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료는 2006년 7월 12일 인권운동사랑방에 올려져 있는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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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결박’의 끝은 어디인가
인권과 평화에 대한 표적 공격을 강력 규탄한다.


11일 수원지방법원 영장전담 재판부는 인권운동가 박래군 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에서 박씨의 구속을 확정지었다. ‘정의’의 기초를 다지며 ‘생명’을 살려내는 ‘평화행진’ 285리, 그 길의 마지막을 무법천지 국가폭력으로 갈아엎더니, 끝내는 인권활동가를 구속해 버렸다.

우리는 묻는다. 지금 대한민국에 형식적인 ‘법치’나마 있느냐고! 평화롭게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집회결사의 자유를 행사한 인권운동가를 구속해 버리는 정부에게 정통성이 있느냐고! 자신의 삶터로 돌아가려는 대추리, 도두리 주민을 새벽까지 막아 세우고, 주민과 평화행진단을 위협하며 테러한 상인폭력배를 수수방관 하더니, 이 모든 것에 항의한 인권운동가들에게 집단구타, 모욕, 성희롱, 불법연행 등을 자행한 경찰이 시민의 치안을 위해 있어야 하냐고! 불법과 위법으로 뒤엉킨 검찰의 주장에 손을 들어준 사법부가 독립적인 존재냐고!

우리는 박래군 인권운동가에 대한 구속이 지난 3월 15일 이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인권옹호자에 대한 심각하고 중대한 인권침해라고 판단한다. 경찰과 검찰이 인권옹호자에 대한 정치적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평택주한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표적 공격’이라는 점에서 심한 분노와 우려를 표한다. 특히 경찰이 평화행진단의 뒷덜미를 공격한 점, 스스로 해산하고 있는 평화행진단을 향해 형사가 직접 집단구타를 자행하며 불법연행을 감행한 점 등은 불법을 넘어 인권과 평화에 대한 잔악한 침탈행위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박래군 인권운동가를 구속함으로써 사법부가 이러한 불법을 용인하는 꼴이 되었으니, 도대체 인권을 침해받았을 때 어디에 호소하고 구제를 받아야 하는가! 인권옹호 활동의 ‘최후 보루’인 인권운동가마저 구속한다면 모든 시민의 인권옹호 활동을 국가폭력으로 결박하려는 것과 다름없다.

평화행진의 마지막 날인 8일 평화행진단은 4박 5일의 힘든 여정임에도 늦은 시각까지 걸어서 대추리까지 평화적으로 행진하려 했다. 그런데 경찰은 평화행진단의 걸음은 물론 평택역에서 촛불문화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마저 가로막았고, 평화행진단을 향해 돌과 달걀을 던지고 각목과 쇠파이프로 위협하는 상인들의 폭력행위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평화행진단이 평택경찰서로 달려가 경찰의 불법행위에 대해 엄중히 항의하고 올바른 법집행을 촉구한 것은 정당한 항의행동이었다. 그럼에도 경찰과 검찰이 평화행진단의 정당한 외침을 폭력으로 짓밟고 대량연행과 인권활동가 구속사태까지 몰고 간 것은 들불처럼 번져가는 인권과 평화의 숨통을 죄려는 노림수라고밖에 볼 수 없다.

법도 정의도 사라진 이 땅에서 이제 남은 것은 불복종 저항밖에는 없다.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인권에 대한 모욕과 진압은 다만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생동하고 있는 양심을 다시금 일깨울 뿐이다. 한 사람의 인권활동가를 구속한다고 해서 거대한 인권과 평화의 물줄기를 막을 수는 없다.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평택으로의 주한미군기지 확장과 국가폭력에 반대하는 저항운동은 쉼 없이 계속될 것이다. 압제와 불의에 대한 저항은 인권과 평화의 실현을 위해 기본적이고 필수불가결한 우리의 권리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불법을 저지르며 계속해서 안하무인격으로 횡포를 자행한다면, 그 권력은 국민의 저항권 앞에서 자멸하게 될 것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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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2007년 11월 28일 인권운동사랑방에 올려져 있는 성명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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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교육위 법안심사소위와 한국교총의 가위질을 규탄하며
학생인권법안 원안 통과를 촉구한다.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의 결실 중 하나였던 학생인권법안(최순영 의원 대표 발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의 11월 통과가, 국회 교육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법안심사소위)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의 가위질 끝에 좌절되었다.

