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제 작성을 통한 지속가능한 마을만들기와
지방의제의 역할
이 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1. 지속가능한 마을만들기
1) 마을만들기의 의의
마을만들기라는 용어가 우리 사회에 처음 도입된 이후에 그 용어에 대한 논란이 오랜 동안 지속되었다. 애초 이 용어는 일본의 ‘마찌츠꾸리’라는 용어를 직역하면서 소개되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마을만들기라 할 수 있는 활동들이 여러 지역에서 전개되고 있었다. 특히, YMCA의 경우에는 마을만들기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전부터 ‘사회만들기’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마을만들기라는 용어가 사용된 이후에도 이 용어와 관련한 논란이 얼마간 있어왔다. 예를 들면, ‘만들기’라는 용어가 없던 것을 새로 만든다는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서 마을‘만들기’보다는 마을‘이루기’ 또는 마을‘가꾸기’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마을’이라는 용어의 불분명성을 지적하며 우리에게 더욱 익숙한 ‘동네 만들기’ 또는 ‘동네 가꾸기’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렇듯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던 이들로부터 제기되는 다양한 개념적 용어들은 결국 ‘마을만들기’로 수렴되고 있다.
마을만들기라는 용어로 자연스런 합의과정을 거치는 데에는 현상적으로 많은 이들이 이미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인 측면도 크지만, 그보다는 마을만들기가 그 지향하고자 하는 바를 비교적 가장 잘 나타내주기 때문인 측면이 크다. 마을은 ‘지역(area region)’이라는 물리적 개념과는 다른 공동체적 개념과 범주를 나타낸다. 물론, ‘동네’라는 용어도 마을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공동체적 개념과 범주를 의미한다는 차원에서는 마을이 보다 적절하다. 즉, 마을은 물리적으로 읍・면・동이나 통・반, 면・리 등으로 구분되는 범주를 지칭하기보다는 ‘이웃’, ‘우리 마을 사람’이라는 공동의 정체성을 갖는 범주로 구분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도시는 그러한 공동체를 파괴하면서 설립되었으므로 마을이 애초부터 있지 않았고, 농촌 등의 촌락에서도 과거와 같은 공동체가 이미 다 파괴되었기 때문에 마을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을만들기는 자신들이 사는 지역 내의 환경을 개선하거나 물리적인 시설 몇 가지를 만드는 차원이 아닌, 공동체로서의 마을을 만들겠다는 지향을 갖는 실천활동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마을만들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체로서의 마을을 만들어 갈 주체가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마을만들기는 행정 또는 전문가들에 의해 수행되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를 누군가가 대신 만들어 줄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마을만들기의 핵심이 무엇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개선 또는 설치할 것인가보다 그 주체를 조직하고 형성함으로써 공동체인 ‘마을’을 형성하는 것에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마을만들기는 여타 지역사회운동 중에서도 몇 가지 긍정적 특징을 갖는다. 그것은 첫째, 마을에 동참하고자 하는 주민 주체의 형성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지역 풀뿌리운동의 원칙과 방식에 충실한 활동이라는 것이다. 둘째, 마을만들기는 주민들이 스스로 자신들이 살고 싶은 마을을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주민들 스스로가 대안을 만들어 가는 주민자치운동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셋째, 마을만들기는 주민들이 스스로 자신들이 살고 싶은 마을 모습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 참여하는 주민들에 대한 민주시민 교육・훈련의 장이 된다는 것이다. 넷째, 주민들이 스스로 마을을 만들어 간다고 하는 것은 마을의 정치적 주도권을 주민들이 되찾아온다는 의미를 지니므로, 지역정치운동으로서의 특징도 갖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동체로서의 마을이라는 것이 한두 가지 활동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실천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이 중 특히 마지막으로 언급한 특징은 지방의제가 표방하는 지속가능한 사회발전의 핵심 요소와도 연결된다. 사회의 지속가능성은 단지 사회의 생태적 지탱가능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실천할 주체 즉 시민들의 지속가능한 실천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 지속가능한 마을만들기
실천적 경험을 통해서 살펴보면, 마을만들기는 주로 개별 사안을 통해 이루어진다. 한 평 공원을 만든다던지, 화단 및 정원을 만들거나 가로를 정비한다던지, 놀이터의 환경을 개선한다던지 등등의 사안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을만들기에 있어 이러한 개별 사안들의 성공적 추진과 더불어 그 사안을 통해 공동체로서의 마을을 만들기 위한 지속적인 고민들이 함께 이루어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면, 행정의 예산과 더불어 전문가가 투입됨으로써 성공적인 마을만들기의 과정과 성과를 만든 방배동 양지공원의 사례와 이해관계가 있는 주민들이 처음부터 주체로 나서 어린이 놀이터 환경개선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갈곡리 어린이 놀이터 사례는 많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양지공원의 경우에는, 그 과정과 성과가 뛰어나지만, 실상 그 최종적 성과는 주민들의 참여로 ‘멋진’ 공원을 만들었다는 것에 집중된다. 하지만, 갈곡리의 경우에는 어린이 놀이터가 주민들의 참여로 성공적 개선을 달성했다는 것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갈곡리의 경우, 마을만들기의 적극적 주체로 참여했던 주민들이 ‘갈곡리를 사랑하는 주민모임’을 구성하였고, 어린이 놀이터의 환경개선 후 그 공간에서 주민들의 공동체 형성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하였다. 또한 이에 그치지 않고 이들은 ‘녹색가게’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보다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이에 결합하도록 견인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들은 지금도 모임을 하면서 또 다른 일꺼리를 모색하고 있다. 즉, 그 성과가 아직도 만들어 지고 있다는 것이다.
