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의 공동체 실험,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

 

이 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 이 글은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에 대한 다각적인 조사를 통한 조사보고서가 아니다. 이 글은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 식구 중 초창기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해 온  안기홍씨 그리고 얼마전까지 녹색마을 사람들 사무국장이었고 이 공동체 식구인 최윤정씨와의 인터뷰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와의 만남

  2년 전 생명평화연대라는 단체로부터 풀뿌리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간 적이 있다. ‘생명평화연대?’ 많이 들어본 단체 이름이었다. 생명운동을 하는 곳에서 주로 사용하는 단체명이기 때문이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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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그와는 좀 다른 단체라는 설명을 들었다. 찾아간 곳은 강북구 수유리 산동네였는데, 이들의 정체성은 ‘생명평화연대’라는 단체보다는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에 더 깊게 뿌리박고 있음을 알았다. 당시에는 도시지역에서 새롭게 진행되는 공동체 실험이라는 점에서 참신하다는 인상을 받았고, 알고 보니 내가 잘 알고 있는 풀뿌리운동 활동가 한 명도 그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었다.

  당시 알아낸 정보는 간단했다. 기독교 청년운동을 하던 이들이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공동체를 이루고 있으며, 그 기독교 신앙을 사회의 변화와 함께 고민하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즉, 기독교 신앙의 ‘하느님 나라’를 현실 사회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지향을 갖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또한 공동체의 결합 방식도 다양해서, 일부는 느슨한 형태로 공동체에 참여하기도 하고 또 일부는 소득을 공유하는 방식의 매우 강고한 형태로 결합하고 있다고 했다.

  이 날은 내 이야기 후 저녁 시간도 많이 흘렀고 공동체 식구들의 모임이 진행되는 듯하여 더 묻지 못하고 그냥 헤어졌다. 하지만, 도시에서 진행되는 이 공동체를 꼭 한 번은 조사해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잊었다. 하지만, 작년 말 우연히 야마기시 공동체의 새로운 흐름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이음 블로그 ‘풀내음’, “세상 속으로 나아가려는 야마기시 공동체” 참조) 아름다운 마을공동체가 다시금 떠올랐다. 비록 여러 차이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아름다운마을 공동체가 추진하는 공동체의 모습이 야마기시 공동체가 도시에서 새롭게 발전하는 모습과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모습

  아름다운마을 공동체는 서울 강북의 북한산 아랫마을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생활공동체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수유리 지역 외에도 농촌과 도시가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마을공동체를 구상하며 공동체적 귀촌을 준비하고 있다. 마을 부지가 결정되면 이 곳 공동체 식구 중 몇 명은 그 곳으로 이주할 계획이다.

  아름다운마을 공동체는 크게 ‘생활, 일, 신앙’이라는 세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 일을 통해 드러나는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 모습

  먼저, 일을 통해 드러나는 아름다운마을 공동체의 모습은 지역 시민운동단체로서의 모습이다. 즉, 생명평화연대는 아름다운마을 공동체가 드러내는 시민운동으로서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주민들은 여기 모여 있는 이들을 공동체로 보기보다는 생명평화연대라는 시민단체로 인식하고 있다.

  이들은 시민단체로서의 자기 활동 지향을 크게 몇 가지 형태로 설정하고 있다. 첫째는 일반 사회운동과 기독교 운동을 연결하고자 하는 지향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들이 초기부터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프로그램은 기독청년아카데미이다. 이 아카데미는 계절마다 8주 과정으로 교육을 진행한다. 여기에 성서의 맥, 글쓰기교실 같은 상설강좌는 4~6개월 정도로 더 긴 호흡으로 진행한다. 기본적인 과정을 밟은 이들은 1년 과정의 공동체지도력훈련에 참여해 공부하며 실천한다. 이 프로그램은 기독교 사회운동과 공동체운동에 관심 있는 청년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다. 그래서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는데, 이 강좌 프로그램에는 단순히 기독교 신자들만이 아니라, 다양한 그룹들이 참여하고 있다. 매 학기마다 약 300~350명 가량이 수강생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참여자의 60% 정도는 일반 직장인이고, 나머지는 대학생, 주부, 활동가, 청년실업자, 신학생이다. 그리고 참여자의 연령대는 2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까지 다양한 편이다.

  기독청년 아카데미는 참여자들에게 이 시대에 공동체가 의미하는 가치와 정신 등을 공유하고 확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이 아카데미를 통해 아름다운마을 공동체에 새로이 참여하는 이들도 있지만, 공동체에서는 그보다 다른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거점으로 작용되기를 바라고 있다.

  두 번째는 중앙운동과 지역운동을 연결하고자 하는 지향이다. 예를 들면, 지난 2008년의 촛불집회를 지역에서 개최하는 등이 그러한 노력의 모습 중 하나이다. 그리고 강북구의 조그만 마을에서 활동을 하지만,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에 가입하여 정보를 교환하는 등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세 번째는 아름다운마을 공동체가 터를 잡고 있는 지역에서 주민들과 함께 하는 모습이다. 이는 주로 아름다운마을학교를 통해 나타난다. 이들은 현재의 마을에 자리를 잡을 때부터 교육과 문화를 통해 주민들과 만나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 주민들과 함께 시작한 활동은 공동육아와 계절학교다. 그리고 지금은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라는 대안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교육을 공동체 활동의 주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다. 이는 아이를 어떻게 낳아서 공동체적으로 기르고 키울 것인가 하는 관심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관심은 지역의 다른 아이들에게도 개방되어 있다. 이는 이러한 교육을 주제로 한 활동이 공동체 내부의 필요와 지향에 의해 생겨났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필요를 공동체 내부에서만 폐쇄적으로 해소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 개방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공동체와는 다소 차별성을 보인다. 이 마을학교는 대안학교로서 지역에 꽤 알려져 있는 편이다.