학생인권법안은 체벌금지, 두발복장자유화, 강제적 자율학습 금지, 각종 차별금지, 징계 재심 청구권 보장, 학생회 법제화, 교사와 학생 등에 대한 인권교육, 3년에 한 번씩 인권 현황에 대한 조사 실시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말한다. 11월 16일, 법안심사소위는 이 학생인권법안 원안의 주요 내용들을 거의 다 빼버리고 더 이상 원안의 흔적은 찾기 어려운 수정 대안을 교육위원회에 상정하려 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퇴학에 한해서만 교육청 학교징계조정위원회에 징계 재심 청구권 부여
▲ “학교의 설립·경영자와 학교의 장은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인권을 보장하여야 한다.” 조항 신설
▲ 학교운영위원회 위원 연수를 민간기관 등에 위탁 실시 가능
▲ 초등학교 취학 유예 사유에 발달 정도 추가
▲ 초등학교와 특수학교는 제외하고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 대표가 참여하되, 학생 대표는 보충이나 자율학습 등에 대한 것, 급식에 대한 것, 운동부에 대한 것, 학교운영에 대한 제안 및 건의 등 4가지만 심의권 부여

그러나 이 수정 대안조차도 한국교총이 학생 대표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하여, 결국 최종적으로 교육위원회에 상정된 것에서는 학생 대표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부분은 누락되었다. 학생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조항을 제외하고 위의 4가지 내용이 담긴 수정 대안은 16일 교육위원회와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여 사실상 입법 절차를 마쳤다. 이로써 국회는 학생인권법안 통과를 촉구하며 전달된 11,745명의 서명과 수차례 있었던 청소년들과 교사들의 집회, 의견 전달 등을 반영하지 않고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할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다.

학생인권법안 원안의 내용에 동의하고 그 통과를 지지하는 청소년인권 및 교육 관련 단체들은 현재 국회에서 통과된 “학교의 설립·경영자와 학교의 장은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인권을 보장하여야 한다.”라는 조항의 신설을 일단 환영한다. 그러나 이 입법은 원안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생색내기에 불과할 수 있다.

법안심사소위가 기존의 체벌금지, 두발복장자유화, 차별금지, 강제적 자율학습 금지를 비롯하여 학생인권의 구체적 내용들을 명시했던 법안 내용을 단지 “학생인권을 보장하여야 한다” 정도의 선언적 조항으로 대체한 것은 그 실효성을 크게 떨어뜨린 것이다. 이미 교육기본법에도 학습자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선언적 조항이 있는 상황에서 초중등교육법에 별 차이가 없는 선언적 조항을 추가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인권의 구체적 내용을 나열하거나 시행령에 넣도록 하는 등 구체적인 명문화가 필요한데, 법안심사소위의 국회의원들은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고 적당히 선언적 조항을 넣는 방안을 택했다. 이것은 학생인권 보장에 대한 의지가 별로 없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징계 재심 청구를 퇴학에 대해서만 인정하겠다고 한 점 또한 부당하고 비합리적이다. 비유하자면 사형이나 무기징역에 대해서만 항소를 인정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처벌의 수위가 높은 경우에만 재심 청구권을 가질 수 있다는 인식은 재심 청구가 당연한 권리라는 점을 무시하는 것이며 국회의원들의 무지를 보여준다. 이는 오히려 퇴학 외의 징계에 대한 재심 청구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효과까지 낳을 수 있다. 2006년 9월, 서울시교육청에서 징계를 받은 학생이나 학부모의 재심 청구권을 보장하도록 학교들을 지도하겠다고 밝혔던 것보다 오히려 더 후퇴한 셈이다.

수정 대안에서 그나마 실질적인 의미가 있었던 학생 대표의 학교운영위원회 참가 조항이 일방적으로 상정 당일에 삭제된 것은 국회 법안심사소위원회의 소신에 대해 실망하게 만들었다. 한국교총의 의견 하나에 당일 날 법안 내용을 바꾼다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국회 교육위원회의 분발을 촉구하고, 학생의 학교운영위원회 참가마저도 졸속으로 삭제하도록 한 한국교총에 강력한 항의의 뜻을 전달한다. 우리는 누더기 수정 대안이 학생인권을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이에 반대하며, 국회 교육위원회가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회기 안에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법적 장치인 학생인권법안 원안을 조속히 통과시킬 것을 요구한다.

우리 청소년인권 및 교육 관련 단체들은 앞으로 현재 통과된 학생인권 보장 조항의 내용을 구체화하고 현실화시키기 위한 활동을 할 것이며, 무엇보다도 학생인권법안 원안의 내용이 국회에서 통과되도록 하기 위해 적극 행동에 나설 것임을 밝힌다.



