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의 공동체 실험,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
이 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 이 글은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에 대한 다각적인 조사를 통한 조사보고서가 아니다. 이 글은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 식구 중 초창기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해 온 안기홍씨 그리고 얼마전까지 녹색마을 사람들 사무국장이었고 이 공동체 식구인 최윤정씨와의 인터뷰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와의 만남
2년 전 생명평화연대라는 단체로부터 풀뿌리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간 적이 있다. ‘생명평화연대?’ 많이 들어본 단체 이름이었다. 생명운동을 하는 곳에서 주로 사용하는 단체명이기 때문이다. 하지
당시 알아낸 정보는 간단했다. 기독교 청년운동을 하던 이들이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이루고 있으며, 그 기독교 신앙을 사회의 변화와 함께 고민하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즉, 기독교 신앙의 ‘하느님 나라’를 현실 사회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지향을 갖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또한 공동체의 결합 방식도 다양해서, 일부는 느슨한 형태로 공동체에 참여하기도 하고 또 일부는 소득을 공유하는 방식의 매우 강고한 형태로 결합하고 있다고 했다.
이 날은 내 이야기 후 저녁 시간도 많이 흘렀고 공동체 식구들의 모임이 진행되는 듯하여 더 묻지 못하고 그냥 헤어졌다. 하지만, 도시에서 진행되는 이 공동체를 꼭 한 번은 조사해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잊었다. 하지만, 작년 말 우연히 야마기시 공동체의 새로운 흐름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이음 블로그 ‘풀내음’, “세상 속으로 나아가려는 야마기시 공동체” 참조) 아름다운 마을공동체가 다시금 떠올랐다. 비록 여러 차이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아름다운마을 공동체가 추진하는 공동체의 모습이 야마기시 공동체가 도시에서 새롭게 발전하는 모습과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모습
아름다운마을 공동체는 서울 강북의 북한산 아랫마을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생활공동체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수유리 지역 외에도 농촌과 도시가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마을공동체를 구상하며 공동체적 귀촌을 준비하고 있다. 마을 부지가 결정되면 이 곳 공동체 식구 중 몇 명은 그 곳으로 이주할 계획이다.
아름다운마을 공동체는 크게 ‘생활, 일, 신앙’이라는 세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 일을 통해 드러나는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 모습
먼저, 일을 통해 드러나는 아름다운마을 공동체의 모습은 지역 시민운동단체로서의 모습이다. 즉, 생명평화연대는 아름다운마을 공동체가 드러내는 시민운동으로서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주민들은 여기 모여 있는 이들을 공동체로 보기보다는 생명평화연대라는 시민단체로 인식하고 있다.
이들은 시민단체로서의 자기 활동 지향을 크게 몇 가지 형태로 설정하고 있다. 첫째는 일반 사회운동과 기독교 운동을 연결하고자 하는 지향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들이 초기부터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프로그램은 기독청년아카데미이다. 이 아카데미는 계절마다 8주 과정으로 교육을 진행한다. 여기에 성서의 맥, 글쓰기교실 같은 상설강좌는 4~6개월 정도로 더 긴 호흡으로 진행한다. 기본적인 과정을 밟은 이들은 1년 과정의 공동체지도력훈련에 참여해 공부하며 실천한다. 이 프로그램은 기독교 사회운동과 공동체운동에 관심 있는 청년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다. 그래서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는데, 이 강좌 프로그램에는 단순히 기독교 신자들만이 아니라, 다양한 그룹들이 참여하고 있다. 매 학기마다 약 300~350명 가량이 수강생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참여자의 60% 정도는 일반 직장인이고, 나머지는 대학생, 주부, 활동가, 청년실업자, 신학생이다. 그리고 참여자의 연령대는 2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까지 다양한 편이다.
기독청년 아카데미는 참여자들에게 이 시대에 공동체가 의미하는 가치와 정신 등을 공유하고 확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이 아카데미를 통해 아름다운마을 공동체에 새로이 참여하는 이들도 있지만, 공동체에서는 그보다 다른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거점으로 작용되기를 바라고 있다.
