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초록’을 ‘상상’하는 아줌마들
글을 시작하기 전에..
이 글과 같이 한 사람을 인터뷰하여 한 조직을 소개/분석하는 글들은 자칫 한 조직의 성공과 실패의 과정과 원인을 한 두사람의 활동가에게 귀착시키는 듯한 오해를 불러 일으키곤 한다. 그런 점에서 이 글 역시 그와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실상, <초록상상>의 오늘이 장이정수 국장 개인의 능력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아래의 본문이 그러한 느낌을 강하게 갖도록 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 글이 지니는 한계일 수 있겠다. 즉, 이 글은 <초록상상>을 가능한 객관적으로 조사/분석했다기보다는, 장이정수라는 사람을 통해, <초록상상>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보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여 읽어주시길...
만남
얼마 전 <초록상상>의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장이정수씨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새로운 운영위원으로 추천되었다. 그래서 직접 전화를 걸어 이러한 추천이 있었으니 승낙해 달라는 청을 하였다. 솔직히 <초록상상> 이라는 이름은 많이 들어본 것 같았지만 ‘장이정수’라는 이름은 낯설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청을 하였다. 그와 더불어 “우리 운영위원회는 단순히 의결기능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집행기능까지 합니다”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냥 이름만 빌려달라는 의미가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반응은 간단했다. “제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음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으니 참여해야 겠지요”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를 안다고 했다. 이럴 때 제일 난감하다. 나는 잘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전화를 하기 전에 초록상상 홈페이지를 인터넷에서 열심히 찾아봤다. 그런데, 홈페이지는 찾을 수 없었고 달랑 네이버에 까페 하나를 개설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곳에 올라와 있는 초록상상 회원들의 글들을 읽고 있자니, 그 정감어린 마음들이 느껴졌고 덩달아 내 마음에도 훈훈한 바람이 느껴졌다. 사실, 나는 지역의 풀뿌리조직 중에서 특별히 편애하는 형태가 있는데, 그것은 <초록상상>과 같은 형태의 자발적 아줌마 모임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장이정수 국장과 전화통화를 한 이후 우연찮게 풀뿌리운동을 하는 활동가들과의 대화 속에서 그 이름을 자주 듣게 되었다. 이상한 일이라 생각했지만,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었다. 그것은 내가 주로 만나는 사람들이 풀뿌리운동을 하는 사람들이고, 또 사람들과 자주 하는 이야기의 주제 역시 풀뿌리운동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전에도 이 이름을 자주 들었겠지만, 구체적으로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기억에 남지 않았다가, 우리 운영위원으로 영입되면서 그 이름이 각인되어 새삼스럽게 그 이름이 자주 거론되었다고 느낀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꼭 한번 <초록상상>을 방문하고 싶었고, 거기에서 하는 일들에 대해 소상히 듣고 싶었다. 그래서 약속을 잡고 머나먼(?) 중랑구 상봉동까지 장이정수 국장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났다.
사무실을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장이정수 국장이 이메일로 알려준 대로 길을 걸으니 눈 앞에 커다랗게 <초록상상>이라는 간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사무실은 그리 넓지 않았다. 사무실이라기보다는 조그만 원룸에 들어선 듯했다. 하지만, 사무실 군데군데에 <초록상상>에 참여하시는 동네 아줌마들과 그 곳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흔적들이 진하게 남아있었고, 그 흔적들이 무척 정겨웠다. 특히, 환히 웃으며 편하게 맞이해주는 장이정수 국장(이하부터는 ‘장이 국장’으로 표기)의 매력이 처음 방문했음에도 매우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장이 국장의 개인 이력 - 중랑구에 흘러들기까지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장이 국장의 에너지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하는 일이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사실, 나는 이런 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금방 지치게 되고, 그러면 금방 나가자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경험을 통해 누누이 확인했던 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이 국장에게서는 아직 그러한 피로감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나름대로 노하우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스스로 자신의 성격이 매우 예민하지 않은 편이라고 한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장이 국장에 대해 “네가 이야기 하면 심각한 것도 희화화 된다”고 할 정도라고 한다. 내가 봐도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무척 낙천적인 것 같다.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신경을 많이 쓰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예민하게 사람들에게서 상처를 많이 받는 스타일은 아닌 듯하다.(물론, 그럼에도 이러한 일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겠는가...) 그리고 자신은 자녀들 사교육비를 지출하지 않는 대신 그 돈으로 1년에 두 번 자녀들과 해외여행을 다녀온다고 한다. 실행을 못해서 그렇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휴식 방법이다.
그런데 이 아줌마가 어떻게 지금 이 곳까지 흘러왔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 수밖에 없었다. 듣다보니 나름대로는 열혈 사회운동가의 길을 걸어왔다. 학생운동의 과정도 거치고 공장에 위장취업(?) 준비도 했고, 실제 공장에서 일을 하기도 하다가 함께 공장취업을 준비했던 선배와 만나 결혼을 했다고 한다. ‘운동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고 했던가... 결혼을 하면서 한 10년 정도 전업주부로 살았고, 선배의 권유로 <여성환경연대>에 취직(?)해 시민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 때가 2001년이다.
