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 2006년 11월 9일 오전 10시 ▶ 인터뷰 : 황영단(동대문구 품앗이공동체 회원) ▶ 작성 : 김현(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연구위원)
고통을 분담하고 협력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길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무 자르듯, 각자의 이익을 절반으로 똑 같이 나눌 만큼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달리하면 어려운 일도 여럿이 함께 나눌 수 있고, 어깨에 눌린 짐을 절반, 아니 그 이상도 줄일 수 있다. 누군가는 먼저 나서고 누군가는 ‘할 수 있다’고 얘기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협동은 자연 상태처럼 그냥 놔두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용기 있는 사람 또는 조직가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특별한 용기도 아니고 조직가로서의 특별한 기질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토해내고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 바로 ‘나’일 수도 있다.
‘민주시민 공동체’라는 말이 바닥 위에 붕 떠 있듯 희미하다면, ‘육아를 분담하고 동네에서 생활하는 엄마들의 공동체’라는 말은 쉽게 이해된다. 관심거리에 따라 모이는 동호회 수준과는 다른, 일상을 대면하고 소통하고 실천하는 공간으로서의 터전과 생활은 유형의 끈보다 더 강하다. 어쩌면 그것이 풀뿌리의 힘이기도 하다.
‘육아’를 밀착해서 장시간 담당해보지 않으면 그 무게가 얼마 만큼인지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바깥 일 하고 들어와 ‘아이들은 저절로 크는 거야!’라고 하거나, ‘애 하나 제대로 못 봐!’라고 외치는 사람(대부분 남성이겠지만, 육아를 담당하는 남성들이 보면 억울할 것 같아 ‘사람’으로 표현했다)이 있다면 요즘 인터넷 유행어로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형이다, 10초 준다. 굴다리로 튀어왓!(싱아형)” ‘동대문구품앗이공동체’는 육아라는 생활을 매개로 용기 있는 사람들이 모여 협동하고 실천하는 풀뿌리운동의 전형을 일구는 엄마들의 모임이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에서 시상하는 2006년 ‘풀뿌리시민운동사례’에 선정되어 더 잘 알려지긴 했지만, ‘동대문품앗이공동체’의 역사는 만 5년을 훌쩍 넘었다. ‘육아스트레스’를 해결해보려는 개인들의 욕구로 시작하여, 지금은 가족보다 더 가까운 공동체로 살아가고 있다. 오늘은 처음 이 모임의 장을 만들었던 황영단 씨를 만나 ‘동대문품앗이공동체’의 숨은 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 현재 황영단 씨는 한살림서울 동대문·중랑지부에서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대문품앗이공동체’는 황영단 사무국장이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
“(인터넷에 글을 올린 것은) 제가 처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당면한 문제였어요. 왜냐면 큰 아이가 그 때가 28개월 정도 됐었고, 작은 아이가 5개월 정도 됐을 때였거든요. 저 개인적으로는 공동육아협동조합에 관심이 있었지만, 제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공동육아협동조합이 없었어요. 큰 아이가 놀이터 가고 싶다고 하더라도 작은 아이가 자고 있으면 못 가는 상황이고, 아이들 때문에 제가 뭘 할 수가 없었어요. 심지어 대중목욕탕조차 가기 힘든 상황이었죠. 그래서 육아 스트레스라는 것이 말도 못 하거든요. 그러다가 공동육아협동조합 홈페이지에 가끔씩 들어가서 올라온 글들을 읽어보던 중에, 의정부에 있는 어떤 한 아파트에서 품앗이로 아이들을 돌아가면서 돌본다는 글을 봤거든요. 아, 이거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2001년 3월부터 우리 모임이 시작되었으니까, 그 이전이었을 거예요. 그러고 나서 우연찮게, 동네에서 예전 직장 동료를 만났어요. 아이 나이가 비슷하고 집도 가깝고, 해서 품앗이 얘기를 했죠. 할 생각이 있냐고 했더니 그 분도 비슷한 고민이 있었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사람들이 많이 보는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놓겠다고 했죠. 연락이 오면 좋고, 아니더라도 둘이서 시작을 해보자고 했죠. 그렇게 해서 몇 몇 엄마들에게 연락이 온 거죠.”