2007년 11월 27일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21세기청소년공동체희망, 대한민국청소년의회, 흥사단교육운동본부,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민주노동당청소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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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청소년개발원에서 내는 청소년 소식 2005년 1월호에 실린 글을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홈페이지에서 옮긴 것입니다.
 


청소년 인권 보장 없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없다.

하승수(풀뿌리자치연구소 운영위원)

한국사회의 청소년들에게 인권은 있는가? 2004년에는 이런 질문을 던져보게 하는 사건들이 많았다.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며 단식까지 했던 강의석군 사건, 사회 전체에 충격을 던져준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 그리고 어린 아이들이 가난이나 가족적인 상황 때문에 생명을 잃는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사회가 민주화되었고, 인권현실도 많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사건들을 겪으면서 한국사회에서 청소년들의 인권현실은 아직도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인권침해가 너무나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당연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권침해에 있어서 가장 위험한 상황은 가해자나 피해자가 인권침해에 무감각해진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인권 현실을 개선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다. 그리고 특별한 사람만이 가해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늘 일상속에서 부딪히는 사람이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년전부터 중ㆍ고등학생들을 상대로 인권교육을 할 기회들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누가 자신의 인권을 가장 많이 침해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았을 때에, 가장 많은 답을 받은 사람은 “엄마”와 “교사”였다. 청소년들이 가장 밀접하게 부딪히는 사람들이 바로 청소년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주체라는 것이 청소년 인권문제의 중요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과연 “엄마”와 교사들은 청소년들의 이런 대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도 “아이들이 아직까지 철이 없어서”라고 한탄하거나, “내가 자기들의 미래를 위해서 그러는 것인데, 너무 몰라준다”고 섭섭해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사람에게도 항상 변명이나 명분은 있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인권의 주체인 청소년들은 엄마나 교사들에 의해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특별한 엄마나 특별한 교사만이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도 청소년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을 수 있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보자. 청소년들이 성장단계에서 적절한 휴식을 하고, 문화.예술에 대한 접근을 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많은 청소년들은 이런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0교시 수업, 보충수업, 야간 자율학습 때문이다. 교사들에게 왜 0교시 수업, 야간자율학습을 하게 되느냐고 물어보면, 부모들의 요구가 있기 때문이라는 답이 나온다. 이것이 얼마나 진실에 부합하는지는 엄밀하게 따져보아야 하겠지만, 실제로 많은 부모들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붙잡아두고 공부를 시키길 원한다. 그렇게 문제의 원인을 찾아나가다 보면, 결국 청소년들의 휴식권을 침해하는 사람은 부모일 수 있다. 그러나 아마 0교시 수업, 야간자율학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런 자신의 생각과 요구가 아이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인권을 침해하면서도 전혀 인권침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한 상태가 바로 문제의 핵심이다. 
  이런 점들을 생각해 보면, 청소년 인권문제의 해결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단지 법제도를 바꾼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부모들의 생각, 교사들의 생각, 더 나아가 모든 어른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고서는 청소년들의 인권을 보장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지금 부모와 교사들을 비롯하여 청소년들과 일상적으로 부딪히는 사람들의 의식속에는 중요한 전제가 깔려 있다. 그것은 “청소년들에게는 어른들이 허용하는 만큼의 권리만 보장된다”라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인권의 측면에서 보면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이런 생각을 따라가면, 청소년들에게는 어른들이 허용하지 않으면 휴식권도 없고, 종교의 자유도 없고, 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도 없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하에서는 어른들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청소년들의 인권이 너무나 쉽게 제한당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판단하는 어른마다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는 것도 물론이다. 그래서 교사에 따라 체벌을 사용하는 횟수와 강도가 다르고, 아이들의 두발에 대한 규제가 다르고,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는 시간도 학교마다 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인권이 이렇게 원칙과 기준없이 흔들린다면, 과연 그것이 온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만약 어른들의 인권을 경찰관 마음대로 침해할 수 있다면, 과연 어른들은 그것을 납득할 수 있을까?

  그래서 사고의 기본전제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다. “청소년도 사람이다. 사람이면 당연히 사람으로서 누려야할 권리가 있다.”라는 것에서 모든 논의를 출발해야 한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청소년들도 어른들과 동일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모든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물론 이것이 무조건적으로 청소년들도 어른들과 똑같은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문제에 접근하는 시각을 바꾸자는 것이다. 그래야만 하나하나의 문제들에 제대로 접근하고 토론할 수 있다.

