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놓고 얘기합시다! - 활동가 집담회
- 새로 조직의 중책을 맡은 활동가들의 고민은 무엇인가 -
■ 일시 : 2007년 10월 1일 월요일
■ 사회 : 최경송
■ 참가
김경민(안산경실련) /
김승호(광진주민연대) /
오승현(동북여성민우회) /
장혜진(천안시장애인보호작업장)
취지 설명 : 작은 규모의 단체에서 활동 하다보면 직책이 높아지게 되는 분들의 고민들이 굉장히 많았을 거란 생각에 이 주제를 잡게 되었다. 오늘 집담회를 통해 현재 지역단체들이 갖고 있는 이 시대의 고민들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형식을 갖추지 않고 자연스럽게 논의하는 테이블이 되었으면 한다.
(전체 참여자 소개)
사회자 : 자, 이제부터 토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장혜진 : 저희는 장애인 단체이고 법인이다. 다른 시민단체와 성격이 조금 다를 것이다. 분류로 치면 ‘시설’에 속한다. 원장이 되기 전에는 이사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원장이 되고 나서 이사회에 참석하게 됐는데, 정보량이 많아진다는 것이 큰 변화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그런 정보를 잘 씹어서(잘 정리해서)(웃음) 다른 선생님께 드려야 하는데, 씹는 과정이 너무 힘들다. 제 생각에 별거 아니라고 판단해서 말한 것이, 나중에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정보 같은 경우는 굳이 말 안 해도 되겠다, 했는데 나중에 다른 선생님들이 정보 공유가 안 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런 과정이 좀 힘들지 않았나 싶다.
김현 : 정리해서 전달하는 과정이 어렵다는 뜻인가?
장혜진 : 그렇다. 제 나름대로 소화해서 우리 선생님들께 전달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사무국장이나 이사들은 자기 말하는 스타일로 내게 말한다. 나 또한 내 스타일로 말하다보니 그대로 전달하기가 어렵다.
김승호 : 저희는 사무처이다. 사무처를 중심에 놓고 여러 개 부설 기관들이 있다. 이쪽 기관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다른 기관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여러 기관들의 이야기를 잘 섞어서 내 나름대로 정리해서 이야기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기관들이 다 모여서 회의를 하면 모두 다른 얘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 중간에 있는 사람(김승호 처장)이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 아니냐 라는 비난 아닌 비난을 한다. 그렇게 되면 기관의 소통의 문제가 핵심 문제로 급부상하게 된다. 소통이 뭐고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가 현재 가장 큰 고민이기도 하다. 그런 과정이 내겐 힘든 과정이었는데, 중간에 그만 둘까도 생각한 적이 있었다. 사실 내가 중책 자리에 있지 않았다면 보다 쉽게 풀 수 있었던 문제였다. 사무처장이라는 중책 때문에 더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사실대로 이런 고민을 조직에 얘기했다. 그 때 제 상태의 심각성을 인식한(웃음) 여러 분들이 도움을 주시기 시작했다.
아무튼, 연륜이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중책을 맡다보니 주변에 있던 구성원들이 ‘저 친구는 혼자 두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들이 있었던 것 같고, 많은 분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주기도 하고, 상근자도 아닌데 회의 때 마다 사무처로 오기도 한다. 각 기관들에서 일주일에 하루씩 사람을 파견해서 사무처 지원을 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잘 풀린 격이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소통이었다. 사무처라는 곳에 많은 사람들이 오고, 나에게 많은 이야기가 들어오면서 소통의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하나의 방편으로 정책위원장이 중간에서 의견을 조정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장혜진 원장님 말씀대로, 그 정책위원장님이 여러 의견들을 잘 씹으셔서(웃음) 잘 전달해준다. 정책위원장은 쉬운 말로 잘 정리하고 설명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것 같다. 이에 비해 나는 그런 능력이 없는 것 같다.(웃음) 그래서 제가 그런 것을 잘 못 하니까, 조직 내에서 사무처장의 역할을 좀 바꾸었다. 결과적으로 그런 역할을 잘 하시는 분들이 그런 역할을 하시고, 저는 사무실 안에서 실무적인 일을 주로 하게 된 거다.
장혜진 : 너무 공감한다.(웃음)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고만 할 때와는 달리 보고를 받아서 전달하는 것이 무척 다른 차원의 일이다. “네가 전에 그렇게 말하지 않았냐?”라는 지적을 받을 때면, 자괴감도 들 때가 있다. 그러면서 지치기도 한다.
오승현 : 저희 민우회는 상근자 2명이고, 대표 분이 활동가처럼 일한다. 구조상으로는 회원들이 일하다보니까 위원회가 굉장히 많다. 일정 조정을 하더라도 각 위원회가 알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무국을 통해서 하거나, 회의를 통해서 하는데, 공식적으로 회의석상에서 나왔던 이야기 중에, 각자 자기가 얘기했던 것만 기억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 외의 것을 사무국장이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어느 순간 회원 중에 한 분이 합의된 내용과 달리 자기주장을 하게 되면, 제가 당황해서 머릿속이 백지가 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예전에 제가 간사를 했을 때는, 저 또한 그런 일을 사무국장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웃음) 그러나 내가 사무국장이 되고 보니까, 그런 일로 싸울 수도 없고, 활동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너무 조심해서 거리감도 느껴진다는 말도 들었다. 저는 지역으로 오기 전에 민우회 본부에 있었다. 지역에 오면서 경력 때문에 사무국장이 됐다. 지역으로 오면서 대표는 얼굴 마담을, 그리고 나는 실무 담당자로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내 주변 분들이 나에게 거는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과 회원들의 기대치에 간극이 있었던 것 같다. 그걸 느낄 때,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사무국장이 간사와 똑같이 실무를 다 맡아서 하게 되는데, 저 같은 경우만 하더라도 회계도 정리하고 홍보도 하고 유인물도 만들고 회원관리도 하고 등등(웃음), 간사의 역할을 모두 하게 되었다. 처음엔 이런 것을 한 사람이 다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내가 중간리더로서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문제는 중간리더가 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본부에서 20명 상근자 속에서 부장도 해봤지만, 회원 300명 속의 중간리더가 뭔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이 둘은 너무 달랐다. 회원들이 자기들이 일을 했다고 느낄 수 있도록 사무국장인 뒷받침해야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어떤 역할인지 잘 몰랐었다. 그래서 주변 분들이 주변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라고 조언도 했다.
제가 사무국장이 됐을 때, 대표도 바뀌고 변화가 많았던 시점이었다. 그래서 선택했던 방법이 리더십 교육과정(이대 여성리더십교육과정)을 겪고, 약 1년 정도를 헤맸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여전히 실무는 계속 내 업무이고 상근자 달랑 2인이다. 어떤 분들은 재정적으로 힘들어도 반상근 뽑아야 하는 것 아니냐, 어떤 분들은 상근자 많아지면 회원단체 아니다, 라는 비판도 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진짜 회원의 힘으로 돌아가는 단체가 될 수 있는 것인지, 거기서 내 역할은 어디까지이고, 또 한편 대표도 역할을 찾아가도록 옆에서 서포터 해야 하는 것도 내 일인데, 아직은 길을 못 찾고 있다. 고민이다.
