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농촌이 함께 사는 길
'콩세알 나눔 마을'의 권순호씨를 만나다
작성 : 김현(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여름으로 들어서는 6월의 첫날. 날씨가 후덥지근했으나 그늘 밑에는 막바지 봄바람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선선한 바람이 분다. 소규모 유기농을 하면서 도시 사람들과 직거래를 시작한지 이제 막 1년을 넘긴 이천의 권순호 씨를 찾은 건, 이음 운영위원 두 분과 함께 했다. 터벅터벅 혼자 걸음보다 여럿이 설레설레 움직이는 것도 꽤 색다른 맛이다.
일전에 '풀내음'에도 간략하게 소개한 바 있는(http://blog.grasslog.net/archive/519) '초록장터'가 '콩세알 나눔마을'로 바뀌어 도시민과 농부가 함께 '마을만들기'를 해보자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었다. '콩세알 나눔마을'은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월정액을 받고 유기농 생산물을 배달해주는 것이 기본적인 운영원리다. 3만원 월정액은 1달에 1회의 배달, 5만원은 2회, 10만원은 4회가 배달된다. 배달되는 농산물은 권순호 씨가 제배하는 모든 품목과 주변 협력 농가에서 보내주는 것을 합치면 솔찮게 다양한데, 직접 재배하는 야채류, 쌈채류, 엽채류 등 생채를 비롯해 된장, 간장, 효소, 담근 김치, 고춧가루 등 가공류도 적잖다.
'규모의 경제학' 논리는 생산과 유통방식의 다양성을 집어삼켜버렸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대형 할인매장의 '주택가 침공'은 소규모 유통업체의 설 자리까지도 앗아가 버릴 태세다. 심지어 이런 대형 유통업체는 생산에까지 개입함으로써 '자유시장경쟁체제' 혹은 '신자유주의'의 위력이 어떤 것인가를 가상공간이 아닌 현실에서 보여주고 있다. 거대한 유통자본이라는 골리앗이 덩그러니 우리 앞에 서 있다. 유기농 시장은 어떠한가? 대형 할인매장과는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대표적으로 생협의 경우도 이런 '규모의 경제학' 논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유기농마저 유통자본이 생산자본을 장악했다고 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콩세알 나눔마을'은 이러한 유통시스템은 농가를 더욱 버티기 힘든 구조로 만든다고 말한다. 그래서 부가적인 지출을 최대한 줄이면서 소비자는 저렴하게 싱싱한 농산물을 받고, 생산자는 안정적으로 생산에 집중할 수 있는 구조를 함께 만들자고 제안한다. 이에 덧붙여 지속가능한 농촌을 만들어보자고 도시민들에게 손을 내민다.
권순호씨가 묵는 집이다.
현재 가족나눔은 57가구 정도가 참여한다. 한 달에 한 번 농산물을 받을 수 있는 3만원 가족이 많다. 대략 나눔 가족으로부터 들어오는 수입은 300만 원가량이나, 연체되는 것을 감안하면 250만 원이 들어온다. 그 중에 50만 원 가량이 택배비로 지출되고 물건 값을 제외하면 순수 100여만 원이 수입이다. 배달은 가로 50센티, 세로 30센티 정도 되는 박스에 농산물을 담아 택배로 배달된다. 협력하는 농가는 세 농가다. 그 중 한 농가는 가을이 되어야 품목이 생기고 나머지 두 농가는 주로 비닐하우스 생산을 한다. 권순호 씨는 토지를 중심으로 한다. 논농사는 4천 평, 밭농사는 5천 평 정도의 규모다. 하우스는 150평 정도지만 300평 규모로 조만간 늘릴 계획이다. 권순호 씨가 재배하는 작물은 대략 40여 가지. 버섯류, 쌈채류 등은 협력 농가가 대주고 있다. 여기에 쌀과 가공식품까지 합치면 그럭저럭 소화가 된다. 가장 최근 박스에 담겨 온 작물은 참외, 오이, 가지, 감자, 쌈채류, 호박, 토마토 등등 여름이면 소비자가 미안할 정도로 많은 양의 작물이 집으로 찾아온다.
함께 했던 박신연숙, 이필구 님이 권순호 님과 이야기하고 있다.
아직은 생채가 가공식품보다 훨씬 많다. 그러나 최근 '하자센터'의 지원으로 음식을 가공하고 조리하는 8명의 '아줌마 팀'을 꾸렸다. 각종 장아찌나 고추장, 김치 등이 이 분들의 손을 거쳐 생산될 예정이다. 조만간 가공식품의 비율이 대등해질 것으로 보인다. 권순호 씨는 생채와 가공식품의 비율이 어느 정도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본다. 생물만 보낼 경우, 바쁜 도시 생활자들이 이를 모두 소화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렇다고 가공류는 회원들의 입맛을 모두 충족시키지 못한다. 집에서도 해먹을 수 있도록 배려를 해야 한다. 직거래를 하면서 가장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계절에 따라 품목의 변화라고 권순호 씨는 말한다. 아무래도 겨울은 농산물의 종류와 양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씨를 뿌리는 봄까지는 보릿고개다. 대략 30-40가구 정도 배달하는 양밖에 안 된다고 말한다. 이에 비해 여름과 가을은 그야말로 '풍성'한 잔치다. 100가구 이상을 소화할 수 있는 생산량이다. 보내는 입장에서도 겨울과 봄은 힘든 계절이다.
