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한양대학교제3섹터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시민자치정책센터 운영위원으로 있는 정규호 박사님의 글입니다. 지난 2006년 7월 14일, 용인에서 있었던 '전국환경활동가 대회' 때 발표한 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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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문제와 시민환경운동의 정체성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민환경운동단체들이 현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는 논의를 활성화하는 차원에서 일반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개인적 의견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이 글의 주제는 오늘날 시민환경운동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환경운동에서 왜 민주주의가 ‘문제’로 인식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들을 던지고 있다.
1. 시민환경운동의 정체성 논란에 대하여
최근 몇 년 사이에 환경운동에 대한 ‘위기’ 담론이 무성하다. 위기에 대한 논의가 실체적 사실에 근거하든 인식론적 차원에서 제기되든 환경문제 자체의 위기적 현상들이 확대․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문제해결의 주체인 환경운동진영이 위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이 당혹스럽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환경운동진영에만 해당되지 않고 시민운동 전반의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87년 민주화 국면을 통해 양적, 질적으로 급속히 성장해온 우리나라 시민운동단체들이 최근 들어 시민사회로부터의 지지와 신뢰를 잃어가면서 그 위상과 역할이 급속히 약화되고 결국에는 위기 담론과 정체성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운동과 기타 (개혁적)시민운동 진영이 당면한 어려움에는 공통의 배경이 있다.
즉 민주정부와 진보정당의 등장으로 시민운동진영의 개혁적 의제들이 행정과 정치 영역에서 일정 부분 수용되기 시작했고, 보수 진영에서도 시민단체를 만들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으며, 시민운동 진영의 사회적 영향력을 매개했던 언론 매체들이 이념적 갈등으로 분열되면서 환경운동을 비롯한 시민운동 진영의 목소리들을 균형 있게 충분히 다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 변화된 현실이자 위기적 현상의 배경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당면한 위기의 원인을 이러한 외적 환경의 변화로만 돌릴 수는 없다. 지난 10여 년 간 환경운동을 포함한 시민운동 단체들은 활동의 초점을 국가 차원의 정책적 과제에 맞추고 중앙권력의 구조 변화에 집중해 오면서 사회적 위상과 역할을 높여왔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부메랑처럼 시민운동 위기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도 지난 시절 권위주의적 통치체제가 남겨놓은 정치, 제도적 관성이 강하게 남아있는 만큼, 국가정책과 중앙권력의 작동기제를 개혁, 변화시키기 위한 시민운동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시민운동에서 시민이 고객이 아니라 실질적 주인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시민들로부터 지지와 신뢰를 상실하고 있는 당면한 현실은 심각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경제의 세계화가 가져다 준 충격 속에서 시민(주민)들이 느끼는 현재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민주주의와 개혁을 표방했던 진보세력과 그 선도적 역할을 수행해 온 시민운동진영의 노력의 성과들은 시민들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환경운동진영이 당면한 정체성 문제는 시민운동 자체가 당면한 이러한 현실의 문제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환경운동이 추구하는 지속가능한 발전, 지속가능한 사회의 목표를 실현하기 전에 ‘운동’ 자체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해야 할 상황을 맞고 있다. 특히 유감스러운 것인 이러한 일들이 소위 ‘민주화’ 된 정권 하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2. 환경운동의 정체성 위기 원인으로서 신개발주의 문제
환경운동의 정체성 위기와 관련하여 필자는 ‘신개발주의’의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이미 환경운동진영에서도 익숙한 개념어가 되어 버린 신개발주의의 ‘정체’는 무엇인가?
우선 등장의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 세기 근대화를 추동해 왔던 ‘개발독재’ 체제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독재’는 청산했지만 ‘개발’주의는 민주화 된 국면 속에서 더욱 세련된 모습으로 존속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해 오고 있으며, 이것을 오늘날 우리가 ‘신개발주의’로 부르고 있다.
그러면 민주화 이전의 ‘개발주의’와 민주화 이후의 ‘신개발주의’는 무엇이 다른가?