여성환경연대는 생태적 관점과 여성주의적 관점을 통합하기 위해 여성환경운동 활동가들의 네트워크로 출범하였다. 그러던 중 사무국이 확대되면서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회원들의 활동이 저조하게 되는 아주 일반적인(?)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이에 <여성환경연대> 내부에서는 조직전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가 스스로를 대중조직으로 전환해 보자는 것이었다. 즉, 기존에는 주로 활동가들이 결합한 형태였으나, 이제는 일반 여성들이 회원으로 참여하는 조직으로 전환하고자 한 것이었다.
장이 국장의 경우에는 <여성환경연대>에서 주로 생태안내자 교육을 담당하였는데, 주 대상자들은 기존의 지역조직 회원들이었다. 그 후 풀뿌리 담당을 맡았고, 마침 대중조직으로의 전환을 결정한 <여성환경연대>의 방향과 맞물려 직접 지역에서의 활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러한 일환으로 2회 생태안내자 교육부터는 일반 여성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였다. 또한 지역의 다른 조직들과 연대하여 마을만들기 사업을 실천하기도 하였다. 강동구에서는 <서울 한 살림 강동지부>, 도봉구에서는 도봉지역의 시민단체들과, 그리고 영등포에서는 의료생협과 연대하여 사업을 진행하였다. 하지만, 강동구와 도봉구에서의 사업은 현지에 있는 시민단체들이 사업의 주체로 참여했으므로, <여성환경연대> 차원의 지역모임이 될 수는 없었다. 대신 영등포구에서의 사업은 나름대로 소모임(유쾌한 여자들의 모임)이 구성되어 <여성환경연대>와 관계를 맺고 모임이 운영되었다.
이 사업을 하면서 장이 국장은 하나라도 제대로 된 지역주민조직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는 소모임 자체가 갖는 한계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중앙의 사무실에 앉아서 지역주민들의 모임을 운영하는 것에 대한 한계를 크게 느꼈기 때문이다. 장이 국장의 집은 중랑구에 있다. 당연히 중랑구가 장이 국장이 선택한 지역이 되었다.
아줌마들의 모임, 시작되다
장이 국장이 지역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사업은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강좌사업이었다. 지역조사결과 당시 도서관이 하나 밖에 없었다. 이에 서울 한살림 중랑 지부장과 동화읽는 어른모임의 대표에게 지역여성들을 위한 교육을 같이 해보자고 제안하여 함께 일을 벌이기로 하였다. 그리고 일단은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도록 독려하기 위해 주로 유명한 강사들을 초청하여 도서관에서 강좌를 실시하였다. ‘생태적으로 건강한 아이, 마을에서 행복한 아이’라는 주제로 진행하였고, 그 결과는 성공이었다. 약 100여명의 주민들이 이 강좌에 참석하였다. 이에 한살림과 장이 국장은 후속모임으로 이들을 조직하기로 하고 각자 역할분담을 하였다. 한살림에서는 교과모임에 관심이 있는 참여자들을 조직하여 그 모임을 지속하기로 하였고, 장이 국장은 생태(生態) 모임에 관심이 있는 참여자들을 조직하였다. 그 결과 교과모임에는 50여명이 참여하였고, 생태모임에는 20여명이 참여하였다.
2005년의 이 강좌를 통해 조직된 생태모임 구성원들이 현재 <초록상상>의 모태가 되었다. 이 소모임은 2006년도부터 시작되어 근 1년 간 주1회 모임을 갖았다. 한 달 중 한 번은 책읽기, 한 번은 봉화산 산책하기, 한 번은 대안생활용품 만들어 보기 등으로 진행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모임이 잘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세 명이 올 때도 있고, 두 명 또는 한 명이 올 때도 있었다. 당연히 힘이 빠질 만도 하지만, 이 씩씩한 아줌마(장이 국장)는 그렇게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주부들의 소모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운동 경험 속에서 이 정도는 어려움이라 볼 수도 없다고 받아들였다.
이는 장이 국장의 낙천적인 성격에 힘입은 바도 크겠지만, 무엇보다도 주부들의 특성과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개 활동가들은 사람들이 잘 안 모이는 것에 대해 ‘책임감이 없다’는 등으로 참여대상자들의 탓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에요. 주부들과 일을 하다보면, 아이를 봐주거나 그 때문에 쉬어야 할 때가 있고, 부부간의 갈등으로 한 동안 활동을 못할 때가 있어요. 그런 상황을 이해하고 용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역활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모임이 잘 되는 것이 좋겠지만, 멤버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면 그 개인의 사정 등을 인정하고 존중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장이 국장은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과 즐겁게 지내는 것이 자신에게도 즐겁다고 한다.