 

- 신앙을 통해 드러나는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

  기독교 신앙은 아름다운마을 공동체의 정신과 영성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가치이다. 그러나 이 신앙은 기존의 교회 중심이라기보다는 사회 안에서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직접 구현하고자 하는 사회실천적 지향을 갖는다. 하지만, 신앙 공동체라는 특성은 이러한 신앙적 영성을 강화할 필요를 항상 강조하게 한다. 그런 가장 대표적인 내용이 공동체 생활영성 수련이다. 이 수련은 공동체 생활을 통해 축적된 공동생활 노하우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개개인의 영성적 경험을 나누고, 아이가 아플 때 공동체적이고 대안적으로 대처하는 방법 등에 관한 경험을 공유하고, 함께 생채식을 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생활영성 수련은 건강한 몸을 통해 건강한 신앙인을 양성한다는 지향을 갖고 있다.

  그리고 마을수도원도 운영하고 있다. 마을수도원은 공동체 식구들이 일정 기간 피정(避靜)하며 수련하는 공간이다. 또한 기독교 신앙 공동체라는 특성을 살려 예배와 관련한 모임도 운영되고 있다. 현재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는 세 개의 교회로 이루어져 있다. 이 교회는 건물로서의 교회가 아닌 사람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의미한다. 각 교회는 다시 기초공동체로 구성되어 있는데, 현재 11개의 기초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다. 예배는 바로 이 기초공동체별로 이루어지고, 한 달에 한 번 교회별 공동예배를 드린다. 그리고 한 달에 1회는 공동체 식구 전체의 예배를 드린다.

  이 기초공동체는 말씀과 기도를 중심으로 하며, 자신의 실존적 문제를 신앙을 통해 해결해 가는 또 하나의 가족 개념이다. 이 기초공동체는 장기적으로 삶의 의식주 문제를 함께 해결해 갈 수 있는 기초생활공동체로 가기 위한 훈련과 신앙의 가장 기본 단위가 개인이나 가족이 아니라 공동체임을 끊임없이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한다.

 

- 생활을 통해 드러나는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는 생활공동체로서의 의미와 지향도 갖고 있다. 이 생활공동체는 같은 동네에서 생활하면서 생활권을 공유하는 이들의 공동체이다. 생활 공동체 중 중요한 한 가지는 ‘마을밥상’이다. 이 생활공동체에 속해 있는 이들은 주중에 점심과 저녁식사를 함께 한다. 이는 마을에서 사회적 활동에 가장 소외되기 쉬운 계층을 위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루하루의 공동식사를 통해 공동체 가정의 먹을거리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생활공동체는 작고 다양한 형태의 몇 개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예를 들면, 비혼(非婚) 남성들로 이루어진 남성 공동체, 비혼 여성들로 이루어진 여성 공동체가 있고, 이들은 각기 공동체방에서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이들은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족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모임은 모두 8개 있다. 살림터, 광야, 새터, 행복한 집은 남성공동체방이고, 여성공동체방은 더불어, 달자네, 풍경, 새술이다.

  그런데, 비혼 공동체와 기혼 공동체가 각기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기혼과 비혼 공동체 식구들이 만나는 부뚜막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이 부뚜막에서는 기혼 여성과 비혼 여성이 한 달에 한 번 만나 1박을 하며 결혼, 직장, 육아 등에 관한 의견을 상호 교환한다. 이에 남성들도 이와 비슷한 모임을 만들었다.

 

아름다운마을 공동체의 지나온 발자취

  아름다운마을 공동체는 1991년부터 시작됐다. 1991년 보수적인 신학교에 다니던 일군의 신학생들과 이 학교 출신의 목회자들이 중심이 되어 공동체를 시작했다. 당시의 지향은 우리 사회에서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의미하는 교회는 단지 제도화된 교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 원인은 신학생들이 학교에 다니며 신앙에 대해 그리고 우리 사회에 대해 나름의 건강한 고민을 하더라도 개인적으로 사회에 나가면 이 생각을 현실적으로 유지하면서 살기가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특별히 공동체를 건설하고자 하는 생각은 없었다. 공동체는 보통 내적인 관계의 긴밀성에 의해 성립・유지된다. 하지만 이들은 이러한 내적 지향보다는 사회를 향한 외적 지향이 더욱 강하였다. 즉, 우리 시대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혼자서는 실천하기 어려우니 함께 해보자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하였던 것이다.

  우리 사회 안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신학생이나 목회자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 역시 이들의 생각이었다. 신학생이나 목회자들은 어떤 모임에서나 리더로서의 역할을 부여받도록 훈련 받고 이에 적응하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주로 이야기를 하려 하지 듣는 자세가 훈련되어 있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일반 평신도들도 공동체에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목회자 중심의 모임에서는 일반 청년들이 참여하기에 문턱이 높았다. 이에 모임 장소도 신학교 주변을 벗어나고자 하였다. 그래서 모임의 장소를 대학로 쪽으로 옮겼다. 이러한 결정은 목회자로서의 기득권을 내려놓고자 하는 생각이 크게 작용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1994년부터 일반 청년들이 한두 명씩 결합하기 시작했다. 이 때 결합한 사람들이 소수였지만 공동체의 기풍을 잘 만들어 주었고,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동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이 때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20여 명 정도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공동체의 대다수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초창기 주 구성원이던 목회자 중 다수는 모임에서 나갔다.

 

공동체의 운영

  이 공동체의 범주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공동체보다 넓은 범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모든 공동체 식구들은 신앙공동체와 경제공동체에 참여하고 있다. 경제공동체라 함은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이 한 달에 일정 정도의 돈을 기부함으로써 형성된다. 모든 구성원들이 같은 액수의 돈을 내지는 않는다. 구성원마다 내는 돈의 액수는 기초공동체의 목회자와 상의하되, 자발적으로 결정한다. 그리고 특별하게 공동체에서 목돈이 필요한 경우에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기금에 참여한다. 그리고 이들 중 현재 다섯 가정 15명 정도는 전격적으로 자신들의 경제를 공동체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공동체 모두가 일정 정도의 돈을 공유하기 때문에 전격적으로 경제를 통합한 가정과 그렇지 않은 가정 간에 차별적인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15명이 경제를 통합한 가정은 2005년부터 생겨났다. 이들이 기초생활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처음 기초생활공동체를 결성하기로 동의한 가정들은 2004년 12월31일까지 개인적 수준의 살림과 채무 관계를 마무리하고 2005년 1월1일부터 다 공유하기로 했다고 한다. 물론, 이들도 처음 이러한 결합을 결정했을 때에는 두려움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 이러한 공유의 경험을 해보니 좋은 점들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크게 세 가지 점에서 발견되었는데, 첫째는 절약하며 풍족히 쓰는데도 돈이 남는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남겨진 돈을 좋은 일에 쓰기 위해 기금을 모으게 되었다. 두 번째는 돈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예를 들면, 직장에서 잘릴 위험이 있어도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자본주의를 넘어선다는 것이 자연스럽고 결코 어렵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런 장점들이 공유되면서, 자신의 경제를 전격적으로 공유하지 않는 이들도 가능한 공유하기 위한 배려가 보여지기 시작하고 있다.