  이렇게 기본전제를 바꾸면 하나하나의 문제들에 전혀 다른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다. 두발 규제를 가지고 생각해보자. 지금은 많은 어른들이 “학생들에게 두발의 길이를 몇센티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한다. 그러나 출발점을 바꾸면, “학생들의 두발을 어른들과 다르게 규제할 필요가 있는지,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정말 두발의 길이나 모양이 학교교육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진지한 토론과 고민을 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정말 학생들의 두발을 규제할 필요성이 인정된다면, 그 다음 단계로 “어느 정도로 규제하는 것이 합리적인지”에 대해 다시 고민과 토론을 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청소년들의 의견을 들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권리에 대해 주장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친다면 청소년들도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고민과 토론의 과정이 없이 “학생이니까, 청소년이니까 두발은 단정해야 한다”라는 식으로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 식으로는 청소년들의 인권이 보장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을 납득시킬 수도 없다.

  지금 청소년인권이 침해당하고 위협받는 이유는 청소년 인권문제에 대한 규범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이미 청소년들의 인권에 대한 보편적인 규범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 규범에 비추어 볼 때에 한국에서는 무엇이 문제인지도 정리되어 있다. 문제는 사람들의 의식과 행동이 변화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 있다.

  한국이 1991년에 가입한 ‘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 CRC)’은 청소년들의 인권에 대한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이다. 그리고 이 협약에 따라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에 대해 청소년들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를 권고해 왔다. 만약 이 권고의 내용만 제대로 지켜져도 한국의 청소년 인권현실은 대폭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내용중 몇가지만 살펴보면, 청소년들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것, 청소년 참여를 촉진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 학생의 표현ㆍ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교육부 지침, 학교 교칙을 개정할 것, 학교에서의 체벌을 금지할 것, 교사 등에게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을 실시할 것, 청소년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서 청소년이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를 보장할 것, 매우 경쟁적인 교육시스템을 개선하여 경쟁성을 감소시킬 것 등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지적은 한국 정부의 보고서와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권고 등 관련문서를 널리 배포하고 청소년들까지도 알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권고는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와중에 청소년 인권 현실은 오히려 점점 나빠지고 있는 것같다. 이제는 청소년들이 청소년들의 인권을 잔인할 정도로 침해하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학교폭력 문제, 청소년간의 성폭력문제, 언어폭력, 사이버 폭력 등이 계속 사회적 문제로 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에 대해 사후적이고 즉자적인 수준의 처방으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청소년간의 폭력문제는 결국 청소년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 사회의 문제가 반영된 것이다. 또한 청소년들에 대해 인권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교육의 문제이다. 근본적으로 보면, ‘경쟁’과 억압을 통해 학습을 시키겠다는 현재의 교육 목표가 바뀌지 않는 이상 청소년들의 인권을 실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개인적인 의견으로, 손쉬운 방법만을 택한다면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생각한다. 법을 하나 만드는 것은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것보다도 쉬울 수 있다. 그러나 법만으로 인권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최소한 법을 바꾼다면, 그 바뀐 법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그런 법을 만들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인권에 대한 교육과 홍보가 중요하다. 청소년들에게 스스로의 인권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 스스로의 인권에 대해 깨우쳐야만, 다른 사람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교사나 부모들에 대한 교육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일상적으로 행하는 일을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되돌아보게 하는 과정을 밟아나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의 청소년들을 걱정한다. 그러나 정작 걱정해야 하는 것은 청소년들이 아니라, 어른들이다. 어른들이 청소년들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어두울 수 밖에 없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여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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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사랑방(http://www.sarangbang.or.kr)이 2001년 전국중고등학생연합과 함께 펼친 인권을 찾자 교칙을 찾자 캠페인을 통해 나온 교칙 분석 보고서입니다.


244개 중·고등학교 교칙 분석

2001년 10월 22일
인권운동사랑방


* '인권을 찾자 교칙을 찾자' 캠페인을 통한 교칙 수집

2000년 12월 <인권운동사랑방>과 <인권과 교육개혁을 위한 전국중고등학생연합> 공동으로 시작된 '인권을 찾자 교칙을 찾자 캠페인'은 교칙 내용 중에서 학생생활과 관련 깊은 학생회칙과 선거규정, 용의복장 규정, 선도규정을 집중수집하기로 했다.

2001년 3월, 교칙 수집을 알리는 전단과 스티커를 제작하여 청소년단체와 전교조 각 지부, 전국중고등학생연합 회원을 대상으로 우편 배포하였다. 인터넷과 신문을 통한 홍보를 병행하였고, 2001년 3월부터 6월까지는 명동 등에서 거리 캠페인을 벌였다.