김경민 : 말씀하시는 지점들에 대해서 안산경실련은 조금 다른 상황인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조직 내부의 구조와 치부를 들어내는 불길한 기분이다.(웃음) 저는 작년 1월부터 사무국장 했지만 활동은 10년 정도 됐다. 저는 9년 정도를 전임 사무국장 체제 하에서 상근을 하다가, 여러 조건에 의해서 작년에 사무국장이 됐다. 제가 사무국장이 되면서 안산경실련을 어떻게 만들어야 되겠다, 내지는 특히나 경실련이 뭐하는 단체인지 헷갈릴 정도로, 그 상을 내가 그렸어야 하는데 일상적으로 톱니바퀴처럼 쫓아가다가 사무국장을 맡았고, 그러다보니 9년 동안 있었던 조직의 큰 변화 없이 그냥 1년 반이 흘러갔다. 그런데 지금 말씀하신 부분들, 이를 테면, 관련 기관이 있다든가, 사무국을 제외한 회원 자치 모임이 있다든가, 만약 이런 구조를 경실련이 가지고 있었다면, 사무국장은 그런 네트워크 중심 속에서 고민이 많았을 텐데, 저는 오히려 이런 것이 저희 조직 내에 없다는 게 고민이다. 사무국장이 하는 일이 안산경실련 활동의 전부인 거다. 회원 아니라 임원들만이라도 모임을 만들고 그런 모임을 운영하고 논의하고 싶었는데 1년 동안 노력했으나 안 됐다. 몇 분이라도 자원봉사로 권하기도 했는데, 임원 구성 멤버들은 사무국을 믿는 경향이 있다. 사무국 활동에 무조건 동조해주는 경향이 있어서 항상 고민이었다. 어쨌든 다자간 소통의 중심이라는 고민보다는 오히려 다자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고민을 했다. 고민의 질이 약간 다른 것 같다.
또 하나는, 민우회의 경우나 여성의 전화는 여성과 주부들이 많아서 활동이 저희와 조금 다르겠다는 추측이 든다. 저희는 임원중에 여성이 한 분도 없다. 여성분들이 못 견디는 구조다. 임원회의를 통해 모이면 정식 회의 안건을 제외한 주변 얘기들이 친목도모에 도움이 되는데, 여기서 주변부의 얘기란 것이 주부나 여성에게 메리트가 없는 것 일색이다. 그리고 회의도 늦게 하는 편이라서 여성들이 많이 참석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기존의 임원 구조를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 측면에서 경실련이 제일 고리타분하지 않나(웃음) 싶다. 그러다보니까 낮에 일상적인 회원모임은 생가하기 어렵다.
최경송 : 저도 과천환경연합 운영위원인데, 거기도 안산이랑 비슷한 것 같다. 만날 남자들끼리 모여서 술 먹고 당구치고 해서(웃음) 사향 길로 걷다가, 이번에 해체하기로 결정내리고, 결국에는 남성운영위 빠지고 여성조직으로 새로 바꾸는 작업을 한창 하고 있다. 남성 중심으로 굳어지니까 문제인 것 같다.
이호 : 안산경실련은 재정도 사무국장이 책임지지 않나? 사무국장이 모든 운영의 최종 책임을 지는 구조 아닌가?
김경민 : 웬만한 결정은 임원들에게 나눠주려고 애 쓰는 편이긴 하다. 여전히 주체적이거나 적극적으로 임원들이 고민을 자발적으로 한다기보다는 그 고민을 사무국장이 던져줘야 한다고 임원들이 생각을 한다.
이호 : 누가 그러던데, 예전에는 월급을 받는 사람에서 월급을 주는 사람으로 바뀌다보니까, 재정상황 뻔한데,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김현 : 재정 얘기가 나와서 한 말씀 드리면, 저는 90학번인데, 97년 말인가에 과천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을 젊은 나이에 맡게 되었다. 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단 회의에 가보면 저보다 5년에서 10년 이상의 선배들이 모인다. 거기에 가 보면 고급정보들이 상당하다. 나이도 얼마 안 되는 젊은 활동가가 사무국장이 돼서 그런 정보 소화할 역량이 안 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재정 문제가 제일 힘들었다. 특히 재정이 열악하다보니까 무리하게 프로젝트를 하는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프로젝트에 열중하다 보니 지역에서 하고 싶은 일도 못 하고 속앓이만 하다 보니 그 때 머리가 많이 하얘졌던 것 같다.(웃음) 도와줄 선배도 없었기 때문에 나 혼자 어떻게든 프로젝트를 소화해야 했다. 그렇게 3년 정도 사무국장을 했다. 그 기간 동안 많이 늙었고 조숙해진 측면도 있다. 어쨌든, 어려운 재정 상황 때문에 무리수를 두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역량에 안 맞게 프로젝트를 했던 것 같다. 1년 하고 나서 프로젝트 안 한다고 다짐도 한 적이 있다. 지금까지도 프로젝트에 대한 안 좋은 기억 때문에 크게 내키지 않는다. 그런 부담을 많이 느꼈다.
오승현 : 저도 프로젝트에 대한 고민이 많다. 지역단체니까 회비 충당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저희 같은 경우 회비 납부율이 높은 편인데도 불구하고, 상근비는 어느 정도 충당이 되는데, 활동을 해야 하니까, 부족한 편이다. 그래서 프로젝트 연결해서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데. 구청에서 주는 보조금을 받고 싶은 유혹도 있지만 그것은 늘 한계가 있고, 매번 싸우기도 하고.(웃음) 그래서 저는 어디 가서 돈을 어떻게 받을 수 있고, 어떻게 제출했을 때 경쟁력을 가질 지 등등이 고민이죠. 그리고 회원들이 이런 것을 해보고 싶다고 말씀도 하는데, 돈 받을 인맥도 없고.......그런 것이 어렵고, 회의 때마다 보고를 해도 듣는 거랑 계산하는 것이랑 다르다. 회원 확대만 하더라도, 사무국에서 그 확대방안도 내야 하는데, 답이 없다. 회원들이 지나가는 말로, 어디 가서 아는 사람 좀 끌고 와 볼까, 하는 말을 하고 지나가기도 한다. 회원확대도 한계가 많다. 인맥이 뻔하다. 어차피 도봉구, 노원구, 강북구까지 해서 회원을 모집하는 건데, 멀리 있는 사람들한테는 소용이 없고. 몇 개 단체들이 같이 있으니까 나눠 먹는 꼴이다. 새로운 아이템을 내야 하는데 그런 아이디어를 개발하기에는 너무 일상에 파묻혀있다. 내일도 큰 행사 있어서 만들다가 쫓아왔다. 그런 것에 매몰되다 보면, 조직의 전망에 대해 새롭게 전망할 시간이 없다. 지역 주민자치 하다보니까 이슈도 산만하고 다양하다. 이제는 조직의 정체성을 잡아나갈 때가 됐다고들 말은 하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 잡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저희 조직 같은 경우는 활동하시는 분들이 대부분 주부라서 고민에 대한 실천력이 높지는 않은 것 같다. 방향 잡아서 소스 던져주는 게 사무국의 역할일 텐데, 일상에 쫓겨서 중앙 단체들 문서 나오면 그것을 보기에도 바쁘고, 프로그램 있어서 가보고 싶지만 회원 모임 서포터 해야 해서 가지도 못하고. 그런 상황인 것 같다. 머리 뒤 쪽에 풀지 못할 짐을 끌고 가고 있는 기분이다. 이런 것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솔직히 사람들 만나서 풀릴 수 있을까? 풀린단 느낌이 잘 안 든다. 푸는 방법이 시원찮아서 그런가.(웃음)
장혜진 : 저희는 작업장이라서, 교사는 저를 포함해서 5명이다. 작업 활동을 하는 직원이 31명이 있다. 매월 8일 쯤 되면 저와 회계담당 선생님이 한숨을 쉰다.(웃음) 급여를 줘야 하니깐. 급여를 보면 직원 30여 분의 급여와 교사 5명의 급여가 맞먹는다. 그 금액을 끌어내는 게 너무 힘들다. 그런 상태에서 부모님들은 두 가지 바람이 있다. 하나는 정신지체장애아에게 교육과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고 한다. 이 두 가지 중간에서 맞추기 어렵다.