실제, <초록상상>의 멤버 중 한 사람이 암에 걸린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의 심정은 “가뜩이나 참여하는 사람도 적은데, 그나마 암까지 걸려...”하는 원망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암과 관련된 책을 선물하고, 회원들과 병문안도 가고, 퇴원했을 때에는 축하 파티도 해주었다고 한다. 또 한 사례를 들자면, 회원 중의 한 분이 돈을 벌기 위해 ○○카드 외판을 하게 되었다. 이럴 때는 그 사람이 모임에 나와 카드 가입을 권유하면 모임의 분위기가 착 가라앉기 쉽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장이 국장은 매우 자연스럽게 용인하였다고 한다. 자신이 먼저 카드 신청서에 서명을 하면서, 다른 참석자들에게도 “카드 하나 더 만들어!”를 외치면서 카드 영업을 하는 참여자에게도 “돈 잘 벌면 회비 많이 내라” 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상황을 참여자들이 받아들이도록 했다. 그리고 그런 사회생활도 이 분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사람들에게 이야기 했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핵심적으로 활동하던 회원 한 명이 전화홍보하는 곳에 취직했다는 것을 다른 사람을 통해 들었다. 장이 국장에게는 직접 이야기하기가 미안해서 그런 듯했다. 회사에 나가기 시작하니 이 분 역시 당연히 모임에서 열심히 활동하기가 힘들게 된 것이다. 게다가 핵심적 회원이었으니, 장이 국장의 속이 편할 리가 없을 터였다. 하지만 장이 국장은 거금(?)을 들여 2만원짜리 케익을 사서 보냈다고 한다. 보내면서 “이건 뇌물이라고 전해줘”라고 하니까, 전화가 와서 고맙다고 하며 회원들 식사에 초대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지금은 일 못하지만 필요할 때 함께 하겠다고 했단다.
사실, 지역에서는 한 번 발을 빼면 길거리에서도 다시 마주치기가 편치 않다. 하지만, 장이 국장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비록 지금은 같이 활동을 하지 못하더라도, 주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할 수 있도록, 여성의 관점에서, 그 사람의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그 사람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조그만 동네의 조그만 조직의 잣대로 우리와 우리가 아닌 것으로 구분하는 것은 동네 안에서 여성들을 더욱 몰아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며, 이래서는 여성들과 함께 하기가 힘들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한 편, 한살림에서 책임졌던 교과모임도 마찬가지로 악천고투하고 있었다. 한 1년 간의 교과모임이 끝난 후 한살림에서는 더 이상 이 모임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참여자들 중 몇 명이 계속 공부를 하고 싶어 하였다. 이에 장이 국장은 자신들이 마련한 사무실 공간을 이들에게 제공하며, 모임장소로 활용하도록 제안하였다.
<초록상상>이 사무실을 마련한 것은 2007년도 3월 경이었다. 사무실을 마련하고자 결심하게 된 배경은 소모임의 한계인 임의성을 보다 공식적으로 것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이다. 소모임만으로 유지하다 보면, 서로 의가 상하거나 참여자가 취직을 하는 등의 변화가 생기는 사적인 문제가 소모임 자체의 운영에 어려움을 초래하곤 한다. 또한 소모임 그 자체만으로는 마치 폐쇄적인 계모임과 같아,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기 힘들기도 하다. 이에 장이 국장은 2006년 연말부터 참여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사무실을 마련하자고 설득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대한 다른 참여자들의 반응은 당연히 회의적이었다. 사람들의 첫 번째 걱정은 그 운영비를 어떻게 할 거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장이 국장의 설명은 명쾌했다. 우리가 만드는 천연생활용품을 팔아서 돈을 벌 수도 있고, 그것이 안 되면 자신의 사비라도 털어서 운영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집요한 설득에 핵심적인 참여자들이 동의를 하게 되었다. 현재의 사무실은 보증금 1,000만원에 매달 50만원의 월세를 내는 곳이다. 이 중 500만원의 보증금은 <여성환경연대>에서 빌려오고, 나머지 500만원은 10사람의 핵심 회원들이 50만원씩 출자하여 충당하였다. 물론, 그냥 출자를 받은게 아니라, 우리가 이익을 내기 시작하면 갚아주겠다는 약속을 하였다.(물론, 믿거나 말거나~) 그 이후 <여성환경연대>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도 <초록상상>으로 가져오고, 어린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회원이 늘어나, 월세를 충당할 수 있게 되었다.
<초록상상>이 현재 하고 있는 일
초록상상은 모임이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많은 활동들을 하고 있다. 전체 회원은 80여명 정도 되는데, 이 수가 모두 후원회원이 아닌 활동회원이라고 한다면 지역사회에서는 매우 큰 조직이라 볼 수 있다. <초록상상> 활동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6개의 팀 또는 모임이다. 6개의 팀은 각각 독특한 일상활동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생태팀과 건강팀, 문화팀, 청소년팀, 역사공부모임, 직장인 모임이 그것이다. 이렇듯 다양한 팀과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요구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즉, 주부들의 처지와 욕구가 다양하기 때문에 한두 가지 주제에 따른 모임을 할 경우에는 선택의 제한으로 인해 참여도 제한된다는 것이 장이 국장의 생각이다. 그래서 장이 국장은 “힘닿는 대로” 다양한 모임을 꾸리고 운영하고자 한다.