전단배포와 거리캠페인을 통해 1차 수집된 교칙은 60여 개였다. 전국중고등학생연합 소속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우편과 이메일로 수집하였다. 그러나 학생들이 학교의 각종 규정집을 문서로 접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하여 2차 수집은 인권운동사랑방이 전국 각 교육청에 정보공개청구를 하는 방법을 이용했다.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에 대한 '중·고등학교 교칙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180여개의 교칙이 모아졌다. 최종적으로 교칙 244개가 분석에 이용되었다.


** 교칙분석 방법

2001년 6∼7월, 4차례에 걸친 교칙분석 모임을 통해 학생회 회칙, 용의복장규정, 선도규정 각 분야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여기에 강경선 교수(방송대, 헌법), 이석태 변호사, 허종렬 교수(서울교대, 교육법학)가 분석자문위원으로 참여하였다. 토론에서 모아진 문제 제기를 기준틀로 하여 문서검토방법으로 통계분석이 진행되었고, 그 결과에 대한 최종 토론이 10월 18일에 있었다.

전체 244개 학교 교칙 중에는 학생회 회칙, 용의복장 규정, 선도규정을 전부 담고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래서 각각의 분석 총수는 학생회 회칙 189개 학교, 용의복장 규정 209개 학교, 선도규정 195개 학교이다. 이중 선도규정은 각 학교 학칙의 징계 기준과 징계 규정의 유무를 알아보기 위하여 WINDOWS SPSS 통계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다중응답분석과 빈도분석을 실시하였다. 즉, 각각의 징계 기준과 징계 규정에 따라 '훈계', '교내 봉사', '교외 봉사' '특별교육이수' '퇴학처분' 등의 징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다중응답분석과 빈도분석을 실시하여 통계치를 산출하였다.
전체 교칙에서 중학교는 90개, 고등학교는 154개이다. 그러나 교칙의 내용과 통계분석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 남학교와 여학교, 남녀공학 또 실업계학교와 인문계학교의 교칙구분이 불필요하여 특별히 구분하여 분석하지 않았다. 개별 학교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원칙 하에 보고서에서 든 사례에 해당하는 특정학교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 이 보고서에서 분석 대상으로 삼은 학생회칙, 용의복장 규정, 선도규정에 대한 총평은 각 장의 결론으로 대신한다. 이 교칙분석의 목적은 현행 교칙의 실상을 보여주는데 국한돼 있으므로 대안적인 교칙의 상을 제시하는 것은 별도의 작업을 필요로 할 것이다.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고 학교의 민주주의를 신장하는 방향으로 교칙을 정비하는 일은 학교 구성원 당사자들의 몫일 것이다. 부족하나마 이 보고서가 대안적인 교칙 마련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하며, 학교 구성원인 학생, 교사, 학부모의 적극적인 논의와 대안 창출을 기대한다.
아울러 이후 대안 마련을 위한 노력에서 본 보고서가 지적한 다음 사항들이 고려되기를 희망한다.

·금지와 처벌을 강조한 규정에서 학생이 누려야 할 인권을 정의하고 보장하는 규정으로 방향전환이 돼야한다. 즉, '하지 말아야 할 것' 일색인 규칙에서 벗어나 '…를 할 수 있다', '…을 보장받는다'는 규정이 돼야한다.
·불필요한 학생회 대표의 출마조건을 대폭 삭제해야 한다.
·징계에 대한 '사면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학생의 정치활동 금지 규정은 삭제되어야 한다.
·학생지도위원회가 가진 권한을 학생회로 이관해야 한다. 학교 당국의 승인 또는 재가를 필요로 하는 규정을 삭제하고, '(학생회는) 필요에 따라 자문 또는 지도를 구할 수 있다'로 바꿔야 한다.
·학생회 조직에서 특정 종교의 활동을 강제하는 종교부를 폐지해야 한다.
·교육기본법 제5조의 규정에 따라 학생의 학교 운영 참여를 보장하는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학교운영위의 학생 참여를 배제하고 있는 초중등교육법 제31조는 개정돼야 한다.
·'학생회 회칙의 효력 정지' 규정은 삭제되어야 한다.
·용의 복장 규정의 자의적이고 모호한 기준들을 대폭 정리해야 한다.
·용의 복장 규정에서 학생의 참여와 동의를 구하는 절차 규정을 두어야 한다. 학생의 사생활, 기호와 개성을 존중하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속옷관련 규정은 즉각 삭제돼야 한다.
·징계시 '해당 학생과 보호자가 '선도위원회'에 '직접' 출석하여 소명의 기회를 갖는다'는 규정을 분명하게 두어야 한다. 직접 출석하여 소명 기회를 갖는 것과 사전 진술은 다르게 취급돼야 한다.
·징계시 학교 당국이 사전에 '징계 사유 통지'를 하도록 명문화해야 한다. 또한 심의 중에 당사자가 예상치 못했던 징계 사유가 별도로 추가돼서는 안된다는 것을 명문화해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에 징계에 대한 '재심요구권'이 보장돼야 한다.
·체벌규정을 삭제하거나 현실성 있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
·학교마다 수십 개에 이르는 퇴학 사유는 대폭 축소돼야 한다. 퇴학은 극히 제한적인 경우에만 적용돼야 한다.
·사상, 양심, 표현, 집회, 결사의 자유 등 기본적인 시민·정치적 권리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금지하고 있는 규정들은 전면 삭제돼야 한다.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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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들의 오아시스" -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날짜 : 2002년 8월 30일(금) 오전 10시 40분
인터뷰 : 양혜우 소장
정리 : 김현