첫째, 작동 ‘환경’ 측면에서 신개발주의는 경제의 세계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무한경쟁논리이자 지방화 시대에 상대적 박탈감을 극복하기 위한 경쟁논리로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작동 ‘양식’ 측면에서 개발독재 시절의 개발주의와 달리 오늘날 신개발주의는 나름의 법적 절차와 제도적 합리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후자는 주목할 만한데, 신개발주의에는 효율과 성장을 기반으로 한 ‘개발주의’ 특성은 물론이고 합리성과 합법성을 기반으로 한 ‘제도주의’, 전문성과 객관성을 기반으로 한 ‘전문가주의’의 특성들이 강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와 개발주의가 교묘하게 결합된 이러한 신개발주의는 오늘날 환경운동의 정체성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선, 오늘날 환경운동은 신개발주의가 만들어 낸 ‘제도화의 덫’에 빠져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사회운동은 시민적 요구와 사회적 과제들이 제도영역의 정책결정과정에 수렴․반영되지 못할 때 시민들의 자구적, 변혁적 노력의 차원에서 목적의식적이고 가치지향적인 행위를 통해 등장한다. 환경운동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확대 과정을 통해 등장한 절차적 합리성과 합법성 요구가 개발주의와 결합하는 순간부터 환경운동은 딜레마적 상황에 처하게 된다.
개발주의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는 제도화의 장벽에 가로막혀 희석되기 쉬우며, 환경운동에 대한 제도적 참여 기회가 과거 보다 확대되었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인 참여의 수준과 범위, 단계는 여전히 제한적이고, 그 결과 환경운동은 사후적으로 정책투쟁에 나서도록 만들고 있으며, 투쟁을 통해 발생한 사회적 갈등의 부작용을 오히려 환경운동진영이 부담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맞게 된다.
나아가 환경운동의 노력으로 정책변화를 가져왔다고 하더라도 그 성과는 환경운동 진영에 남지 않고 제도적으로 흡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제도영역에 있던 운동이 제도영역에 대한 참여기회와 수준을 높일수록 제도화과정의 속성으로 인해 기존 체제의 논리에 편입될 가능성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변화와 역동성을 기반으로 한 ‘운동’과 안정과 지속성을 기반으로 한 ‘제도’ 사이에 근본적인 긴장과 갈등이 존재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한편, 신개발주의에 내재된 전문가주의 역시 환경운동진영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오늘날 환경운동에 대한 주요한 비판논리 중 하나가 바로 ‘전문성에 기반한 대안제시 능력의 부족’이다. 하지만 ‘전문성’과 ‘대안제시’를 환경운동진영에 요구하는 논리 자체가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을 내재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결정자들이 확보하고 있는 물적, 인적 자원과 이에 대한 비판과 문제제기를 하는 시민환경운동진영이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는 역량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으며, 더구나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목표로 하는 개발정책에 대해 환경운동이 기반하고 있는 미래가치, 생태가치와 같은 잠재적이고 장기적인 된 기대이익을 가지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란 구조적으로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책결정에 대한 합당한 근거와 정보를 제시하고 대안을 탐색할 의무와 책임은 정책결정영역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비판과 문제제기를 하는 환경운동진영에 ‘합리적 대안제시’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 자체가 무책임하다.
물론 환경운동 역시 규범적이고 당위론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시민(지역주민)들에게 만큼은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대안을 제시할 책임이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정책결정영역에서 충분하고 사전적인 정보 공개와 시민적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할 책무가 있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의 환경운동은 현재화 되거나 또는 예견된 문제 영역들을 이슈화, 여론화, 쟁점화 시킴과 동시에 문제 해결을 둘러싼 갈등 문제도 해결해야 하는 이중적인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3. 신개발주의 시대의 민주주의 문제
언급한 바처럼 신개발주의가 만들어 낸 환경운동의 딜레마적 상황은 오늘날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하고 있다. 87년 민주화 국면을 거쳐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그리고 지금의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가 형식적, 절차적 단계에 고착된 채 실질적 민주화의 단계로 심화되지 못한 생태에서 신개발주의가 남긴 제도화의 부작용이 더욱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개발주의의 영향력이 강한 상황에서 민주주의의 제도적 양식들은 오히려 환경운동의 위기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현실 민주주의가 가지는 이러한 결함은 지난 수년간의 대규모 개발사업을 둘러싼 갈등과정 속에서 구체적인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생태문제의 위기적 현상들이 가속화 되면서 생태계와 미래세대의 생존 권리를 강조하는 환경운동진영의 노력들이 다양하게 진행되어 왔지만 지금의 의사결정체계속에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결국 환경 가치에 대한 현실 민주주의 제도의 무감각과 무능력, 무책임성 속에서 분배와 보존에 대한 요구는 ‘선성장’(先成長) 논리 앞에서 무기력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도된 환경운동진영의 개발정책 저지를 위한 사법적 해결 노력 역시 현실의 법제도적 장벽에 가로막혀 한계를 드러냈다. 새만금의 미래세대 소송과 천성산 도룡뇽 소송의 실패와 함께 결국 새만금과 천성산 개발사업 자체가 사법적 판결로 법적 정당성만 부여받게 되었다. 경주 방폐장 사례의 경우도 주민투표에 부여된 직접민주주의의 원리가 현실 속에서 제도적으로 왜곡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민주주의의 발전을 고민하는 진영에서 화두로 삼고 있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들 속에서도 환경운동 측면에서 주의 깊게 살펴볼 부분이 나타나고 있다. 즉 기존의 민주화가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시민(주민)들의 실질적 삶의 여건을 개선시키지 못했다는데 대한 비판 속에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기존의 정치적(절차적) 민주화를 사회경제적(실질적) 민주화로 확장시켜야 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는데, 자칫 향후 남은 민주화 과제가 경제문제로 환원된 ‘먹고사는 문제’로 연결될 경우 신개발주의의 영향력은 더욱 확장될 것이다.