먼저, 생태팀은 생태안내자 교육과 공부를 해서 한 달에 2회 아이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는 활동을 주로 한다. 건강팀은 천연화장품과 천연세제 등을 만드는 연습을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는 활동을 한다. 문화팀은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철학공부를 한다. 청소년팀은 청소년 문제에 관심 있는 엄마들의 모임이다. 주로 청소년 문제에 대한 공부를 하고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강좌를 주재하는 등의 활동을 한다. 역사공부모임은 여성강좌 후 한살림을 중심으로 조직된 후속모임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모임을 유지・발전시켜 온 것으로, 방학 때 이외에는 주 1회 이웃의 역사전공자를 모시고 역사공부를 한다. 그 동안 한국사와 동아시아사를 공부했고, 올해는 일본사를 공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직장인 모임이 있는데, 참여자들은 대부분 지역내 복지기관의 복지사들이다. 이 모임에서는 지역사회와 관련한 공부를 하고 있다.
이 중 역사공부모임은 처음에 장소만 사용하도록 권했을 뿐 <초록상상> 내부의 모임은 아니었다. 장이 국장의 활동 스타일상 이들을 회원으로 가입시키고 싶은 욕구가 컸을 것이나, 먼저 그러한 제안을 하거나 권유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초록상상>의 사무실에서 자체적으로 모임을 진행하면서 현재는 모든 참여자가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그로 인해 이제는 <초록상상> 회원들의 모임으로 자리잡았다.
직장인 모임의 경우, 그 참여자가 주로 중랑구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로 구성되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이들을 처음 만나게 된 계기는 지역사회복지협의체를 통해서이다. 중랑구의 지역사회복지협의체에서는 사회복지 공동모금회의 CI(Community impact)사업을 진행하게 되었고, 이 지역에서 유일한 시민단체로 인정받는 <초록상상>도 이에 참여하면서 참여한 복지사들에게 적극적으로 회원가입을 권유하였다. 이들의 경우 지역사회의 유일한 시민사회운동단체에 대한 호감을 보였고, 이에 20명이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그 외에도 지역의 환경교육 전문단체로서 다양한 환경교육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중랑지역이 교육복지우선투자지역으로 선정된 것은 <초록상상>의 활발한 환경교육 활동의 계기가 되었다. 지역 내에서 환경교육을 담당할 단체가 <초록상상>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외적 조건만이 활발한 환경교육 활동의 요인이라 볼 수 없다. <초록상상>에서도 주어진 기회에 대해 매우 헌신적인 응답을 하였고 이를 통해 지역사회의 신뢰를 획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장이 국장의 표현에 의하면, “작년 1년간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했다” 예를 들면, 학교나 청소년 수련관에서의 요청에 대해 강사료 이상의 재료와 준비를 해서 성실히 교육을 함으로써, 주최 측으로부터 감사의 마음과 신뢰를 이끌어 냈다는 것이다.
각 팀들은 자체모임과 외부활동을 수행하는 가장 중요한 <초록상상>의 주체라 할 수 있다. 모임에서는 각자 공부와 실습 등을 하고, 그 내용을 외부활동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올 해에는 또 하나의 모임이 새로 생길 것 같다. 그것은 의정 모니터링 모임이다. 중랑구에 있는 <중랑신문사>가 작년에 주부기자단을 모아서 중랑구 의회 모니터링을 실시하였다. 신문사 역량으로는 운영이 힘들지만 작년 한 해 동안 회기 중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모니터링을 해왔다. 그러나 신문사에서 계속 의정 모니터링단을 운영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편집장이 <초록상상>에서 함께 운영해주기를 부탁하였다. 그래서 장이 국장이 이 모니터링 모임에 참여하며 또 하나의 모임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현재로서는 내년에 <의정지기단> 등의 이름으로 독립시키고자 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
운영과 사무국장의 역할
각 모임에는 팀장이 있다. 자체 모임은 1주에 1회 하고 있으며, 그 팀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한다. 예를 들면, 생태팀의 경우 한 달에 1회 어린이 교육을 했고 올 해에는 2회 하기로 하였다.
팀은 팀장이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전체적인 연락체계는, 상근자인 사무국장이 팀장에게 연락하면, 팀장이 팀원에게 연락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정기적 모임은 <초록상상> 사무실에서 이루어지므로, 사무국장은 전체 팀과 모임의 진행을 잘 파악하고 있는 편이다.
월1회 각 팀 및 모임의 팀장들이 모여서 운영위원회를 개최한다. 실질적인 최고의사결정기관이다. 하지만 운영위원회는 특별히 어떤 안건을 결정하는 것보다, 팀 간의 긴밀한 소통을 더욱 중요시 한다. 만약, 참여자들이 자신들이 참여하는 모임에 대해서만 잘 알고 관심을 기울이면, 참여자들이 전체의 한 부분으로서만 자신을 인식할 수밖에 없게 되고, 이는 지역사회운동의 전반적 흐름에 동참한다는 인식을 갖기 힘들게 하는 요인이 된다. 또한 그러다보면, 상근자 중심의 운영과 운동이 될 수밖에 없다. 장이 국장은 그러한 문제점을 피하기 위해 운영위원회에서 가능한 <초록상상>의 정보들이 상호 활발히 교류될 수 있도록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그리고 이런 목적으로 운영위원회를 운영하기 때문에, 운영위원회에 팀장이 아닌 일반 회원들의 참여도 자유로운 편이고, 무엇보다도 이들의 참여를 권장하고 있다. 예를 들면, 팀장이나 사무국장이 운영위원회에 나오다가 회원을 만나면 손을 잡고 운영위원회에 같이 오는 식이다.