두 번째는 중앙운동과 지역운동을 연결하고자 하는 지향이다. 예를 들면, 지난 2008년의 촛불집회를 지역에서 개최하는 등이 그러한 노력의 모습 중 하나이다. 그리고 강북구의 조그만 마을에서 활동을 하지만,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에 가입하여 정보를 교환하는 등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세 번째는 아름다운마을 공동체가 터를 잡고 있는 지역에서 주민들과 함께 하는 모습이다. 이는 주로 아름다운마을학교를 통해 나타난다. 이들은 현재의 마을에 자리를 잡을 때부터 교육과 문화를 통해 주민들과 만나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 주민들과 함께 시작한 활동은 공동육아와 계절학교다. 그리고 지금은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라는 대안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교육을 공동체 활동의 주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다. 이는 아이를 어떻게 낳아서 공동체적으로 기르고 키울 것인가 하는 관심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관심은 지역의 다른 아이들에게도 개방되어 있다. 이는 이러한 교육을 주제로 한 활동이 공동체 내부의 필요와 지향에 의해 생겨났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필요를 공동체 내부에서만 폐쇄적으로 해소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 개방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공동체와는 다소 차별성을 보인다. 이 마을학교는 대안학교로서 지역에 꽤 알려져 있는 편이다.
- 신앙을 통해 드러나는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
기독교 신앙은 아름다운마을 공동체의 정신과 영성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가치이다. 그러나 이 신앙은 기존의 교회 중심이라기보다는 사회 안에서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직접 구현하고자 하는 사회실천적 지향을 갖는다. 하지만, 신앙 공동체라는 특성은 이러한 신앙적 영성을 강화할 필요를 항상 강조하게 한다. 그런 가장 대표적인 내용이 공동체 생활영성 수련이다. 이 수련은 공동체 생활을 통해 축적된 공동생활 노하우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개개인의 영성적 경험을 나누고, 아이가 아플 때 공동체적이고 대안적으로 대처하는 방법 등에 관한 경험을 공유하고, 함께 생채식을 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생활영성 수련은 건강한 몸을 통해 건강한 신앙인을 양성한다는 지향을 갖고 있다.
그리고 마을수도원도 운영하고 있다. 마을수도원은 공동체 식구들이 일정 기간 피정(避靜)하며 수련하는 공간이다. 또한 기독교 신앙 공동체라는 특성을 살려 예배와 관련한 모임도 운영되고 있다. 현재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는 세 개의 교회로 이루어져 있다. 이 교회는 건물로서의 교회가 아닌 사람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의미한다. 각 교회는 다시 기초공동체로 구성되어 있는데, 현재 11개의 기초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다. 예배는 바로 이 기초공동체별로 이루어지고, 한 달에 한 번 교회별 공동예배를 드린다. 그리고 한 달에 1회는 공동체 식구 전체의 예배를 드린다.
이 기초공동체는 말씀과 기도를 중심으로 하며, 자신의 실존적 문제를 신앙을 통해 해결해 가는 또 하나의 가족 개념이다. 이 기초공동체는 장기적으로 삶의 의식주 문제를 함께 해결해 갈 수 있는 기초생활공동체로 가기 위한 훈련과 신앙의 가장 기본 단위가 개인이나 가족이 아니라 공동체임을 끊임없이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한다.
- 생활을 통해 드러나는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는 생활공동체로서의 의미와 지향도 갖고 있다. 이 생활공동체는 같은 동네에서 생활하면서 생활권을 공유하는 이들의 공동체이다. 생활 공동체 중 중요한 한 가지는 ‘마을밥상’이다. 이 생활공동체에 속해 있는 이들은 주중에 점심과 저녁식사를 함께 한다. 이는 마을에서 사회적 활동에 가장 소외되기 쉬운 계층을 위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루하루의 공동식사를 통해 공동체 가정의 먹을거리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생활공동체는 작고 다양한 형태의 몇 개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예를 들면, 비혼(非婚) 남성들로 이루어진 남성 공동체, 비혼 여성들로 이루어진 여성 공동체가 있고, 이들은 각기 공동체방에서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이들은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족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모임은 모두 8개 있다. 살림터, 광야, 새터, 행복한 집은 남성공동체방이고, 여성공동체방은 더불어, 달자네, 풍경, 새술이다.