이처럼 환경문제와 민주주의 사이의 관계는 간단치 않다.
우리는 그동안 경험적으로 환경문제 해결에 있어 민주주의는 중요한 선결 요건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 왔다. 환경문제가 지닌 복잡성과 불확실성의 문제들을 다룰 수 있는 높은 반응성과 책임성은 결국 민주주의를 통한 개방된 사회에서 언론, 출판, 집회 등의 자유가 보장될 때 가능하며, 특히 정부나 기업의 활동을 감시하고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시민사회 NGO들의 역할도 민주주의의 발전과 함께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점은 87년 이후 일련의 민주화 과정을 통해 경험해 온 바다.
하지만 지금의 환경운동은 민주화 이후 이루어져 온 일련의 정책결정 유형들과 환경운동과의 갈등에 대한 반응 양식들을 경험하면서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민주주의는 도대체 어떤 것인가?’ 라는 보다 심층적인 질문을 던지게 하고 있다.
현실의 대의민주주의는 1인(성인) 1표제에 기반한 평등성을 전재로 하고 있지만 이것이 유권자들이 정치적으로 동등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정보의 결핍과 이해당사자들의 욕구가 결합되어 생태학적으로 잘못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처럼 신개발주의의 영향력이 강력한 상태에서 소위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은 단기적이고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강력히 묶이게 되고 경쟁적 관료기구에 의해 파편화됨으로써 환경문제에 대한 진단과 해결에 한계로 작용할 가능성도 크다.
나아가 현실 민주주의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시간’(time), ‘공간’(space), ‘종’(species)의 측면에서 생태학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영토적 주권의 범위에서 벗어난 사람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 그리고 인간 이외 다른 형태의 생명존재들의 이해와 요구가 반영되는 것을 지금의 민주주의는 구조적으로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적은 민주주의의 확장이 자동적으로 환경문제 해결에 기여하지 않을 수 있으며 지금처럼 신개발주의가 지배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는 민주주의를 통한 사적 권리의 확장과 의사결정의 개방이 오히려 환경문제를 악화시키고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다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화운동의 부문운동에서부터 지금의 시민운동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환경운동이 맺어 온 민주주의와의 오랜 관계들에 대해 이제는 성찰적 진단이 필요하다. 환경운동은 민주주의 일반의 문제에 대한 인식에서 한걸음 더 아나가 환경친화적 민주주의, 생태민주주의, 녹색민주주의 등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자기결정’의 원리는 사회적 공공성에 대한 ‘책임’의 문제를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부문운동으로서 환경운동이 추구했던 민주주의 과제와 21세기형 환경문제의 위기적 특성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오늘날 환경운동이 직면한 민주주의 과제는 그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신개발주의가 만들어 내는 구조적이고 심층적인 영향력을 환경적인 측면에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보다 섬세한 진단과 접근이 필요하다. 신개발주의는 중층적인 권력구조를 통해 다차원적인 경로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신개발주의는 개발관련 업자와 관료를 포함한 ‘개발동맹’의 행위자들을 통해 작동할 뿐만 아니라(1차원적 권력), 보다 구조적으로는 개발 편향적인 법, 정책, 행정조직과 같은 ‘제도적 기제’를 통해 작동하고(2차원적 권력),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을 형성하고 있는 경제성장과 개발에 대한 가치와 같은 ‘이데올로기적 양식’을 통해서도 작동하고 있다(3차원적 권력). 이중 제도화된 권력과 이데올로기화 된 권력의 작동은 매우 은밀하고 강력하다. 이점에서 그동안의 환경운동은 1차원적 권력의 작동에 주로 초점을 맞춤으로써 ‘인물교체(물갈이)’ 차원을 넘어 제도 변화와 가치와 문화적 양식의 변화로까지 운동의 영역을 확장시키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개발가치에 기반한 권력의 중층적 작동메카니즘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민주주의 민주화(급진화)’ 프로젝트는 환경운동의 중요한 과제로 다가오고 있다. 민주주의의 ‘복원’과 ‘확장’, ‘심화’를 위한 생태민주주의적 프로젝트를 모색할 때다.