어떤 경우에는 한 팀의 팀원들이 모두 참여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운영위원회가 딱딱한 형식을 갖고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주부들의 유쾌한 수다와 함께 서로의 생각과 활동을 나누는 즐거운 만남의 장이 바로 운영위원회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해 회원들에게는 자신의 개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차원의 소모임 참여를 넘어 <초록상상>과 지역사회를 인지하는 매우 중요한 만남의 자리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초록상상>은 사무국장 1인 상근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래서 장이 국장은 아주 바쁘다. 혼자서 단체 운영에 필요한 사무국 업무를 보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개인적으로 거의 모든 소모임에 팀원으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모임이 사무실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어찌 보면 이는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정식 팀원으로 참여하고 있기에, 사무국장으로서의 역할과 더불어 모든 팀의 팀원으로서의 역할도 그 안에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무국장의 업무 중에는 각 팀의 사업에 필요한 강사 및 장소 섭외 등의 실무적인 일도 수행해야 한다. 이 때문에 올 해 장이 국장은 역사모임에 참여하지 않기로 하였으며, 생태교육을 주로 담당하는 담당자를 두었다. 일반 주부들의 경우 시간적 제한으로 인해 수많은 생태교육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장이 국장에게 주어지는 교육의 하중을 나누기 위해서이다.
상근자와 일반 참여자 사이의 갈등
풀뿌리운동도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활동이다보니, 참여자들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아직 <초록상상>이라는 이름으로 체계를 잡고 모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또한 앞에서 잠깐 언급한 바와 같이 상근자인 장이 국장의 소탈・화끈한 성격이 이러한 갈등관계가 심각하게 발전하지 못하도록 예방하는 작용을 하였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상근자와 일반 회원들과의 관계는 이와는 다르다. 특히, 상근자가 갈등의 한 주체가 되면, 장이 국장의 소탈・화끈한 성격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상근자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일반 회원들의 자발적이고 주체적 참여를 배려한다고 해도 자신이 활동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다른 참여자들이 자원봉사인데 반해 상근자는 많든 적든 간에 활동비를 지급받고 있으니, 이 또한 갈등의 소지가 되기 쉽다.
하지만, 지금까지 상근자와 일반 회원 간의 갈등이 불거진 적은 없다고 한다. 이는 정식 상근체계 등이 마련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보다는 상호간 적절한 처신이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그 한 예로, 장이 국장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풀뿌리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월급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이 곳에서 일을 하면서 결심한 것 중의 하나는 상근자로서 월급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에요. 만약 내가 상근자로 월급을 받으며 활동하고 다른 회원들은 자원봉사자로 일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모든 일을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할거 아니겠어요? 만약 상근자와 비상근자를 구분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사실, 비상근자 중에도 핵심적 회원들은 일주일에 3-4일 정도 일을 해요. 나는 그러한 구분, 즉 상근자와 비상근자의 구분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해요. <초록상상>에서도 유급 상근자 쓰자고 이야기가 나오기도 해요. 하지만, 그러면 그 때부터 사무실 일은 상근자가 도맡아 해야 해요. 그러다가 참여자와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해요? 그러면 일을 함께 하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동네에서 마주치는 것도 괴로울 거예요. 그런 문제를 없애기 위해 젊은 사람을 공채할 수도 있지만, 글쎄요... 아줌마들하고 잘 어울리며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나는 상근자 중심의 운동은 안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오히려 팀장들이 일을 많이 하니 10만원씩 나누어 줄까? 하고 이야기하기도 해요.”