저희는 프로젝트를 내도 잘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익을 내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저희는 사단법인이라서 법인 자체의 사업이 있는 것이다. 이동봉사대나 장애문화교육사업 등을 하고 있고, 그 일부 중에 직업교육 파트도 있다. 사실 돈 문제가 제일 힘들다. 처음 원장 맡았을 때 부채가 있었다. 내게는 너무 컸다. 천오백만원 정도. 당황스러웠기도 했다. 4개월째부터 급여를 밀리지 않게 됐다. 저 자신도 기특하다고 생각한다.(웃음)
김승호 : 월급을 내 돈에서 주는 건 아닌데, 내가 주는 입장에서, 내 월급을 내가 주다보니까 월급에 관련해서 운영위원회에 가서 얘기를 못하겠더라. 내 월급을 내가 올리겠다고 하는 거라서. 알아서 해줬으면 좋겠는데.(웃음) 저희는 그나마 재정이 그렇게 어렵진 않다. 월급을 밀려서 준적은 없다. 저희가 자활후견기관을 운영을 하고 있다. 그분들 급여는 국가에서 나온다. 적어도 사무처 상근자랑 후견기관 실무자랑 월급의 액수가 다를 이유가 없다고 운영위에서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돈을 펼쳐놨는데, 주기 싫어서 안 주는 게 없어서 주지 못한다고 얘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월급을 줄 수 있도록 방법을 마련하는 논의는 잘 안 된다. 답답하니까. 그나마 조직 내에서 상근자 인건비에 대한 고민과 논의를 해주신다. 사무국장이 그런 것에 대한 부담을 갖지 않도록 고민을 많이 해주신다. 여전히 지출 명세서를 놓고 보면 상근자 활동비 부분이 제일 크기 때문에 들어오는 것은 일정하고 나가는 것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인건비를 줄일 수밖에 없지 않는가 하는 고민이 많다. 굵직한 후원금을 주는 분들이 다행히 계셔서 못 주겠다는 말이 안 나오도록 노력하고 있다.
김현 : 저 같은 경우, 월급뿐만 아니라 연차라든지 각종 수당 등의 변동에 대해서도 스스로 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김승호 : 저는 정해져있는 수당만큼 줬다. 매년 연말에만 수입지출 명세서 제출해서 평가하면서 그런 얘기를 했었는데, 올해는 정해져 있는 대로 수당 다 주었죠.
김현 : 연말이나 연초에 운영위 중 누가 그런 말 해주면 받아갈 텐데,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웃음)
김승호 : 저희는 그나마 얘기를 해주시고, 후견기관 실무자 급여 수준으로 맞추자고 말을 맞췄다. 지역에 있는 시민단체 중에는 저희가 굉장히 많이 받는 편이다. 사실 제가 연륜이 쌓이지 않고도 중책 맡은 결정적인 이유가 연륜이 쌓이면 그만큼 더 많은 급여를 받아야 하는데, 지금 상태에서는 줄 수가 없으니까, 그런 이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만 두는 선배들이 발생하니까, 그런 이유로 싼 맛에(웃음) 제가 사무국장이 된 것 같기도 하다.(웃음)
오승현 _ 제가 연차가 많은 편이다. 수당이 높은 편이다. 다른 상근자와 기본급은 비슷한데, 연차를 비교하니까 컸다. 그래서 연차를 내가 깎았다. 운영위원들이 그런 게 어디 있냐고 했는데 내가 지금 상황에서 이럴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 활동가가 문제제기를 했다. 당신은 인정할 수 있지만, 그게 고착화되면 다음 사람들이 누가 오겠냐? 그 지적은 타당한 지적이라고 본다. 그러나 사무국장으로서 마이너스에 대한 책임을 질 수는 없지 않는가?
장혜진 : 교사들은 실비가 나오는데 일반 동기들에 비하면 급여가 높은 것은 아닌데, 단체 활동가들과 비교하면 부르주아가 돼 버린다.(웃음) 그것 때문에 이사회와 운영위에서 말이 나온다. 적어도 연차가 많은 사무국장보다 내가 더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내가 더 많이 받다보니 그런 것에 대한 고민이 있다. 그 돈을 받는 게 미안하다. 그렇다고 연차를 깎을 순 없지 않는가? 이사회에 급여 얘기가 나오면, 아무 얘기 안하고 고개를 숙이고 그냥 있게 된다.(웃음) 단체들 전체적으로 급여가 올라갔으면 좋겠다.
최종숙(수원여성의전화 회장) : 급여 차이도 많이 나고, 활동 내용 차이도 있다. 그런 부분이 소통의 문제와 얽히다보면 아픈 갈등을 만들게 된다. 여기 오게 된 고민은 조직적 고민도 있지만, 개인 활동가로서 자기 전망을 어떻게 하고 있나, 조직 안에서 난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 직책으로서의 고민 뿐 아니라 나를 완성하는 그런 고민이 있다.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조직이 지향하는 꿈과 내가 가고자 하는 꿈을 맞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고민들이 있는 것 같다.
저는 여성전화에서 일하는 게 가슴 벅차다. 여성문제를 사회문제로 대두시킨 그런 과정이 가슴 벅차다. 그런데 막상 조직 안에 들어와 보니까 그것 말고 어려운 일들이 많다. 처음 수원여성의전화에서 출발했다가 다른 여성단체를 몇 군데 다니면서 활동을 쌓고 다시 여기로 왔을 때, 여성의전화가 갖는 나름의 한계도 많이 읽혀지고, 내부에 와서는 그것을 맞춰가면서 함께 하는 것이 아직도 서투르다. 내가 욕심내는 방향과 조직이 잘 키워온 성과를 맞추기가 어렵다. 회장이 되기 전에 밟았어야 할 리더십 과정에 대해, 체계적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내 경험이 다 인 줄 알고, 이게 옳은 거야, 이게 최선이야 라는 식으로 나오니깐 더 문제가 악화됐다. 그래서 내부 소통의 문제와 각자 차이가 나는 지점의 간극을 좁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다.
