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05년 2월21일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홈페이지에 게시된 나일경 박사의 연재 글 중 10회째 글을 옮긴 것입니다.



생활자 정치와 연동하는 公과 私와 共의 긴장

나일경


생활자 정치의 목표는, ‘국가통치형 정치’, 즉 시민을 수직적으로 통합하는 국가에 의한 통치행위의 영향력에 대항할 수 있는 시민자치형의 생활자ㆍ시민을 길러내는 것에 있다. 요코다 카쓰미는 또 다른 저서에서 생활세계에서 그러한 시민을 길러내고 등장시키기 위해서는, 공(公)과 공(共)과 사(私)라고 하는 세 개의 개념을 사회를 구성하는 영역개념으로서 일단 분리시킨 뒤, 이 세 영역들간의 상호관계를 다시 한 번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고 논하고 있다.(요코다 카쓰미(横田克巳)『オルタナティブ市民社会宣言ーもうひとつの「社会」主義』현대의 이론사, 1989년, 122-124쪽을 참조)
 
 일본에서 공(公)과 사(私)의 관계는, 공(公)적인 것의 주체는 국가 및 관료이며, 반면 사(私)적인 것의 주체는 개인이며 서민이라고 하는 맥락에서 논의되는 것이 보통이다. 국가통치형 정치를 기반으로 삼고 있는 공권력은, 지난 백여 년 간 시장경제가 확대됨에 따라서 국가의 재정을 비대화시켜서 복지를 통해 ‘공공영역’(公共領域)을 만드는 사업과 투자를 확대해왔다. 미증유의 생산력의 발전은 거대한 사회자본의 투자를 지속적으로 가능하게 만들고, 그 결과 공권력은 무소불위의 힘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일본에서, 공권력(公権力)=정부ㆍ행정에 의해서 ‘공영역’(共領域: 시민들간의 상호교류가 이루어지는 시민사회의 영역)이 만들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착각은 이와 같은 근대화의 과정을 반영하고 있다. 바꿔 말하자면, 일반 국민들에게 시민으로서의 나(私)하고 하는 주체성은 공(共)영역과는 관계가 없는 개념으로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공(公)과 공(共)이 분리하기 어려운 관계로 맺어져 있다고 할지라도, 본래 공(公)과 공(共)을 형성하는 조건과 방법은 상이한 것이다. 공(共)영역은 사람들이 세금을 지불해서 사회를 개혁하는 틀과 자신들이 직접 자신들의 자원을 내서 리스크를 부담하는 가운데 사회를 개혁하는 틀이 함께 작동하는 곳이다. 따라서 풀뿌리 공동체 운동과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은 공공제도, 공공정책, 공공영역 등의 표현에서 쓰여지는 ‘공공’(公共)이라는 개념을 공(公), 공(共), 그리고 시민(私)으로 일단 분리한 뒤, 공공개념의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 자신들이 전개하는 정치활동의 의미를 규정할 필요가 있다.

 공공(公共)을 함께 붙여서 사용하게 되면, 공권력(公権力)이 운영의 주체가 되는 공영역(共領域)과 공권력에 복종하는 시민적 공영역(共領域)의 세계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시민(私)이 운영하고 시민이 만들어 내는 공(共)적인 세계가 지니는 공공성(公共性)의 의미가 정부와 행정이 만들어 내는 공공성의 그늘 뒤로 가려져 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생활클럽 운동은 공영역(共領域)에서 ‘국가가 만드는 공공성’을 후퇴시키고 ‘시민이 만드는 공공성’을 확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시민자치형 정치’의 조건이 되는 문화적 자원과 정치적 자원은 시민들이 공(共)영역에서 만들어 내는 시민적 공공성을 통해서만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시민자치형 정치’란 “‘‘나(私)와 다른 타자(私)를 수평적으로 연대하고 공생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공영역(共領域)을 형성하는 과정 속에서 ‘공’(公)(public: 공공제도, 공공정책, 그리고 공권력)을 만든다, 혹은 그러한 공영역(共領域)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공’(공공제도, 공공정책, 그리고 공권력)을 사용한다”고 하는 의미에서 공화형(共和型) 정치의 문맥을 전제로 하는 정치라고 볼 수 있다.(마쓰시타 케이이치(松下圭一)『日本の自治と分権』1996, 岩波新書, 132쪽을 참조).

 국가통치형 정치와 시민자치형 정치간의 대립이라는 생활자 정치의 참가형 정치의 문제설정은 일본의 정치문화를 구성하는 공(公)과 공(共)과 사(私) 사이의 위와 같은 긴장 관계를 수반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자면, 생활클럽운동의 생활자 정치와 참가형 정치는 시민(私)이 공영역(共領域)을 만들고 바꾸는 정치운동이라고도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시민과 공영역(私와 共領域)을 통해 새로운 공(公), 즉 시민자치형의 공공제도와 공공정책과 정치권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 생활자 정치이며 참가형 정치인 것이다. 즉 공ㆍ공(公ㆍ共)에 대치되는 사ㆍ공(私ㆍ共)의 영역을 사회에 넓혀서, 정부가 만드는 공공영역과 시민이 만드는 공공영역이 힘의 균형을 이루게 함과 동시에 이 두 영역이 만들어 내는 가치가 선순환 관계를 통해 확대 재생산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다.(요코다 카쓰미(横田克巳)『다 그런거지 하는 가운데 실천하는 올터너티브』가나가와 네트워크 운동, 1998년, 35쪽을 참조)

 시민이 만드는 공공성이 공영역(共領域)에서 성립할 때, 거기서 정부는 ‘통치의 주체’가 아니라 ‘시민자치의 도구’로서의 성격을 지니게 될 것이다. 예컨대 ‘세금’도 정부가 통치를 하기 위한 자본으로서 뿐만 아니라 시민이 자치를 하기 위한 자본으로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에 의해 통치를 받는 시민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사용’하고 ‘행사’하는 시민이 정치의 주체로서 등장하는 것이다.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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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004년 10월26일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홈페이지에 게시된 나일경 박사의 시리즈 글 중 3회째 글을 옮긴 것입니다.