그렇다고 장이 국장이 아무런 활동비도 없이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장이 국장은 매달 60만원의 활동비를 받는다. 하지만 이 돈은 <초록상상>이 아니라 <여성환경연대>를 통해 받는다. 그리고 회원들은 장이 국장이 그 활동에 비해 받는 돈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정과 관계들로 인해 아직은 상근자와 비상근자와의 갈등이 크게 불거진 적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한 편으로 생각해 보면, 아무리 장이 국장이 <여성환경연대>의 지역총괄 책임자로서 활동비를 받는다고 하나, <초록상상>의 입장에서는 외부 또는 상급 조직으로부터 활동비를 받는 것이 타당한 지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참여자들의 변화와 역량강화(임파워먼트)
아무리 활동을 잘하고 지역사회에서 신뢰를 받는다 하더라도, 그러한 활동이 구체적인 참여자 개인의 변화와 역량강화에 기여하지 않는다면 조직적 기반의 허약함을 극복할 수 없다. 즉, ‘모래성’에 불과하다는 것이고, 이는 여러 사회의 여러 사례들을 통해 이미 충분히 입증되었다. 그런 점에서 참여자들의 역량이 강화되는 변화는 풀뿌리운동의 과정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역량이 개개인별로 파편화된 방향으로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모이고 발휘되는 과정이 진정한 역량강화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초록상상>에서도 그 동안의 여러 사업을 통해 현재 회장으로 활동하시는 분을 비롯하여 몇몇 핵심적인 회원들이 생겨났다. 그 과정에 장이 국장은 공적인 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이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정성을 기울였다. 그리고 함께 하는 일에 대한 합의점을 찾기 위해 교육에도 열심히 신경을 썼으며, 사람들을 만나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일 등을 하였다. 이러한 개인적인 접촉 이외에도 참여자들의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한 프로그램에도 정성을 기울였다. 작년의 경우에는 매달 1회씩 여성리더십 특강을 진행했다. 이 특강에서는 단순히 강의를 듣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다양한 여성조직들을 방문하는 기회도 많이 만들었다. 이러한 탐방 프로그램은 참여자들에게 효과가 아주 좋았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깨달은 점은, “중산층 전업주부들을 밖에 나오도록 하는 것에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이 자신의 참여를 통해 자녀들도 건강하게 키울 수 있다는 점을 체득하게 해주고 그와 비슷한 조건의 주부들이 활동하고 있는 곳을 탐방을 다님으로써 이를 입증해 주니, 참여자들의 참여와 지도력이 성장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상호 신뢰관계도 형성할 수 있었다” 개인의 리더십이 집단화 되는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장이 국장도 일상적으로 운영위원회의 등을 통해 <여성환경연대>나 ‘공정무역’ 등에 대한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많이 했다.
장이 국장은 기본적으로 전업주부들이 이기적이라는 데에 대해,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세상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시민사회가 어떤지 알면 알수록 주부들은 참여의 의지를 갖게 된다고 생각해요. 활동가들은 그러한 변화를 기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실상, 전업주부들의 경우에는, 정도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우울증 비슷한 증상을 가지고 있다. 장이 국장의 경우에는 10여년 간의 전업주부 생활을 통해 이들의 처지와 심정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한 일체감이 다른 참여자들의 공감을 만들어 내고, 이들의 참여와 변화를 조직하는 데에 큰 기여를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장이 국장은 이러한 변화의 사례로 작년 연말 모임에서 참여자들이 했던 이야기들을 소개하였다. 그것은 많은 참여자들이 ‘내가 <초록상상>에 참여하면서 이 지역에 사는 게 너무나 행복해 졌다’, ‘여러 사람이 함께 일을 하면서 서로 배우는게 많다’는 이야기들이었다.
행정과의 관계
장이 국장을 방문하기 전 <초록상상> 까페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인터뷰를 통해 확인한 바는 행정과의 관계가 상당히 원만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장이 국장이 처음 지역에서 주민모임을 조직하는 데에 있어 주로 주민자치센터를 활용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앞서 소개한 3개 지역의 마을만들기 사업에 있어 시민단체의 기반이 취약한 영등포 지역에서도 처음에는 주민자치센터를 통해 주민들을 만났었다. 즉, 해당 주민자치센터에 찾아가서 우리가 프로그램과 강사, 그에 필요한 재정을 모두 부담하겠으니, 장소만 빌려달라는 식으로 접근을 했다.
현재의 활동근거지인 중랑지역에 와서도 장이 국장은 주민자치센터를 주목하고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활동근거로 활용하였다. 장이 국장 생각에는 시민단체가 사무실 유지비 등을 고려하면 공간을 넓히기보다 필요한 공간을 찾아서 활용하는 편이 낫다고 여기고 있다. 그런 점에서 주민자치센터는 주민들과 만나는 공간이기 때문에 충분히 활용가능하며, 가능하면 모든 주민자치센터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는 주민자치센터의 욕구와도 일치한다. 주민자치센터에서는 새로운 프로그램의 빈곤으로 항상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이 국장은 먼저 지역 여성들에게 여성・환경강좌의 내용으로 어떤 것이 좋은 지 설문조사를 하였다. 이 근거를 갖고 주민자치센터 담당자에게 프로그램을 제안하였다. 물론, 그래도 이러한 개입을 귀찮아하는 담당자도 있지만, 반가워하는 담당자도 물론 만날 수 있다. 장이 국장은 이 중 2개 동 주민자치센터를 선정하여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주민자치센터 담당자와 겪게 되는 예민한(?) 문제는 그 프로그램의 주체를 어떻게 표기하느냐이다. 담당자들은 조심스럽게 자기네 주민자치위원회를 앞에 두면 안 되겠느냐는 의사를 타진해 왔고, 장이 국장은 우리 이름을 빼도 된다고 응수하였다. 그 이후부터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장소를 빌려주고, 모임 때 담당자가 커피를 타다 주는 등으로 매우 협조적인 관계로 바뀌었다. 그리고 주민자치센터에서 강좌를 진행하면서, <초록상상> 홍보를 하여 회원들도 하나 둘 생기고 또한 후속모임을 제안하고 조직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그 외에도 면목1동 주민자치센터에서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교육을 실시하였으며, 상봉1동에서는 외부의 프로젝트 지원을 받아 옥상녹화와 교육강좌를 실시하기도 하였다. 즉, 처음 주민자치센터에 접근할 때는 담당 실무자 일을 도와준다는 자세로 접근함으로써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유리했다. 일단 조사를 통해 지역여성들이 참여하고 싶은 교육내용을 추출할 수 있었고, 거기에 교육에 대한 적극적 홍보도 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담당 공무원들에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의 근거를 제시할 수 있었다는 점도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실례로, 최초 실시한 설문조사의 결과를 중랑구청 여성정책과에도 가져다주었다. 그 이후 중랑구의 여성 관련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에 <초록상상>은 항상 초대되었다.