‘엷은 오렌지색'이 어떤 색인지 아시는가? 앞으로 생산되는 크레파스와 수채물감에는 ’살색'이라는 특정 색이 사라지게 된다. 지난 달 1일, 특정인종의 피부색과 유사한 색을 ‘살색’으로 표기한 것은 차별행위라며 외국인 4명이 진정을 낸 것을 국가인권위원회가 받아들인 것이다. 이 색을 대체해서 ‘엷은 오렌지색’으로 명명하게 되었다. 스케치북에 사람을 그린 후, 아무 의심 없이 ‘살색’이라고 적힌 크레파스로 피부색을 그려 넣은 어린 시절이 기억난다. 67년 이후부터 ‘살색’이라고 믿어 왔으니, 적어도 한국 사람들은 35년간 ‘살색’의 진실을 잊고 살아 온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인종차별은 아이들이 갖고 노는 크레파스에만 숨어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백인 우월주의에 빠진 서양인들이 존재하며, 한국인들도 이런 차별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따지고 보면 나찌의 만행도 민족우월주의에서 비롯되었고, 최근까지 그칠 줄 모르는 팔레스타인 분쟁 또한 인종 문제가 깊숙이 도사리고 있다. 인종 차별의 피해자로 여겨졌던 우리나라도 최근 10여 년 전부터 가해자의 탈을 써오고 있다고 하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다름아니라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이다. 이미 언론을 통해 드러난 그들의 삶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커다란 공백으로 남는다. 고국도 아니고 멀리 이국 타향에서 받는 설움이야말로 가장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주노동자의 문제가 우리 사회에 드러나기 시작한 시기는 지난 90년 이후부터다.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이하 ‘인권센터’)”가 낸 자료를 보면, 88년 서울올림픽은 한국이 세계 무대에 부상하게 된 계기였던 것 같다. 이 즈음, 아시아의 노동인력들이 석유 산유국으로 진출하였지만 오랜 중동전쟁으로 인해 노동인력의 수출 활로를 잃어버리기 시작하면서 한국으로 이주하는 아시아계 노동 인력들이 서서히 늘어났다고 밝히고 있다. 관광 비자로 입국하여 취업하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니까 이 시기는 외국인 이주노동자의 문제가 사회로 불거진 것이 아니라, 그 시작을 알리는 시기였던 것이다. 이 때를 시작으로 한다면 한국의 이주노동자 문제는 이제 막 10여 년을 지나온 셈이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으로 유입되면서 피해를 입은 사례는 부지기수다. 평균 500만원의 이주비(주1)를 지불하면서 한국으로 건너온 후, 산업재해를 당했으면서도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한 경우, 턱없이 부족한 월급, 이주노동자 절반 이상이 경험했다는 임금체불 등 심지어 먼 이국 땅에서 한 줌의 흙이 되어 고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다 있다. 합법적인 연수생조차도 월 16만원에 불과한 임금을 받았을 뿐이며, 이 임금의 절반은 적립금이라는 명목으로 중소기업중앙협의회에 바쳐야했다. 이탈 방지의 차원이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외국인 노동자들이 과연 인간의 취급을 받았을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양혜우 인권센터 소장의 말이다.