  공동체에는 다양한 층위의 공유 기금이 있는데, 공동체방 기금, 생명평화마을 기금, 교육 기금, 기초생활공동체 기금, 희년장학 기금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현재 공적인 공간을 몇 개 운영하고 있는데, 생명평화연대 사무실과 수련실, 아름다운 마을서원과 마을수도원, 아름다운마을학교가 그것이다. 이들 공간들은 공동체 공유기금을 통해 마련・유지되고 있다.

 

공동체의 위기와 발전

  모든 공동체가 다 겪듯이,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도 10여년 전에 큰 위기를 겪은 적이 있다. 당시 공동체 식구들 반 이상이 공동체를 떠났다. 위기의 이유는 여러 가지로 파악할 수 있겠지만, 인터뷰에 참여한 안기홍 씨는 "인간적인 힘과 의지로 공동체를 이루겠다는 자세와 교만한 태도가 야기한 신앙적 문제"로 보고 있다. 아무튼, 이 일을 계기로 구성원들은 3개월 간 서로 침묵하며, 우리가 왜 모이게 되었는지, 공동체로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계속해서 이 모임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다시 모이고, 그렇지 않다고 판단되면 그만두자고 한 것이다. 결국 3개월 후 많은 사람들이 모임에서 떨어져 나갔다.

  이 사건은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가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때 이들이 확인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자기이익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인지, 공동체는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구나 라는 일종의 집단적 깨달음이었다. 이 깨달음은 역설적으로 다시 공동체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부여해주었다. 그리고 뼈 속 깊이 새겨진 자기중심적인 나를 지켜주고, 보살펴줄 수 있는 관계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이 사건을 통해 아름다운마을 공동체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나름의 장치를 만들었다. 즉, 구성원 각자의 어려움과 구성원들 간의 갈등을 기초공동체 단위별로 해소하도록 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정작 아름다운마을 공동체 전체의 규율은 없다고 한다. 다만, 지금까지 이들이 살아온 역사를 통해 불문율로 자리잡은 ‘흔적’들은 있다고 한다. 하지만, 기초공동체를 통한 어려움과 갈등의 해결은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작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지금까지 공동체에 들어왔다 다시 나간 사람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의 경우 처음부터 자신들의 고민과 갈등을 다른 구성원들과 나누지 않고 혼자 고민하다 혼자 결정하고 도망치듯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공동체에 처음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도 공동체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고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6개월 정도의 입회과정을 밟도록 하고 있다. 이 입회과정은 프로그램으로 정립된 것이 아니고, 스스로 공동체를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공동체의 개방성

  개인적으로 사회운동을 하는 내가 공동체에 관심을 갖는 것은 공동체가 그 내적인 관계의 긴밀성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에 적극적으로 개방된 형태여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공동체가 ‘자기들 끼리’가 아닌 ‘우리’ 모두에게 보다 적극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전통적인 형태의 공동체들이 현재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미비하고, 시골 깊은 곳에 맘 맞는 이들끼리 생태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 자체만으로는 역시 그런 점에서 아직 충분하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그리고 공동체가 이렇듯 일반 시민들과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지고 운영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아름다움 마을 공동체가 정작 그 지역 주민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아름다운마을 공동체는 자신들의 공동체와 주민들과의 관계에서 ‘염치’와 ‘배려’라는 점을 강조한다. 즉, 지역주민들 속에서 일정 정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 위한 관계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마을신문을 만들고 자신들이 운영하는 마을 학교와 마을밥상을 지역주민들에게 개방하였다. 하지만, 아직은 공동체의 공간을 수유리로 정하고 있을 뿐, 이곳에서 지역주민들까지 참여하는 공동체로 스스로를 확산하려는 노력은 미흡한 편이다.

  이들이 주로 자신들의 공동체 가치를 확산하는 수단으로 택하고 있는 것은 앞서 언급한 기독청년아카데미다. 이 아카데미를 통해 목표하는 바는 단지 가치를 확산하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이에 참여한 이들이 다양한 공동체를 건설하도록 영향을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이들 스스로가 다른 지역에서 공동체를 건설하고자 하는 노력도 보이는데, 최근 일부가 귀촌해서 농촌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이주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새로 이주한 곳에서 현지 주민들과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공동체의 농촌-도시 공동체로의 분화와 확장 차원이라 보는 것이 일단은 적절하다.

  아름다운마을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기독교 신앙 공동체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공동체 전체의 규율이 없듯이 공동체 참여에 있어 종교적 강요는 없다. 오히려 이들은 자신들의 신앙적 가치에 있어서도 동양의 사상들을 많이 접목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앞서, 지역주민들과의 관계에서 ‘염치’와 ‘배려’를 강조한 것도 그러한 영향이다. 다만, 이러한 이들의 신앙이 내포하는 가치에 대한 공감이 공동체 참여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 된다.

  아름다운마을 공동체가 또 중요하게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는 공동체 기업에 대한 것이다. 이는 자신들의 공동체가 국가와 돈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자생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이라 할 수 있으며, 이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견지되어 온 원칙이다. 따라서 이들은 시민단체로서의 생명평화연대에서부터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는다. 그보다는 ‘진짜’ 사회적 기업, 자급적 생산공동체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동시에 고비용의 교육비와 의료비로 가난한 사람이 더욱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문명의 현실 속에서 교육과 의료 문제를 대안적으로 해결해 갈 자생적이고, 공동체적인 생활양식과 문화를 준비하고 있다.

