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활동가와의 만남 ③
대구 참여연대 정희성 간사와의 만남
이 호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1.
지역 시민운동단체에서 일하는 젊은 활동가들은 대체 어떤 계기와 경로로 시민운동에 발을 담글까? 과거와 같이 학생운동을 거쳐 시민운동으로 넘어오는 경우는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학생운동이 과거와 같은 활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 때문에 각 단체들에서는 활동가 재생산 구조가 사라졌다는 걱정을 많이 한다. 물론, 이러한 걱정 자체는 그다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학생운동 출신으로 새로운 활동가들을 영입하기보다는 새로운 조직화 사업을 통해 필요한 활동가들을 재생산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한 관악사회복지 이주희 간사의 경우 그러한 모범적인 사례 중 하나이다.
하지만, 지역사회에서 젊은이들을 조직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명분만으로는 새로운 활동가들에 대한 아쉬움을 달랠 수 없다. 최근에는 학생운동을 거치지 않은 이들이 새로운 직업 개념으로 시민사회단체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흔치 않게 발견된다. 이는 적은 월급과 힘겨운 노동을 사회적 가치 추구를 통해 보상받고자 하는 이들이, 많지는 않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대구에서 만난 참여연대의 정희성 간사는 약간 특이한 케이스로 시민운동에 발을 담 그기 시작했다.
정희성 간사는 주위의 누구도 시민사회단체와의 연계를 중재하지 않았지만, 자기 스스로 인터넷을 뒤져 대구 참여연대의 회원이 되었고, 지금은 상근자로 일하고 있다. 처음 정희성 간사를 소개한 분도 그러한 특이점 때문에 한 번 만나보면 좋겠다는 취지였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러한 특이점에 끌려 대구까지 가서 정희성 간사를 만나게 되었다.
2.
정희성 간사는 집이 경북 영천이다. 태어나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집을 떠나 생활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는 성격이었고, 다니던 학교(대구대)까지의 거리가 꽤 멀었지만, 자취나 하숙을 한 번도 고려해 본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대인관계도 소극적인 편이었는데, 대학에서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부터 성격이 외향적으로 많이 바뀐 편이란다. 정 간사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이 매우 외향적이라고 느꼈는데, 이는 사회생활을 통해 변화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대학에서는 사회복지를 전공하였다. 그러나 학교를 다니며 현장 실습도 해보고 복지기관에서 자원봉사 활동도 해보면서 자기와는 잘 맞지 않는다고 느끼게 되었다. 자기와 잘 맞지 않는다고 느낀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아직까지 사회복지 영역이 직업적인 면보다는 종교적 신념과 희생을 강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 간사가 주로 실습과 자원봉사를 한 곳이 종교복지시설이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더욱 많이 한 듯하다. 정 간사는 자기 자신의 행복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복지 기관들의 분위기는 이와는 전혀 달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졸업 후 복지기관에서 일하지 않았고, 일반 회사에 취직을 했다.
정희성 간사는 우리 나이로 30세이다. 그리고 대구참여연대에서 일한 지는 5개월 조금 넘었다. 군대를 가지 않은 여성의 대학 졸업 나이가 대체로 20대 중반인 점을 감안하면, 최소 5년 이상은 다른 곳에서 사회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대학 졸업 뒤 복지기관이 아닌 다른 곳에 취직을 했는데, 자세히 이야기 하지는 않지만, 한 곳에 오래 일한 것은 아닌 듯하다. 매우 다양한 일들을 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을 통해 이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정희성 간사는 학교 다닐 때에도 학생운동을 접한 적이 없다. 그리고 시민운동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 지금의 참여연대를 스스로 인터넷에서 찾아 회원이 되고 결국 상근자가 되기까지는 사연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 간사의 가족들은 모이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사회, 경제, 정치, 문화 등도 자주 언급되는 대화 주제들이다. 그러던 중 노무현 전대통령이 돌아가신 것이 정 간사를 포함한 가족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사건으로 다가왔다. 가족들과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자기가 이런 생각과 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단 한 번도 무언가 사회적인 실천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뭔가 적은 것이라도 실천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자기가 참여할 수 있는 조그만 일거리라도 찾기 위해 시민사회단체들을 인터넷으로 검색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발견한 것이 대구참여연대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회원으로 가입했다.