내부 안에서의 소통문제가 조직을 얼마나 키워내느냐, 얼마나 아프게 하느냐가 관건인 것 같다. 우리도 재정문제가 있다. 한 달 한 달 넘기기가 힘들다. 그런 부분도 있고, 활동비 부분에 있어선 같은 여성의 전화에서도 수원여성의전화가 제일 낮을 것이다. 이 부분이 굉장히 큰 고민이다. 활동비 보다는 내부 소통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회장의 위치에서, 사무국장의 위치에서 어떤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가, 이런 부분이 지금 최대 과제이다. 그런데 오늘 오신 분들의 조직을 보니까, 조직이 작은 편이다. 우린 실무자가 13명이 있다. 항상 얼굴 마주치면서 생활하고 있다. 거기서 빚어지는 사건 사고들도 많이 있어서 얼마나 세련되게 풀면서 신나게 활동할 것인가란 고민이다.
최경송 : 지금까지 나온 얘기를 정리해보면, 내부소통의 문제, 정보처리의 문제 또는 정보공유의 문제, 재정문제, 회원확대 문제 등의 주제들이 언급됐다. 이런 자리에서 이런 문제가 공감만 되더라도 풀리긴 하는데. 좀 더 생산적으로 풀려면 어떻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구체적인 사례나 제안들을 해주시면 좋겠다. 10분 간 쉬고 그 얘기를 하겠다.
(10분간 휴식)
이호 : 질문이 하나 있다. 리더십 훈련을 받을 기회가 많이 없는 것 같다. 어떤 분은 리더십 훈련을 받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리더십이 실제 도움이 되는가가 궁금하다.
오승현 : 처음에 교육을 들을 때는 정리가 되는 것 같아서 좋았는데, 이제는 나 혼자 할 게 아니라 옆 사람들과 공감하면서 같이 일을 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 혼자 배워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혼자 교 교육을 받지 말고, 같이 일하는 사람과 계속 소통하면서 얘기를 해야 한다고 본다. 또 한편 그런 교육들은 현장에서의 적용은 잘 안 되는 편이다. 제가 1년을 다녔는데 두 번 들으면서 이런 프로그램은 따로 배울 게 아니라 같이 활동가들이 들으면서 우리 상황에 맞게 조정하는 게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경민 : 그 말씀은 맞는 것 같다. 예를 들어서, 저는 경실련 내부에서 하는 중견활동가 리더십 과정을 한 번 간 적이 있는데, 2박 3일 집중교육이었다. 그리고 환경재단에서 하는 임길진 교육도 받았다. 리더십 교육과 주제도 많을 수 있는데, 처음에 말한 경실련 내부 교육은 사무국장으로서 리더십을 갖는 것 등을 배웠는데, 제가 받은 두 가지의 느낌은, 함께 가는 사람과의 소통과 연대로서의 리더십이 아니라,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는 리더십 교육이었다. 그런 교육은 생리적으로 맞지 않아서 거부감이 있었다.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에 기반을 둔 리더십과정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내부 혁신을 끊임없이 추구해야 한다는 긍정적인 게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래야 성공한다는 식이었다.
또 한 가지는 안산 내부에서 파트너십 교육을 단체 상근자와 공무원들이 같이 받은 적 있었다. 1박 2일 정도. 여성의전화처럼 단체 규모가 크면 상근자들이 같이 파트너십 교육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평소에는 주로 일로 얘기를 할 테니깐. 우리는 두 명이라서 굳이 그런 교육은 효과가 없을 듯하다.(웃음)
최종숙 : 저희는 26개 지역에서 여성의전화 활동을 하고 있는데, 조직 안에서 활동 수명이 짧은 편이다. 굉장히 많이 지친다. 일이든 관계든 둘 중 하나만 재밌어도 남을 수 있는데, 일도 힘들고 관계도 힘들면 못 남아 있다. 특히 관계가 힘들 때 민감해서 남아 있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여성들 관계 친화적 성향이 크기 때문에 관계로 상처받으면 극복하기 힘들다. 그런 부분 때문에 조직에 오래 남아있는 활동가들이 많이 없었다. 여성의전화 전체 차원에서 그 지점에 대해 고민을 하면서, 지역은 지역사안에 대응하느라 바쁘니까, 그런 것을 기획할 겨를 없고, 중앙 차원에서 여성 활동가들이 현장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여성의전화 내부에서 ELF 교육과정을 신설했다. ELP 교육과정이란 empowerment leadership feminism의 줄임말로 1년 코스였다. 기초 과정, 중급 과정, 마무리 과정, 이렇게 있다. 여기서 여성 활동가들에게 필요한 여성리더십 훈련을 받는다. 지금은 교육이 많이 체계적으로 잡혀 있다. 각자 교육 받고 조직 내부에서 풀어내는 것은 각자의 과제가 된다. 다른 기관에서 교육을 받더라도 그것을 배워서 자기 조직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시도해야 한다. 교육만 받는 것은 체화되지도 않고 정보로만 그친다. 몇 번 시도는 하지만 지속적으로 안 된다. 어떤 강사가 그런 말을 하던데, 너무 바쁘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왜 그럴까, 생각을 했는데, 그게 결국은 제국주의의 음모더라고 깨달았다는 얘기를 들었다.(웃음) 고통이 따르더라도 계속 시도해보는 게 필요하다. 방향을 모르고 바쁘면 정말 지치기만 한다.
최경송 : ELF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최종숙 : ELF 1단계로서 리더십 기초단계 2박 3일 정도 하고, 지역으로 돌아가서 실천과제가 주어진다. 지역 활동의 결과를 취합해서, 중간과제가 몇 개월 뒤에 다시 열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좀 더 높은 단계의 리더십 과정이 있다. 경험과 이론을 접목해서 자기 조직에 맞는, 자기에게 맞는 리더십을 채워가는 것이 목표이다.
김경민 : 아까 좀 부정적으로 얘기해서 다시 얘기하면(웃음), 리더십 교육이 내 조직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느냐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여러 가지 과정들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에게는 잠시나마 일상을 떠나서 재충전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런 기회들도 쉽지 않은 지역이 많다. 그나마 그런 기회들이 있을 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어쩌면 사무국장을 맡는 순간 시민운동에 대한 그나마 활동력과 활력을 소진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운동을 고민하기 전에 조직을 고민해야 하고,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 된다. 마치 회사에 있다가 조금 있으면 퇴직해야 하는 상황과 같다.(웃음) 그런 상황에서 무엇으로든 재충전을 받아야 하는데 지금의 구조가, 다른 지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안산은 여전히 운동판에서 나이로 보면 제가 막내다. 내 밑으로는 안 들어온다. 저도 젊은 피로부터 수혈을 받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웃음), 삶의 의미를 찾고 싶고, 젊은 사람들의 양기를 빨아들이는 게 필요한데(웃음) 그게 안 된다. 그런 여러 가지 과정들을 통해서 서로 얘기하는 것으로서 의미가 있지 않겠나 싶다.