공동체로서의 마을은 특정한 시설을 건립하거나 특정한 환경개선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한다고 해서 바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전자의 양지공원 사례는 성공적 공원만들기로서의 의의는 충분할 수 있지만, 진정한 마을만들기로서의 의의는 ‘하다 만 것’과 같게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반면 후자의 갈곡리 사례는 어린이 놀이터 환경개선사업을 통해 지속적인 마을만들기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는 마을만들기 사례의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대구 삼덕동의 담장허물기 사업에서도 잘 알 수 있다. 흔히들, 이 사례는 담장을 허물고 주차공간을 마련함으로써 주민들의 갈등을 해결한 사례로 인식하곤 하지만, 이 사례가 마을만들기로서 갖는 의의는 담장을 허물고 난 후 그 공간에서 주민들의 공동체 형성을 위한 다양한 사업들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다른 형태의 사례들에 대해 마을만들기 사업으로서 각기 상이한 평가를 하게 한 가장 큰 변수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업에 대한 주민주체의 주도성 정도에서 찾을 수 있다. 양지공원의 경우 주민들의 참여정도는 공원을 어떻게 만들까 하는 계획 과정에서의 참여 정도로 평가할 수 있겠다. 주민들의 의견을 전문가가 수렴하여 공원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갈곡리의 경우에는 주민들 스스로가 처음부터 문제를 제기하고 다른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스스로 어린이 놀이터 환경을 개선하는 등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러한 차이는 해당 사안의 성공에 따른 성과를 자신의 것으로 수용하는 데에도 큰 차이를 보인다. 양지공원의 경우에는 ‘내가 원하는 것들이 모두 수렴되어 공원이 만들어졌다’는 것이지만, 갈곡리의 경우에는 ‘내가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만들어 진 공원과 어린이 놀이터를 관리하는 데에서도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전자는 자신들이 원하는 공원이 만들어 짐으로써 만족을 느끼는 것이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자신들이 직접 만들었기 때문에 그 공원을 어떻게 운영하고 활용할 지에 대한 욕구로까지 발전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 것이다.
이는 마을만들기에 있어서 지속가능성의 한 측면이라 할 수 있다.
2. 마을의제의 의미와 의의 및 추진
1) 마을의제의 의미 및 의의
앞서, ‘마을’은 현대 산업사회에서 파괴되거나 그 구속력이 약화되었기 때문에 다시 만들어 가야 할 것으로 설명하였다. 따라서 마을의제라고 하는 것은 이미 형성된 마을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 실체가 명확치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마을의제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의미는 보통, 구체적인 욕구・이해(利害)의 공감대가 가능한 좁은 범주의 지역주민들이 직접 만들고 실천하는 의제라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기존의 지방의제가 제도적으로는 기초지방자치단체 범주에서 작성되고 실천되는데, 그 범주가 주민들의 공통된 이해와 욕구의 공감대로 모아지기에 너무 넓기 때문에 구체적인 주민들의 실천으로 연결되기가 힘들다는 문제제기로부터 마을의제가 도출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천적 문제제기와 마을의제의 개념을 적절히 결합시키면, 실상 마을의제라고 하는 것도 마을을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그 의의를 상정하는 것이 적절하다. 즉, 마을의제 자체는 의제를 통해 실질적인 마을을 만들고 이를 강화해 나간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을의제는 마을을 만들기 위한 의제를 주민들의 합의를 통해 만들어 가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마을의제는 마을만들기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마을만들기는 대체로 개별 사안 중심으로 진행된다. 물론,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개별 사안으로 시작된 마을만들기가 지속성을 띠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마을만들기의 지속성은 그 외에도 마을을 만드는 과정에 다양한 사안들이 순차적 또는 병행적으로 배치됨으로써 다양한 주민들이 참여하는 것으로도 나타날 필요도 있다. 즉, 단일한 사안이 아니라 해당 지역주민들이 느끼는 다양한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서 주민 친화적 마을환경을 바꾸어 나가고, 이를 통해 공동체로서의 마을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전체적으로 지역사회의 비전 또는 마을의 비전을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수립하고 실천해 나가는 과정과도 일치한다.
