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운동에서 나름 훌륭한 리더로서 성장한 분들은 대체 어떤 고민과 어려움을 겪어왔고, 또 어떤 과정을 통해 오늘에 이르렀으며, 지금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하는 것들은 많은 사람들, 특히 풀뿌리운동을 하는 이들은 참 알고 싶은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녹색마을사람들(전, 녹색삶)에서는 오늘(4월22일) 풀뿌리운동에서 건장한 지도자로 성장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네 분을 모시고, 그 동안의 고민과 과정 또 지금의 고민 등에 대해 수다 떠는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 수다는 사실 5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이번의 수다는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후의 내용에 대한 수다라 할 수 있습니다. 참석한 사람들과 함께 웃고 공감하며, 때론 가슴 찡함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자리였던 관계로 참석자로서의 느낌을 간략히 여기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맨 처음 물꼬를 트신 인미화 씨는 녹색삶 초창기부터 활동하다 동탄으로 이사한 후 그 곳에서 다시 주민들과 함께 여러 일들을 하고 계십니다. 신도시라는 이름으로 달랑 아파트들만 있는 곳에서 몇몇 주민들과 함께 뜻을 이뤄 인문학 강좌로부터 활동을 시작하셨는데, 어려운 일들이 닥칠 때마다 녹색삶에서 '맨 땅에 헤딩'하며 성과를 거두었던 경험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인미화 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기껏 함께 일 할만 하면 다른 곳으로 이사가고 만다'는 풀뿌리운동 활동가들의 불만이 떠올랐습니다. 도시의 정주성이 약해 풀뿌리운동이 뿌리 내리기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미화씨의 사례에서 처럼 이는 그 역량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민들체 꽃씨가 사방에 퍼져나가 그 곳에 새로이 꽃을 피우는 것과 같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즉, 우리의 활동과 영향력이 주변으로 확장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두 번째로 수다를 시작하신 분은 현재 어린이 도서연구회 교육국장으로 계시는 남경화 씨로, 이 분은 광명지역에서 동화읽는 어른모임을 주도적으로 운영하셨던 분입니다. 동화읽는 어른 모임의 경우 자녀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모임에도 나오지 않는 문제가 심각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경화씨는 그 이후의 전망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강사활동에 대한 교육을 받고 다른 회원들고 지속적으로 그 활동을 함으로써 스쳐 지나가는 활동의 한계를 극복한 사례를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세 번째 수다 주자인 초록나라 도서관의 이순임씨는 5년 전에 왜 풀뿌리운동을 해야 하지, 내가 왜 지도자인가 등의 매우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더랬습니다. 그 후 5년 동안 그 답을 찾기 위해 무진 노력했지만, 아직 그 답을 찾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명확한 해답을 찾지 못했지만, 그 동안의 힘겨운 과정을 거치며 자신과 자신의 활동을 통해 자신이 성장하고 행복해지는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매우 생생한 풀뿌리 지도자의 성장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수다 주자로 나선 김미선 전 녹색마을사람들 대표는 스스로 지도자로서의 정체성과 역할을 하게 된 과정을 제한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담담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래도 충분히 다 수다를 떨지 못한 듯 아쉬워 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라고 하는 것이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것이었고, 그 관계 속에서 자신의 역할과 위상이 조직 내에서 점점 더 커지는 과정으로 이끌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분들이 직접 쓴 수다 원고를 소개하면 더 좋을 듯 싶은데, 예의상 그것은 제 블로그에 올리기보다는 녹색삶에서 직접 얻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하지만,
아래의 글은 제가 이 네 분의 수다에 대해 몇 가지 시사점을 정리하여 이날 지정 토론자로 발표한 원고입니다.