장혜진 : 제가 원장을 하고 1년 정도 지났을 때, 한 명의 선생님이 퇴사를 하겠다고 말했는데, 퇴사 사유가 저에게 말 한 것과 다른 사람에게 말한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제가 나름대로 좋아한 선생이었는데, 인간적으로 배신감을 느꼈다.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세 네 번 만류 하다가, 그러면 그렇게 하라고 하면서, 떠나기 전에 깊은 얘기를 나누었다. 서로 한계점을 긋고 모두 얘기하기로 했는데, 그 분이 정말 많은 얘기를 했다.(웃음)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 다음에 어떻게 가야 할까, 상당히 고민스러웠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몇 달 동안 듣기만 하다가, 개인으로 따로 만났다. 카페에 가서 얘기를 했다. 사적인 얘기부터 내부적으로 불만과 고민을 모두 얘기했다. 밖에 나와서 얘기를 많이 하니까, 너무 좋았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무실 분위기가 편안해졌다.
이것은 스스로에 대한 반성인데, 원장이 되고 나서, 너무 빨리 성과를 내고 싶었다. 빨리 돈도 벌고 취업도 시켜야 했다. 모든 것을 일로 봤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내가 챙겨야 하는 것 중에 하나는 우리 선생님들이었구나! 그 전에는 일로만 보다가 나중에 사람으로 보게 됐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해서 풀었다.
최경송 : 듣고 보니 계속 성공사례만 얘기하신다.(웃음)
김승호 : 저는 제 방식을 고집했다. 조직 안에서 내가 카리스마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회의를 해도 사무처장이 생각하는 게 있다면, 그 방향대로 사람들을 끌고 가야 하는데 우리 사무처장은 모든 의견을 듣고 하나로 모아서 끌고 가려고 한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니 생각은 뭐냐’, ‘니 의견이 뭐냐’ 이런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나는 ‘모아서 가는 게 내 생각이다!’ 라고 얘기한다.(웃음) 아직도 여러 사람들이 왜 카리스마가 없냐고 얘기한다. 내 방식은 지금과 같은 것이라고 얘기한다. 21세기가 원하는 리더십은 이것이다.(웃음) 물론, 장혜진 선생님처럼 한 명씩 만나서 얘기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라. 마음은 먹었는데 만날 자신이 없다. 그래서 지금은 모두 같이 모이는 자리를 많이 만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부족하다는 점을 많이 보여주었고, 힘들어하니까 임원들이 회의에 같이 들어오고 같이 모여서 얘기하는 자리를 많이 만들고 있다. 회의도 하고, 한 달에 한 번 비전 나누는 시간도 갖고 소통을 얘기하는 시간들을 갖고 있다.
장혜진 : 내 생각대로 안 모아지면 너무 힘들었다. 처음엔 고집을 피웠다. 매 회의 때마다 사람들을 설득했다. 그러나 나도 소진되고 다른 사람도 소진됐다. 그런데 다른 사람 얘기를 들어보니까 그다지 다르지 않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김승호 씨가 어떤 면에선 부럽다.
김승호 : 주변 사람들이 그런 요구를 저한데 하는데, 그런데 저는 그런 것이 잘 안 되더라.
청중 : 두 분이서 바꿔서 해보시죠.(웃음)
김경민 : 여러 의견 듣고 믹싱 하는 것도 능력이다. 모아 나가는 것이 더 많은 능력 아닌가. 제가 보기엔 상당한 능력이다.(웃음)
이호 : 오히려 끌고 나가는 것보다 의견을 모아 나가는 것이 더 어려운 거다. 그런데 그게 능력일 수도 있고, 무능력을 포장하는 것일 수도 있다.
최경송 : 지금 욕하신 거죠?(웃음) 무능력으로 포장했다는........
오승현 : 아무튼, 사람들이 강한 리더십을 원하는 것 같다.
이호 : 어떤 면에서 사람들은 그것을 편하게 생각한다.
오승현 : 저도 초기에는 약간 나름대로, 강하게 표현 안 했지만, 암암리에 퍼진 갈등들이 있었는데, 안 되니까 포기했다. 지금은 듣는 위치로 바뀌었다. 나중에 사람들이 많이 와서 의견 조율 많이 하고 있다.
장혜진 : 저는 이사님 몇 분과 스터디를 한다. 얼마 전에 ‘배려’란 책으로 스터디를 했다. 그 책 마지막에, 배려의 마음 중 하나가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의견을 취합하고 문제를 정확하게 보고 있는가라는 통찰력이 중요하다. 다들 배워가는 과정 아닌가 생각을 한다.
최경송 : 리더십 얘기가 됐던 것 같다. 저희 풀뿌리자치연구소를 생각해보면, 내부 사람들끼리 재미를 추구하는 게 제일 관건이었던 것 같다. 그게 주요한 조직의 매개체가 되니까 깨질 일이 없다. 빈틈이 잘 안 생긴다.
이호 : 그게 어떤 건가?
최경송 : 당구나 고스톱.(웃음) 일보다는 재미가 우선이 되는 조직 풍토라고 할까?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놀아야 된다는 얘기가 아니라, 조직의 속도조절이 굉장히 관건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소장님 이하, 노는 걸 목숨 걸고 한다.(웃음)
김경민 : 조직 풍토 얘기 나와서 한 말씀 드리면, 저희가 작년에 빚이 생겼었다. 보통은 2년 마다 빚이 생기고, 후원의 밤 한 번 해서 갚는 식이다. 작년에는 300만원 빚이 생겨서 저는 털고 싶었다. 조금만 더 지나면 월급을 못 줄 위험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분이 계를 하자고 제안했다. 계모임에 안산경실련을 하나의 계원으로 목돈을 받아가는 것을 하자고 했다. 그래서 ‘경실련후원하는사람들의계모임’을 시작했다. 줄여서 ‘경후계’이다. 올 2월부터 했다. 남성들이라서 잘 이해를 못한다.(웃음) 설명을 다섯 번 드렸는데도 이해하지 못하시는 분들도 있다. 어쨌든, 올 초에 시작했다. 그 모임은 한 달에 한 번 하는 월례회의보다 더 잘 된다.(웃음) 상당 부분 집행위원들이 많이 들어오고 일반 회원들로 해서 18명이 구성이 돼서 계모임을 하고 있다. 8개월 정도 지났다. 여기에 오면 지역 문제 얘기 안 해도 된다. 그리고 계 타시는 분이 백반 이상으로 쏜다.(웃음) 골치 아픈 얘기 안하면서 자연스러운 주제가 나오고. 자연스럽고 좋다.
(좌중 : 한 동안 계모임 방식에 대해 질문과 답변이 오고감.............)
장혜진 : 친목모임 정말 필요하다. 참석율 높이는데도 유효한 것 같다.
김경민 : 한 달에 한 번은 나오지 않더라도 계로 묶여있기 때문에 2년 동안 안 깨지길 기대한다.(웃음) 저희도 벤치마킹 했다. 군포의 사례를 벤치마킹했다.........아무튼 그런 친목모임이 있는 건 좋은 것 같다. 처음 생겨나는 조직들에겐 좋지 않을까. 결속력도 만들어주니까.