 

고민과 전망

  지금은 이들의 공동체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공동체라는 것 자체가 완성될 수 있는 가치는 아니다. 공동체는 끊임없는 진행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으며, 그런 점에서 ‘공동체’보다는 공동체 ‘운동’이라는 것이 보다 적절한 표현이라 하겠다. 실상, 과정의 한 지점에 정체되어 있는 공동체에서는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으며, 이는 사회에 대한 개방성에 있어서도 정체되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 역시 현재의 고민과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고민이 없을 수 없다. 문제는 이를 인정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에 의해 미래와 개방성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아름다운마을 공동체는 이러한 건강한 고민과 전망에 대한 모색이 지금도 끊임없는 현재진행형이다.

  이들이 최근 가장 중요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것은 도시에서의 공동체가 갖는 한계에 관한 것이다. 이들은 수유리로 공동체의 거점을 정하고, 걸어서 마실 다닐 수 있는 정도의 거리에 물리적 공동체를 형성해 왔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서울이라는 도시는 땅 값도 집값도 너무 비싸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공동체 공간 구상이 기본적으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들이 터를 잡고 있는 수유리의 조그만 동네는 서울에서는 상대적으로 땅 값이 싼 편이이지만 부동산 시장의 영향을 받아 꾸준히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가치적인 면에서도 도시에 존재하는 공동체에 대한 고민이 있다. 아름다운마을학교의 경우, 도시에 있다 보니 아이들에게 필요한 진짜 삶의 기술을 가르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점점 더 깨닫고 있다. 이와 같이 도시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공동체의 삶은 자신들의 가치를 충분히 실현하기에 한계가 많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그 외에 공동체들 사이의 긴밀한 교류에 대한 욕구도 가지고 있다. 전국에는 공동체에 대한 꿈을 갖거나 대안적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기반이 서울에 있다 보니 이들과의 교류가 주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한정되는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아무튼, 이러한 고민들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으로 이들은 공동체 식구들 중 일부가 귀촌할 준비를 하고 있다. 즉, 땅 값이 비싸지 않아 새로운 공동체 공간에 대한 실현이 상대적으로 수월하고, 대안적 공동체의 가치를 생활 속에서 실현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대안이 마련되었다. 그래서 현재 공동체 식구 중 일부가 선발대 격으로 농사를 배우고 터를 잡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이들은 귀농 관련 교육도 이미 여러 차례 받았으나, 일부라도 먼저 귀촌하여 지역주민들로부터 살아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구체적 장소를 물색 중에 있다. 그리고 이 거점은 귀농을 희망하는 이들에게 귀농과 교육이 매개하는 곳으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물론, 이러한 계획이 수유리의 기존 공동체를 모두 농촌으로 옮기려는 시도는 아니다. 기존의 공동체를 수유리의 도시공동체와 귀농한 공동체로 분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도 설명했던 고민의 해결책이라는 점에서, 향후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에 있어 사고의 중심은 농촌으로 옮길 생각이다. 이는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에 있어 또 하나의 큰 도전이자 모험이라 할 수 있겠다.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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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키 마을만들기 시민회의1)

이 호(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소장)

세자키 마을만들기의 출발과 시민회의의 출범



<세자키 마을만들기 시민회의>가 조직된 배경과 과정, 그리고 그 주체에 대한 설명은, 모든 지역활동 사례에서도 그렇듯이, 한 사람을 중심으로 서술되고 한 사람의 특출난 기여로 모든 것을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 하지만, 해당 사례에 대한 심층적 분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한은 그 사례를 일구는 데 핵심적 기여를 했던 한 사람과의 인터뷰가 중심 내용이 될 수밖에 없고, 또한 그 사람의 관점이 중요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 사례조사 보고서 역시 그런 한계가 명확히 있다. 그렇지만, 세자키 시민회의 사례 조사를 위해 실시한 인터뷰 대상자는 시민회의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부터 핵심적으로 참여하였고, 또 최근에 시민회의 평가와 전망 관련 논문을 쓰기까지 한 열혈 아줌마이다. 따라서 이 분을 중심으로 한 사례소개가 사실을 그리 왜곡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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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와 인터뷰 중인 가토우씨

<세자키 마을만들기 시민회의>에 대한 소개는 가토우(加藤) 사끼에 씨에 대한 소개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세자키는 일본의 정(町) 이름이다. 마을회의는 바로 이 세자키 정 1・2・3, 세 개의 정에서 활동하는 조직이다. 세자키 정은 일본 사이타마 현 동남부에 위치한 소카시에 속해있다. 인구는 약 1만5천명 6,700세대 정도로, 하나의 초등학교 학군 정도의 규모이다. 이 지역에는 공동주택이 밀집되어 있고, 인구의 이동도 많은 편이다. 이 세 개의 정은 그 경계에 있는 신사에서 축제를 공동으로 개최하는 등으로 인해 매우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인터뷰의 주인공인 가토우씨는 시민회의가 조직되기 전부터 지역사회활동에 열심히 참여한 두 딸을 둔 여성이다. 가토우씨의 활동 중 가장 대표적인 경력은 해당 지역의 학부모 모임인 PTA 부회장 출신이라는 것이다. PTA의 부회장으로 활동을 하면서 소카시의 민생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는데, 이는 지역주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직함이라고 한다.

가토우씨는 두 명의 딸을 키우고 학부모 모임에 참여하면서, 자기 자녀들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만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라 지역사회가 함께 잘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가 베드타운(bed town)으로 황폐화되어 가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다. 이에 자녀들이 참여하는 축제를 개최하자는 제안을 PTA에 하였고, 세자키 정내회에도 이러한 제안을 하게 되었다. 이 제안은 받아들여져 축제실행위원회가 조직되기에 이르렀다. 물론, 이 실행위원회의 사무국과 같은 실무 역할은 가토우씨가 소속된 PTA에서 주로 담당하였으나, 정내회가 이 제안을 받아들이자 정내회 주최의 축제로 진행하였다. 이 축제는 이후 계속 이어져 지금까지 개최되고 있다.