“저는 공무원들도 잠재적 회원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저희를 최초의 지역 시민단체라고 하는 것에 대해,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여성정책과에서 파악한 여성단체가 스무개 가량 있고, 공무원들도 나름대로는 주민들을 위해 일하려고 하는 의지가 있다고 봐요. 따라서 그에 필요한 일을 제시하고, 또 그에 필요한 일을 해주겠다고 하면 그 쪽에서도 반대할 이유가 없죠.” 그렇지만, 이들과 관계를 맺는 과정도 나름대로 성의를 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처음에는 모든 주민자치센터에 팩스를 보냈어요. 그런데 아무런 반응이 없더라구요. 담당자들도 나름대로 팩스 공해, 격무 등으로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직접 전화를 걸어 필요한 프로그램을 같이 하자고 제안하니 고맙다면서 같이 해보면 좋겠다고 반응을 보이는 곳이 생겼어요.”
결국, 행정과는 긴밀한 파트너십을 통해 일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러한 가장 큰 요인은, <초록상상>이 행정에 무엇을 요구하거나 반대하는 세력이 아니라, 행정이 아쉬워하는 부분에 대한 대안을 가지고 행정과 관계를 맺었다는 것이다. 결국, 주체적 역량에 의해 행정을 견인할 수 있었다는 의미로 파악할 수 있겠다.
앞으로의 전망
“중랑구는 서울시에서 재정자립도가 꼴찌에서 2등이고, 사람들도 집값이 싸서 이사 오지만 돈을 좀 벌면 노원구 등으로 이사 가려고 하는 지역적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지역에서 여성들이 조금만 노력을 하면 건강한 교육도 시킬 수 있고, 그래서 이 지역에서 사는 것을 좋아하도록 만들고 싶다. 특히 청소년들에 대한 교육을 통해 이 지역의 2-3세대를 키워내고 싶다. 그래서 청소년팀도 꾸리고 그랬다.”
주민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지역을 만드는 데에 <초록상상>이 일정 정도 기여를 하고자 하는 것이 장이 국장이 밝힌 앞으로의 전망이다. 장 국장과 함께 하는 아줌마 회원들에게 있어, 행복한 삶이란 아이들을 잘 키우는 재미있는 동네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장이 국장은 이를 위해 다양한 요소들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첫째는 대안적 교육을 통해 지역사회의 인재들을 키워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핵심 활동가들을 배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지역사회에서 여성들이 세력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회원들 중에 구의원도 배출하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한 일이라 여기고 있다.
둘째는 이들이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는 일들을 많이 만드는 것이다. 주부들의 경우, 우리 가정을 파괴하지 않고 아이들 잘 돌보며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즉, 지역사회의 교사가 되거나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참여자들을 강사로 참여시키려고 하고 있고 성미산에서와 같은 유기농 반찬가게를 만들어 주부들에게 부업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셋째는 다양한 여성모임과 조직을 인큐베이팅 하는 것이다. 올 해부터 참여하기 시작한 의정 모니터링단이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부들이 유기농 반찬가게와 같은 대안적 사회적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시사점
① 자원의 발굴과 활용
<초록상상>이 3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 지역에 이같은 대중조직으로 안착할 수 있었던 데에는 지역사회의 자원들을 잘 활용한 것이 큰 기여를 하였다. 초기에 아무런 기반도 없는 중랑지역에서 장이 국장이 <한살림>과 <동화읽는 어른모임>과 함께 사업을 시작한 것이나, 주민자치센터라는 공간을 활용한 것이 그 대표적 사례라 볼 수 있겠다.
② 욕구와 명분의 결합
장이 국장은 <여성환경연대> 활동을 통해 여성과 환경을 결합시킨 에코 페미니즘(Eco-Feminism)의 세례를 받은 활동가이다. 따라서 여성문제와 환경문제를 통해 지역주민을 만나려는 의도를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명분만으로는 주민들을 만나는 데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초록상상>은 이 둘을 절묘하게 결합시킴으로써 오늘 날의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 활동의 시작은 주민들의 욕구를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였다. 이는 설문조사라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지만, 그 조사방법의 객관성과 적합성에 대한 시비를 가리는 것은 불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여성과 환경이라는 주제를 주민들에게 쉽게, 그리고 주민들의 욕구를 통해 녹여내려는 노력이 중요했다는 것이다.