 
생활클럽 생협운동의 주체(2)=생활자ㆍ시민


나일경

생활자ㆍ시민이란 생활클럽 생협운동의 주체를 표현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생활자ㆍ시민은 시민이란 개념과 무엇이 다른 것일까. 혹은 주민이나 소비자 혹은 노동자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또한 생활자ㆍ시민의 생활자란 명칭은 생활과 관련된 모든 것을 가리키는 것이기에, 생활자란 인간 그 자체를 표현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생활자가 아닌 사람이란 없을 텐데, 굳이 생활자란 말을 사용하는 까닭은 무엇일가.

생활자ㆍ시민이란 말은 사람들의 존재방식(즉, 주민이나 소비자, 노동자)라는 척도를 통해 규정된 유형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행동원리에 초점을 맞춘다. 생활자ㆍ시민이란 특정의 행동원리에 선 사람들, 혹은 그러한 행동원리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실천개념이며 이념형인 것이다.(天野正子「생활자운동의 형성을 위해서-생활클럽생협의 사례를 중심으로」『都市問題』제87호 제10권, 1996년 6월호, 29쪽을 참조.)
그렇다면 생활클럽 생협운동은 생활자ㆍ시민이라는 말을 통해 어떠한 행동원리를 지향하는 주체성을 만들려는 것일까.   

 첫 째, 생활자ㆍ시민은 자신의 생활을 생산과 소비 및 정치로부터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체 과정 속에서 자신의 생활을 파악하고, 거기에서 발견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자신의 생활 속에서 먼저 실천해 나가는, 혹은 그러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을 말한다. 즉 생활자ㆍ시민이라는 말에는 문제해결의 장을 자신의 생활과 분리된 외부의 장(정치나 행정과정)에서만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생활하는 일상생활의 장을 포함해서 문제해결을 위한 실천활동을 해나겠다는 의지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생활자ㆍ시민의 행동규범으로 강조되는 것은 ‘참가’와 ‘책임’이라는 시민적 가치이다. 즉 생활자ㆍ시민은 문제해결을 위한 활동에 ‘참가’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참가에 따른 ‘책임’을 자신의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을 지향하는 삶을 표현하는 주체성을 가리킨다. 이러한 의미에서, 생활클럽운동은 생활자체를 운동화하고 사회운동이 생활의 일부가 되는, 생활과 사회운동의 상호적인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주권재민의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Making Democracy Work in Life) 사회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생활의 운동화와 운동의 생활화라고 하는 실태가 존재할 때 시민주권을 발휘하는 개인의 능동성이 생겨나고(,) 능동적인 개인들에 의한 사회적 관계들이 생겨나는 것이며, 더 나아가 그러한 힘이 대의제 민주제를 견제할 수 있을 때(,) 시민자치형의 민주주의가 발현될 수 있다는 것이 생활클럽운동의 풀뿌리 민주주의론이다.
       
 둘 째, 생활자ㆍ시민에 대한 위와 같은 행동원리에는 현대 일본사회의 권력(사회적 권력과 정치적 권력)의 존재방식에 대한 비판이라는 자기 주장의 내용이 포함되어져 있다. 생활과 언페이드워크가 이루어지는 일상 생활의 공간은, 타자의 지배를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회경제적 권력과 정치적 권력, 그리고 그러한 권력의 주권자로서의 시민이 건전한 권력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곳이다. 따라서 생활자란 상품에 ‘의존’하는 생활을 강제 받는 삶을 거부하며, 소비자로서의 수동적인 삶을 강요하는 산업사회의 ‘사회적 권력’에 대항하는 ‘주권자’라는 자기주장을 내포하는 실천개념으로서 쓰여진다. 예를 들자면, 생활클럽 생협이 자신들이 구매하는 소비재(消費財)에 관해서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상품’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자신의 생활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수단(사용가치가 높은 재료)이 라고 의미를 지니고 있는 소비‘재’(消費材)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도, 주권자로서의 생활자의 자기주장을 상품에 표현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수동적인 소비자로서의 삶을 강요하는 사회경제적인 권력의 존재방식(기업에 의해 조작되는 소비생활)에 대항하는 ‘주체성’을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 생활자이라면, 정치권력에 문제해결을 백지위임하는 청부형 문제해결수법에 익숙해져 있는 국민에 대치되는 개념이 시민이라고 할 수 있다. 생활자가 일상생활을 둘러싼 사회적ㆍ경제적 환경 속에서 목적 의식적으로 생활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시민이란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시민주권을 발휘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생활자가 사회적 권력과의 관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힘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시민은 정치권력과의 관계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힘을 지니고 있으며 참가와 더불어 책임을 질 줄 아는 능동적인 개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생활자ㆍ시민이란 사회경제적인 권력과 정치권력에 의해 조종되고 조작되어지는 경제생활과 정치생활의 존재방식에 불복종하는 ‘정치적’인 주체성을 표현하는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다.(요코다 카쓰미(横田克巳)『オルタナティブ市民社会宣言-もうひとつの「社会」主義(대안적 시민사회선언-또 하나의 「사회」주의』現代の理論社, 1989년, pp. 93-94, 118-120쪽을 참조.)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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