권순호 씨가 직접 담근 막거리의 맛은 일품이었다^^
돈 70만 원을 손에 쥐고 권순호 씨가 처음 이곳 땅을 밟을 때가 지난 1995년 말 겨울이었다. 이천향교가 주관하는 어재연 장군의 사당을 지키면서, 1년에 2번 제사를 지내는 조건으로 사당에 딸린 집을 무료로 빌리고 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가족은 권순호 씨 내외를 비롯해 총 6명이다. 딸 아들 딸 딸, 중2부터 초1까지 4명의 자녀를 두었다고 권순호 씨는 소개한다. 권순호 씨의 배우자는 '한강 지킴이' 일을 한다. 사회적 일자리 차원에서 진행하는 비정규직이다. 권순호 씨는 자신보다 배우자가 훨씬 능력 있다며, 함께 농사일에 주력하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안정화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배우자의 입장은 조금 더 신중하다. 나눔가족으로부터 들어오는 100여만 원 가량의 수입으로는 생활이 다소 미흡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직장을 쉽게 떨칠 수가 없다. 다만, 올해 틀을 잡고 내년에는 이 일에 주력해볼 생각도 있다. 15년을 머물면서 부모님도 이곳에 터를 잡으셨고, 저쪽 산 너머에 아주 저렴한 집 한 채를 장만했다. 겨울나기 전에 부모님이 그리로 옮기실 거라 한다. 권순호 씨 농가는 20여 가구가 모여 있는 아담한 마을이다. 대부분 혼자 사시는 70대의 어르신들이 많다. 이장님은 환갑을 갓 넘기신 분이다.
유기농 직거래는 아주 오래된 아이디어였다. 나이 서른 즈음, 풀무원농장에서 2년 동안 젊은 동료들과 함께 농사일을 배우면서 유기농 직거래에 대한 동료들 간의 교감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현실세계에서 실현시켰던 당시의 동료는 거의 없다. 유기농 직거래는 생산자의 조건과 의지가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소비자의 적극적인 태도가 성패를 좌우한다. 왜냐하면 이 방식은 생산자의 규모나 기술보다는 소비자들이 얼마나 '신뢰'하는가, 혹은 농촌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소비자의 '의식'이 얼마나 갖추어져 있는가에 달려 있다. 예컨대, 작년 말, KBS에서 농업과 관련된 다큐에서 권순호 씨의 '콩세알 나눔마을'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전파를 탄 후, 회원들이 급속이 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 가입한 회원들은 거의 떨어져나갔다. 때마침 겨울로 들어서면서 배달 품목이 줄어들었던 것이다. TV에서 보는 것과 현실이 사뭇 다를 수밖에 없었는데, 소비자는 이를 인내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 방식은 소비자가 농가를 감싸 안고 갈 수밖에 없다. '신뢰'라는 것이 중요한 요소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년 초, 서울의 한 모임에 참석한 자리에서 누군가 월정액으로 해보자는 제안이 있었고, 그 자리에서 목동의 여러 가구가 신청하게 된다. 이렇게 10가구 정도로 지난 2008년 4월, 처음 배달이 시작됐다. 1년이 지난 올해 4월, 1주년 기념으로 마을잔치도 벌였다.
권순호 씨의 논. 우렁이 농사를 짓고 있다.
권순호 씨는 줄곧 농산물을 직거래하는 것만으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크게 보면 이 사업은 농촌을 살리는 '마을만들기'운동이며, 소비자운동이다. 한 작은 농가가 개념을 세우고 조건을 갖춘 후 소비자를 찾는 건 실현되기도 힘들지만, 이 사업의 취지에도 맞지 않다. 돈을 내고 먹거리를 받는 것을 넘어, 이곳에 내려와 휴식도 취하고 농사일도 거들고 다양한 마을 일에 참여하자고 소비자가 먼저 나서야 한다. 그래야 농촌은 더 이상 외딴 섬으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농촌이 살아남으려면 다 떠난 농촌 마을에 도시민이 이웃이 되어야 하고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곳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콩세알 나눔마을'은 말한다. 국가는 이미 농촌의 미래를 버렸고, 시장은 농촌이 살아갈 싹까지 자르려 한다. 국가와 시장에 기댈 수 없다면 누구에게 희망이 있는가? 협동과 연대의 정신이 그 꿈을 이룰 수 있다고 권순호 씨는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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