풀뿌리 지도자들의 성장기 토론문
이 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저는 우리 사회가 보다 행복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변화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우리 사회를 의도적으로 일정한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는 사회운동, 시민운동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이러한 노력들을 하고 있습니다. 제도를 통해 변화를 유인하려는 노력, 우리 사회의 관행과 관습을 바꾸려는 노력, 시민들의 직접 참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다양한 노력 등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일상적 삶을 변화시키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가장 근본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일상적 삶을 변화시킨다고 하는 것은 매우 총체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본성에서부터 단순히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삶의 행태까지가 다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한 형태는 분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모두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게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삶의 행태를 바꾸는 것으로부터도 자신의 삶의 본질에 일정 정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드러난 자신의 행태를 바꾸는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변화시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변화된 관계는 곧 자신의 본질적 삶의 문제를 돌아보게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때로는 매우 의도된 노력을 통해서 일어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러한 과정이 비교적 원만히 일어나느냐의 여부는 자기 자신에 대해 솔직히 대면하는 과정의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다고 봅니다.
결국, 사회의 변화는 자신과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의 변화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풀뿌리 지도자들의 성장기는 외형적 활동으로부터 시작하여 관계의 변화를 만들어 내고, 그러한 변화가 다시 자기 자신의 본질적 삶의 변화로 다가서는 과정을 통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변화’가 아닌 ‘풀뿌리 지도자들의 성장기’라 함은 그러한 변화가 단지 개인에게 국한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일정 정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지도자’라는 용어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풀뿌리운동은 바로 이러한 변화를 통해 보다 많은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삶의 영향을 다른 사람들에게 미침으로써, 다른 사람들 역시 자신과 비슷한 변화를 겪도록 자극함으로써 사회의 변화를 이루겠다는 운동에 다름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발표자로 나선 네 분의 이야기는 그러한 과정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앞서 네 분의 성장기에 대해 적절한 코멘트를 할 자격이 있지 못 합니다. 이 분들의 경험을 읽고 듣고 배울 따름입니다. 다만, 네 분들의 발표 내용을 통해 생각나는 몇 가지 시사점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관계를 통한 감동과 배움이 미친 영향을 잘 알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절대로 자기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큰 변화를 경험하기 힘듭니다. 물론, 길고 치열한 자기 자신의 수련 속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가능할 수 있겠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그것은 지루하고 견디기 힘듭니다. 하지만, 일상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감동을 느끼고 배움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관계의 긴밀성이 더욱 강화되는 과정뿐만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변화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둘째, 우리가 무엇을 하려 했고 또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하는,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 속에 자신이 보다 단련된 지도자로서 발전하고 있다는 점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관성은 가장 무서운 적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사회운동, 시민운동을 하는 이들에게 이러한 관성을 너무 자주 쉽게 발견하곤 합니다. 그래서 신용복 선생의 ‘처음처럼’(소주 이름이기도 하지만, 이도 신용복 선생의 사상과 글을 인용한 것입니다)이라는 화두가 항상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셋째는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삶의 기쁨과 행복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사실, 지역사회의 변화를 위해 앞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에게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전쟁터와 같을 수 있습니다. ‘죽을 것 같은 어려움, 막막함’ 등이 하루하루를 어떻게 버텨야 할지, 내일 또 다시 이곳에 이 모습으로 자리해야 할 일이 무척 답답하기도 합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먼저 접근하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 무언가를 항상 결정하도록 강요받는 것도 무척 곤혹스럽습니다. 또 관계를 넓히려 애쓰다보니 사람들은 자신을 오해하기도 하고, 그런 오해가 자신에게 지우기 힘든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소소하게 부딪히는 문제도 우리를 어렵게 합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도 큰 어려움 중 하나입니다. 