실행위원회가 조직되어 매년 축제를 개최하자, 이를 위해 지역사회의 다양한 단체들이 축제준비를 위해 함께 일하기 시작하였고, 이 과정을 통해 다양한 단체들 간의 유대도 강화되고 상호 정보가 유통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성과는 소카시에서도 인정을 하여, 이 실행위원회를 지역사회 내 제 단체들에 대한 연락루트로 활용하기도 할 정도이다. <세자키 마을만들기 시민회의>는 바로 이러한 기반을 통해 비교적 손쉽게 조직될 수 있었다.

이 축제가 10년 정도 지속적으로 개최되자 학부모 모임들 사이에서도 모범사례로 거론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소카시에 본격적으로 다양한 사업을 제안하고자 했으나, 정작 PTA 내부에서도 반대가 심하였고 본인도 딸들이 졸업을 하면서 PTA에서 반대를 무릅쓰고 열심히 일할 기반이 없어졌다. 이에 PTA 활동을 정리하였는데, 마침 그 때 풀뿌리 네트워크라는 모임이 결성되었다. 이에 이 네트워크에 참여해 활동을 하기 시작했고, 이곳에서 시민회의를 함께 추진할 사람을 만났다.

풀뿌리 네트워크에서 가토우씨가 만난 사람은 소카시 JC 이사장을 역임한 사람이었는데, 그런 만큼 지역사회에 많은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이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서 지역사회의 문제와 해결방향 등과 관련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중 2000년에 소카시에서 마을만들기에 대한 공모를 실시하였고, 세자키 정에서 이에 응모하기로 의기투합하여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응모는 세자키 3개 정과 아파트 자치회를 중심으로 <세자키 지구 마을만들기 연구회>를 결성하여 이 이름으로 신청하였다. 공모 주체를 연구회로 정한 이유는 기존의 정내회와 아파트 자치회에 참여하는 이들 이외에 새로운 주민들이 이 사업에 참여하도록 추동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 이 공모는 결국 받아들여졌고, JC 이사장 출신이 사무국장을 맡고 여타 지역주민들이 활동가로 결합하는 등의 역할 분담을 통해 3개 정내회와 함께 진행되었다.

이 사업에 참여한 주민들은 마을만들기에 대한 교육을 받고 가장 먼저 마을 워칭(watching)을 실시하였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마을의제를 만들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동네 한 바퀴’와 비슷한 방식이다. 마을 워칭을 통해 마을의제를 정리하였고, 그 결과를 주민들에게 보고하는 모임을 개최하였다. 그 후 2년 간 지구별, 주제별로 모임을 구성하여 이를 진행시켰다. 그리고 주민보고회를 통해 그 결과를 주민들과 공유하였다. 그리고 이를 묶어 2002년 3월에 세자키 마을만들기 백서, 「아이 러브 세자키」를 발간하였다. 이처럼 사업을 백서로 발간하게 된 이유는 소카시에서 공모에 선정된 주체에 대한 지원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즉, 백서 만들기나 컨설팅 등에 대해서은 재정지원이 이루어졌지만, 그 외의 사업에 대해서는 지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공모에 선정되어 마을만들기 사업을 벌이던 연구회는 1년 후 조직의 명칭을 <세자키 마을만들기 시민회의>로 변경하였다. 이는 연구회의 활동을 계승・발전시키면서 일반 주민들의 참여를 보다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일반 주민들의 참여가 보다 확대되면서 시민회의는 참여한 주민들 간의 네트워크 형태로 시민회의를 운영하였다. 마을만들기의 외적 슬로건은 ‘쾌적’, ‘안심・안전’, ‘공생’으로 정하였으나, 내적 목표는 ‘주민’으로부터 ‘자립한 시민’으로 의식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으로 설정하였다.

소카시의 마을만들기 공모에 선정된 후 초기에는 지역 내 빈 점포 등을 사무실로 빌려 쓰며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사무실은 초기에 가토우씨와 의기투합했던 주민이 자신의 빈 점포를 빌려준 것으로, 이 사람은 시민회의 초대 사무국장으로도 적극 참여하였다. 마을만들기 사업 초기인 연구회 시절에는 약 20여명의 사람이 활동을 시작하였고, 이 중 약 10명 정도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들은 정내회를 통해 참여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시민회의로 변화된 이후 새롭게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주민들이 늘어났고, 후에 이들과 정내회를 중심으로 초기에 참여한 이들과 의견차이가 불거지기도 했다.

마을만들기 사업의 성과

공모를 통한 마을만들기 사업은 주로 ‘세자키 프로젝트 21’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는데, 그 중 ‘세자키 지구 상세계획’은 마을 워칭을 통해 정리한 내용이다. 마을 워칭의 결과는 ‘재해에 강하고 누구나 쾌적하게 살 수 있는 마을만들기’ , ‘녹색을 살린 마을만들기’, ‘모두가 서로 협력해서 진행하는 마을만들기’라는 3개의 기본방침으로 구분하여 실천하였다. 그리고 실천은 5년 이내에 실현할 단기 과제와 10년 이상에 걸쳐 실현해야 할 장기과제로 나누었다. 이 중 단기과제로 설정한 ‘세자키 아즈마쵸선의 정비’, ‘위험한 교차점 개량사업’, ‘친수녹도(親水錄道) 공원사업’, ‘세자키 코미센(커뮤니티 센터)과 산노우 공원의 일체화된 활용’은 구체적 성과를 내왔다.

그러나 성과는 단지 이러한 가시적인 것에 그치지 않았다. 소카시의 행정은 다른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주민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주민들도 자신의 의견을 직접 시에 전달하려하기보다는 시의원이나 정내회에서 그러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을만들기 사업은 주민들로 하여금 자기가 원하는 것을 굳이 정내회 회장이나 시의원 등에게 요청할 필요 없이,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에 기여했다. 즉, 내가 하면 변화가 가능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 사업을 주도한 주체들은 마을 워칭을 통해 정리된 의제들 중에서 비교적 주민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쉬운 것부터 실천을 하였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구체적인 성과를 거둠으로써 위와 같은 인식의 확산에 기여할 수 있었다. 또한 백서에는 마을만들기 사업에 참여한 주민 100명의 사진을 넣어, 주민들로 하여금 이 사업이 자신들이 참여한 사업이라는 인식을 가시적으로 느끼도록 배려하였다.