그런데, 비혼 공동체와 기혼 공동체가 각기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기혼과 비혼 공동체 식구들이 만나는 부뚜막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이 부뚜막에서는 기혼 여성과 비혼 여성이 한 달에 한 번 만나 1박을 하며 결혼, 직장, 육아 등에 관한 의견을 상호 교환한다. 이에 남성들도 이와 비슷한 모임을 만들었다.
아름다운마을 공동체의 지나온 발자취
아름다운마을 공동체는 1991년부터 시작됐다. 1991년 보수적인 신학교에 다니던 일군의 신학생들과 이 학교 출신의 목회자들이 중심이 되어 공동체를 시작했다. 당시의 지향은 우리 사회에서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의미하는 교회는 단지 제도화된 교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 원인은 신학생들이 학교에 다니며 신앙에 대해 그리고 우리 사회에 대해 나름의 건강한 고민을 하더라도 개인적으로 사회에 나가면 이 생각을 현실적으로 유지하면서 살기가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특별히 공동체를 건설하고자 하는 생각은 없었다. 공동체는 보통 내적인 관계의 긴밀성에 의해 성립・유지된다. 하지만 이들은 이러한 내적 지향보다는 사회를 향한 외적 지향이 더욱 강하였다. 즉, 우리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혼자서는 실천하기 어려우니 함께 해보자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하였던 것이다.
우리 사회 안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신학생이나 목회자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 역시 이들의 생각이었다. 신학생이나 목회자들은 어떤 모임에서나 리더로서의 역할을 부여받도록 훈련 받고 이에 적응하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주로 이야기를 하려 하지 듣는 자세가 훈련되어 있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일반 평신도들도 공동체에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목회자 중심의 모임에서는 일반 청년들이 참여하기에 문턱이 높았다. 이에 모임 장소도 신학교 주변을 벗어나고자 하였다. 그래서 모임의 장소를 대학로 쪽으로 옮겼다. 이러한 결정은 목회자로서의 기득권을 내려놓고자 하는 생각이 크게 작용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1994년부터 일반 청년들이 한두 명씩 결합하기 시작했다. 이 때 결합한 사람들이 소수였지만 공동체의 기풍을 잘 만들어 주었고,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동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이 때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20여 명 정도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공동체의 대다수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초창기 주 구성원이던 목회자 중 다수는 모임에서 나갔다.
공동체의 운영
이 공동체의 범주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공동체보다 넓은 범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모든 공동체 식구들은 신앙공동체와 경제공동체에 참여하고 있다. 경제공동체라 함은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이 한 달에 일정 정도의 돈을 기부함으로써 형성된다. 모든 구성원들이 같은 액수의 돈을 내지는 않는다. 구성원마다 내는 돈의 액수는 기초공동체의 목회자와 상의하되, 자발적으로 결정한다. 그리고 특별하게 공동체에서 목돈이 필요한 경우에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기금에 참여한다. 그리고 이들 중 현재 다섯 가정 15명 정도는 전격적으로 자신들의 경제를 공동체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공동체 모두가 일정 정도의 돈을 공유하기 때문에 전격적으로 경제를 통합한 가정과 그렇지 않은 가정 간에 차별적인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15명이 경제를 통합한 가정은 2005년부터 생겨났다. 이들이 기초생활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처음 기초생활공동체를 결성하기로 동의한 가정들은 2004년 12월31일까지 개인적 수준의 살림과 채무 관계를 마무리하고 2005년 1월1일부터 다 공유하기로 했다고 한다. 물론, 이들도 처음 이러한 결합을 결정했을 때에는 두려움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 이러한 공유의 경험을 해보니 좋은 점들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크게 세 가지 점에서 발견되었는데, 첫째는 절약하며 풍족히 쓰는데도 돈이 남는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남겨진 돈을 좋은 일에 쓰기 위해 기금을 모으게 되었다. 두 번째는 돈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예를 들면, 직장에서 잘릴 위험이 있어도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자본주의를 넘어선다는 것이 자연스럽고 결코 어렵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런 장점들이 공유되면서, 자신의 경제를 전격적으로 공유하지 않는 이들도 가능한 공유하기 위한 배려가 보여지기 시작하고 있다.