이렇듯 마을의제를 합의하고 실천해 나간다고 하는 것은 첫째 주민들이 자신들의 이해와 욕구를 표출함으로써 스스로 마을을 만들어 가는 과정과 비전을 상정한다는 의의가 있다. 두 번째 의의로는 지방의제에 비해 구체적인 욕구의 공감대를 이루는 주민들을 주체로 한다는 점에서 실천 과정에 참여하도록 조직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것이다. 세 번째 의의로는 주민들 스스로 도출한 의제들을 실천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마을만들기 사업이 실천되는 것을 의미하고, 그러한 마을만들기가 다양한 의제의 내용에 근거하여 지속적으로 다양한 주민 주체들에 의해 다양하게 추진될 근거를 마련한다는 점이다. 특히, 세 번째의 의의는 앞서 언급한 단일 사안에 따른 마을만들기의 지속가능성과 더불어 주민들이 바라는 마을의 모습을 다양한 사안과 주제로 만들어 간다는 지속가능성의 의미를 지닌다.
2) 마을의제 작성
지방의제 차원에서 마을의제가 강조되는 이유는 주민들의 직접 참여를 통한 의제작성과 실천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마을의제는 주민들의 직접 참여를 가장 핵심으로 여긴다. 그런데, 주민들의 직접 참여를 위해서는 주민들의 구체적인 생활상의 이해와 욕구로부터 출발되어야 한다. 문제는 주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구체적인 이해와 욕구를 어떻게 드러내도록 하느냐 이다.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실상, 주민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곳을 중심으로 한 욕구들을 가지고 있다. 그 욕구의 내용은 물리적 환경의 문제에서부터 이웃들과의 긴밀한 관계에 대한 것까지 다양하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아이들 통학로의 안전성에 대한 욕구, 녹지 공간 및 쉼터에 대한 욕구, 쓰레기 처리 및 위생에 관한 욕구 등에서부터 친구를 사귀고 싶은 욕구, 육아문제에 있어서 동네 선배 엄마들의 자문을 구하고 싶은 욕구 등 매우 다양한 욕구들을 품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욕구를 표출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의 욕구 자체에 대해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할 뿐이다. 따라서 마을의제를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이들이 스스로의 욕구를 표출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도 개별적으로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욕구를 표출토록 함으로써 욕구의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욕구 표출과 공감대의 형성을 위해 다양한 시도가 실험될 필요가 있는데, 지금까지 시도된 것 중 그래도 가장 성공적이라 여겨지는 것 중 한 가지는 YMCA를 중심으로 시도되고 있는 ‘동네 한 바퀴’운동이다. 안양 YMCA에서 처음 시도되었고 광주 YMCA가 광주북구에서 ‘좋은 동네 시민대학’이란 이름으로 성공을 거두었으며, 최근에는 순천 YMCA가 주민자치위원들과 함께 비교적 성공적 ‘동네 한 바퀴’ 운동을 시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시도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주민들이 자신들이 살아가는 동네를 관찰적으로 투어(tour) 함으로써 평소 생각하고 있던 문제점 또는 새롭게 자신들이 살아가는 동네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그러한 발견이 개인적인 것으로 그치지 않고 함께 참여한 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것도 중요한 요인이다.
물론, 이는 전혀 새로운 시도라 볼 수 없다. 마을만들기에서 주로 사용하는 기법들에도 이러한 방식들이 포함되어 있다. 광주 북구의 ‘좋은 동네 시민대학’을 주도했던 최봉익 선생이 설명하고 있는 ‘동네 한 바퀴’의 방법을 설명하면, 이 활동방식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듯하여 그대로 소개하고자 한다.