“이주노동자 인권의 문제의 핵심은 법과 제도의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의 외국인 노동 인력이 거의 40만명에 이르고 있는데, 대부분 단순노동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부는 단순노동력을 허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합법적인 노동자들이 아닙니다. 어찌 보면 상당히 기만적인 일이지요. 이 40만 명 중 약 8만 명 정도를 연수생이라는 이름으로 데려와서 고용하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불법체류자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법이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이들은 기본적인 노동의 권리마저 박탈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생기는 것은 모든 문제입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월급 못 받아서 노동부에 이를 고발하러 가면, 사업주가 출입국 관리소에 불법 체류자라고 신고합니다. 결국 그 자리에서 강제 출국을 당하게 되지요. 또 어떤 노동자는 한국 사람에게 구타를 당해서 경찰서에 갔더니, 경찰이 대충 조사만 끝내고 ”당신은 미등록 노동자이니 출입국 관리소에 가야 한다“며 끌고 가서 강제 출국을 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이 어떤 문제가 있어도 자기 문제를 하소연할 수가 없어요.”

그리니까,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80%는 불법자가 되는 셈이다. 그러니 그들의 생활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경찰이 ‘강제출국’을 명령하면 그렇게 따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는 우리나라 제도가 현실을 너무나 도외시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이 얼마나 기만적인가는 90년대 초를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현장에서는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고, 이런 필요성에 의해 외국인노동자의 유입이 묵인되었던 것이다. 그 다음, 그들을 합법적인 노동자로 인정하려다 보니, 모든 부대비용이 덩달아 올라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사용간접 비용 즉, 주택문제, 의료문제, 월급문제, 퇴직금 문제 등 정부가 정당한 대가를 해줘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오리발을 내밀고 있는 꼴이다.

외국인 이주노동자 문제는 한 두 가지의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 제도를 구비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한국의 사업주들의 인식을 바꾸는 일이다. 자신이 필요로 해서 고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과는 전혀 다른 대우를 하고 있다면, 아무리 훌륭한 제도를 가지고 있더라도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예전에 비해 사업주들의 구타와 협박이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은 존재한다.

인권센터는 바로 이렇게 차별 받는 외국인노동자들의 권리를 찾아주는 일을 한다. 그렇다고 지역의 관심사를 핵으로 하는 풀뿌리단체는 아니다. 인권센터의 역사는 이제 갓 1년을 넘겼다. 왜 인천으로 왔는지 궁금했다.

“저희 단체에서 일하는 상근자들은 인천에 아무런 지역적 토대가 없습니다. 수도권의 경우, 인천과 의정부가 외국인이주노동자가 많은데, 상근자들의 조건상 의정부로의 출근이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저도 서울에 살거든요. 또 몇 몇 후원자들도 있었습니다. 기왕이면, 인천이 의정부보다 큰 행정구역이기 때문에 외국인노동자들을 조직하고 함께 일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고 판단했고, 사회단체들과의 연대도 수월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역적인 토대를 갖고 있지 않지만, 인천에 거주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상담 같은 경우도 1/3에서 절반 정도가 인천에 거주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상징적인 의미로서 인천을 택했다는 양혜우 소장의 이야기다. 첫 삽을 뜬다는 생각으로 일을 하다보니, 특히 재정적인 어려움이 남다른 것 같았다. 양 소장이 건네준 회지를 들춰보니 그 동안 네 명의 상근자가 월평균 받아간 활동비는 140여 만원에 불과했다. 이를 네 사람으로 나누면 35만원 불과한 액수다. 재정은 곧 역량의 문제이기도 한데, 양 소장에게 어렵지 않냐고 넌지시 물었다.

“일단 이사회비로서 한 15-20%를 충당합니다. 나머지 80%는 일반 후원자들이죠. 사실, 매달 우리 단체가 200만원 정도의 적자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빚은 없구요. 안정적으로 들어오는 재정이 한 60% 정도 됩니다. 40% 재정확보가 아직 안되었구요. 사실 실무자들의 상황이 어려운 형편이죠. 상근은 4명이 합니다. 최근 들어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을 있는 창구가 마련되고 있다고 합니다만, 일단 정부지원을 받지 않더라도 스스로 운영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단체는 재정의 목적으로 프로젝트를 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돈 없이 살더라도 당분간은 정부의 지원을 받지 말자는 의견을 모았습니다. 곧, 제가 생각하는 경제적 자립은 ‘우리가 하는 일의 질로 승부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일을 보고 판단해서 마음이 동한다면, 충분히 후원회원에게 작지만 소중한 회비를 모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사실, 이런 고민은 올해부터 시작된 것이라서, 올 12월까지 재정을 꾸려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가고 이후에는 안정적인 구조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계획입니다.”