공동체에는 다양한 층위의 공유 기금이 있는데, 공동체방 기금, 생명평화마을 기금, 교육 기금, 기초생활공동체 기금, 희년장학 기금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현재 공적인 공간을 몇 개 운영하고 있는데, 생명평화연대 사무실과 수련실, 아름다운 마을서원과 마을수도원, 아름다운마을학교가 그것이다. 이들 공간들은 공동체 공유기금을 통해 마련・유지되고 있다.
공동체의 위기와 발전
모든 공동체가 다 겪듯이,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도 10여년 전에 큰 위기를 겪은 적이 있다. 당시 공동체 식구들 반 이상이 공동체를 떠났다. 위기의 이유는 여러 가지로 파악할 수 있겠지만, 인터뷰에 참여한 안기홍 씨는 "인간적인 힘과 의지로 공동체를 이루겠다는 자세와 교만한 태도가 야기한 신앙적 문제"로 보고 있다. 아무튼, 이 일을 계기로 구성원들은 3개월 간 서로 침묵하며, 우리가 왜 모이게 되었는지, 공동체로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계속해서 이 모임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다시 모이고, 그렇지 않다고 판단되면 그만두자고 한 것이다. 결국 3개월 후 많은 사람들이 모임에서 떨어져 나갔다.
이 사건은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가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때 이들이 확인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자기이익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인지, 공동체는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구나 라는 일종의 집단적 깨달음이었다. 이 깨달음은 역설적으로 다시 공동체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부여해주었다. 그리고 뼈 속 깊이 새겨진 자기중심적인 나를 지켜주고, 보살펴줄 수 있는 관계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이 사건을 통해 아름다운마을 공동체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나름의 장치를 만들었다. 즉, 구성원 각자의 어려움과 구성원들 간의 갈등을 기초공동체 단위별로 해소하도록 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정작 아름다운마을 공동체 전체의 규율은 없다고 한다. 다만, 지금까지 이들이 살아온 역사를 통해 불문율로 자리잡은 ‘흔적’들은 있다고 한다. 하지만, 기초공동체를 통한 어려움과 갈등의 해결은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작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지금까지 공동체에 들어왔다 다시 나간 사람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의 경우 처음부터 자신들의 고민과 갈등을 다른 구성원들과 나누지 않고 혼자 고민하다 혼자 결정하고 도망치듯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공동체에 처음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도 공동체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고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6개월 정도의 입회과정을 밟도록 하고 있다. 이 입회과정은 프로그램으로 정립된 것이 아니고, 스스로 공동체를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공동체의 개방성
개인적으로 사회운동을 하는 내가 공동체에 관심을 갖는 것은 공동체가 그 내적인 관계의 긴밀성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에 적극적으로 개방된 형태여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공동체가 ‘자기들 끼리’가 아닌 ‘우리’ 모두에게 보다 적극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전통적인 형태의 공동체들이 현재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미비하고, 시골 깊은 곳에 맘 맞는 이들끼리 생태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 자체만으로는 역시 그런 점에서 아직 충분하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그리고 공동체가 이렇듯 일반 시민들과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지고 운영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아름다움 마을 공동체가 정작 그 지역 주민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아름다운마을 공동체는 자신들의 공동체와 주민들과의 관계에서 ‘염치’와 ‘배려’라는 점을 강조한다. 즉, 지역주민들 속에서 일정 정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 위한 관계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마을신문을 만들고 자신들이 운영하는 마을 학교와 마을밥상을 지역주민들에게 개방하였다. 하지만, 아직은 공동체의 공간을 수유리로 정하고 있을 뿐, 이곳에서 지역주민들까지 참여하는 공동체로 스스로를 확산하려는 노력은 미흡한 편이다.
이들이 주로 자신들의 공동체 가치를 확산하는 수단으로 택하고 있는 것은 앞서 언급한 기독청년아카데미다. 이 아카데미를 통해 목표하는 바는 단지 가치를 확산하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에 참여한 이들이 다양한 공동체를 건설하도록 영향을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이들 스스로가 다른 지역에서 공동체를 건설하고자 하는 노력도 보이는데, 최근 일부가 귀촌해서 농촌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이주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새로 이주한 곳에서 현지 주민들과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공동체의 농촌-도시 공동체로의 분화와 확장 차원이라 보는 것이 일단은 적절하다.