최경송 : 다음 모임은 계모임을 주제로 토론을 한 번 하자.(웃음)
김현 _ 다음 주 이 자리에서 두루 조직의 중책을 맡은 중견 활동가들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란 주제로 토론할 텐데, 제 경험에서도 그렇지만, 작은 단체에서 사무국장이면 그 이후에 갈 데가 없다. 다른 단체로 가거나 요즘엔 제도정치로 나가는 경우 또는 잘 해야 뭔가 새롭게 만드는 정도다. 그 이후에 이 자리를 떠나서 어떻게 할 것인가가 고민이다. 예전에 저의 경우는 사무국장 자리를 빨리 내주고 싶었다. 역량도 안 되고, 그 직책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빨리 후배에게 내주고 싶었다. 그런데 여전히 지금도 저는 막내다. 이런 상황이라면 뭔가 시민운동판에 큰 문제가 있는 거라고 생각된다. 재생산이 안 된다는 것이다. 사무국장 자리가 이 부분에 대해서 가장 심하게 고민할 것이라고 보는데, 이런 것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음 주 주제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 같아 질문 드린다.
김승호 : 저는 사무처장을 하실 분이 생기면 바로 일반 사무처 원으로 활동하고 싶다. 사무처장 하실 분이 있으면 그 역할을 드리고, 나는 사무처원이 되고 싶다.
최경송 : 일반 직장에서는 생각도 못하는 건데........
김승호 : 사무처장이란 직책을 없앨까도 생각했었다. 실무자는 아니지만 대표였다가 지금은 정책위원장이신 분도 있고, 사무처장으로 있다가 파견 나갔다가 사무처로 들어올 사람도 있다. 우리 조직 안에서 문화를 만들면 가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사무처장 없앨 수도 있다. 저희도 재생산 문제를 고민하고 있고. 답이 잘 안 나온다. 아무 경험 없는 진짜 젊은 친구를 두 번 채용해봤다. 뼈아픈 상처를 두 번이나 겪었다. 저는 사람 관계 잘 못 푸는 게 있었는데, 두 분 다 나가면서 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했다. 그래서 상처를 받았다. 두 친구 모두 운동에 대한 경험도 없었고, 그들도 힘들고 나도 힘들었다. 저희 단체가 있는 지역에 학교가 두 군데 있다. 학교를 통해 재생산 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결론을 내부적으로 내렸다. 학교에서 생산돼서 지역으로 오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생각에, 동아리를 접촉해서 우리가 직접 들어가는 식으로 봉사 동아리 등에 경제적 지원을 좀 해보고 지역에서 자원봉사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학교 자원봉사 모임을 통해 만들어보려고 준비하고 있다. 아직 실질적인 모임을 하진 않았다. 우리 단체에 일이 많으니까 논의만 하고 쉽게 덤비지는 못한다. 활동가들이 조금만 더 있으면 내 역할을 주고 젊은이들을 만날 텐데. 자원활동가들이 같이 만나보자고 얘기하는 분들도 계신다. 재생산에 대한 돌파구를 나름대로 찾으려고 하는데, 쉽지 만은 않다. 어느 정도 포기한 것도 있고. 그러나 젊은 피에 대한 욕구가 많아서 나보다 어린 사람으로 뽑자고 했었는데, 그러나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도 상관없다, 그런 모임은 그런 모임대로 활동하고, 활동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채용하고 자원봉사 열심히 하는 분들 중에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계속 활동에 대한 제안을 드리고 그 안에서 활동가를 키워내는 수준이다.
최경송 : 재생산에 대한 것은 그런 취지이신데, 본인은 광진주민연대를 계속 우려먹겠다는 것인가?(웃음)
김승호 : 저희 윗 선배들이 떠나는 모습이 아쉬웠다. 경제적 문제 때문에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나, 지역에서 나이가 있으면 지역에서 활동했으면 좋겠다. 굳이 다른 곳으로 안 가도 좋지 않은가. 그러기 위해선 급여가 충분히 제공돼야 하긴 하지만.
김경민 : 개별 단체들도 그런 방식을 고민하는 것 같고 방법을 찾고 있는 것 같은데, 어쨌든 재생산은 전 사회적으로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한계가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저희는 안산에서 잠깐 얘기 나왔었는데, 예를 들어서 한양대랑 조인을 해서 지속적으로 1년 정도 한양대에 들어가서 시민사회를 알리고, NGO에 대한 교육을 할 수 있는 것, 그래서 실제로 그 학생들 중에 안산 지역사회로 나올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는 얘기를 했었는데 현실화 되지 못했다. 예전에는 인맥을 통해서 재생산을 했다. 한 다리 건너고 한 20다리 건너니까 인맥에 한계가 있고, 공채로 해결하자니 개별단체에서 활동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경실련은 약간의 교육은 있지만, 다른 풀뿌리 조직들은 어려움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역단체에서 인재를 발굴하는 것도 하는 거지만, 전사회적으로 NGO 후학이나 지속적인 발전을 고민하는 재단에서 이 부분 만큼은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지금 활동하는 NGO활동가들의 재충전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아지고 방식도 많아지는데, 사람들이 NGO로 들어오게끔 하는 방식에 대해 더 고민해야 한다.
아까 우스개로 얘기했지만, 저도 똑같은 입장이다. 나도 누가 사무국장 한다고 하면 나도 간사할 수 있다. 어차피 운동하고 싶은 영역(난 주로 예산감시 쪽)이기 때문에 그 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하고 싶다. 기존 회사가 아니니까 순환구조 가능한 거 아니냐, 라고 생각하고 있다. 가능하면 사무국장 없앨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이호 : 그것은 기능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관계 문화를 깨야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자기보다 후배가 사무국장으로 들어오는 것은 상관없지만, 사무국장을 하다가 간사로 된다는 것은 우리나라 문화로 받아들이긴 어렵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김경민 : 어차피 우리 조직이 직렬구조를 지향하는 구조가 아니니까, 시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 될지 모르겠으나.........
이호 : 정작 40대 넘은 선배들은 어려워하는 것 같다. 예상하는 것과 닥칠 때의 기분이 다를 수 있고, 사회적으로도 받아들이는 것도 다를 수 있다. 그런 사례를 우리가 못 봤다. 내 나이 또래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왜 안 해봤는가? 안산YMCA 사무총장이 평간사로 간 사례가 있다고 얼핏 듣긴 했는데, 당시엔 매우 신선하게 받아들였고, 그런 얘기 공론화 되면 분위기 바뀔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40대 넘는 선배들에게 바라긴 쉽지 않은 문제다.
김경민 : 나이만 나보다 많은 사람이 간사로 들어와도 굉장히 어렵다. 나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소통이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오승현 : 직책을 없애고 싶었는데 책임을 져야 하는 것 때문에 없애면 안 된다고 해서 못했다. 나도 다시 간사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조직이 크거나 좀 더 전문화 된 영역이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현재 제가 모든 실무를 다 하고 있지만, 계속 실무 일을 가지고 간다면 싫을 것 같다.