평생을 함께 산 배우자와도 크게 싸울 때가 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과 항상 좋은 관계만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함께 사는 배우자야 한 번 크게 싸워도 이런 저런 복합적인 관계로 인해 원만히 해결되거나 잊고 지낼 수가 있지만, 맘 한 번 먹으면 평생 안 보고 지낼 수도 있는 동료들과는 맘껏 싸우는 것 자체도 쉽지 않습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오랜 시간을 시달리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살기 좋은 사회’라는 거창한 명분만으로는 견디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자기 맘 같은 사람’ 한 명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 관계는 보다 넓어지고 깊어지게 됩니다. 그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그것이 항상 어려움만이 아니라, 우리 삶의 행복한 요소들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 내공의 깊이는 헤아릴 수 없이 깊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네 분의 이야기 속에서 그러한 경험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바라기는, 이러한 과정이 혼자만의 외로운 여정 속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런 자리가 갖는 의미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넷째, 앞서 사회운동은 ‘의도적’ 방향을 실현하기 위한 삶이자 활동이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과 맺는 관계도 초기에는 그렇게 의도적으로 이루어지곤 합니다. 가급적이면 자신의 의도를 숨기고 상대방에게 접근합니다. 하지만, ‘감추인 것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주변의 사람들이 어리숙해 보이지만 각각은 나름대로 삶의 경험이 몇 십년에 이르는 사람들입니다. 의도한 접근이 성공하는 경우도 그 의도가 상대방의 이해와도 맞아 떨어질 때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관계는 그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순간 단절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초기에는 의도된 관계설정으로 시작한다 하여도, 그 관계가 진전됨에 따라 솔직한 자기 모습을 주위의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이야기는 젊은 시절 지역사회 활동을 하면서 맺었던 관계가 왜 순간에 불과했는지를 저에게 잘 보여줍니다. 문제는 관계의 증진이 상호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순간을 경험했느냐 하는 것이라 보여지는데, 그런 점에서 앞서의 네 분 이야기는 개인적으로도 제 젊은 날(?)의 경험이 가지는 한계가 무엇이었는지 잘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많은 풀뿌리 운동을 하는 이들에게도 충분한 귀감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다섯째, 굳이 네 분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역량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 권한, 책임만큼 커지고 강화됩니다. 저도 그래왔고, 보통의 사람들은 모두 이러한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리고 앞서 네 분의 발표문에서도 그러한 점은 잘 나타납니다. 그런데, 지도자라고 하는 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자기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일정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그런 점에서 풀뿌리 지도자들의 성장기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앞으로의 방향에 있어 여러분이 겪었던 그러한 성장의 과정이 마찬가지로 주변 사람들에게도 나타날 수 있도록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것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한 데에는 여러분들이 겪었던 그 어려움과 그 속에서 느꼈던 삶의 기쁨과 보람의 경험이 매우 큰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도력도 물과 마찬가지로 고여 있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물처럼 흘러가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지나간 자리에 신선한 다른 물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할 때 물은 그 깨끗함과 신선함을 유지한 채 바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여섯째, 좀 의도적이고 인위적인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앞서, 지도력도 물과 같이 흘러서 바다로 가야한다고 말씀드렸듯이, 원래 있던 그 자리에 새로이 물이 흘러들어오도록 하는 관심과 더불어 그 자리에 있던 물들이 바다로 잘 나아가도록 하는 것도 우리의 관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러한 풀뿌리 지도자의 성장은 우리 사회에 있어 매우 귀중한 자산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저 같은 입장에서는 이 분들의 경험과 역량이 하류도 흘러가면서 어떻게 자신이 지나가는 곳의 물을 변화시키면서 바다로 잘 흘러갈 것인가 하는 것에도 관심이 큽니다. 그런 점에서 지역사회 나름의 또는 그러한 지역사회를 넘어서는 풀뿌리 지도자들의 네트워크에 대한 고민과 생각이 충만해 지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네트워크가 필요한 이유는 꾸준히 성장하는 지도력을 한 단체에만 묶어두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지도력의 성장과 더불어 그 분들에게는 또 다른 그 나름의 역량에 맞는 새로운 역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것은 바다로 향해 흐르는 물줄기와 같이 지금 있는 자리는 뒤를 이어오는 물줄기에 자리를 내주고 항상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역할들이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힘든 과정이 아니라 흐르는 물과 같이 자연스러운 과정이 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야기 하는 지도력의 끊임없는 흐름과 성장의 과정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러한 과정에 있어서 풀뿌리 지도자들이 속해 있는 조직이나 단체가 이 일을 자신의 과제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민 지도자가 겪는 어려움과 왜 이 운동을 지속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들과 관련하여 이들이 소속된 단체나 조직은 자신의 문제로 이를 인식하고 공동모색을 시도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이는 조직활동임에도 개인이 혼자 헤쳐나가야 할 과제로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개인과 사회를 성장시키는 단체의 중요한 자기 과제를 소홀히 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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