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앞산달빛’에 대화가 흐르다

- 대구 ‘공간앞산달빛’을 찾아 -





▶ 날짜 : 2008년 5월 19일

▶ 장소 : 대구 앞산달빛

▶ 인터뷰 : 곽상수 실무자

▶ 작성 : 김현(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대구 남서쪽 방향에는 ‘앞산’이 솟아 있다. 이름만 들으면 뒷동산 수준의 작은 산으로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해발 660미터로 629미터의 관악산보다 더 높다. 차를 타고 휙 둘러만 봤는데도 꽤 우람한 등치의 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구시에서 가장 큰 도시자연공원이라고 하니 대구 시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을 만하다. 그런데 이런 앞산에 커다란 터널이 뚫린다고 한다. 대구 수성구와 달서구를 연결하는 앞산 관통 도로는 길이 10.5km에 터널 구간만 5.5km에 달한다. 절반 이상이 터널인 셈이다. 2010년 완공 예정인 이 도로는 대구시 사상 최대 규모의 민자유치 사업이다. 당연히 앞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2004년부터 반대운동을 전개했고, 앞산터널건설계획과 관련하여 처음 간담회를 실시하면서(2005년) 본격적인 반대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그 운동은 지금까지 천막농성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그렇게 앞산터널반대운동을 전개하던 일부 사람들은 앞산터널반대운동이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동네에 작은 공간 하나를 만들었다. 그곳이 바로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공간앞산달빛’이다.


“저희들은 이 싸움을 하면서 지역운동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당시 앞산터널반대운동은 이해관계가 있는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의 문제였지, 넓은 의미로서 지역주민들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지역에 들어가서 지역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했어요. 그래서 2007년 3월부터 이런 공간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곽상수 담당자에 의하면 ‘공간앞산달빛’은 동네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마을공동체 만들기를 비전으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크게 네 가지 범주의 지향점을 설정하고 있는데, ‘자치와 자립’, ‘생명과 평화’, ‘아이들’, 그리고 ‘농업’이 그것이다. 농민들의 땀으로 일군 유기농산물을 유통업체를 거치지 않고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한다는 것이 직거래장터의 모토다. 작년부터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는데, 지역주민들에게 인기가 높다. ‘자치와 자립’, ‘생명과 평화’라는 가치에 가장 알맞은 사업이기도 하다. 이러한 직거래를 좀 더 발전시키면 토착화한 ‘지역생협’이 될 것이라고 곽상수 담당자는 말한다.


올 초에 독립된 공간을 마련한 ‘앞산마을학교’는 초등과정의 방과후 학교다. ‘앞산마을학교’는 대안학교의 개념은 아니다. 공교육이 담아낼 수 없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도시 수준의 공동체 학교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을 드러내고 다문화가정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배우고 자연과 장애인, 노인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곳이 ‘앞산마을학교’의 목표이기도 하다. ‘앞산마을학교’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방과후 2시간씩 수업이 진행된다. 정원은 25명이고 월 10만원의 수업료를 받는다. 일반 초등생들이 대상이다. ‘앞산마을학교’는 ‘공간앞산달빛’이 동네 아이들을 꾸준히 지켜보겠다는 의지기이도 하다. 그렇다면 ‘농업’이라는 가치는 무엇을 지향하는 것일까?


“농업은 ‘농적 삶’을 이야기하는 건데, 생태적인 삶을 말하는 겁니다. ‘공간앞산달빛’이 출발하게 된 계기가 앞산터널반대운동이었거든요. 결국 환경과 관련된 운동이었습니다. 환경은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느리게 살아가야 하고 생태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거지요. 우리 동네 앞에 낙동강이 있습니다. 거기에 대운하 물길이 열리는 곳이지요. 그러한 개발과 맞서는 뜻에서 농적 삶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또 하나는 지역 공동체와 우리 이웃의 다양하고 건전한 공동체가 연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에는 가까운 농촌이 있는데, 그곳에서 농사짓고 있는 분들과 지속적으로 연결할 필요가 있는 거죠.”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앞산 근처의 주민들에겐 대운하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대운하 삽을 뜨는 순간, 앞산의 운명도 어찌될지 모르는 것이다. 이렇듯, ‘농적 삶’은 나와 세상을 연결하는 관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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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공간앞산달빛'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친숙한 이름과 나뭇결이 인상적이다


‘공간앞산달빛’은 누구에게나 오픈된 공간이다. 차를 마시고 수다를 떨거나 저녁밥은 함께 먹고 싶거나, 또는 멀리서 찾아온 손님들이 묵을 수도 있다. 40명 정도가 둘러 앉아 회의를 하거나 세미나를 할 수도 있다. 아이들의 캠프 장소도로 활용할 수 있다. 사용하고 싶을 때 신청하면 언제든 사용할 수 있다. 공간은 50여 평 규모로, 큰 방, 황토방, 마루찻방, 부엌, 공동 사무실 겸 자료실, 화장실과 뒤뜰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공간을 운영하는데 대략 월 100만 원 가량이 든다. 상근자가 없기 때문에 지출항목은 관리비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월 1만원 후원자가 현재 70명이다. 20-30명만 더 모으면 공간을 운영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기존에는 모든 것이 상근 활동가들 중심이었거든요. 사람이 모이면 일이 만들어집니다. 술도 마시고 수다도 떠는 거죠. 우리는 이 공간에서 인큐베이팅을 하려고 합니다. 지역을 여론화 할 수 있는 신문을 만든다거나, 평화로운 학교 만들기를 한다거나 이런 것이 필요한 것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역을 통째로 보고 운동을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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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큰 방의 모습이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곽상수 담장자가 오른쪽에 있다.


