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 성 : 김현(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인터뷰 : 김소현(미래를 여는 아이들)
인큐베이팅 운동으로 잘 알려진 천안의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 바로 이곳에서 잉태된 단체가 ‘미래를 여는 아이들’이다. ‘미래를 여는 아이들’의 창립 과정을 들여다보면 인큐베이팅 운동의 프로세스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자, 그 과정을 잠시 들여다보자.
IMF가 터지고 가난한 사람들이 더 가난해졌던 지난 1998년. 밥을 굶은 아이들이 더 많이 늘어났던 시기였다. 소위 말하는 결식아동. 정부의 정의에 따르면 결식아동은 “1일 1회 이상 끼니를 거르는 18세 이만의 학령 전 및 학령기 아동”을 의미한다. 이러한 결식아동이, 당시 교육부의 통계를 보면, 1998년 12월 현재, 결식아동이 131,000여명이었던 것이, 불과 3개월만인 1999년 3월에는 151,000여명으로 15.2%나 증가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물론, 통계에 잡히지 않는 아이들은 더 많았으리라. IMF는 어른들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고통스러운 경험이었다.
학기 중에는 그나마 급식에 기댈 수 있었으나 방학 중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래서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은 방학을 이용해 이러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보호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다. 밥이라도 할 술 떠먹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렇게 방학 때마다 5회가 진행되었고 매 번 개최될 때마다 100여 명의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저소득층에겐 절실한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한식적인 프로그램으로 결식아동 문제를 접근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지역사회도 상설적인 센터가 필요하다는 요청이 있었다. 그래서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은 타 지역의 사례를 조사하고 내부 논의를 거쳐 ‘햇살 가득 파랑새 공부방’이라는 방과후 프로그램을 상설화하게 된다. 교회 공간을 빌려서 진행했고, 1명의 교사를 채용했다. 그 당시는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과 비슷한 문제의식을 지닌 종교단체나 대학생들이 개별적으로 공부방을 열기도 했는데, 이러한 시설들을 모아 연합회를 만들게 된다. 그렇게 연대활동을 펼치면서 많은 실무력이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으로 쏠리게 된다.
이렇게 활동이 커지면서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은 다소 버거움을 느끼게 된다. 아동 분야를 전문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지세상을 열어가는 시민모임’은 기존 공부방 활동의 경험을 지닌 실무자들을 중심으로 별도의 아동복지운동 단체를 독립시키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지금의 ‘미래를 여는 아이들’(2003년 3월 창립)이다.
어떤 활동이 필요하다고 해서 즉각적으로 인큐베이팅 되는 것은 아니다. ‘미래를 여는 아이들’의 창립 과정을 잠시 들여다보았듯이, 역량이 축적되고 경험이 쌓였을 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인큐베이팅은 오랜 시간이 필요한 활동이다. ‘미래를 여는 아이들’을 비롯해 ‘충남여성장애인연대’, ‘충남장애인부모회’, 그리고 ‘느티나무’ 등이 오랜 시간을 들여 인큐베이팅된 단체들이다.
‘미래를 여는 아이들’은 아이들을 지원할 수 있는 자원을 지역사회에서 발굴하고 엮는 일, 즉 네트워크를 주요 활동으로 삼는다. 지역아동센터에 대한 법적 지원이 합법화된 후, ‘햇살가득 파랑새 방과후 교실’은 ‘햇살가득 파랑새 지역아동센터’(이하 ‘햇살가득’)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햇살가득’뿐만 아니라 여러 동네에서 지역아동센터가 상당히 늘어나게 되었는데, 센터들끼리도 정보교류나 연대활동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러한 공동의 인식이 자리잡을 즈음, ‘미래를 여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지역아동센터 연합회’가 결성되게 된다. 지금은 하나의 독립된 조직으로 활동하고 있다. 행정적인 일처리, 실무자 교육, 어린이 캠프 등이 연합회가 하는 주요한 역할이다. 현재 천안시 전체 39개 지역아동센터 중, 26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지역아동센터 연합회’는 ‘미래를 여는 아이들’이 전개하는 네트워크 활동의 전형적인 과정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정부가 2003년부터 시범적으로 야심차게 시작한 교육복지투자우선지역 지원 사업이 확대되면서 학교만을 지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지방자치단체와 복지기관, 교육청과 학교, 그리고 시민사회단체가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저소득 아동들을 지원하게 되면서 체계적인 지원이 가능하게 되었다. 부족하지만, 이 사업이 추진되면서 위기 아이들을 위한 지원망 구축을 ‘미래를 여는 아이들’은 매우 공격적으로 접근하였고, 안정적인 네트워크 구성에 힘을 쏟았다. 또한 자라나는 아이들의 성장주기에 맞춰 건강하게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도록 청소년 지원활동을 펴왔는데, 이러한 성과로 ‘유스보이스 센터’를 개원하게 된다.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끊임없이 지역사회 다양한 그룹을 넘나들며 자원을 발굴하고 엮어내는 일, 이것이 바로 ‘미래를 여는 아이들’의 핵심 활동이다.