공동육아협동조합을 시도해보는 건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때마침, ‘육아 품앗이’에 대한 사례를 보고 마음에 품고 있던 중, 예전 직장 동료를 만나 의기투합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게 결심한 후, 엄마들이 관심 갖고 많이 볼 수 있는 사이트를 찾아 “가까운 지역에서 아이들과 밖에서 놀기도 하고 서로 왕래하며 육아 품앗이를 함께 할 사람들을 찾는다”는 내용으로 글을 올리게 된다. 다섯 명 정도에게 연락이 왔다고 한다. 조건이 비슷했다. 엄마들의 연배도 비슷하고, 아이들의 나이도 비슷했다. 그렇게 해서 첫 모임이 2001년 3월에 이루어졌다.
“첫 모임 때, 이 모임을 어떻게 만나고 싶은가, 몇 번 만났으면 좋겠는가, 아이들과 어떻게 만났으면 좋겠는가, 이런 얘기들을 했어요. 모임의 성격에 대해서 엄마들의 생각은 다 달랐어요. 같을 수가 없겠죠. 그런데 다행히도 서로 ‘다름’을 다 인정하는 편이었어요. 그래서 아마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모임을 통해서 신뢰를 쌓았다고 한다. 황영단 사무국장의 표현에 의하면, 1년 정도 흘러 평가 모임을 가졌을 때는 ‘감동의 순간’이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모임이 유지되리라고는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통해 ‘감동’을 받는다는 건 참으로 중요한 요인이다. 여타의 성공한 풀뿌리단체 사례의 경우도, 회원들이 얼마나 진하게 ‘감동’을 맛보았는가가 가장 중요한 성공 포인트였다. ‘동대문품앗이공동체’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이들에 대한 교육관이나 세계관은 달라도 ‘감동으로 뭉친 끈끈한 정’이 무엇보다 강했다고 황영단 사무국장은 회고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어렸기 때문에 다 같이 만났어요. 한 1년은 그렇게 만났던 것 같아요. 아이들이 조금 크니까, 다른 아줌마와도 친하게 되고, 엄마와 떨어져 있어도 괜찮게 되더라고요. 그 당시엔 아이들이 한 8명 정도 됐었어요. 한 엄마가 8명의 아이를 보기엔 힘드니까 2명씩 당번을 정해서 보다가, 점점 익숙해지면서부터 1명의 엄마가 8명의 아이를 봐도 무리가 없겠다 싶어서, 지금은 1명이 보고 있어요.”
처음부터 분담해서 아이를 본 것이 아니라 집단적인 모임을 1년 동안 가졌던 것이, 어쩌면 성공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아이가 매개가 되긴 했지만, 결국 엄마들의 연대의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 모였다가, 2번으로 늘고, 또 다시 3번 정도 모였죠. 그렇게 가다가, 초기엔 잘 모르니까 친해지는 게 중요한 일인데, 매번 집단적으로 모이면 아이들까지 30명이 되는 인원이잖아요. 인원이 많아서 다 모이면 힘들더라고요. 그리고 다른 엄마들도 이젠 아이들과 잘 노니까, 자기 혼자 뭘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게 되더라고요. 매 시기마다 새로운 논의거리가 생기고 대안을 찾고 했던 것 같아요.”
자주 만나면 정이 쌓이기 마련인가 보다.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모임을 가졌고 살아가는 이야기, 자녀 이야기, 개인적인 이야기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남편 흉보기와 같은 수다가 서로의 정을 끈끈하게 연결하고 있었다. 황영단 사무국장이 얘기하듯, 그것은 ‘엄마들의 해방구’였다. '수다‘는 뭔가 모를 묘한 구석이 있다. 그러나 진행과정은 평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어떤 계기가 있었냐면, 엄마와 아이들과 만나다보니까, 남의 아이들을 야단치는 상황이 생기거든요. 부모들 입장에서는 그런 부분이 상당히 예민해요. 하루는 엄마들이 저기서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이 여기서 놀고 있었는데, 한 엄마가 딴 아이를 야단친 거죠. 야단맞은 아이의 엄마가 너무 기분 나빠 하시더라고요. 아이들 만나면 이런 문제가 있을 텐데,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막연했죠. 그 때 모임이 깨질 뻔했어요. 저 자신도 고민이 많이 됐고, 경험 있는 사이트에 글 올려 조언도 듣고 해봤는데, 어쨌든 간에 열어놓고 얘기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보통 한 달에 한 번씩 평가를 하거든요. 공개적으로 얘기하자, 이런 상황이면 어떻게 해야 되겠냐, 했더니, 당연하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있으면, 꼭 해당 엄마한테 솔직히 얘기를 하자, 어찌 보면 야단치는 엄마의 시각이 객관적일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수긍했죠. 기분은 약간 나빴을 수도 있지만, 그런 상황이 오면, 늘 얘기하면 풀어질 수 있었어요. 이미 그런 신뢰가 쌓인 상태였던 거예요. 그 시점이 한 1년 정도 지나고 난 다음이었죠.”