지역운동사례를 조사하다보면 몇 가지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사람들이 수다를 떠는 공간’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최근에 만났던 인천 가좌2동의 사례가 그렇고, 대전 한밭레츠가 그랬고, 대구 ‘공간앞산달빛’이 그렇다. 주민들은 누군가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그것을 수다라고 했을 때, 경계의 마음이 허물어지는 순간, 술술 수다의 정치가 시작되는 것이다. 내용은 매우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가족, 자녀, 동네일과 관련된 건강, 보육 및 교육, 먹거리, 안전, 부동산 문제 등등의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을 것 같다. 그런 수다의 공간에서 녹색삶은 방과후 아이들과 만났고 성미산은 마을 통째를 보고 있으며, 인천 가좌2동은 도서관에 둥지를 틀었다. 대구 ‘공간앞산달빛’은 아예 물리적 공간을 하나 만들었고 대전은 가상의 화폐를 만들어 대안적 공동체를 실험하고 있다. 이런 사례들은 공식적, 혹은 비공식적 수다의 공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개인의 수다는 사적 욕구에 머무를 것이라고 예단할 수는 없다. 경험적으로 봤을 때, 사적 영역을 넘어서는 공간에서는 공적 욕구들과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 행렬의 태안 기름유출 사건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대구 ‘공간앞산달빛’도 수다의 정치를 통해 공적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는 중이다.


“처음 이 곳이 문을 열었을 때는 주민들이 꽤 왔어요. 하루 한 50-60명 정도가 드나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뜸합니다. 그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공간에 여러 단체가 들어왔었어요. 이 공간에 들어온 단체들은 자기 사업만 추진했었죠. 금방 사무실 분위기로 바뀌더군요. 그러다보니 주민들과 틈이 생기기 시작했죠. 단체 위주의 활동을 하게 되자 주민들의 발걸음이 끊겼던 거죠. 그래서 최근에 단체들을 다 다른 곳으로 이전시켰습니다.”


곽상수 담당자도 이 부분은 예상을 못했던 모양이다.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운집한 공간에 자유롭게 드나들며 수다를 떨 만큼 넉살좋은 주민은 거의 없다. 열린 공간이 아니라 단체들의 공간이라고 인식되는 순간, 주민들은 거리두기를 한다. 이 거리를 늘리는 것보단 좁히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뜸한 주민들의 발걸음을 되돌리는 과정이 ‘공간앞산달빛’의 숙제다.


“올해 과제는 두 가지에요. 생태연구소를 제대로 만드는 것과 생협을 만드는 거예요. 생태연구소는 무엇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숲속학교와 같은 교육이나 앞산터널, 또는 경부운하 모니터링, 그리고 도시농업학교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어요. 사무실 앞에 나가면 바로 산과 들이거든요. 이 근처 농장들과 장터를 결합시킬 수 있고, 다양한 내용들을 채워나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특히 아이들 교육에 초점을 맞출 생각입니다. 생태연구소와 어떻게 연계하느냐에 따라 지역운동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지역 안에 생협을 만들려고 하는데요, 올 하반기에 매장을 낼 계획입니다. 직거래나 장터를 그 안으로 가져올 생각이고요. 현재 하고 있는 직거래장터는 주민들이 매우 좋아합니다. 단골도 많이 생겼죠. 다른 곳보다 친환경농산물이 저렴하게 판매하는 점이 매력인 것 같아요. 믿을 수도 있고요. 이 직거래장터는 물류비용이 적고 큰 창고가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계획하고 있는 생협은 전체 물품을 다 소화할 생각은 없고 선별적으로 갖다 놓으려고 해요. 이것이 잘 되면 돈의 흐름도 파악할 수 있고 활동가도 많이 남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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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황토로 빚은 방. 이 모든 것을 곽상수 담당자의 손을 거쳤다.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직거래장터를 제외하고 마을학교나 생태연구소, 그리고 생협 등은 이제 막 태동하는 단계다. 한 발 앞선 ‘마을학교’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을 보면, 전반적인 ‘공간앞산달빛’의 구상이 지역사회의 특성과 잘 맞아떨어질 것이란 기대가 있다. 그러나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었듯, 그 길도 녹록치만은 않을 것이다. ‘공간앞산달빛’이 지역운동에 던지는 메시지는 개별화된 운동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는 것, 즉 지역사회 전체 비전을 설계해보고 그 바탕 위에 여러 영역들을 교차시키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친환경농산물을 매개로 생태와 농업, 나아가 지역 차원의 대안경제를 음미해볼 수 있고(생협), 폭발적인 에너지가 내재되어 있는 수다를 활용하고(공간앞산달빛), 아이들, 또는 주민들과 새로운 교육의 장에서 만나고(마을학교/앞산숲속학교), 실천의 도구로서 생태연구소를 운영하는 것 등이 대도시에서의 입체화된 마을공동체의 그림이다. 보수의 땅 대구에서 ‘공간앞산달빛’의 실험은 긴 호흡의 시작일 뿐이다.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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