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신문-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기획> 풀뿌리시민운동 모범사례를 찾아서
시민운동을 조금이라도 고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풀뿌리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흔히 풀뿌리 운동은 ‘지역’운동이라는 범주로 이해된다. 때문에 특정한 벽에 부딪힌 사람들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부분’운동을 풀뿌리 운동에서 간과하기 십상이다.
올해 풀뿌리 시민운동 사례공모에서 풀꽃상을 받은 대구 성서공동체 FM의 ‘담장 허무는 엄마들’들은 지역보다는 부분에 방점을 둔 사례다. 소출력 방송국의 한 코너로 시작되었던 프로그램을 매개로 장애인 어머니들이 사회에 발언할 수 있게 된 활동이 그것이다. 프로그램 기획을 맡고 있는 장애아동 부모 전정순 씨의 “담장만 허무는 게 아니고 진짜 울타리도 넓혔다”는 말처럼 작은 공동체를 만들었다.
“장애인 엄마들에게 마이크를”
이경희 성서공동체FM PD는 “‘엄마들에게 마이크를 주자’고 방송을 기획했다”며 “처음엔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회의도 알아서, 대본도 다 알아서 만들어갔다”고 말했다.
‘담장을 허무는 엄마들’은 지난 2005년 7월 처음 계획됐다. 9월부터 본격적인 기획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난관이 있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장애 아이와 함께해야 하는 엄마들의 환경에서 방송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역할 분담을 시작했다. 배경음악을 담당하는 엄마, 대본을 구성하는 엄마, 방송 CD를 배포하는 엄마 등으로 역할을 세분화해 방송을 준비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하는 십시일반으로 방송이 본 모습을 갖췄다. 이렇게 15분 방송분으로 시작한 ‘담장을 허무는 엄마들’은 이후 37분, 60분으로 방송분량을 늘렸다.
현재 방송은 매월 넷째주 금요일 전파를 탄다. 프로그램에선 장애인 엄마들의 이야기를 담은 ‘육아일기’, 장애교육을 담당하는 선생님들의 목소리를 내보내는 ‘교원일기’, 장애인 보육 관련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초대석’ 등으로 구성된다.
‘드러냄’을 시작하다
방송을 시작하며 엄마들의 표정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경희 PD는 “방송을 계속하면서 어둡기만 하고 자신이 없었던 엄마들의 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했다”며 “피해의식과 편견의 굴레라는 담장을 허문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은 엄마들이 자녀가 장애라는 사실을 드러냈다는, 간단하지만 쉽지 않은 행동이다.
“장애가 엄마의 죄인 양 미안하고, 미안해서 한 시도 아이를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했던 엄마들이었
지만 아파서 감추고, 드러내면 행여 더 큰 상처를 받을까 봐 엄마의 품속에 꼬옥 숨겨왔던 아이들을 이제 담장 밖 세상으로 내어놓기 시작했다.” 방송 기획을 담당하는 전정순 씨의 말이다.
장애자녀의 엄마들은 아이를 드러냈을 때 자신의 아이와 다른 아이가 피해보지 않을까 하는 우려, 혹은 남편이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하는 염려 등 때문에 아이를 자신의 품에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방송을 만들어가는 엄마들은 장애아의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내 아이’의 현실을 드러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꽁꽁 감추기만 할 때는 다른 이들과 소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민은 컸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이름을 따 그들의 활동을 정리한 ‘담장을 허무는 엄마들’이란 단행본에 아이와 엄마의 사진을 게재할 정도로 이제는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제도 환경변화 목소리를”
방송을 하면서도 엄마들이 늘 하는 얘기는 ‘힘든데 그만해야 겠다’는 것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이들도 한두 달 하다 지쳐서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방송 진행을 맡고 있는 양금자 씨는 “처음에는 힘들면 쉬자고 했는데 후원해 주신 분들에 대해서 책임이 느껴졌다”며 “병원의 물리치료실에서 만난 장애인 어머니들의 모임을 방송을 통해 알려나가면서 각 학교에 보조교사를 두도록 하는 등 제도와 환경을 바꾸는 쪽으로 활동이 확장됐다”고 말했다.
‘담장 허무는 엄마들’은 중앙 일간지나 지역방송 등 언론에서 미담으로 주목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미담으로만 받아들이기엔 의미가 부족한 부분이 있다.
엄마들은 장애인 부모운동의 모델을 만들고 있다. 그들의 운동은 외부에서 보기엔 그리 크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서로의 아픔을 나누면서 무엇보다 의미있는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용훈이는 병원 신생아실에서 패혈증 감염으로 뇌손상을 입었다. 다행히 인지기능 부분은 다치지 않아 일반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지난 2006년 1월 ‘담장초대석’에 지체 장애학생이 편입된 일반학교에 승강기를 설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방송이 나간 뒤 용훈이가 다니는 시지초등학교에 승강기 설치가 확정됐나는 소식이 들려왔다.
장애운동을 하는 단체의 활동가들이 아니지만 엄마들은 스스로 교육청을 찾아가고, 언론사를 방문하고, 법조문을 뒤져 문제 해결의 방법을 만든 것이다. 이들의 힘으로 대구지역 특수학교의 교과과정을 학교와 협의 하에 바꾸기도 했다.
지난 4월 그동안 방송내용을 정리한 ‘담장 허무는 엄마들’ 단행본을 출간하고 엄마들은 또다른 변화를 경험한다. ‘사적으로 방송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것이 되었고,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지속적인 방송제작물 CD제작 등을 통해 장애부모운동을 지역사회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벽과 대화는 계속된다
처음부터 굳이 운동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지만 이들의 변화는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그래도 아이의 예쁜 모습만을 보이고 싶은 것이 엄마들의 마음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장애가 있는 아이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건 2년 전엔 상상 못했던 일이다.
드러냄과 나눔을 통해 자신의 환경을 극복해 가는 엄마들은 오늘도 방송을 만들고 있다.
대구=심재훈 기자 cyclo201@ingo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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