시민회의의 발전

마을 워칭을 통해 정리된 ‘세자키 지구 상세계획’은 백서가 발간된 이후에도 지구별 테마별로 나뉘어 주민들이 참여하는 사업으로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 중 몇 가지만 예로 들어보면, 2002년에 세자키 지구에 살았던 선인(先人)들의 발자취를 배우는 ‘역사 산책모임’, 누구라도 부담 없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모임인 ‘와글와글 우물가의 쑥덕공론’, 아파트의 쾌적한 생활 및 관리에 관한 정보교환을 주제로 한 ‘세자키 맨션2) 넷’, 공원을 아름답게 만들고자 2개의 공원을 선정하여 마을만들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공원의 화단만들기’, 은퇴한 사람들이 지역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하고 사회공헌 활동에도 참여하도록 하는 ‘세자키 YOYO 클럽’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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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들이 만든 공원의 화단만들기 모형

2003년도에는 세자키 지구의 자원봉사 방범회인 ‘세자키 방법 패트롤대’, 지역사회의 여러 세대가 협동하여 아이들을 지켜나가는 모임인 ‘아이의 클럽’이 형성되었다. 2004년에는 가벼운 체조 종합클럽 ‘건강 업 클럽’, 2005년에는 아이가 자유로운 놀이를 체험하는 모험의 놀이동산 만들기 ‘세자키 모험 놀이회’, 쓰레기 감량을 통해 마을만들기 예산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쓰레기 감량 프로젝트’를 실행하였다. 2006년에는 강가를 쉽게 쉽게 걸을 수 있도록 하는 ‘毛長川 산책길 추진회’, 강가의 꽃을 지키는 ‘German 아이리스회’를 조직하였으며, 방법 패트롤대에서는 청색 회전등이 달린 차량을 구입하여 순찰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밖에 ‘세자키 축제 in 여름’, ‘마음이 통하는 세자키 X-mas 콘서트’, 봄과 가을의 토・일요일에 실시하는 ‘하루 모험 놀이장’, ‘첫 꿈 시민회의’, ‘마음이 통하는 봄의 축제’도 매년 정례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그리고 ‘세자키 마을만들기 뉴스’라는 소식지를 매월 5,500부 발행하여 반상회와 초등학교 및 보육원을 통해 가정으로 배포하고 있다.

2006년에는 사무국이 해소되면서 시민회의가 부서별 체계로 재편되었다. 각 부서는 연락회의 사업부를 통해 총체성을 유지하지만, 기본적으로 각 부서 및 사업별로 관심있는 주민들을 참여를 통해 자율적인 의사결정과 실행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주민들의 주체적 참여에 있어 보다 발전된 형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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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키 마을만들기 시민회의 조직도>

조직도 상에서 연락회의 사업부는 각 사업부들을 연계・조정하며, 시민회의 전체 운영에 관한 사항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단위이다. 일반적인 운영위원회와 같은 성격을 갖는다. 그에 반해 임원회의 위에 별도로 구분된 운영위원회는 별도로 지정된 관리업무 외에 코미센 운영 및 활동과 관련된 조언 및 제언을 하는 단위이다. 따라서 실질적인 결정권을 갖는 단위는 아니다.

사업부는 크게 커뮤니티 사업부와 지역사업부, 마을만들기 사업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사업부는 사업내용 등에 따라 다양한 위원회 등으로 다시 세분되어 주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커뮤니티 사업부의 경우에는 ‘세자키 마을만들기 뉴스’를 발간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그 외 세자키 코미센의 운영과 활동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지역사업부는 각종 이벤트와 행사, 패트롤, 쓰레기 감량사업 등의 일상사업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마을만들기 사업부는 현재 진행하고 있는 마을만들기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세자키 코미센의 위탁관리

시민회의의 발전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내용 중 하나는 세자키의 커뮤니티 센터(코미센)를 시민회의가 위탁・관리하게 된 것이다. 소까시에는 6개의 커뮤니티 센터가 있고, 이 커뮤니티 센터들은 22년 전부터 운영되었는데, 그 운영은 시의 외곽조직이라 할 수 있는 커뮤니티 협의회에서 담당(시설관리공단 쯤 해당될 듯)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에서 2003년 6월 지방자치법이 일부 개정되어 공공시설 관리와 관련한 제도가 크게 변화되었다. 이전까지 공공시설의 위탁운영은 지방공공단체의 출자법인 등 일부 단체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제도 개선 이후 순수 민간단체에서도 위탁운영이 가능하게 되었는데, 지정관리자 제도의 도입으로 기존의 위탁운영과 달리 보다 많은 자율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이용요금의 결정 및 예산의 사용처 등에 있어 자율권이 확대된 것이다3).

<세자키 마을만들기 시민회의>에서는 2003년부터 ‘세자키 코미센과 산노우 공원 일체화 검토회’를 조직하여 세자키 코미센을 지역활동의 ‘배꼽’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해 왔었다. 그리고 그동안의 시민회의 활동이 시로부터도 인정을 받아 2006년에 세자키 코미센에 대한 지정관리자로 선정되었다. 이후 세자키 코미센에서는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여 공정한 관리를 도모하고 있으며,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의견상자’를 비치하고 제안된 의견에 대한 회답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또한 연3회 이상 센터를 이용하는 이용자들과의 간담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주민들이 참여하는 마을만들기 센터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 지역 내 단체들의 행사를 매월 조사하여 게시, 마을만들기 게시판 증설, 지역 지원 사업으로 복사기, 인쇄기, 래미네이트기, A3 프린터 배치 등- 을 행하고 있다. 또한 코미센 서포터즈를 조직하여, 직원 한 명에 해당하는 업무를 여러 명이 담당하는 워크 쉐어링(work sharing)을 도입하는 등으로 주민관리에 따른 장점을 최대한 구현하고 있다. 또한 예산 사용처, 회의록 등을 뉴스레터 통해 공개함으로써 주민들에게 개방함으로써 이 센터가 주민들의 것이라는 인식 가져다주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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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자키 코미센 외부 전경과 내부 홀