4. 환경운동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과제들
개인이든 조직이든 지나온 과정을 성찰하고 현재의 모습을 진단하고 미래를 조망함에 있어 ‘정체성’은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점에서 환경운동의 정체성 확립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우선 환경운동은 ‘내적’ 정체성 확립을 위해 스스로 기반하고 있는 이념과 가치를 보다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활동의 내용과 방향, 전략을 구성함에 있어 환경운동진영이 기반하고 있는 이념과 가치는 아직 충분하게 성숙되고 분화되지 못하고 있다. ‘환경’ 자체의 가치와 특성에 대한 고민들은 많았으나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 채택하고 있는 ‘운동’ 자체의 가치와 특성에 대한 고민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따라서 여느 시민단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활발하게 연대활동을 해 온 환경운동진영이지만 정부의 개발정책에 대한 ‘저항적 연대’가 중심이었고 단체 각각이 기반하고 있는 이념적 가치와 비전을 토대로 새로운 가능성 영역을 모색해 가는 ‘대안적 연대’의 경험은 상대적으로 미약했다.
90년대와 달리 지금의 환경운동은 ‘환경의 중요성’과 ‘보존의 가치’를 당위론적으로 강조하는 단계를 넘어설 것을 요구받고 있다. 따라서 관성적으로 이루어져 오던 연대의 방식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사회를 향한 장기적 비전과 실천적 전망에 기반하여 스스로의 의미와 역할에 해답을 찾아나갈 필요가 있다.
한편, 환경운동의 ‘외적’ 정체성 확립과 관련하여 환경운동의 영역을 확장하고 연대를 강화하고 실천 주체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환경운동이 지향하는 미래사회에 대한 보다 분명한 설계도가 필요하다. 도구화 된 국가주의, 신화화 된 성장지표, 대상화 된 시민사회, 제도화 된 무책임성 등 우리나라 환경운동이 풀어야 할 과제들은 복합적인 만큼, 여전히 추상화된 담론 영역에 머물러 있는 ‘지속가능한발전’, ‘순환형 사회’, ‘녹색국가’ 등에 대한 논의들을 현실의 실천 과제로 구체화 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지역간 불균형으로 상대적 박탈감이 심한 상황에서 경제의 세계화가 가져다 준 충격과 불안감이 개발과 성장에 대한 강박관념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상황에서 개발동맹의 영향력에 효과적으로 대항하기 위해서는 ‘환경-노동-복지-보건-여성-평화-농업-교육’ 등 사회 각 영역간의 경계를 넘어선 긴밀한 연대가 필요하며, 이 역시 사회변화에 대한 총체적이고 합의된 전망과 전략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또한 ‘환경보존은 곧 반(反)개발’ 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환경운동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는 근본주의적 인식과 현실주의적 실천전략을 유기적으로 결합할 필요가 있다.