다른 차원의 고민이 있다. 민우회 자체는 여성단체이긴 하지만 주로 주부 임파워먼트 역할을 많이 한다. 내가 언제까지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저는 비혼이다. 아이를 낳지도 않았고. 그런 측면에서 어려움을 느낄 때도 있다. 대표가 비혼이라면 쉽지 않을 것 같다. 많은 분들이 표현하진 않지만, 내가 비혼이여서 소통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이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참 쉽지 않겠다. 아이를 어디서 구해올 수도 없고.(웃음)
장혜진 : 저는 원장을 없애고 교사로 남는다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웃음) 얘기를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막 들었다. 제가 계속 얘기하는 것은 장애인 직업재활, 지적장애인파트로 하고 싶다고 얘기를 했다. 제 생각으로는 작업장에서 5년 정도 일하면 가장 좋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다른 분들에게도 밝혔다. 내가 누군가를 원장으로 모실 때 당당하게 5년 동안 이런 일을 했다고 말을 하고 싶다. 그래서 5년이란 시간이 주어졌으면 좋겠다. 5년 안에 뭔가를 해내고 싶다. 그런 후에는 이에 대한 공부를 더 하고 싶고, 그 다음은 지역운동을 계속 하고 싶다. 지금은 테두리가 있는데, 그 테두리에서 벗어난 또 다른 운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공부를 살짝 껴놓은 것은 핑계거리일 수도 있다. 벌써 2년이 다 되어 간다. 65세 정년이라서 대게 좋다. 짤리지만 않으면.(웃음)
오승현 : 단체가 정년이 제일 짧다는 생각을 한다. 마음은 돌아가고 싶은데, 한계가 많이 보인다.
장혜진 : 이사회 26명 중에 여자 분이 2명이다. 언젠가는 회의 진행하고 새벽 5시에 끝났는데, 회의 끝나고 보니까 다 남자들이다.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결혼하고 애를 낳는다면 이렇게 늦게까지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중요한 회의인데 과연 이게 가능할까? 1년에 한 번이라면 괜찮지만. 남성 중심적이어서 회의 자체가 밤 11시에 끝나는 경우가 태반이다. 육아를 하면서 가능할까 라는 고민을 했다.
김경민 : 실제로 거의 불가능할 수도 있다. 저는 결혼을 했지만, 아이는 없다. 저는 아마 결혼을 안 했으면 외박을 못 했을 거다. 결혼했기 때문에 자유로운 사람이 된 거다.(웃음)(아버지 반대). 지금은 문제없이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날 경우엔 다를 것이다.
아이가 매우 불안해했다는 얘기를 들어보니까 아이에게는 좋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주변엣어 보면 항상 문제의 발단은 아이다. 싸움의 발단도 아이이고. 직업의 특성상 일에 걸쳐진 것이 많다. 그리고 이쪽 분야가 외박이 많다. 일반 직장은 평일 날 늦게 끝날지언정 이렇게 외박이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이쪽 분야가 더 어렵다
이영희(수원여성의전화 상담소장) : 말씀을 들어보니까, 비혼인 분들이 있는 것 같은데, 저희는 자녀 기르면서 활동한다. 그런 활동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편을 갈구는 게 중요하다.(웃음) 갈구는 방법은 협조를 얻어내는 것이 가장 좋다.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남편이 서포터 해주면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하고자 하는 거라면 결혼과 육아를 미리 걱정할 필요 없지 않은가. 결혼하고도 활동하는 많은 활동가들이 있기 때문에.
이호 : 남편이 이해하지 못하면 어렵지만, 남편이 이해한다면 가능하다. 남편이 인정하면 가능하다고 본다.
최종숙 : 아이 하나 키우려면 엄마가 아니라 마을이 필요하다. 아이 키우는 데 시스템이 마련되면 이런 문제는 가능하다고 본다. 제도의 문제 때문에 엄마의 활동을 제대로 못하게 하는 게 문제다. 제일 가까이 있는 재원이 아빠이고 친척, 지역 이웃과 센터 등인데, 그런 것도 있지만, 한편에선 훌륭한 시스템 갖춰지게 노력들 하는 작업과 동시에 그 단계로 가기 전까지는 우리 사회가 다양한 사람들의 지점을 함께 수용할 수 있는 업무 시스템도 필요하다. 이를 테면, 밤 새면서까지 회의하는 건 낮에도 할 수 있다. 얼마든지 시간 조정이 가능하다. 이런 것을 성인지감수성이라고 하는데, 구성원 중에 장애인이 있다면 장애인 중심의 문화와 시스템을 같이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김현 : 방금 말씀하신 그런 시스템의 문제도 있는 것 같고, 오승현 국장님이 지적하신 것 중에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저의 경우 사무국장 되고 나서 보니까 대부분 주변 사람들은 다 여성들이었다. 여성들과 있다 보면 언어가 안 통한다. 남성의 언어와 여성의 언어가 달랐다. 나는 굉장히 힘들었다. 그 땐 결혼 안 해서 아이 중심의 여성들의 동선과 젊은 나의 동선은 매우 달랐다. 그런 여성들과 나와 전혀 안 맞는 동선이었다. 그래서 회원들과 소통도 잘 안 된다. 그러다 보니까 어려움이 있었다. 국가적인 시스템이나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한 마을 시스템이 근본이겠지만, 활동의 측면에서 이런 차이(기혼과 미혼,비혼/자녀와 비자녀 등) 어려운 소통의 문제가 있다. 교육을 통해서 해결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김경민 : 저 같은 경우에도 계속 남자들만 있는 단체에서 일했다. 어쩌다 다른 프로그램에 참여할 경우, 주부에서 아이를 데리고 오면 난 정신이 없다.(웃음) 그런데 주부들은 그것을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신경 안 쓰고 일하더라. 그건 내 개인이 경험이 없기 때문에 느끼는 간극인 것 같다.
최종숙 : 여성단체는 어떤 행사가 있더라도 아이들과 와서 시끌벅적하게 회의도 하고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걸 할 수가 있다. 그리고 저의 경험 중에 하나인데, 수원여성의전화에서 이주여성 프로그램을 한다. 수요일과 토요일 한국어 교실을 하는데, 그런데 어느 기간이 되면 못 나온다. 임신해서 아이를 낳거나 아이를 기르면 못 나온다. 그래서 사무실 한 쪽 구석에 아이 때문에 교육을 못 받게 될까봐 탁아방을 꾸몄다. 해피빈에 지원요청해서 최소한의 탁아방을 꾸렸다. 그랬더니 자원활동가들도 애기들 데리고 와서 놀게 하더라. 기혼 활동가가 있는 곳에는 탁아 프로그램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그러면 이 활동에 집중할 수 있다. 그런 고민이 섬세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이호 : 김현 씨가 제기한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이 된다. 결혼 안 한 분들이 조직의 중책을 맡고 있다면 기혼자들과의 갭이 있다. 애를 낳고 나서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뀐다. 공감대가 많지가 않다. 그런 데서 오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그게 애를 낳아봐야만 해결가능한가?