“학습 담당자는 강좌시작 1주전까지 해당 마을을 여러 차례 미리 돌아본다. 낮에도 밤에도 돌아본다. 해질 무렵과 새벽녘에도 동네를 탐사한다. 마을을 돌면서 그때마다 마을을 카메라에 담는다. 마을의 특성, 전통가치, 마을의 역사와 문화도 사전에 파악하고 강좌에 나선다. ‘다함께 돌자 동네 한 바퀴’ 강좌는 학생뿐만 아니라 어린이, 노인, 장애우도 함께 한다. 모두 함께 손잡고 이야기 나누면서 밀어주고 끌면서 마을의 골목을 누빈다. 함께 돌면서 마을의 주요건물, 나무와 숲, 놀이터, 교차로, 건널목, 골목풍경, 건물 벽과 지붕의 색깔, 담장, 거리의 간판을 새로운 시각으로 살펴본다. 함께 마을을 돌면서 만나는 마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표정을 살펴본다. 함께 마을을 돌면서 우리 마을의 앞과 뒤, 마을의 동서남북의 방향을 확인한다. 함께 마을을 돌면서 우리 마을의 나무와 숲의 건강상태를 파악한다. 노인과 장애우와 함께 마을의 교차로에서 건널목을 건너면서 또 건물을 오르면서 이들을 배려했는지 노인과 장애우 입장에서 살펴본다. 어린이들과 함께 손잡고 동네를 돌면서 내가 자라고 우리 동네가 함께 자란다는 것을 생각한다. 어린이와 함께 도는 동네 한 바퀴는 어린이들에게 고향을 만들어준다.
‘다함께 돌자 동네 한 바퀴’는 모두가 함께 하는 ‘우리의식’ 우리 동네를 위해 일하는 ‘역할의식’ 우리 마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나무와 숲과 흐르는 물과 날아다니는 까치에 이르기까지 우리 마을 생명체는 모두 소중한 관계라는 ‘상호의존의식’을 갖는다. 모두가 함께 처음 해 보는 동네 한 바퀴지만 이번 강좌가 계기가 되어 앞으로 마을 자체의 계속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마을의 기본적인 통계를 알아보고, 우리 마을의 전통문화를 살펴보고, 우리 마을의 깊은 역사를 알아보고, 우리 마을의 과거-현재-미래의 모습을 찾아보고, 더 나아가 우리 마을에 옛날에는 있었는데, 오늘날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며, 우리 마을경관 중에서 마을이 발전적으로 관계를 재형성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우리 마을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 재정립해야할 것은 무엇이며, 우리 마을의 공동체성을 높여갈 수 있는 방안과 그 해로운 요소에 대한 건설적인 대안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새롭게 마을학습동아리를 만드는 계기를 준다.”(최봉익, “마을만들기와 마을일꾼”, 안양 YMCA에서 발표한 발제문 중)
이렇게 주민들이 함께 동네를 돌아보면서, 개선하고 싶은 것, 새로 만들고 싶은 것, 다시 살리고 싶은 마을의 역사 및 정체성 등등을 함께 이야기하면서 모아진 내용들은 그대로 마을의제의 내용으로 정리될 수 있다. 즉, 주민들이 동네를 투어 한 이후에 쏟아 붓고 또한 공감대를 이룬 내용들을 체계적으로 묶기만 하면 주민들에 의해 작성된 훌륭한 마을의제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이 마을의제는 바로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작성한 마을의 발전 비전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런 과정을 통해 작성된 마을의제의 우선순위를 참여한 주민들과 함께 정해 하나씩 실천하는 것은 단순히 개별 사안으로 마을만들기를 실천하는 것과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즉, 주민들이 수립한 마을의 장기발전 전략 하에서 그것을 하나씩 실천해 나가는 마을비전 만들기, 마을 전망 실천하기 등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3. 지속가능한 마을만들기를 위한 (기초)지방의제의 역할
앞서 마을만들기와 관련하여 지속가능성의 두 가지 측면을 각각 언급하였다. 첫째는 특정한 사안을 해소하기 위해 시작된 마을만들기의 경우, 해당 사안을 해소한 이후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주체들이 마을 만드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기획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마을의제를 통해 동네의 다양한 사안들을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하나씩 실천・해소하는 과정을 밟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마을의제와 관련하여서는 특히 후자의 지속가능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지방의제 실천기구는 지역의 민과 관, 기업이 모여 지속가능한 지역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 이 지방의제는 그 최소 단위가 지방자치제의 최소 단위인 기초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의 기초지방자치단체 범위는 너무 넓다. 지리적으로도 그렇고 인구 면에서도 그렇다. 따라서 지방의제의 위원으로 시민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방의제의 작성에서부터 실천에 이르기까지 일반 시민들의 참여가 부족한 편이다. 그런 차원에서 지방의제에서도 몇 년 전부터 마을의제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으나, 제대로 실천되고 있다고 보기 힘든 상황이다. 그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고, 지방의제가 일반 시민들의 생활 현장에 내려가서 그들의 생활 속에서 마을의제를 작성하기 위해 광주 북구의 ‘좋은 동네 시민대학’이나 순천 YMCA가 주민자치위원회와 함께 추진하는 ‘동네 한 바퀴’ 활동 등을 참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물론, 지방의제 실천기구에서 주도한 프로그램에 주민들의 참여를 조직하겠다는 시도는 그리 성공을 거두지 못한 편이다. 따라서 일정한 조직적 역량과 실천의 의지를 갖고 있는 주민조직과 파트너십을 이루는 것이 현실적으로 타당한 방법인데, 그런 점에서 각 동마다 조직되어 있는 주민자치위원회는 이 사업의 파트너로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 만하다. 물론, 주민자치위원회 그 자체가 해당 지역의 주민 대표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프로그램의 참여 범위을 주민자치위원회로 제한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주민자치위원회를 중심으로 통장과 반장, 각 자생조직들, 그리고 지역사회 활동에 관심이 있는 일반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적절할 수 있다. 특히, 주민자치위원회 등의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활동 경험들은 이 프로그램의 주체로서 그렇게 잘못된 선택이 아닐 수 있다.