이처럼 주민들의 자주관리가 이루어진 이후의 변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같은 비용이라도 보다 효율적인 예산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과, 주민들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참여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효율적인 예산 사용의 예를 두 가지만 들어보면, 첫째 기존에는 센터 청소를 용역을 주어 실행하였는데, 이제는 주민들의 자원봉사를 통해 함으로써 더 깨끗한 센터를 유지할 수 있고, 또한 그 비용을 다른 필요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로 예를 들어보면, 종이컵을 없애고 설거지를 해 다시 사용하는 컵을 사용함으로써 연간 약 50만엔을 절약함으로써, 이 비용을 다른 사업에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

주민들의 주체적 참여는 코미센의 운영 전반에 있어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사항이다. 그 중에서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해 보면, 첫째로는 코미센 내부에 개별 사물함을 두는 문제를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합의하고 해결한 것을 들 수 있다. 커뮤니티센터 조례에 의하면, 센터 내에는 개인 사물을 갖다놓을 수 없게 되어있다. 그러나 시와 친한 단체들의 경우에는 단체 개별 사물을 센터 내에 가져다 놓고 사용하는 경우가 빈번하였다. 이에 그 부당성을 이용자들이 지적하기 시작했고, 운영진은 이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 이용자 간담회를 개최하였다. 이용자 간담회에서는 여러 의견들이 나왔지만, 최종적으로 개별 사물함을 아예 없애기보다는 각 단체별로 박스를 두어 이용단체별 물품을 보관할 수 있도록 하자고 결론을 내었다.

사실, 이 방안은 관장인 가토우씨가 미리 생각하고 있던 방안이었지만, 나서서 사람들을 설득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용자 간담회에서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제안되는 것이 주민들의 주체적 참여를 강화하는 등에 보다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이렇듯 중요한 결정은 이용자 회의에서 결정하게 함으로써 센터를 주민들 스스로의 것으로 인식토록 하고, 이를 통해 주민들의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참여를 유도하고자 한 것이다.

“센터 운영에 있어서 중요한 원칙은 사람들의 생각들을 모아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참여자 각자가 초안을 만들도록 하고 이를 통해 합의하는 과정을 모아내는 것이 센터 운영의 중요한 방침이고, 이는 기존 커뮤니티 센터 운영과의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가토우씨 인터뷰 중)

시민회의의 과제

<세자키 마을만들기 시민회의>에 대해서는 최근 과거와 같은 활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평가가 흘러나오고 있다. 물론, 아직도 왕성한 활동들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각종 행사나 모임, 의견 제안 등에 참여하는 주민의 수가 감소하는 현상은 분명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가토우씨의 문제 진단을 정리하면, 크게 몇 가지로 그 원인을 고려할 수 있다.

첫째는 초기 참여자들과 신규 참여자들간의 소통 부족을 꼽을 수 있다. 초기 참여자들은 주로 정내회를 통해 참여한 이들이고, 그후는 지구별 주제별 활동에 참여한 이들이다. 따라서 마을만들기와 관련해서도 약간의 인식 차이가 났지만, 그 차이를 통합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2006년에 시민회의를 부서별 활동체계로 개편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 초기 참여자들은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하였고, 그에 따라 자신이 어느 부서에서 활동에 참여해야 하는 지에 대한 혼란을 겪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그 이후의 사업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없었고, 이는 참여의 저조를 가져오게 되었다.

둘째는 기존의 사무국 체계가 ‘사업부 연락회의’ 체계로 개편된 후 조직 내부의 문제를 정리하느라, 실제 현장 사업에 많은 역량을 쏟지 못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는 사무국의 해소 과정이 바람직한 발전방향에 따라 그리된 것이라기보다, 사무국장이 그만두면서 후임을 구하지 못해 그에 대한 대책으로 ‘사업부 연락회의’를 구성한 것과 밀접히 연관된다. 그러나 이를 단순한 조직개편의 문제로만 파악할 수는 없다. 사무국이 건재하던 시절에도 ‘차년도 사업검토 위원회’에서 다음 해의 의제를 도출해도 사무국에서는 이를 전격적으로 수용하려는 의지가 부족했다. 그런 상태에서 연락회의로 재편된 후에는 각 부서장들의 역할이 더욱 커졌는데, 출석률 저조 등의 문제가 도출되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연락회의 참석 저조의 문제가 아닌 부서의 활동 저조와 밀접한 문제임이 확인되었다. 즉, 출석률이 저조한 부서장의 부서에서는 모임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그 이후에는 ‘차년도 사업검토 위원회’ 자체가 개최되지 않았으며, 연락회의에서도 다음 해의 사업의제를 논의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회장 혼자 사업예산을 편성하는 등의 문제가 불거졌다.

세 번째는 외적 요인으로 행정의 변심(?)을 꼽을 수 있다. 물론, 행정의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변화의 이유를 들고 있기는 하지만, 시민회의 핵심 참여자들의 입장에서는 전과 달리 시민회의에서 주민들과 함께 추진하는 일에 대한 행정의 무관심이 커졌고, 그로 인해 추진되던 사업이 성과를 거두지 못한 사례들이 늘어났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를 들어보면, ‘위험한 교차점 개량 사업’의 경우에는 토지권과 관계된 대화를 시민회의에서 실시하여 그 이후의 과정을 행정 소관 부서에 맡겼으나 그 이후의 진척사항에 대해 알 수 없는 상태이다. 또한 ‘칸바라 공원 재생사업’의 경우에는 시민회의의 위탁운영에 대한 요청에 대해 행정이 불명확하게 대응하는 등으로 인해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 진단은 결국 주민들의 주체적 참여를 추동하는 그동안의 과정에 대한 근본적 문제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초기에는 사무국의 강력한 리더십이 있었고, 주민들도 이 리더십에 끌러온 경향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 리더십의 동력이 떨어지면서(생업 등의 이유로) 다른 참여자들의 동력도 동반 하강하게 된 것이다. 즉, 사무국의 리더십이 강력하다보니, 일반 주민들의 주체적 참여보다는 주어진 일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참여가 이루어져 왔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태에서 기존에 마을 워칭을 통해 정리한 의제들을 힘있게 계승할 만한 여력이 약해졌다.

