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가 끝났다. 이번 선거의 경우 예비선거운동이 있어서 유권자들이 조금 더 길게 주인 행세를 하게 됐다. 그래봐야 4년만에 한번 돌아오는 기회에 불과하지만.
후보들은 출퇴근의 시민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시민의 뜻에 따를 터이니 꼭 찍어달라는 주문을 외워댔다. 좋은 머슴이 되겠노라고 노래를 불렀다. 유권자의 반은 기권으로, 반은 도장을 찍음으로써 그 주문의 마법에 빠져들었다. 짧은 주인 행세를 마치고 거리는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누군가 '정치는 짧고 교육은 길다'고 했지만, 아직 '선거는 짧고 권력은 긴'것이 현실이다. 권력 자원의 분배 자체가 불공정한 상태에서 선거는 그 기울어진 권력 관계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절차에 그치고 있다. 선거를 통한 권력을 그 옛날 아테네에서처럼 '추첨'을 통해 해체시켜야 한다는 혹자의 주장은 대의 민주주의의 숭숭 뚫린 구멍을 정면으로 폭로하고 있다.
'주민 소환', '주민 투표', '주민 발의' 등등의 직접 민주주의 제도들은 대의 민주주의의 위기에서 비롯된다. 선출된 자에 대한 소환권을, 중요한 정책에 대한 결정권을, 새로운 제도에 대한 제안권을 주민에게 돌려주자는 것이다. 물론 대의 민주주의가 이상 그대로만 실현된다면 아마도 필요 없었을 듯한 제도들이다.
대의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보완한다는 의미에서 그 주체들 즉 선출된 자들에게 있어서 직접 민주주의 제도들은 적극 환영받음직한데, 현실은 정반대이다. 국회에서나 지방의회에서 이 제도들은 항상 찬밥 신세였다.
70년대에 틀만 달랑 만들어놓은 상태로 방치되어 실효를 내지 못하던 제도들이 최근 주민소환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주민소환, 주민투표, 주민발의와 같은 직접 민주주의 제도들은 이제 선거 때 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주민들을 주인으로 만들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하고 있다.
지역 정치인의 '주인 행세' 하려면...
2006년 5월 초에 국회를 통과한 주민소환제는 2007년부터 시행되며 지자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을 대상으로 시·도지사는 유권자 10% 이상, 기초단체장은 유권자 15% 이상, 지방의원은 유권자 20% 이상의 찬성으로 주민 소환 투표를 청구할 수 있고 유권자 3분의 1 이상 투표에서 과반수가 찬성하면 소환 대상자는 해임된다.
주민투표제는 2004년부터 도입되었으며 주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거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자체 주요결정사항 중 조례로 정한 것들에 대해서 투표권자 총수 5% 이상 20% 이하 범위 내에서 조례로 정한 수 이상의 서명으로 발의되고 주민투표 안건이 발의된 지 20-30일 이내에 투표가 실시되며 투표권자의 1/3이상 투표와 과반수 찬성으로 안건으로 통과시키게 된다.
주민 발의는 현재 '주민조례제정 및 개폐청구권'으로 가능하다. 투표권자 20분의 1 이내에서 조례로 그 수는 정하게 되어 있으며 이 이상의 서명의 발의되어 지방의회의 정식 안건으로 상정하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직접 민주주의 제도들은 각 지역별로 종합적인 '시민참여조례'를 통해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청주에서 제정된 '청주시민참여기본조례'(아래 참조)는 이를 잘 보여준다. 광주광역시 북구, 울산광역시 동구에서 제정한 주민참여예산조례는 모범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도입된 위원회 위원 공모ㆍ추천 제도의 도입, 회의록 작성 및 보관 의무명시, 회의록공개의 원칙, 위원회 위원구성에 있어서 여성할당제 명시 등도 바람직한 방향이다.
주민소환, 주민투표, 주민발의를 활용한 국내 지역 사례들
광주 지역의 시민단체들은 '주민소환조례제정운동본부'를 구성, 주민소환조례를 제정하기 위한 주민발의 운동을 벌인 바 있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광주시 광산구청장과 전남도 정무부지사 주변에서 인사·공사를 둘러싼 공직비리가 잇달아 터졌고, 급기야 금품수수로 공직자가 구속됨으로서 공직비리와 부패척결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가 거세졌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고양시 백석동에 55층 주상복합건물이 신축된다는 발표가 있자, 주민들은 스스로 합의해서 주민들의 자주적인 관리에 의한 투표를 실시했다. 50% 가까운 투표율에 88% 이상의 신축 반대가 나왔지만, 아무런 법적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광명시의 경우 숙박시설과 위락시설 등 유흥시설로부터 주거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30m에서 50m으로 늘림으로써 조례를 개정시켰고, 과천시의 경우 보육조례를 전반적으로 개정하는 개가를 남겼다. 안산시의 경우, 내용이 다소 변동되긴 했지만, 지방자치단체장 판공비공개조례를 제정했다.
이러한 직접 민주주의 제도를 잘 활용할 때 지역의 풀뿌리 운동은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어 성장해 나가는 것을 보게 된다. 2001년 과천에서 벌어진 보육조례 개정 운동은 이를 잘 보여준다. 원래 지방의회에는 청원권이 있어서 의원 한명에 의해서 조례를 청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과천에서는 언뜻 보기에는 훨씬 더 효율적으로 보이는 이 방법 대신에 주민조례제정 및 계폐청구권을 활용하였다. 1명의 의원에게 청원을 부탁하는 방법 대신에 1000명이 넘는 시민의 서명을 받아야하는 어려운 과정을 택한 것이다. 이를 통해서 효율을 뛰어넘는 소중한 성과를 가지게 됐다.
이 운동에 참여한 어린이집 학부모들과 지역단체 회원들은 스스로 공부하고 이웃을 설득하고 길거리에서 서명을 받으면서 힘을 키워나갈 수 있었고 지방의회는 한명 의원의 청원보다는 시민의 서명을 받아 제출된 개정안을 훨씬 더 무겁게 받아들였으며 과천시청에서는 이후까지도 훨씬 긴장된 가운데 보육행정을 펼 수밖에 없었다.
주민소환제, 주민투표제, 주민조례제정 및 개폐청구권 등등은 여전히 이러저러한 벽과 한계를 안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벽과 한계조차도 활발한 제도의 활용 속에 개혁될 수 있다. 주민소환제의 도입으로 어느 정도 틀을 갖춘 직접 민주주의 제도들 조차도 주민의 자치가 없이는 속빈 강정일 수밖에 없다.
의원 한 명의 '개인기'보다는 주민의 팀플레이가 가진 '조직력'의 힘이 소중한 때이다. 지방자치선거가 끝난 지금, 일상의 주인, 진정한 주권자가 되기 위한 길에 우리 모두 관심을 가져 봄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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