예를 들면, 광주 북구 또는 순천에서의 ‘동네 한 바퀴’ 활동은 주로 주민자치위원회를 중심으로 그 외에 다른 주민들이 참여하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이들은 주민자치위원회와 함께 일단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그 성과로 ‘동네 한 바퀴’를 통한 다양한 마을 실천꺼리들을 내왔다. 광주 YMCA ‘좋은 동네 시민대학’과 안양 YMCA가 안양시에서 추진을 목표로 작성한 프로그램의 예를 살펴보면 그 프로그램의 구체적 내용들을 알 수 있다1).
<좋은 동네 시민대학 프로그램> |
<안양 YMCA에서 기획한 프로그램> | ||
1강 |
Ice Breaking |
입학식 |
마을로의 초대 |
입학식 |
마음열기 | ||
좋은 동네 만들기와 주민자치센터 |
입학식 | ||
다과회 | |||
2강 (선택과목) |
외국의 마을만들기 사례 |
2강 |
주민자치와 마을공동체 이루기 |
선진지 견학 | |||
3강 |
다함께 돌자 동네 한 바퀴 (우리 동네 이야기) |
3강 |
동네 한 바퀴와 우리 동네 알기 |
우리 동네 디자인하기 | |||
4강 |
우리 동네 디자인하기 |
4강 |
우리 마을 우리가 바꾸자 |
좋은 동네를 위한 기획과 실무 | |||
5강 |
무엇을 함께 할까? |
5강 |
주민자치와 안양의 미래 |
마을의 실천과제 선정 | |||
수료식 | |||
후속모임/다과회 | |||
6강 |
변화추진자(골목대장)의 전략과 역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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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료식 및 다과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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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동네 시민대학 프로그램은 광주YMCA 좋은동네 시민대학에서 발간한 자료집 「아름다움 마을, 좋은동네만들기」에서, 안양YMCA 기획안은 안양YMCA 좋은동네이루기 위원회에서 작성한 “좋은 마을 자치대학 추진 기획(안)”에서 각각 발췌하였음 |
이러한 프로그램은 또 하나의 일회적 교육 프로그램으로 그칠 위험이 높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을 단순히 교육 프로그램으로 상정하지 않고, ‘동네 한 바퀴’를 통해 수렴된 주민들의 의견을 마을의제로 정립하는 데에까지 나아갈 필요가 있다. 즉, 당장 실천할 수 없는 ‘꺼리’라 하더라도, 마을의제로 정립한 후 이를 지속적인 실천꺼리로 상정함으로써 지속적인 주민참여와 마을만들기 ‘꺼리’가 만들어 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일회적 프로그램으로 마을의 장기발전 비전인 마을의제가 충분히 작성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동네의 특정 부분만을 살펴보고 그에 근거하여 마을의제를 작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작성된 마을의제는 그것이 비록 마을을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일부분만을 포함하고 있다 하더라도, 주민들에 의해 설정되고 지속적으로 실천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깊다. 현실적 역량이 가능하다면, 동네의 다양한 부분들을 투어하고 문제점 등을 찾아내는 작업을 여러 차례 또는 여러 집단이 역할을 분담하여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더욱 바람직한 마을 비전이 만들어 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다 하더라도, 개별 사안별로 마을만들기를 추진하는 단편적 사업보다는 마을의 비전을 창출한다는 면에서나 주민들의 지속적 참여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보다 바람직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마을의제의 작성과 지방의제의 역할 등을 명료화하기 위해 간단한 도표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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