아름다운마을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기독교 신앙 공동체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공동체 전체의 규율이 없듯이 공동체 참여에 있어 종교적 강요는 없다. 오히려 이들은 자신들의 신앙적 가치에 있어서도 동양의 사상들을 많이 접목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앞서, 지역주민들과의 관계에서 ‘염치’와 ‘배려’를 강조한 것도 그러한 영향이다. 다만, 이러한 이들의 신앙이 내포하는 가치에 대한 공감이 공동체 참여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 된다.
아름다운마을 공동체가 또 중요하게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는 공동체 기업에 대한 것이다. 이는 자신들의 공동체가 국가와 돈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자생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이라 할 수 있으며, 이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견지되어 온 원칙이다. 따라서 이들은 시민단체로서의 생명평화연대에서부터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는다. 그보다는 ‘진짜’ 사회적 기업, 자급적 생산공동체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동시에 고비용의 교육비와 의료비로 가난한 사람이 더욱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문명의 현실 속에서 교육과 의료 문제를 대안적으로 해결해 갈 자생적이고, 공동체적인 생활양식과 문화를 준비하고 있다.
고민과 전망
지금은 이들의 공동체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공동체라는 것 자체가 완성될 수 있는 가치는 아니다. 공동체는 끊임없는 진행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공동체’보다는 공동체 ‘운동’이라는 것이 보다 적절한 표현이라 하겠다. 실상, 과정의 한 지점에 정체되어 있는 공동체에서는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으며, 이는 사회에 대한 개방성에 있어서도 정체되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 역시 현재의 고민과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고민이 없을 수 없다. 문제는 이를 인정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에 의해 미래와 개방성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아름다운마을 공동체는 이러한 건강한 고민과 전망에 대한 모색이 지금도 끊임없는 현재진행형이다.
이들이 최근 가장 중요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것은 도시에서의 공동체가 갖는 한계에 관한 것이다. 이들은 수유리로 공동체의 거점을 정하고, 걸어서 마실 다닐 수 있는 정도의 거리에 물리적 공동체를 형성해 왔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서울이라는 도시는 땅 값도 집값도 너무 비싸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공동체 공간 구상이 기본적으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들이 터를 잡고 있는 수유리의 조그만 동네는 서울에서는 상대적으로 땅 값이 싼 편이이지만 부동산 시장의 영향을 받아 꾸준히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가치적인 면에서도 도시에 존재하는 공동체에 대한 고민이 있다. 아름다운마을학교의 경우, 도시에 있다 보니 아이들에게 필요한 진짜 삶의 기술을 가르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점점 더 깨닫고 있다. 이와 같이 도시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공동체의 삶은 자신들의 가치를 충분히 실현하기에 한계가 많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그 외에 공동체들 사이의 긴밀한 교류에 대한 욕구도 가지고 있다. 전국에는 공동체에 대한 꿈을 갖거나 대안적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기반이 서울에 있다 보니 이들과의 교류가 주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한정되는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아무튼, 이러한 고민들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으로 이들은 공동체 식구들 중 일부가 귀촌할 준비를 하고 있다. 즉, 땅 값이 비싸지 않아 새로운 공동체 공간에 대한 실현이 상대적으로 수월하고, 대안적 공동체의 가치를 생활 속에서 실현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대안이 마련되었다. 그래서 현재 공동체 식구 중 일부가 선발대 격으로 농사를 배우고 터를 잡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이들은 귀농 관련 교육도 이미 여러 차례 받았으나, 일부라도 먼저 귀촌하여 지역주민들로부터 살아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구체적 장소를 물색 중에 있다. 그리고 이 거점은 귀농을 희망하는 이들에게 귀농과 교육이 매개하는 곳으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물론, 이러한 계획이 수유리의 기존 공동체를 모두 농촌으로 옮기려는 시도는 아니다. 기존의 공동체를 수유리의 도시공동체와 귀농한 공동체로 분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도 설명했던 고민의 해결책이라는 점에서, 향후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에 있어 사고의 중심은 농촌으로 옮길 생각이다. 이는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에 있어 또 하나의 큰 도전이자 모험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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