③ 수혜형 참여가 아닌 제공형 참여
<초록상상>의 일상활동은 각 팀과 모임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들 모임이 단순한 소모임의 형태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각 팀과 모임은 모임 구성원들만의 만남에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를 향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생태팀은 자신들이 공부한 내용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생태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건강팀은 자신들이 배운 바를 다른 사람들에게 다시 전달해 주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는 직장인 모임 외에는 모든 팀의 공통적 활동내용으로 잡혀있다. 직장인 모임의 경우에도,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는 복지사들이 지역사회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이므로, 일반적인 소모임과 차별성이 있다. 즉, 각 팀의 활동내용은 참여자들이 그 모임을 통해 특정한 내용을 공급받는 대상자가 아니라, 지역사회의 다른 누군가에게 뭔가를 공급해 주는 활동내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참여자들로 하여금 지역사회 활동의 재미를 ‘맛’ 보게 할 뿐 아니라, 참여의 만족도를 극대화시키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참여자들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강력한 계기가 될 수 있다.
④ 대안과 성실함을 통한 행정과의 관계설정
시민사회단체는 일반적으로 행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집단으로 인식되어지곤 한다. 특히, 공무원 사회에서 이러한 인식은 매우 일반화되어 있다. 이 때문에 행정의 입장에서는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시민사회단체와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데에 망설이곤 한다. 또한 시민사회단체들은 주로 그 의사결정기구에 참여하려고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학교운영위원회 참여나 주민자치위원회 참여, 각종 위원회 참여 등을 강조하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러나 이러한 참여방식은 썩 좋은 성과들을 내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초록상상>의 접근법은 달랐다. 대안적 프로그램, 매우 구체화된 대안적 프로그램과 그 실행력을 갖고 행정과의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조그만 역할이라 하더라도 최대한의 성의와 노력으로 다가섬으로써 행정과의 관계를 신뢰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이는 성공적인 지역사회 여성조직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내용이 지역사회 활동에 있어 중요한 것은 단지 행정과의 긴밀한 관계를 설정하였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러한 활동 자체가 지역주민조직화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기에 더욱 중요하다.
⑤ 상급단체와 지부조직의 관계가 미치는 영향
개인적으로, 상급단체의 지부 형태로 존재하는 지역 풀뿌리조직이 지역사회 내에서 성공을 거두는 모습은 상당히 이례적이라 생각하고 있다. 비록 드물기는 하지만, 몇 개의 풀뿌리운동 조직들에서는 그러한 관계를 성공적으로 유지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관계가 결국 해당 조직이 지역사회에 성공적으로 뿌리는 내리는 것을 방해하는 모습도 많이 목격할 수 있다. 그 차이점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상급조직이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지부 격의 조직에 어떠한 식으로 개입하는 지에 따라 갈라진다. 상급조직이 지부조직의 활동을 지원하는 것에 중점을 두거나 아니면 최소한 상급조직에서 설정한 의제를 지부조직에 강요하지 않는 경우는 성공한 사례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상급조직이 자체적으로 설정한 의제를 지역사회에 내려 보내는 경우에는 지역사회의 지부조직이 건강한 풀뿌리운동 조직으로 정착하는 데에 오히려 방해가 되곤 한다.
<초록상상>은 <여성환경연대>의 지부조직이라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그 활동의 핵심인 장이 국장은 <여성환경연대>에서 중랑구에 파견한 활동가라는 정체성을 강하게 갖고 있다. 그러한 정체성 자체가 그리 문제될 것은 없지만, 장이 국장이 <여성환경연대> 내에서도 여러 활동의 부담을 안고 있다는 것은 지속가능한 <초록상상>의 풀뿌리적 발전에 있어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
장이 국장은 작년에도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한 운영위원으로부터 운영위원으로 추천하고자 한다는 제안을 받았다. 그 때는 거절을 했단다. 그 이유가 인상 깊어, 그 이유를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끝마치고자 한다.
“내가 작년에 이음에 결합하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거부한 것은, 일단 남자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에요.(하하) 두 번째는 모든 네트워크들이, 사무국 사람들이 사무실 있는 시간을 줄여서 생활인을 만나야 하는데, 연차가 높아질수록 회의가 많아지고 자기들끼리의 만남을 갖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자신들이 의식 못하겠지만, 자신들만의 리그를 만드는 것이죠. 그러면 위로가 될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한 만남들 속에서 삶의 희망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저는 이렇게 가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음에 결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우리끼리 만나는 것보다는 생활인을 더 많이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풀뿌리운동사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역운동사례] "돈 없이도 어울리는 세상? 과천품앗이가 꿈꾸는 세상!"-"과천품앗이"를 찾아 (0) | 2008.05.14 |
---|---|
[지역운동사례] "사람 냄새가 풍기는 인천 푸른샘어린이도서관" (0) | 2008.04.08 |
"지역화폐의 모델, 대전 한밭레츠를 찾다!" (9) | 2008.03.26 |
"중촌동마을어린이도서관 짜장 이야기" (2) | 2008.03.18 |
풀뿌리운동 모범사례 : '어머니 지리산' 희망씨앗 찾기 (0) | 2007.1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