생전 처음 만난 관계라서 알게 모르게 긴장감이 형성되는 건 당연하다. 그런 긴장감이 해소되는 시점에 ‘신뢰’라는 것이 쌓일 수 있고, ‘생각의 차이’를 ‘믿음’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이 ‘소통의 힘’이 아닌가 싶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그렇고 이웃 간의 관계가 그렇고 직장 동료와의 관계가 그렇다. 이렇게 ‘소통’은 서로를 연결하는 끈이다. 국가와 시민, 시민과 시장도 그런 관계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모임을 지속하다 보니까, 집 말고 다른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겨울이 더 그랬죠. 뒹굴어도 되고 뛰어도 좋은 공간. 그러다, 우연히 길가의 한 건물에 ‘방과후 교실’이라는 간판을 봤어요. 방과후니까 오전에는 비겠다 싶어서, 전화를 했어요. 한 번 방문해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열린사회동대문중랑시민회’에서 진행하는 ‘어린이날 행사’에 저희 모임이 참여하게 됐어요. 그 때 계기가 돼서, ‘열린사회동대문중랑시민회’가 어린이 도서관을 만들 계획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품앗이 엄마들이 도서관 만드는데 모두 참여하게 됐어요.”
‘방과후 교실’은 ‘열린사회동대문중랑시민회’가 운영하고 있었고, 집 이외에 다른 공간이 필요했던 품앗이 회원들은 허락을 받아 몇 차례 그 곳을 활용하게 된다. 더 절묘했던 것은 ‘열린사회...’가 어린이도서관을 짓는다는 얘기에 품앗이 회원들의 귀가 솔깃했던 것이다. 황영단 사무국장을 비롯해 2명의 품앗이 회원들이 어린이도서관 준비위원회에 참여하게 되고, 어느 정도 진척이 되자 모든 품앗이 회원이 도서관 만드는 일에 참여하게 된다. 책 정리, 입력 전산작업, 도서관 꾸미기 등등 모두들 열성이었다. 그 때가 2002년이었다.
“모임 하면서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어주거든요. 뭘 하다가도 심심하다고 그러면 책을 읽어 줘요. 저희가 모임 하면서 엄마들이 공부를 따로 했어요. 아이를 길러 보니까, 경험도 없고, 잘 모르겠고, 그래서 공부를 하게 됐죠. 아이들에게 책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어떤 책을 보여주는 것이 좋은가? 이런 얘기를 많이 하면서, 아이들 그림책에 대해서 공부도 하고 아이들 발달단계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등에 대해서도 공부를 했죠. 그때만 해도 인근에 도서관도 없었고, 방바닥에 뒹굴뒹굴 하면서 책 읽을 장소가 마땅치 않았어요. 그러다가 도서관이 생기니까 엄마들이 무척 좋아했죠.”
어린이도서관의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정숙한 대학도서관이 아니라, 책과 함께 자유로운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공간,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절실하게 그 필요성을 느낄 것이다. 그때 고생하며 만든 도서관이 지금은 품앗이 회원에게 소중한 만남의 공간이 되고 있다. 아이들 동선에 따른 공간의 배치, 그것 또한 지역사회의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도서관이 생기고 나서부터 여러 엄마들이 많이 모이게 되는데, 주로 젊은 엄마들이거든요. 그런 엄마들이 품앗이를 해보고 싶다고 해서 2003년 12월 정도에는 품앗이가 모두 8개 팀이 있었어요. 저희 팀은 초기 멤버이고 8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팀마다 조금씩 다른데, 4명이 모여 있는 곳도 있고, 5명도 있고 그래요. 8개 팀이 생기다보니까 대표들만이라도 한 달에 한번씩 같이 모여보자, 그렇게 제안이 돼서 모임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품앗이 특성상 정기적으로 나들이를 다니고, 토요일에는 도서관에 모여 행사 준비하죠. 일상으로는 자기 팀 활동을 하고 있어요.”
