 선배 활동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관악사회복지에서 일하자는 일종의 스카웃 제의였던 것이다. 당시 관악사회복지는 단체 내의 3개 소모임에 대해 그 모임 출신들이 모임을 주도하도록 하자는 결정을 했었다. 이주희 간사가 햇살 출신이니 관악사회복지에 와서 햇살을 주도적으로 운영하는 일을 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이었다.
당시 학교를 다니고 있던 관계로 상근은 힘들고 대신 반상근을 하기로 결정했다. 관악사회복지에서의 활동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 제안을 받았던 당시에도 관악사회복지, 지역운동, 풀뿌리운동 등에 대한 개념은 없었다고 한다. 그냥 후배들하고 일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 아르바이트 겸으로 시작했다. 이때가 2006년 말이었다. 그렇게 2년을 반상근 하고, 3년 전부터 정식 상근활동을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연배는 20대 중후반이지만, 활동경력은 꽤 되는 편이다. 관악사회복지 (반)상근 경력도 이미 5년차다. 그동안 이 일을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왜 없었겠는가? 그런데, 그럴 때마다 함께 모임을 하던 햇살 후배, 선배 등과의 관계에 대한 책임성 때문에 실제 그만두지는 못했다. 사람들이란 나이나 사회적 환경과 관계없이 공통점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회운동을 지속하는 가장 큰 계기와 힘은 역시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나온다는 공통점.
3.
이주희 간사가 관악사회복지에서 일하는 것은 졸업 후 자신의 직장으로 선택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사회복지를 전공한 다른 친구들이 사회복지 기관에 취직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관악사회복지는 직장으로서의 사회복지 기관으로는 월급이 매우 적은 편이다. 그래서 입사(?) 초기에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단다. 물론, 사회복지 기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의 임근 조건은 타직종에 비해 열악한 편이다. 하지만, 그래도 관악사회복지 같은 시민사회단체의 월급과 비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사회복지 기관에 취직한 친구들이 예쁜 옷 사 입고 하는 것이 좀 부럽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같은 사회복지 관련 일을 함에도 함께 재미있게 이야기 할 만한 공감대가 점점 사라져 갔다. 그래서 한 때는 친구들과 잘 만나지도 않았다고 한다.(이 대목에서 나와의 공감대는 더욱 커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관계를 모두 인정하고 다시 잘 만난다고 한다.(허걱, 이 대목에서는 나보다 낫다.)
관악사회복지를 직장으로 여기고 입사를 했으니, 이와 관련한 집안 갈등의 여지가 그만큼 없는 편이다. 오히려 부모님은 자기 전공 살려서 취직하는 모습을 보고 좋아했다고 한다. 그만큼 이주희 간사에게는 직장으로서의 관악사회복지와 사회운동으로서의 관악사회복지가 크게 구분되지 않는다. 관악사회복지는 사회운동의 기반이기는 하지만, 직장의 의미도 강하다. 일반적으로 볼 때, 이러한 입장은 때로 선배들과의 차이 또는 갈등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주희 간사도 이런 문제로 함께 일하는 선배와의 차이점을 느낀 적이 적지 않게 있었다.