당면한 문제의 본질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요구하는 근본주의적 입장에서 ‘선성장’(先成長)논리가 지배하는 현실에 대한 문명론적 진단을 통해 ‘분배’와 ‘보존’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 방향과 과제들을 찾을 필요가 있다. 즉 지난 세기 근대화과정을 이끌어 왔던 ‘파이 키우기’ 전략이 지금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상황에서 키울 수 있는 파이의 ‘크기’가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갈수록 파이의 ‘질’도 심각하게 떨어지고 있는 현실의 문제를 분명하게 드러냄으로써 ‘경제가 어려워 졌다’는 말로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무분별한 개발논리에 대해 ‘더 이상 썩은 파이를 키우고 나눠먹는데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분명한 문제제기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노력은 환경과 노동, 복지, 보건 등 삶의 질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문제영역들 간의 긴밀한 소통과 연대의 가능성을 만들어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민환경운동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는 ‘시간’ 이라는 변수를 중요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환경운동이 목표로 하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실현함에 있어 경제, 사회, 환경, 제도적 지속가능성을 구성하는 ‘용량’(capacity)에는 한계가 있으며 이것의 파괴는 비가역적인데 반해 현실은 개발과 파괴의 규모와 속도가 보존과 복원의 규모와 속도를 여전히 압도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환경운동진영을 둘러싸고 나타나는 정체성 논란 속에서 환경운동 내외부로부터 부여되어 왔던 신뢰의 기반 역시 한번 훼손되면 회복하기 쉽지 않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시간’이라는 변수는 시행착오 과정을 통해 점진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지난한 과정을 그저 낙관적으로 지켜보고 기다릴 수만은 없도록 만들고 있다. ‘위기라고 느낄 때 비로소 문제해결의 기회가 다가왔다’는 말을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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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호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민환경운동단체들이 현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서는 논의를 활성화하는 차원에서 일반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개인적 의견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이 글의 주제는 오늘날 시민환경운동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환경운동에서 왜 민주주의가 ‘문제’로 인식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들을 던지고 있다.
1. 시민환경운동의 정체성 논란에 대하여
최근 몇 년 사이에 환경운동에 대한 ‘위기’ 담론이 무성하다. 위기에 대한 논의가 실체적 사실에 근거하든 인식론적 차원에서 제기되든 환경문제 자체의 위기적 현상들이 확대․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문제해결의 주체인 환경운동진영이 위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이 당혹스럽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환경운동진영에만 해당되지 않고 시민운동 전반의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87년 민주화 국면을 통해 양적, 질적으로 급속히 성장해온 우리나라 시민운동단체들이 최근 들어 시민사회로부터의 지지와 신뢰를 잃어가면서 그 위상과 역할이 급속히 약화되고 결국에는 위기 담론과 정체성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운동과 기타 (개혁적)시민운동 진영이 당면한 어려움에는 공통의 배경이 있다.
즉 민주정부와 진보정당의 등장으로 시민운동진영의 개혁적 의제들이 행정과 정치 영역에서 일정 부분 수용되기 시작했고, 보수 진영에서도 시민단체를 만들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으며, 시민운동 진영의 사회적 영향력을 매개했던 언론 매체들이 이념적 갈등으로 분열되면서 환경운동을 비롯한 시민운동 진영의 목소리들을 균형 있게 충분히 다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 변화된 현실이자 위기적 현상의 배경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당면한 위기의 원인을 이러한 외적 환경의 변화로만 돌릴 수는 없다. 지난 10여 년 간 환경운동을 포함한 시민운동 단체들은 활동의 초점을 국가 차원의 정책적 과제에 맞추고 중앙권력의 구조 변화에 집중해 오면서 사회적 위상과 역할을 높여왔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부메랑처럼 시민운동 위기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도 지난 시절 권위주의적 통치체제가 남겨놓은 정치, 제도적 관성이 강하게 남아있는 만큼, 국가정책과 중앙권력의 작동기제를 개혁, 변화시키기 위한 시민운동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시민운동에서 시민이 고객이 아니라 실질적 주인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시민들로부터 지지와 신뢰를 상실하고 있는 당면한 현실은 심각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경제의 세계화가 가져다 준 충격 속에서 시민(주민)들이 느끼는 현재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민주주의와 개혁을 표방했던 진보세력과 그 선도적 역할을 수행해 온 시민운동진영의 노력의 성과들은 시민들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환경운동진영이 당면한 정체성 문제는 시민운동 자체가 당면한 이러한 현실의 문제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환경운동이 추구하는 지속가능한 발전, 지속가능한 사회의 목표를 실현하기 전에 ‘운동’ 자체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해야 할 상황을 맞고 있다. 특히 유감스러운 것인 이러한 일들이 소위 ‘민주화’ 된 정권 하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2. 환경운동의 정체성 위기 원인으로서 신개발주의 문제
환경운동의 정체성 위기와 관련하여 필자는 ‘신개발주의’의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이미 환경운동진영에서도 익숙한 개념어가 되어 버린 신개발주의의 ‘정체’는 무엇인가?
우선 등장의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 세기 근대화를 추동해 왔던 ‘개발독재’ 체제가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독재’는 청산했지만 ‘개발’주의는 민주화 된 국면 속에서 더욱 세련된 모습으로 존속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해 오고 있으며, 이것을 오늘날 우리가 ‘신개발주의’로 부르고 있다.