이러한 와중에 커뮤니티 센터 지정관리를 신청하고 운영자로 결정되었고 사무국대신 부서 중심의 체계로 개편하여 활동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최근에 각 부서들은 일반 주민들의 참여가 활성화 되는 등으로 다시금 활력을 찾아가고 있다.

시사점

그 동안 <세자키 마을만들기 시민회의>는 주민들의 참여와 활동에 있어 폭발적 활성화의 시기를 지나 침체기를 겪었고, 다시금 기존의 활력을 되찾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조직도 유기적 생명체와 같아서 성장과 침체를 반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제는 초기의 활력이 정체 상태에 처했을 때 이를 다시 역전시키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때로는 과감히 조직을 해체하고 새로운 틀을 만드는 것이 오히려 새로운 활력을 찾는 좋은 방법이 되기도 할 정도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일이 그리 만만치 않다. 그런 점에서 <세자키 마을만들기 시민회의>가 최근 다시 활력을 찾아가는 것은 참여 주체들의 헌신과 노력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민회의의 시사점을 간단히 몇 가지만 언급해 보면, 아래와 같다.

① 마을만들기 주체의 형성과 지속적 노력

<세자키 마을만들기 시민회의>를 인터뷰하기 전에 가토우씨가 쓴 글을 미리 읽어보았다. 이 글의 주요한 참고자료로 사용한 글인데, 시민회의의 성공과 실패 원인을 진단하고 향후의 과제를 여러 참여 주체들에 대한 조사를 통해 꼼꼼하게 정리한 것이었다. 그러한 노력들이 있었기에 아직도 시민회의가 지역 내에서 주민참여의 핵심적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주체는 가토우씨 한 명만이 아니었다. 그동안의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발전을 추진할 주민 주체들이 아직 강고하게 지역 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는 시민회의가 그동안의 활동을 통해 축적한 가장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세자키 마을만들기 시민회의>는 지금도 한창 진행 중이다. 앞으로 5년 후 혹은 10년 후에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지 필자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신들의 마을을 대안적 공동체로 일구어나가기 위한 주민 주체들이 지금까지와 같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발전적으로 그러한 주체들이 늘어나고 그 역량이 좀 더 강화되는 과정을 거치는 한, 시민회의의 흥망성쇠와는 별개로 세자키 지역사회의 앞날은 무척 희망적이라는 것이다.

② 주민자치 관리의 거점 확보

시민회의의 성과이기도 하고, 현재에도 시민회의의 성과를 만들어 내는 주요한 동력이기도 한 ‘세자키 커뮤니티 센터’를 자주관리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 활동의 지속성을 유지시켜주는 주요한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③ 총체적 마을의 비전 도출

세자키 시민회의의 마을만들기 사업은 단일 사안에 대해 일회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주민들이 마을 워칭을 통해 제기한 의제들을 지구별, 주제별로 나누어 참여자들을 조직하고, 이들이 다양한 마을의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 자체로 완벽한 마을발전 비전일 수는 없다. 하지만, 주민들이 다양한 관심과 욕구에 따라 스스로 도출한 의제를 이에 관심 있는 주민들의 참여를 통해 해결하려는 시도는 분명 ‘사업’ 중심이 아닌 ‘마을’ 중심의 사고와 활동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기획에 의해 마을은 점차 변화・강화되고 있다.

④ 주민 주체의식 강화를 위한 세심한 배려

시민회의의 운영이나 커뮤니티 센터의 운영에 있어 항상 주민들이 스스로 시민회의와 센터의 주체이자, 나아가 지역사회의 주체라는 인식을 전달하기 위한 배려들이 곳곳에 세심하게 배려되고 있다는 점을 또 다른 시사점으로 꼽을 수 있겠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 사례 1: 2009년 초에는 기존의 인쇄기를 새 것으로 교체하기로 하였는데, 새 인쇄기가 들어오는 날을 센터 내에 공시하였다. 이는 주민들이 모두 새로운 인쇄기가 들어오기를 고대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으로 이 역시 주민들이 코미센을 자기 것으로 인식하도록 하기 위한 맥락에서 그리 한 것이다.
  #사례 2: 시민회의에서는 앞서 소개한 시민회의 조직도를 참여자들이 항상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참여가 어디쯤에 위치해 있는지를 확인토록 하기 위함인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 주민들의 리더십을 육성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직도가 너무 강하게 전달되면, 주민들은 또 다시 의존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 점을 매우 조심스럽게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 사례 3: 가토우씨에 의하면, 최근 국제/국내적으로 시민회의를 탐방하러 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주민들에게 항상 홍보한다고 한다. 이는 주민들에게 우리 마을에 대한 자긍심을 주고, 그래서 참여할 의사가 생기도록 하는 부차적 효과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주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세심한 배려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필자가 시민회의를 인터뷰하기 위해 세자키 커뮤니티 센터를 방문한 것도 주민들의 주체적 참여에 조금은 기여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 (주석)

1)  이 글은 초기부터 이 사례에 핵심적으로 참여하였고 현재 세자키 커뮤니티 센터 관장으로 일하고 있는 가토우씨와의 인터뷰 내용을 중심으로, 가토우(加藤 さきえ)씨가 해당 사례에 대해 작성한 분석보고서 “「세자키 마을만들기 시민회의」 다음의 HOP STEP JUMP”를 참조하여 작성하였다.

2) 일본의 ‘맨션’이라 함은 우리의 ‘아파트’와 같은 개념

3)  이와 관련하여 많은 비판들이 제기되고 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가 지정관리자로 선정되는 경우, 공익보다는 이윤이 남는 프로그램이나 사업 중심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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