관악사회복지가 직장이라는 관점으로 접근을 하면, 일하는 사람들의 복지는 직원들의 중요한 관심 사항 중 하나이다. 이주희 간사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상근 활동가들에게는 나름대로 주어진 연차 휴가일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함께 일하는 선배 중에서 주어진 연차를 다 사용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막내로서 이는 상당한 부담이다. 자기도 주어진 휴가일수를 다 채우는 것이 눈치 보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함께 일하는 선배가 자신의 휴식일에도 사무실에 나와 있고 저녁 늦게까지 퇴근하지 않으면, 후배 입장에서는 존경스럽다는 생각도 들겠지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나에게도 그런 선배가 있었기에 그 느낌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문제들을 느끼면서 이주희 간사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관악사회복지에서 노조를 만들어야겠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선배도 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상근자가 몇 명 되지 않는 곳에서 노조라니, 네가 핵심 간부인 사무국장과 그렇게 친한데 그게 되겠느냐 등등으로 가볍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심지어 노동운동경험이 많은, 사회적으로도 꽤 저명한 어떤 선배 활동가 강연회에서, 관악사회복지와 같은 시민사회단체에서도 일하는 사람들의 권익을 위해 노조를 만드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이 분에게서도 당위적으로는 동의하지만, 결국 다소 부정적인 말로 이야기를 끝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주희 간사에게는 그리 설득력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공익을 위한 활동, 특히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권익을 위해 노조를 만들겠다는 것이 옳은 일인지 그렇지 못한 일인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사회운동의 거점으로서 스스로 선택한 곳도 자신의 직장인 이상 최소한의 권익을 보장받기 위한 노력이 잘못되었다고만 할 수는 없다. 지금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투신을 강요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운동 경험이 많은 선배들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정이 아직은 사회운동 진영 내에서는 잘 체화(體化)되지 못한 면 역시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이주희 간사의 이러한 도발(?)이 사회운동을 하는 활동가로서의 자기 정체성이나 역할을 망각했기 때문은 아니다. 이주희 간사는 요즘 자신의 MP3에 민중가요를 다운받아서 듣는다. 관악사회복지에서 일하다보니 가끔 집회나 모임 등에서 민중가요를 부를 때가 있는데, 정작 자신은 그 노래들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은 선배들처럼 치열한 운동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대단한 결단을 해서 이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자신도 사회운동을 하고자 지금 이 자리에 있고, 그래서 그 운동을 잘 하고 싶다. 하지만 아직 그러한 경험이 일천하다보니 사회운동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민중가요도 잘 모른다. 그래서 일정한 경험과 공부도 필요하지만, 노래도 함께 부르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래서 MP3로 그러한 노래들을 듣는다고 한다.
나름, 선배들의 운동경험에 대한 배움의 자세가 적극적인 편이다. 이는 역으로, 앞서의 문제제기가 결코 사회운동의 대의를 훼손하는 것으로 연결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그래도 선배와 후배의 관계에서 후배들이 해야 할 가장 큰 미덕은 선배들의 관성에 과감히 도전하는 것이리라. 그런 도전을 또 어떤 점에서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무척 겸손하다. 아직은 선배들을 그냥 따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그래서 그런 건 후배의 미덕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설득을 하자, 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최근 관악사회복지가 적극적으로 결합・참여하고 있는 지역사회복지 네트워크에서는 복지예산을 분석하고 정책적 요구를 예산을 통해 제기하는 것에 힘쓰고 있다. 관악사회복지도 이 활동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이주희 간사가 그 실무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런데, 선배들은 이러한 활동을 지역 내 네트워크를 통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주희 간사는 그런 방식에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보다 자신은 청소년들이 직접 참여해서 자신들의 요구를 정책적으로 제안하는 사업에 대해 흥미를 갖고 있다.
실제, 그런 모범적인 활동사례를 만들기도 했다. 대충 들어보니 꽤 재미있고 모범적인 사례인 듯싶다. 작년 10월에 지역 내 관련 단체들과 함께 청소년 100여명이 참여하는 ‘청 100 토크’가 그것이다. 이 사업은 청소년들 100여명이 모여 자신들이 구의원에게 요청하고 싶은 것들을 도출한 후, 구의원들에게 해당 문제를 설명하고 이의 해결을 요청한 것이다. 이 과정을 이주희 간사가 주로 진행한 듯한데, 그러한 진행방식도 신선하고 재미있었을 뿐 아니라 청소년들이 직접 참여하여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도록 ‘마당’을 마련했다는 점이 더욱 감동적이다. 이주희 간사는 기존 시민운동가들과의 활동보다는 이러한 당사자 조직을 통한 일이 보다 재미있는 듯했다.