현재 8개 팀이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확장된 것은 도서관의 힘 때문이다. 도서관을 중심으로 품앗이 회원들이 모이자 지역사회에 입소문이 퍼지고, 품앗이를 해보려는 엄마들이 자연스럽게 붙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비슷한 동네끼리, 아이들 연령대별로 8개의 팀이 생겼다. 지금은 어느 정도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일상적으로는 팀별 활동을 하면서 한 달에 한 번씩 대표자 모임과 나들이를 가고, 토요일에는 도서관 활동을 한다. 지역화폐처럼 가상의 화폐가 오고가는 시스템은 아니다. ‘개인의 노동력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그야말로 ‘품앗이’의 원리이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자본은 ‘신뢰’다. 각자가 맡은 노동에 대해서는 신뢰를 기반으로 해서 책임을 지는 시스템. 그래서 대표도 돌아가면서 맡는다.
“일상에서는 자기가 담당할 몫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는 거죠. 대외적인 행사는 또 다른 형태로 책임을 나누는 거고요.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대표를 돌아가면서 맡으면 되요. 책임성을 부여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한 사람이 대표를 오래할 수는 없어요. 아이도 키워야 하고 다른 일도 있으니까. 처음엔 1년을 하자고 했는데, 1년은 너무 길다, 반년 하다가, 줄여서 지금은 3개월로 하고 있어요. 자기 대표 됐을 때 큰 일 걸리면 하게 되죠. 그런 시스템이죠. 장점이 많은 것 같아요. 돌아가면서 해보면 그 자리에 대한 책임이라든가, 저 사람이 저렇게 힘들었겠구나, 처지를 이해하는 기회가 되죠.”
3개월에 1회씩 돌아가며 대표를 맡는 최소한의 평등한 위계구조를 지니고 있다. 어떤 이론이나 논리가 ‘3개월’이라는 수치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엄마들의 경험이 지금의 결과를 도출한 것이다. 황영단 사무국장은 이런 시스템이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다고 누차 강조했다.
우리 모임은 오래 갈 건 같아요. 그러나 이사문제가 가장 큰 고민거리에요. 지금까지 아빠 직장 때문에 이사 가신 분은 한 분이었어요. 대부분 아이들 때문에 못 가겠다고 하세요. 그런데 학년이 올라가면 갈수록, 이사 문제 때문에 걱정이죠. 2학년 아이들은 오래 했기 때문에 장점을 너무 잘 알아요. 그래서 이 동네를 벗어나긴 힘들 것 같긴 해요. 어쨌든, 동네에서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 아이만 잘 커서 되는 일이 아니잖아요. 어제도 아이들을 데리고 국가인권위원회 교육에 다녀왔거든요. 우리 아이들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갔었어요. 그런 품앗이를 하면 좋다는 것을 알려내면 좋겠죠.”
이사 문제로 회원이 결원되면 힘이 빠지는 일이기도 하다. 초창기 멤버들은 육아를 매개로 한 품앗이의 장점이 엄청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나름대로 견고하지만, 그런 경험이 없는 엄마들은 여전히 ‘품앗이’가 낯선 방법일지 모른다. 그래서 황영단 사무국장은 아이를 공동으로 키울 수 있다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일부러 비회원의 아이들도 품앗이와 어울리게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이가 머리가 커가면서, 엄마가 배울 부분도 있고 난감한 상황도 있을 것 같아요. 여기 있는 엄마들은 오래 모임을 지속하고 싶어 하고, 아이들과 오래 만나고 싶다고 하세요. 아이들이 커서 중학교를 가든, 고등학교를 가든, 엄마의 손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점에서는 동아리 형태로 발전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계속 고민하고 주위를 돌아 다녀봐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것을 조금 더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 건 맞는 말 같더라고요. 문제가 생길 때,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물론 다 생각하겠지만, 조금 더 고민하는 사람들이 더 얘기를 많이 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은 필요할 것 같아요.”