오승현 : 사무국장이란 책임자가 됐을 대 한계가 있다. 탁아 프로그램 갖춘 것으로 활동가 배려해주긴 하는데, 실무 책임자가 됐을 때, 그 시스템이 가능할까. 그 탁아 프로그램은 회원을 위해선 제공한다. 하지만 내가 실무자로 있고, 아이가 있다면 그 상황을 누릴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인 것 같다. 책임을 맡게 되면서 좀 다른 것들이 주어진다.
한명호(여성의전화 사무국장) : 저는 사무국장 된 지 8개월 됐다. 저는 애가 셋이다. 저는 사무국장 활동하면서 솔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마음껏 할 수 있지 않을까? 좀 자유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본인이 처한 상황과 비교가 제대로 안 되니까 좀 그렇긴 한데, 부장일 때는 아이가 있든 없든 상관없었다. 그러나 사무국장을 하고 나니까 아이라는 타이틀이 활동의 반경을 좁히는 굴레처럼 느끼는 경우가 많다. 사무국장이 솔로일 때 여러 장점이 있는 측면도 있다.
오승현 : 말씀하신 것이 맞는 지적이다.
장혜진 : 친구가 장애인부모회 사무국장으로 일하는데, 장애인 아이들을 교육을 받는다. 어머니들은 교육에 민감하시다. 바로 옆에 동네에 5분 거리 정도인데도 무조건 집으로 와서 돌봐주어야 한다고 한다. “네가 우리 애 키워봤니” 하면서. 그런 말을 하니까 얘기가 끊긴다. 사무국장이 되면 회원들이랑 더 많은 얘기를 하고 친밀감을 느껴야 하는데 그 분들도 말하기 어려워한다.
이영희 : 저희 상담소에 자원활동가도 20여분이 있다. 대개 연령대가 50대 이상이다. 조직 내에서는 저도 어린 나이이다. 그런데 제 직책은 소장인데, 다른 분들은 5, 60대이다. 그들 수준에 맞추다보니까 내 정신연령이 그들처럼 5-60대 정도 된 것 같다.(웃음) 막내로 태어나서 다른 사람 캐어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성폭력 일만 해왔었는데 소장을 하다보니까 일이 분산이 되면서 정신연령이 높아져버렸다. 직책이 요구하는 것 때문에 맞추다보니까 너무 힘들다. 억울하기 보단 그들의 지혜나 경험을 간접적으로 미리 경험하는 건 좋다.
장혜진 : 저도 좀 억울하다. 제가 나이가 어리다. 내 나이 또래 친구 남자아이들도 잘 해야 대리 정도다. 그런데 나는 원장이다. 그런 직책의 차이가 생각의 차이에 영향을 받기도 하는 것 같다. 특히 시설장 회의에 가면 ‘이리 와서 이거 마셔’ 하시면서 아이 취급을 한다.(웃음) 그 분들은 내가 신기한가보다. 그러다가 여기 오면 책임을 져야 하는 게 가끔 억울하다.
최경송 : 시간이 많이 지난 것 같다. 마무리 할 시간이다.
이호 : 여기 계신 분들이 고민과 욕구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 고민을 누가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해결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이런 문제가 어떤 식으로 분출되는 게 좋은지. 그리고 그런 요구가 있는지. 그런 얘기를 해주시면 도움이 될 것 같다.
김승호 : 제가 여기 올 때, 보내주신 메일 내용을 사무실에 다 보여주니까, 다들 너무 좋아하는 거다. 다들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 그런데 프로그램 보니까 저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웃음) 어떻게 이런 분들을 찾았는지 궁금하다.(웃음)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도 좋은 것 같다. 안에서 쌓인 스트레스라는 것이 사무처장이 되면서 외부 회의가 많아졌고, 지역에 있는 다른 회의뿐만 아니라 해피빈 모임이나 외부 모임을 많이 나가면서 단체 안에서 받았던 얘기를 풀어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서 나름대로 풀었다. 이런 자리가 만들어진 것만으로도 우리 식구들의 부담도 줄였던 것 같고,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이런 자리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장혜진 : 여기 오면서 고민했던 것은, 여기 오신 분들이 근본적으로 하고 싶은 것은 같을 것이라고 본다. 단체나 시설이나. 우리는 이용시설이라서 재정은 크게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시설이라는 단어 때문에 일반 단체들과 갭이 생긴다. 시설 종사자들 모임에 갔을 때 되게 황당하다. 저는 이도저도 아닌 사람이 돼버린다. 아무튼 오늘은 재밌었다. 말 하고 나면 풀어진다. 나처럼 갑자기 일 하게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1년 되면 고민하기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 이런 분류별로 모임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저희 지역에서도 저랑 같은 동기들이 많았는데 현재 4명만 남았다. 그들과 수다 떠는 시간이 참 많이 생기면 좋겠다.
최경송 : 그런 모임이 있다고 자랑하시는 거죠? 자랑으로 일관하시는까 좋습니다.(웃음)
오승현 : 여기 온다고 할 때, 처음에 막막했다. 무슨 얘기를 하란 것인가. 그런데 와서 얘기해보니까 답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내 스스로 정리가 되는 게 있어서 좋았다. 풀뿌리 조직 내에서 회원들과 고민해야 하긴 하지만 거기서 충족되지 못하는 부분 있는데 이것을 갖고 얘기할 사람이 필요하다. 지역에서만 말고 상근활동가로서 느끼는 고민과 비전을 나누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모임을 가지고 갈 수 있을까? 그런 모임들이 있으면서 자기 조직을 떠나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직업 운동가로서 살아갈 수 있는 전망을 하는 테두리가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지금 했다. 이런 자리는 재밌다.
김경민 : 최경송 운영위원님의 탁월한 진행에 이렇게 쉴 새 없이 세 시간 동안 나름 정리해가면서 발언을 이끌어 내주셔서 감사한다.(웃음) 정리는 어차피 김현씨가 하시겠지만.(웃음) 감사를 드린다. 어차피 대화의 자리였던 것 같다. 서로 갖고 있는 고민들이 어떤 주제들이 있을까, 스크린해볼 수 있는 자리였다고 치면, 이후에는 좀 더 세밀하게 그룹핑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이를 테면, 사무국장이 되면서 성격이 변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든가(웃음) 정말 재정 때문에 미치겠다는 사람들의 모임이랄지. 소규모라도 그런 식으로 그룹핑 해서 대화를 전진시키면 좋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단체들이 안식년 시스템 있는데, 그런 것이 정말 필요하다고 본다. 사실 돈이 없으면 시간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러니까 단체는 돈이 없으면 시간이라도 줘야 하는데. 내가 사무국장이다 보니까 스스로 쉬기가 쉽지 않다. 그런 것을 확산시키는 방안이랄까, 이런 것에 대한 토론도 필요하다고 본다.
이호 : 내가 만들어야 내 후배가 할 수 있다. 내가 못하면 후배도 못한다.
김경민 : 안식월 만드는 노하우 등을 알려주면 좋을 것 같다. 소 그룹핑 해서 충분한 대화를 하자.
최경송 : 이상 좋은 이야기들을 서슴없이 나눠주셔서 감사한다. 오늘 집담회는 이것으로 마친다.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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