실상 지역에서의 활동은 지역의 다른 시민운동 단체나 시민운동가들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해야 할 일이 있고, 또한 당사자들의 참여와 목소리를 조직하는 일도 필요하다. 하지만, 활동가에 따라 보다 흥미를 끄는 일이 따로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선배들의 네트워크 활동에 대한 문제제기는 그 자체가 옳고 그르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 아니다. 다만, 개인적 활동 취향에 있어 선배들이 맡기고자 하는 활동방식보다는 자기가 따로 더 집중하고 싶은 활동방식이 있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그러한 선호조차도 신선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당사자들의 목소리와 참여를 직접 조직하는 일은 오히려 더 어렵고 더 많이 개발되어야 하는 기본적인 풀뿌리운동 활동방식이기 때문이다.
4.
풀뿌리운동 현장에서 만나볼 수 있는 활동가 중에 매우 어린 편에 속하는 이주희 간사지만, 그래도 관악사회복지에서 활동한 지는 벌써 5년 차에 들어섰다. 그러다보니 그 동안 어려움과 고민, 갈등들이 없진 않았을 것이다. 먼저 최근 자신의 활동을 돌아보면서 느끼는 점에 대한 아주 원론적인 고민을 들려주었다. 사회복지 단체에서 활동하다보니 자꾸 주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하는 자기 모습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그 때마다 “이건 아닌데, 내가 뭘 잘 못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곤 한단다.
굳이 사회복지 영역의 ‘서비스’와 관련하여 이야기하자면, 지역사회복지, 풀뿌리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스스로 서비스를 창출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아마, 그러한 교육을 귀가 따갑게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지역 현장에서 복지 관련 주제로 활동할 때에는 그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오히려 지속적으로 이주희 간사와 같은 고민을 하는 자세가 보다 중요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자신도 모르게 가시적 성과를 내려는 욕심을 갖고 있었는데, 앞으로는 천천히 느리게 가고 싶다고도 한다. 솔직히 이 말을 들을 때의 느낌을 말하면, 너무 교과서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그러한 관점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항시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좋았다.
구체적으로 한 번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 위기라 함은 적어도 자신이 해오던 일을 포기하려는 구체적 행동까지 나아간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위기는 자신이 일하는 단체 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잘 느끼지 못하면서 발생했다. 관악사회복지에는 잘 훈련된 활동가들이 있고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 역시 매우 민주적인 편이다. 그리고 이러한 운영틀이 잘 조직되어 있는 편이다. 하지만, 정작 그 단체의 막내인 이주희 간사에게는 그게 더 재미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틀 속에서 일을 하다 보니 자기 성과나 자기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도 힘들었다.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데...” 게다가 당시 외부의 지원을 받는 프로젝트 사업을 하면서 그에 따른 자잘한 실무 때문에 이런 생각이 더욱 커졌다고 한다. 자신이 운동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자신은 너무 실무에 매몰되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배들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떤 선배는 따로 만나 이야기 좀 하자고 하자 약속 시간에 술을 ‘잔뜩’ 마시고 비틀대며 오더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주희 간사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알기에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어 그리했단다. 아무튼 이 일로 인해 이주희 간사는 선배들로부터 3개월 간의 휴가를 ‘쟁취(?)’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선배의 소개로 인도에 3개월 간 있었다. 3개월 간 그렇게 떨어져 생활하다보니, 서서히 하고 싶은 일들도 생기고 그래서 다시 돌아와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때 선배들에게 자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아달라고 투정을 부린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이 때 선배도 후배들 때문에 상처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고 한다. 진짜 힘들 때 선배에게 투정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은 후배의 특권이다. 그리고 그 특권을 행사하도록 해 준 선배들 역시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5.
현재의 고민은 크게 세 가지 정도란다. 하나는 주민 출신의 활동가로서 운동성이 떨어지지 않고 싶고, 그래서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이주희 간사가 스스로를 주민 출신 활동가로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 그렇다. 이주희 간사는 특정한 목적을 갖고 관악구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관악구에서 자신의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그 인연으로 관악사회복지 소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인연으로 지금은 관악사회복지의 상근자로 일하고 있다.
