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내가 제일 관대하고 너그러울 줄 알았다. 그러나 결혼하고 사소한 것에 속 좁은 내 모습을 보게 된다.”고 했던 어떤 선배. “그런 속 좁은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더 화가 난다.”고 했던 또 어떤 선배.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내 주변 남편들이 모두 느끼는 ‘결혼하고 달라진 내 모습’이다. 아니, 달라진 것이 아니리라. 어려서부터 솔직한 자기 감정표현에 익숙치 않은 일반적인 남자들이 결혼하고 드러난 본색이 아닐까 싶다.
오늘도 난 삐쳤다. 애써 삐친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했으나, 아내가 대뜸, 삐쳤냐? 한다. 그러나 삐쳤다고 인정하지 못한다. 그러는 아내를 보며, 안 삐쳤는데 왜 삐쳤다고 하냐며 외려 화를 낸다. 아내는 못이기는 척 넘어간다. 그러나 난 여전히 삐쳐 있고, 그런 내 모습에 화가 난다. 이때, 만약 딸아이가 내 신경을 건드린다면, 모든 화살은 딸아이에게 간다. 왜 양치 하랬더니 안 해!! 왜 아빠 말 안 들어? 아내는 거 보란 듯이 쯧쯧쯧 한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 난 더 화난다. 아무 것도 아닌데, 그냥 넘어가도 되는데, 원래 내 모습이 이런 걸까? 하면서.........
어느 날 장모님이 그러신다. “자네는 왜 치약을 가운데부터 짜는가?”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을 난 이렇게 말한다. “애 엄마가 그랬나 봐요.” 했더니, “다음부터 밑에서부터 짜라고!” 장모님은 내가 가운데서부터 짠다고 철석같이 믿으신다. 나는 또 삐친다. 장모님께는 삐칠 수 없다. 애꿎은 아내에게 삐친다. 뭔가 낌새를 알아차린 아내는 묻는다. “왜 또 그래?” 왜 또 그래!~~~ 이 말에 난 더 화가 난다. 내가 언제 또 그랬어? 삐침은 삐침을 낳고 더 깊은 삐침 속으로 들어간다..........
슬픈 내용의 TV나 영화를 보면 딸아이는 운다.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마치 자기 자신에게 벌어진 일 인양 엉~~엉 운다. 그 옆에 있던 나는 이성적으로 말한다. 다빈아! 저건 단지 영화일 뿐이야! 바보 같이 왜 울어? 한다. 기쁠 때, 나는 기쁜 마음을 애써 숨기려 하지만, 딸아이는 앗싸~~ 하고 외치거나 큰 소리로 웃는다. 확실히 남자는, 아니 나는 감정을 드러내는 대뇌의 기능을 억제시키도록 교육받아 왔다. 과하게 말하면, 본질을 숨기고 허구적인 삶을 살라고 교육받아 왔던 것 같다.
남자가 더 관대하고 너그러울 거라는 속설은 파기되어야 한다. 최소한 나에겐 그렇다. 속에 담아 둔 서운함을 한꺼번에 내뱉는 아내를 나무랄 것이 아니라, 나도 삐칠 수 있고 삐친 것을 내뱉어야 한다. 슬플 때 울어야 하고 기쁠 때 더 크게 즐거워해야 한다. 감정에 솔직해야 한다. 그러나.........그게 잘 안 된다. 이 글을 읽는 다른 남편들은 어떠신가? 나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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