몇 가지 구체적인 활동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햇살가득’에 찾아오는 아이들은 33명 정도다. 상근 교사는 2명이 배치되어 있고 반상근 교사는 1명이다. 밥을 챙겨주시는 급식 선생도 있다. ‘미래를 여는 아이들’의 김소현 국장은 최소한 상근자 3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일을 하다 보니 상근자 3명이 필요하더라고요. 왜냐하면 여기에 찾아오는 아이들은 일반 가정의 아이들이 아니기 때문에 늘 사소한 문제가 발생해요. 어느 날 아이가 가출을 하게 되면 상근자 2명 중, 한 명의 교사가 그 아이를 찾으러 가야 하거든요. 나머지 한 분이 센터에 남아서 30명이 넘는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어요. 아동복지교사가 1명이 충원되면 상황은 상당히 달라질 겁니다.”
‘햇살가득’은 정부로부터 매달 240만원을 지원받는다. 다른 시설에 비해 지원받는 금액이 다소 높다. 그 이유는 천안시가 차등지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등지원을 실시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의무사항은 아니다. 지역의 조건을 감안하여 판단할 문제다. 보건복지부 지침에는 아동 인원수, 시설 규모 등이 기준이지만, 지방자치단체별로 조금씩 기준의 차이를 둘 수 있다. ‘햇살가득’은 여러 조건이 충족되어 가장 많은 지원금을 받는 시설이다.
“차등지원은 여러 문제점을 가지고 있죠. 그러나 지역아동센터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아요. 행정부 입장에서는 서류를 중심에 놓고 보거든요. 그러나 잘 아시겠지만 서류만으로 드러나지 않는 게 많잖아요. 직접 방문이 가장 좋은 평가 방법인 것 같아요. 그러나 행정부는 현실적으로 직접방문이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http://www.jckh.org/wizhome/menu_44.html)에 따르면 2008년 12월 현재 지역아동센터는 전국에 3013개소에 이른다. 시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면서 ‘잘 운영 하는 곳’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가 지역아동센터 관계자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취지는 모두 좋으나 실재적인 운영 양상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더러 일반 학원처럼 운영하는 곳이 있다거나 지원금을 다른 곳에 유용하는 사례도 있어 비판의 화살을 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잘 운영하는 곳’은 어떤 조건을 충족해야 할까?
“물론 정답을 제시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이들을 단순히 호보만 하는 것은 센터 본연의 역할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아이를 둘러싼 가정의 상황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즉, 아이의 보호자들이 아이에게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모든 가정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폭력적인 아이들은 보호자로부터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거든요. 그래서 센터는 보호자를 자주 만나야 하고 더불어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을 높여주어야 한다는 거죠. 저는 이 부분이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위기 아동의 경우, 보호자를 안 만나면 아이들이 센터에 잘 나오지 않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런데 서류만으로 확인할 경우엔 이런 현실이 서류상에 반영되진 않거든요. 경험적으로 봤을 때 아이가 센터를 잘 이용하느냐 안 하느냐는 보호자와 긴밀한 상담이 영향을 주더라고요. 보호자를 만나서 센터가 어떤 곳인지 명확히 알려주는 일은 보호자들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핵심인 요소가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서류상에 이런 내용을 잡기가 무척 어렵죠.”
김소현 국장의 요지는 아이들만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것만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결국 그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보호자들에게 지역아동센터의 역할을 제대로 알려내고 아이를 보호하는데 함께 동참해줄 것을 호소함으로써, 센터와 가정이 ‘더불어 아이를 키우는 공동운명체’임을 인식시키는 시설이 ‘좋은 시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과정은 보호자를 위한 학습의 과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서류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김소현 국장이 행정부에게 현장방문을 요청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이들의 내면과 소통하고, 보호자들을 지속적으로 만나게 되면 빈곤 아동들이 처한 복합적인 상황을 이해하는데 무척 도움이 된다. ‘미래를 여는 아이들’이 ‘그룹홈’을 운영하게 된 이유도 이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의 가정 형편은 제각각 다를 수밖에 없는데, 완전히 해체된 가정의 아이들은 지역아동센터보다 더 밀착된 보호를 필요로 한다. 이런 판단에서 ‘미래를 여는 아이들’은 ‘그룹홈’도 운영하고 있다.