주민 출신이라는 것이 어디 나이가 든 사람만을 의미하겠는가? 나 스스로도 인터뷰를 하면서 이 점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해당 지역의 청소년 출신 활동가, 주민 출신 활동가가 맞다. 나이 든 주민들과 생활상의 공감대를 넓게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최소한 그 지역 청소년, 청년들과의 일상적 공감대는 자연스럽게 넓게 가지고 있을 터이다.
두 번째 고민은 예산운동을 좀 더 제대로 하고 싶고, 그래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역시 추진력 있는 젊은이답게 그냥 고민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관련 공부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도 했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전공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인도에서 만난 이신행 교수를 찾아갔다. 이신행 교수는 ‘풀뿌리사회지기학교’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담을 통해 적절한 공부 커리귤럼을 전달 받고 사회지기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단다. 현장에서 배우는 것도 있지만, 학교 강의를 통해 학문적 기반을 닦을 수 있다는 바램과 함께...
세 번째 고민은 요즘 자신이 좀 건방져진 것 같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자기가 담당한 활동만 하다가 요즘은 지역을 보게 되고, 전국적 활동도 접하면서 어디 가면 자기가 아는 것도 이야기하는 등의 변화를 스스로 발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건방져 졌다고 표현할 수 있는가? 당연한 성장과정일 뿐인데. 그리고 스스로에게 그러한 변화의 모습을 볼 수 없다면, 또 어떻게 운동을 지속할 수 있겠는가? 자연스러운 현상을 괜히 걱정하는 것이라 한 마디 해 주었다. 하지만, 자신감 속에서도 겸손함을 잃지 않아야 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자세를 잃지 않으려는 태도는 항상 자기 성찰의 과제가 될 필요는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지속적인 성찰은 활동 경험이 짧은 활동가들에게만 필요한 덕목이 아니다. 오히려 활동 경험이 많은 이들에게 더욱 필요한 덕목일 수도 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꾸 고민과 갈등도 공적인 활동과 관련해 나오기에 매우 사적인 질문을 해보았다. 함께 대학에 다닌 친구들에 비해 월급이 적고, 특히 직장으로서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비추어보면 속상할 수도 있을 텐데...(물론, 앞에서 그러한 점을 지금은 극복했다고 이야기 하긴 했지만...) 그에 대해 이주희 간사는 똑부러지게 대답한다.
“비록 월급은 적지만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내가 막내라고, 활동경력이 적다고 무시하지 않고 항상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 의사와 상관없이 윗사람의 지시를 받아 일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왔고, 또 내가 힘들 때에는 3개월 간의 휴가도 받을 수 있었다. 이것은 모두 선배들이 나를 지지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망해도 내 뒤에는 관악사회복지라는 든든한 지지망이 있기 때문에 그리 치명적이지 않다. 다시 논의를 해서 시작하면 된다. 그리고 가시적 성과에도 그리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 원래 성격이 무언가를 주도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일반 사무실에 취직했으면 그게 더 힘들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음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이음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고 가끔 관심 있는 주제의 토론회나 워크숍 등을 하는 곳이라는 정도로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무슨 일이 있을 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 곳"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음이 아직은 조직적 관계망보다는 인적 관계망에 의존해 활동해오고 있으며, 따라서 새롭게 활동을 시작한 이들에게는 이음이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조직이 아니라는 이음 운영위원들의 평가가 정확하다는 것이 입증되는 발언이다. 어떻게 하면 이음이 보다 많은 활동가들과도 보다 친밀한 관계를 맺는 조직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여전한 숙제로 남았다.
인터뷰를 마친 후 이주희 간사에게서 이메일이 날아왔다. 내가 요청한 자료를 보내주는 이메일이었는데, 나와 인터뷰 한 것이 자기에게도 좋았다고 한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답신을 보냈다. “아무 부담 없이 연락할 수 있는 선배가 될 수 있다면 나 또한 영광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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