황영단 사무국장은, 모든 회원들이 모임을 지속하길 원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동아리’형태로 발전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었다. 미래의 모임이 어떤 성격으로 갈지 미리 점치긴 곤란하지만, 그것을 위해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 황영단 사무국장의 생각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더 많이 고민하고, 고민한 부분을 제안하고, 모임을 풍성하게 이끄는 사람. 지금까지 황영단 사무국장이 그런 역할을 해왔는지 모른다.
엄마들 간의 끈끈한 정. 저희 모임 처음 이름이 ‘띠앗’이었어요. 순 우리말로 형제자매 사이에 흐르는 끈끈한 정이라는 뜻이라고 하더라고요. 엄마들도 띠앗이 된 거죠. 회원 중에 한 엄마가 임신을 한 적이 있었어요. 큰 아이와 나이 차이가 다섯 살 차이가 나는 둘째 아이였는데, 몸조리 할 곳이 여의치 않아서 산후조리원에 한 달 동안 있었거든요. 그런데 큰 아이가 걸리잖아요. 저희 회원들이 큰 아이를 돌아가면서 돌봐줬어요. 유치원 갔다 오면 같이 놀고, 저녁 해서 먹이고, 그 때가 여름이었는데, 목욕 다 시켜서 아빠 오면 보냈죠. 서로 서로 그런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살다 보면 아이를 맡길 때가 없을 때가 있잖아요. 제가 여기서(한살림) 상근할 수 있었던 것도 품앗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에요. 어디 멀리 갔다 오다가도 늦을 것 같다, 그러면 저녁때까지 돌봐주고. 그래서 이사하기가 싫은 거죠.”
성공요인을 묻자 황영단 사무국장은 대표적으로 ‘띠앗’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사전적 의미로는 ‘형제나 자매 사이의 우애심’을 뜻하는 ‘띠앗’. 엄마들 간의 끈끈한 정이 ‘이사 가기 싫은 모임’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결과일지 모른다. ‘띠앗’이 혈육으로 맺어진 인연이라면, ‘동대문품앗이공동체’는 가장 원초적인 생활의 문제인 육아를 매개로, 황영단 사무국장과 같은 조직가로서의 역할과 다양한 풀뿌리 원리들을 소화하면서, ‘신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인연인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한 품앗이 회원(한살림 대표)이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요인을 덧붙인다.
.......품앗이를 하다보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안정화되거든요. 그러면 오히려 폐쇄적이 될 수 있어요. 더 이상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저희는 그때마다 자주 오픈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개방된 활동들을 하면서 다른 새로운 것을 만들고, 외부 사람이 들어왔을 때 팀을 나눠서라도 두 개를 만든다든가, 그런 게 쉽지 않거든요. 도서관 행사도 한 달에 한 번 문화행사 하는 것도 말이 쉽지, 엄마들 입장에서 어렵고 힘든 과정인데도 1년 꼬박 끌어냈어요. 다행히 도서관 행사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만만한 일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고, 자신감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그런 계기가 개방성을 지닌 성격으로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안정될 때마다, 한 단계씩 비약할 때마다 계속 더 오픈을 하고 열린 자세를 보여줬기 때문에 사람들이 붙고, 사람들이 계속 붙으니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더 힘을 내게 되고, 이 모임도 생기고 저 모임도 생기게 된 것 같아요. 마음이 잘 맞아도 구성원이 한정되어 있으면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잖아요. 구성원이 많으니까 새로운 갈등이 생기면 새롭게 풀고. 그래서 품앗이는 다른 지역에서도 많이 생기지만, 특히 여기는 오래 동안 끌어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알게 모르게 폐쇄적인 조직이 많이 있다. 그것의 상대 말이 ‘개방성’이겠지만, ‘연대의식’ 또는 ‘열린 자세’가 좀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육아의 어려움을 나누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참여를 보장’하겠다는 의지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띠앗’으로 뭉쳐진 관계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인지 모른다. 조직 내부가 신뢰를 기반으로 한 연대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외부인들이 보기에도 거리감이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부드럽지만 강한 시민’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지역운동사례를 조사하다보면, 이런 것이 ‘풀뿌리운동’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오늘 만난 ‘동대문품앗이공동체’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뜻밖의 발견(?)은 마음을 너무 훈훈하게 한다. 모쪼록 황영단 사무국장의 바람대로, 누구나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꿈이 온 동네로 퍼지길 희망해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