참여연대에 회원으로 가입한 후에도 몇 달 동안은 회사에 별 일 없이 다녔다. 그러던 중 친구 한 명으로부터 “왜 20대는 정치에 관심이 없을거라고 생각하죠?”라는 질문으로 받았다. 사실, 대구의 20대는 정말 정치에 관심이 . 그리고 정 간사도 그런 젊은이들 중 한 명이었다. 대구라는 지역이 상당히 보수적인 정치성향을 갖고 있는 듯이 나타나는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이라고 정 간사는 해석하고 있다. 즉, 대구의 젊은이들은 다른 지역의 젊은이들보다 보수적이지만은 않다. 다만, 이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선거결과는 보수적인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될 뿐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정 간사는 이 질문을 받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내가 지금 하는 일이 행복한가? 아니면 지금 하는 일을 평생 즐겁게 하면서 살 수 있는 그런 일인가” 결국 정 간사는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애초에 직장을 그만 둔 후에는 당분간 쉬고자 했다. 그러나 며칠 쉰 후 참여연대 홈페이지에서 간사를 공채한다는 홍보를 접했다. 이 홍보를 접하자 정 간사는 바로 이 일이 내가 찾던 일이라 여겼다. 회사를 그만 두자 바로 참여연대에서 간사를 공채한다는 사실 자체가 자신에게는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물론, 공채에 응모했다고 해서 바로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최종 면접에 3명이 올라왔다. 경쟁률이 3:1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 간사는 당당히 합격되었다. 이렇듯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합격된 이유에 대해 정 간사는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를 이력서와 면접시 밝힌 것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내용은 “나는 당연히 합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이력서를 이렇게 쉽게 쓴 적이 없었다. 내가 이곳에서 일하는 것은 운명이고 필연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대구 참여연대 면접관이라 하더라도 이런 이력서와 대답을 듣고도 합격 통보를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래서 지금 행복하냐고 묻자, “당연히 행복하다”는 답이 돌아온다. 물론, 아직은 대구 참여연대에서 일한 지 6개월이 채 안된 정도니 행복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민운동 경험이 그만큼 적으니 함께 일하는 선배들도 아직은 정 간사에게 큰 짐을 지우지는 않은 것도 한 요인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행복을 찾아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운명처럼 참여연대에 입사한 정 간사의 입장에서는 이런 행복이 당분간은 지속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특히나 시민운동을 자기희생으로 여기지 않는 자세는 더욱 그러한 믿음을 갖게 한다.
나도 한 때는 대학 졸업 후 빈민지역으로 들어가 도시빈민운동에 투신한 사실에 대해 ‘투신=희생’으로 연결시킨 적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은 그 모든 선택이 희생이 아닌 나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는 길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아직 시민운동 경력 1년도 안 된 사람으로부터 내가 몇 년의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된 사실을 듣게 될 줄이야...
3.
젊은 활동가들을 만나면서 반복해서 하는 질문이지만, 후배 활동가들이 선배 활동가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끼칠 수 있는 영향 중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는 기존의 활동에 대해 신선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일하는 곳 또는 선배들로부터 어떤 문제점들이 느껴지는가 하는 질문을 마찬가지로 던졌다. 아직 그런 문제점을 많이 느끼지는 않고 있단다. 그래도 몇 가지에 대해서는 나름 날카로운 지적을 했다.
첫 번째 문제제기는, 사람들이 시간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정 간사는 소식지 발간을 실무적으로 맡고 있는데, 마감 약속을 잘 안 지키고 마감 직전에 원고를 쓸 수 없다는 연락을 받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물론, 참여연대의 특성상 돌발적인 사건・사고가 많이 생기기 때문에 고정된 스케줄을 지키기 어렵다는 점은 잘 이해한다고 한다. 하지만 솔직히, 이는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전통적으로 드러나는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인 편이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는, 이런 문제제기가 꼭 일의 특성 때문이라고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 간사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도 비교적 너그러운 자세를 보여주고 있었다.
두 번째는 참여연대에서 상근을 하면서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범위가 매우 협소하다는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참여연대에 들어와 보니, 활동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학연 등의 개인적 인맥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소식지를 위해 한 회원을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그 회원도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무슨 시민단체가 이렇게 학연으로 엮여져 있지?” 정 간사 스스로도 이는 좀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참여연대 회원들의 경우에도 대부분 상근자나 임원, 기존 회원들의 추천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 대부분이 주로 학연 등 개인적 인맥으로 엮여있는 편이다. 그만큼 참여연대에 참여하는 시민의 범주가 협소한 것이다. 정 간사는 이러한 인맥의 구성은 참여연대라는 시민단체를 일반 시민들의 정서에 어둡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걱정하고 있었다.
정희성 간사도 처음 회원으로 가입했을 때 회원활동에도 참여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후원회원이 되어주셔서 고맙다는 연락 이외에는 무엇을 함께 하자는 연락을 전혀 받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참여연대에서 상근을 시작하면서 회원들에게 문자를 여러 번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회원들끼리 만나서 함께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은 아직까지 잘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문제는 단순히 정희성 간사를 비롯해 참여연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문제라 할 수만은 없을 듯하다. 참여연대라는 시민단체의 활동 방식 자체가 일반 회원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일반적으로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듯 대구 참여연대가 일반 회원들의 참여를 고려하지 않는 것은 문제이지만, 워낙 적은 인원으로 다양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회원들의 참여를 고려할 만한 여유를 갖지 못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이 정 간사의 상황인식이다.
