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7.08.14 [가족일기] 아내, 드라마에 빠지다
 

아내, 드라마에 빠지다!


박신양이 마음을 앗아가더니 주진모가 그 뒤를 잇는다. 이번엔 공유다. 특정한 시간대가 되면 드라마는 끊이지 않고 전파를 탄다. 아내의 손놀림도 부산하다. 요일별로, 시간대별로 그 많은 드라마를 꿰차고 있다. 대충 아내가 퇴근하는 시간은 밤 9시에서 10시 사이. 집에 들어와 대충 앉으면서 리모컨을 찾는다. 급하게 봐야 할 드라마가 있다는 뜻이다. 옷을 갈아입거나 손발을 씻는다면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음을 의미한다. 딸아이도 으레 엄마는 드라마를 봐야 하는 것으로 안다. 덩달아 엄마 옆에 앉아 드라마에 빠진다.


어쩌다 저녁밥을 같이 먹을 기회가 있다면 드라마 보는 시간이 앞당겨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7시30분에서 8시 사이에 어디선가 드라마가 시작되고 밤 11시까지는 끊기지 않는다. 당연히 이 시간대 리모컨 주도권은 아내에게 있다. 아내가 화장실에 잠깐 간 사이 다른 채널을 돌릴라치면 아내의 우렁찬 소리가 화장실로부터 들린다. “다 듣고 있다! 빨랑 돌려라!” 한다. 귀도 참 밝다.


대개 집에서 하루 일과를 보내는 전업주부들이 드라마에 더 쉽게 빠진다는 속설이 있긴 하지만 ‘워커홀릭’이라는 별명이 붙은 내 아내가 드라마에 심취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루 일과에 지쳐 들어온 아내가 드라마를 보며 피곤을 푼다는데 뭐라 할 말이 있겠는가? 그러나 문제는 아내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딸아이다.


현실과 허구의 구분이 명확치 않은 딸아이는 드라마 주인공처럼 하지 못하는 아빠를 질타하곤 한다. “아빠도 주몽이처럼 친절하면 안 돼?” 도대체 주몽이 내 딸아이에게 얼마나 친절하길래? 박신양은 왜 피아노도 잘 치고 노래도 잘 하는 거야? 권상우는 폼만 잡으면 왜 그렇게 멋있는 거야? 아빠는 이 세상 모든 남자의 기준이었다. 사실, 아빠 이외의 남자를 접하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아빠가 기준이란 건, 아주 오래된 옛날이야기가 돼버렸다. 아빠보다 뭐든지 잘 하는 남자가 드라마에 나오기 때문이다. 딸아이에게 세상의 모든 남자의 기준은 ‘드라마 주인공’이다. 참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꺼억~꺼억~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여름 안면도에서........

언젠가 아내에게 넌지시 ‘바보상자’를 없애자고 제안했다. 딸아이를 위해서 말이다. 아내는 선택해서 보면 된다고 답한다. 합리적 선택이 되겠냐고 물었더니, 가능하단다. 티격태격 여러 차례 말다툼도 했다. 아내는 요지부동이다. 누구는 아내와 함께 드라마를 보면서 즐기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그게 잘 안 된다. 드라마에 심취하지 못하는 내 취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늦은 밤 TV 앞에 앉아 바보가 되는 기분이 싫어서이기도 하다. 게다가 허구와 현실의 경계에 왔다 갔다 하는 딸아이의 핀잔도 싫다. 그래서 그 시간이 되면 난 자연스럽게 컴퓨터 앞에 앉는다. DVD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인터넷 서핑을 한다. 드라마가 끝나고 현실로 돌아오면, 아내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만날 DVD 보냐?”

TV 모니터에 빠진 아내, 컴퓨터 모니터에 빠진 남편,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Posted by '녹색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