‘그룹홈’은 잘 알려진 대로 “가정해체, 방임, 학대, 빈곤, 유기 등의 이유로 보호가 필요한 아동에게 가정과 같은 주거 환경에서 아동의 개별적인 특성에 맞추어 보호 양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규모 아동보호시설”이다. 고아원과 같은 보통의 아동 양육시설은 많게는 수백 명 단위의 아이들이 머물기 일쑨데, 속된 말로 하숙집과 큰 차이가 없다. 부모와 같은 심정으로 개별화된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 교사들도 출퇴근의 개념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들과의 밀착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그룹홈’은 소규모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가정’과도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10명 이하의 아이들이 가정집에서 생활교사 1인과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 ‘그룹홈’의 형태다. ‘미래를 여는 아이들’이 운영하는 ‘그룹홈’은 6명의 아이들이 생활한다. 1명의 여성 생활교사가 아이들과 먹고 자고 싸우기도 하고 보듬기도 한다. 온전하게 아이들과 함께 호흡한다. 아이들은 생활교사를 ‘이모’라고 부른다. 한 톨의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가족 관계 이상이다.
“빈곤 아이들을 만나다보니 지역아동센터가 필요했듯이, 그 아이들 중에 완전히 해체하다시피 한 가정을 보게 되었던 거죠. 그래서 그 아이들이 머물 수 있는 곳이 필요했어요. 부모들이 돌볼 수 없는 아이들, 또는 지속적으로 학대받는 아이들을 따로 보호할 필요가 있었죠. 그룹홈에 있는 아이들은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에요.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다양해요. 이 아이들이 자립할 때까지 함께 하는 구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이 ‘그룹홈’을 지키는 생활교사는 사회복지사이고 미혼이고 여성이다. 개인적인 사명이 없으면 버티기 힘든 조건임을 잘 알기에 김소현 국장은 참 고맙게 생각한다. 아이들에게도 복된 일이다. 아이가 ‘그룹홈’에 들어오면 상담치료를 받아야 한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내면화된 폭력성을 치료받기 위해서다. 정서적인 지원, 혹은 상담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면서 터득하게 노하우다. 마침 남서울대 아동가족상담센터의 소장이 ‘미래를 여는 아이들’의 이사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이곳에서 도움을 받곤 한다. 김소현 국장에 의하면, 학대받은 경험이 더 어릴수록 아이들이 변화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고 한다. 통상 3년이 지나야 한다고 하니, 정서적 치료의 어려움을 이해할만하다.
만 6년 간 ‘미래를 여는 아이들’은 ‘아동복지 저변 확대’라는 활동의 기조를 충실히 실천해왔다. 아동 지지망 구축과 네트워크, 아동가정과 아동정서 지원이라는 방향 아래, 지역아동센터, 그룹홈, 작은 도서관, 유스보이스센터 등이 ‘미래를 여는 아이들’이 만들어낸 구체적인 성과물들이다. 그러나 김소현 국장은 이제 조금 발걸음을 띄었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누려야 할 권리를 얼마나 실현시켰는가를 놓고 보면 아직 협소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드물지만, 온전하게 아이들의 권리와 복지를 걱정하는 개인과 조직이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런 일이다. 끝으로, ‘미래를 여는 아이들’의 국장으로서 김소현 씨의 꿈을 들어보자.
“저는 ‘미래를 여는 아이들’이 아이들이 필요한 욕구와 문제에 대해서 정말 잘 알고, 실천할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어요. 이러한 바람은 ‘모든 아이들이 행복해져야 한다’는 우리 단체의 다소 막연한 목적을 실천하는 길이 아닌가 싶어요. 이 지역의 아동복지를 함께 하는 많은 사람들이 더불어 성장하면서 관심을 갖는 그런 틀이 마련되었으면 좋겠어요.”
'풀뿌리운동사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풀뿌리운동 사례] 다음을 생각하는 사람들① (0) | 2009.06.17 |
---|---|
"서울 동네운동 이야기"-다 같이 돌자 동네 한바퀴 - 박신연숙 (0) | 2009.05.27 |
[일본 풀뿌리운동 사례] 세자키 마을만들기 시민회의 (0) | 2009.03.26 |
[풀뿌리운동사례]반지하방에서 살아가는 아이들 - 인천 청학동 늘푸른 교실 (0) | 2009.03.13 |
아이들이 어른을 키운다!- 맑은내 방과후 학교 (1) | 2009.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