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 국민이 '고향'과 '가족'이라는 향수를 지니려 떠나는 시기이다.
타고난 것일 수도, 학습된 것일 수도 있는 그 향수는 수많은 사람들이 힘든 걸음을 떠나게 한다.
우리 각시와 함께 조금 빨리 부산으로 내려가 튀김하고 전을 붙여 시간이 나서 추석 전날에 가족이 함께 영화를 보러 나섰다.
애초에 보려고 했던 영화는 아니지만 그 중에 골랐던 영화, <애자>
<오늘의 문예비평>에 써야 하는 원고 때문에 <국가대표>를 보려 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애자>를 보는 팀에 붙었다.
최강희라는 배우와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좋아했던 지라, 결심을 하는데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감정이입을 할만큼 줄거리가 탄탄한 편은 아니었지만 최강희라는 캐릭터가 잘 소화해낼 수 있는 영화였던 것 같다.
사실 영화 줄거리는 조금 빤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포스터에서 알 수 있듯이, 관계가 멀었던 엄마와 딸이 엄마의 병을 계기로 서로의 관계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는... 어찌보면 명절에 어울리는 다소 구태의연한 영화였을지도...
하지만 건강이 좋지 않은 어머니를 둔 나로서는 두 팔 끼고 관람하듯 볼 수는 없는 영화였다.
나도 속을 썩일 만큼 속을 썩이며 살아왔고, 우리 어머니 역시 자기 인생의 남겨진 숙제로 내 결혼을 끊임없이 말했던지라...(이제는 그 숙제를 덜어드린 셈이지만...)
어릴 적 사고로 아들을 편애할 '수밖에 없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길을 고집하는 딸의 이야기, 아들인 나로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관계였다.
다만 나 역시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 나름 멍울이 생겼던지라 그럭저럭 감동을 받으며 약간 울컥하며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내게 가족이란 존재들은 무엇일까?
어떤 가족의 누구로서가 아니라 나로서 세상을 산다는 건 정말 그렇게 외로운 것일까?
아니 어쩌면 외로움보다는 내가 누구인지를 말하기 위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나를 형성시킨 그 관계를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버겁고 고통스러운 것일지 모르겠다.
그걸 드러내지 않고서는 나를 온전히 드러낼 수 없다는 그 잔인한 사실...
지금의 내 모습만으로는 나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는 그 명백한 사실...
명절마다 그 관계 속으로 들어가서 진부함과 또 다른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벗어날 수 없는 그 관계의 끈들...
영화를 함께 본 우리 어머니가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 묻지 않았다.
생각보다 재미있다라는 반응 외에는...
아마도 우리 아버지가 이 영화를 같이 봤다면 조금 더 집요하게 그 느낌을 물어봤을지 모르지만 어머니께는 그렇게 물을 수 없었다.
다 지나갔다 생각했는데 이 영화를 보며 여전히 내 속에 그 멍울이 남아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언젠가 다가올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그 날을 생각했다.
나는 애자와 달리 반응할 수 있을까?
사람이란 누구나 한번 살다 한번 죽으니 애써 노력하지 말자, 가족이란 관계 역시 왔다가 사라지는 것이니 너무 집착하지 말자 얘기할 수 있을까?
멍울을 터트리지 않고 내 얘기를 망자에게 전할 수 있을까?
답을 찾지 못한 채 극장을 나왔다.
조상들이 묻힌 산소로 향하다 우리 각시가 길에서 따준 감을 한입 베어무니 그 속엔 햇살이 가득 담겨 있었다.
타고난 것일 수도, 학습된 것일 수도 있는 그 향수는 수많은 사람들이 힘든 걸음을 떠나게 한다.
우리 각시와 함께 조금 빨리 부산으로 내려가 튀김하고 전을 붙여 시간이 나서 추석 전날에 가족이 함께 영화를 보러 나섰다.
애초에 보려고 했던 영화는 아니지만 그 중에 골랐던 영화, <애자>
<오늘의 문예비평>에 써야 하는 원고 때문에 <국가대표>를 보려 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애자>를 보는 팀에 붙었다.
최강희라는 배우와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좋아했던 지라, 결심을 하는데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감정이입을 할만큼 줄거리가 탄탄한 편은 아니었지만 최강희라는 캐릭터가 잘 소화해낼 수 있는 영화였던 것 같다.
사실 영화 줄거리는 조금 빤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포스터에서 알 수 있듯이, 관계가 멀었던 엄마와 딸이 엄마의 병을 계기로 서로의 관계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는... 어찌보면 명절에 어울리는 다소 구태의연한 영화였을지도...
하지만 건강이 좋지 않은 어머니를 둔 나로서는 두 팔 끼고 관람하듯 볼 수는 없는 영화였다.
나도 속을 썩일 만큼 속을 썩이며 살아왔고, 우리 어머니 역시 자기 인생의 남겨진 숙제로 내 결혼을 끊임없이 말했던지라...(이제는 그 숙제를 덜어드린 셈이지만...)
어릴 적 사고로 아들을 편애할 '수밖에 없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길을 고집하는 딸의 이야기, 아들인 나로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관계였다.
다만 나 역시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 나름 멍울이 생겼던지라 그럭저럭 감동을 받으며 약간 울컥하며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내게 가족이란 존재들은 무엇일까?
어떤 가족의 누구로서가 아니라 나로서 세상을 산다는 건 정말 그렇게 외로운 것일까?
아니 어쩌면 외로움보다는 내가 누구인지를 말하기 위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나를 형성시킨 그 관계를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버겁고 고통스러운 것일지 모르겠다.
그걸 드러내지 않고서는 나를 온전히 드러낼 수 없다는 그 잔인한 사실...
지금의 내 모습만으로는 나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는 그 명백한 사실...
명절마다 그 관계 속으로 들어가서 진부함과 또 다른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벗어날 수 없는 그 관계의 끈들...
영화를 함께 본 우리 어머니가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 묻지 않았다.
생각보다 재미있다라는 반응 외에는...
아마도 우리 아버지가 이 영화를 같이 봤다면 조금 더 집요하게 그 느낌을 물어봤을지 모르지만 어머니께는 그렇게 물을 수 없었다.
다 지나갔다 생각했는데 이 영화를 보며 여전히 내 속에 그 멍울이 남아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언젠가 다가올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그 날을 생각했다.
나는 애자와 달리 반응할 수 있을까?
사람이란 누구나 한번 살다 한번 죽으니 애써 노력하지 말자, 가족이란 관계 역시 왔다가 사라지는 것이니 너무 집착하지 말자 얘기할 수 있을까?
멍울을 터트리지 않고 내 얘기를 망자에게 전할 수 있을까?
답을 찾지 못한 채 극장을 나왔다.
조상들이 묻힌 산소로 향하다 우리 각시가 길에서 따준 감을 한입 베어무니 그 속엔 햇살이 가득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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