이에 비해, 대구 참여연대 소속이기는 하지만, 동구 주민회의 경우에는 이와 다른 형태로 모임이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정작 정 간사는 그런 모임과 분위기가 아직은 낯설어 긴밀히 결합할 엄두가 나지 않는단다. 동구 주민회는 주로 인근 지역 주민들로 모임이 구성되어 있는데, 자신은 결혼도 안하는 등으로 이 분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기가 어렵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선배들에게 그리 큰 불만은 없다고 한다. 그것은 지금 함께 일하는 선배들이 전에 자신이 일했던 곳의 그 어느 선배들보다도 긍정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내가 이 사람들과 일하는 것보다 더 좋은 사람들과 일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 정 간사의 솔직한 생각이다. 그래서 지금이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정 간사 입장에서는 오히려 선배들이 존경스러운데, 선배들 하는 일을 아직 전체적으로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이런 곳에서 일하려면 자신도 멀티 플레이어(multi-player)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단다. 자신에게는 아직 그런 다양한 일들을 맡기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사람이 적기 때문에 한 사람이 이 일 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4.
30대 후반을 넘어선 선배들로부터 그 경험이나 정보를 들을 때면 그것들이 새롭고 즐거울 때도 있다. 정 간사는 이러한 선배들의 운동역사에 대해 일정 정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사회운동, 시민운동과 무관하게 살아온 자신으로서는 이들의 경험과 이야기를 잘 따라가지 못할 때가 많고 그래서 편하지 않을 때도 많다. 이들은 정 간사에게 동료라기보다는 어른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서 정 간사는 선배들로부터 무조건 배우려고만 하지는 않는다.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운동역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선배들이 해왔던 것에 집착하거나 그 과정을 다 알아야 한다는 것은 나에게 부담이고, 이에 집착하면 자신이 행복하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때는 선배들과 인식의 차이로 갈등이 발생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이 분들이 일반 시민들의 정서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경우 선배들은 이제 갓 입문한 나의 의견보다는 자신들의 의견을 밀어붙이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정 간사는 학생때부터 아르바이트 등 여러 기업문화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는데, 다른 직장보다 이 곳에서는 선배와 평등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고, 자신에게 의견진술의 기회가 훨씬 많이 제공되는 편이다. 그래서 이에 대해 심각한 불만을 갖고 있지는 않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무서운 적은 관성에 젖는 것이다. 사회를 끊임없이 변화시키려는 이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새로운 것보다는 자기의 지나간 경험을 더욱 중요시 하는 순간 관성에 젖어들기 쉽다. 그 순간 이 사람의 운동은 그 효용을 잃게 된다. 그런 점에서도 정희성 간사에게 장점이 발견된다. 자신은 앞으로도 계속 시민운동을 할 생각이지만, 현재 일하는 단체에서만 계속 일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럴 경우 자신이 타성에 젖을 것 같기 때문이란다.
5.
자기와 다른 삶의 역사와 경험을 지닌 사람들 속에서 지내는 것이 답답하지는 않은지 물어보았다. 아직은 배우는 단계이기 때문에 답답함을 느끼지는 않지만, 비슷한 세대의 사람들과 좀 더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은 생각은 있단다. 얼마 전 대구의 다른 단체에서 일하는 비슷한 또래의 간사를 만났을 때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만날 때와는 다른 반가움을 느꼈다고 한다. 이들과는 아무래도 말이 더 잘 통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정 간사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이음에 대한 기대를 묻는 질문에도 이와 비슷한 대답이 나왔다. 워크숍 등을 통해 또래의 사람들과 만나 함께 공부하고 함께 놀고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교육을 한답시고 일방적으로 강사의 이야기를 들으라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보다는 쌍방향 소통이 좋고, 강의를 하더라도 일반적인 이야기보다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들을 재미있고 쉽게 이야기하면 좋겠다고 한다. 지난 해 초보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들의 평가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욕구는 정 간사 개인의 생각만은 아닌 듯하다.
그러면 외부에서 워크숍 또는 교육 등이 있다는 홍보는 잘 접하고 있는 편인가? 다행히 대구참여연대에서는 공적인 일에 대해서는 단체 공식 이메일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외부의 토론회 등에도 아직은 사무처장이 자기를 챙겨서 데리고 다니는 편이라고 한다. 따라서 자기가 외부에서 이메일 등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6.
이음에 대해서는 풀뿌리 좋은 정치 네트워크 모임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고, 그 후 블로그에도 몇 번 들어와 본적이 있다고 한다. 비록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전체적인 이미지는 좋고 시민들로부터 운동을 출발하려고 노력한다는 느낌을 받고 있단다. 정확하게 본 듯하다. 하지만, 그래도 뭔가 허전한 점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 사회의 50대 이상의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내용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들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지 않느냐는 문제제기이다.
이런, 나도 이제 50대가 다 되어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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