사실, 오래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치고 활동비를 제 때, 또는 제대로 받지 못한 경험을 한 번이라도 갖고 있지 않은 활동가는 없을 것이다. 열악한 조건임에도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념에 대한 신념, 이를 위한 실천, 그리고 열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더불어 그 일에 대한 신명이 없이는 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양혜우 소장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별하게 이주노동자 문제를 하려고 한 것은 아니구요, 저는 84학번인데, 저희 학번이 가졌던 사회적 고민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이런 사회적 의식에 눈을 뜰 기회가 없었습니다. 대학생활 때, 우연하게 선배의 요청으로 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하루 일당이 3,300원이었습니다.(85년) 그 당시에 친구 만나서 커피 마시고 점심 먹고 하면서 쓰는 돈이 5,000원을 넘었습니다. 당시 부모님께 받은 용돈이 한 달에 10만원이었는데, 공장에서 일하면서 받은 월급 8만5천 원보다 더 많았던 셈이죠. 하루 종일 일하고도 그 정도였습니다. 그 때,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가난이 개인적인 게으름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직접 현장에서 일하고 보니 우리 사회에 너무나 큰 구조적인 모순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그 다음부터 이 사회에는 내가 모르는 다른 것이 있겠다 싶어, 공부방 등을 통해 사회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런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이주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거죠.”

청년 전태일의 심정도 그랬는지 모른다. 그의 문제의식이 바로 외국인 노동자에게로 전이된 느낌이다. 이주노동자 문제로 인해 사회가 원하지 않는 또 다른 전태일을 양성한다면, 국제적인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가해자는 쉽게 잊을 수 있지만 피해자의 멍든 가슴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지금 한국의 자화상이 그러하다면, 그들의 노여움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일이다. 그들에게 선심을 베풀자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인권센터를 방문한 다음 날, 노동 분야 전문가 김진 변호사를 만났다. 김진 변호사의 입장도 단호하다.

“우선 연수생 제도를 폐지하고 모든 이주노동자들에게 합법적인 지위를 부여해야 합니다. 이런 다음 보충성과 평등대우가 필요하며, 사업장 이동권 보장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것은 노동자에게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겠죠. 또한 외국에서 한국으로 이주하는 경로는 아주 복잡한 루트를 거치게 되는데, 제가 파악하기로는 현지인까지 포함해 대략 9개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이 정도면 이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는 조건입니다. 따라서 취업알선은 공공기관이 맡아 처리해야 한다고 봅니다.”

양혜우 소장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들의 권리를 되찾아 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이 받은 혜택을 자국의 노동문제, 나아가 사회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실천하는 것을 희망하고 있다. 어느 시대에나 통하는 ‘서로 나누는 삶’이 되기 위한 인간관계의 회복이 이 운동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이 일을 하면서 한 동안, 저는 비정상적인 인간상이었습니다. 일밖에 몰랐던 일벌레였죠. 밤에 늦게 집에 가서 잠만 자고, 아침에 와서 일하고, 내가 뭘 원하는지, 내가 이주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런 것을 고민하지 못하고 기능적인 사건 해결을 위한 해결사 역할을 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내가 그들을 인간적으로 접근하고 관계를 맺었는가 하는 점에서는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적인 관계를 통해 내가 말하고자 했던 공동체 지원활동과 같은 지향점들이 없어지고 기능적인 일들만 했던 거죠. 그러다가 제가 어느 순간 이런 기능적인 일, 자기 개발이 없다면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계속해서 제게 요구하는 것이 늘어나고 저는 또 제가 해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늘어났었죠.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에 잠시 제 시간을 가졌던 때도 있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즐겁고 신나고 평생 할 수 있는 나의 과제가 될 수 있다면 평생 직업으로 하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양혜우 소장에게는 이주노동자 문제가 삶의 일부분이다. 스스로가 ‘집요한 성격’이라고 말할 정도로, 일에 대한 욕심이 많아 보인다. 그러나 이제 갓 1년을 넘긴 조직을 더 안정적으로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도 많다. 재정의 문제도 그러하지만, 무엇보다 인권센터의 활동상을 그려나가는 일이 시급하다. 외국인노동자의 의식 변화, 이를 통해 국내뿐만 아니라 현지에서 더불어 사는 활동이 병행되는 것이 양혜우 소장이 밝히는 활동의 상이다. 그런 활동이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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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소위, 브로커비로 통하는 이 검은 돈은 어느 나라에서 오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양혜우소장에 의하면,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상당액을 국가에서 부담하고 있다. 이는 국가정책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인데, 여타의 나라는 전액 사비부담으로 1,000만원이 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20만 명일 경우 1조원이 넘는 계산이 나오는데, 불합리한 브로커비를 없애는 것이 시급한 일이다
(2002년 시민자치정책센터 김현 운영위원 작성)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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