그러면 민주화 이전의 ‘개발주의’와 민주화 이후의 ‘신개발주의’는 무엇이 다른가?
첫째, 작동 ‘환경’ 측면에서 신개발주의는 경제의 세계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무한경쟁논리이자 지방화 시대에 상대적 박탈감을 극복하기 위한 경쟁논리로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작동 ‘양식’ 측면에서 개발독재 시절의 개발주의와 달리 오늘날 신개발주의는 나름의 법적 절차와 제도적 합리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후자는 주목할 만한데, 신개발주의에는 효율과 성장을 기반으로 한 ‘개발주의’ 특성은 물론이고 합리성과 합법성을 기반으로 한 ‘제도주의’, 전문성과 객관성을 기반으로 한 ‘전문가주의’의 특성들이 강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와 개발주의가 교묘하게 결합된 이러한 신개발주의는 오늘날 환경운동의 정체성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선, 오늘날 환경운동은 신개발주의가 만들어 낸 ‘제도화의 덫’에 빠져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사회운동은 시민적 요구와 사회적 과제들이 제도영역의 정책결정과정에 수렴․반영되지 못할 때 시민들의 자구적, 변혁적 노력의 차원에서 목적의식적이고 가치지향적인 행위를 통해 등장한다. 환경운동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확대 과정을 통해 등장한 절차적 합리성과 합법성 요구가 개발주의와 결합하는 순간부터 환경운동은 딜레마적 상황에 처하게 된다.
개발주의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는 제도화의 장벽에 가로막혀 희석되기 쉬우며, 환경운동에 대한 제도적 참여 기회가 과거 보다 확대되었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인 참여의 수준과 범위, 단계는 여전히 제한적이고, 그 결과 환경운동은 사후적으로 정책투쟁에 나서도록 만들고 있으며, 투쟁을 통해 발생한 사회적 갈등의 부작용을 오히려 환경운동진영이 부담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맞게 된다.
나아가 환경운동의 노력으로 정책변화를 가져왔다고 하더라도 그 성과는 환경운동 진영에 남지 않고 제도적으로 흡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제도영역에 있던 운동이 제도영역에 대한 참여기회와 수준을 높일수록 제도화과정의 속성으로 인해 기존 체제의 논리에 편입될 가능성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변화와 역동성을 기반으로 한 ‘운동’과 안정과 지속성을 기반으로 한 ‘제도’ 사이에 근본적인 긴장과 갈등이 존재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한편, 신개발주의에 내재된 전문가주의 역시 환경운동진영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오늘날 환경운동에 대한 주요한 비판논리 중 하나가 바로 ‘전문성에 기반한 대안제시 능력의 부족’이다. 하지만 ‘전문성’과 ‘대안제시’를 환경운동진영에 요구하는 논리 자체가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을 내재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결정자들이 확보하고 있는 물적, 인적 자원과 이에 대한 비판과 문제제기를 하는 시민환경운동진영이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는 역량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으며, 더구나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목표로 하는 개발정책에 대해 환경운동이 기반하고 있는 미래가치, 생태가치와 같은 잠재적이고 장기적인 된 기대이익을 가지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란 구조적으로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책결정에 대한 합당한 근거와 정보를 제시하고 대안을 탐색할 의무와 책임은 정책결정영역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비판과 문제제기를 하는 환경운동진영에 ‘합리적 대안제시’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 자체가 무책임하다.
물론 환경운동 역시 규범적이고 당위론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시민(지역주민)들에게 만큼은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대안을 제시할 책임이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정책결정영역에서 충분하고 사전적인 정보 공개와 시민적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할 책무가 있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의 환경운동은 현재화 되거나 또는 예견된 문제 영역들을 이슈화, 여론화, 쟁점화 시킴과 동시에 문제 해결을 둘러싼 갈등 문제도 해결해야 하는 이중적인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3. 신개발주의 시대의 민주주의 문제
언급한 바처럼 신개발주의가 만들어 낸 환경운동의 딜레마적 상황은 오늘날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하고 있다. 87년 민주화 국면을 거쳐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그리고 지금의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가 형식적, 절차적 단계에 고착된 채 실질적 민주화의 단계로 심화되지 못한 생태에서 신개발주의가 남긴 제도화의 부작용이 더욱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개발주의의 영향력이 강한 상황에서 민주주의의 제도적 양식들은 오히려 환경운동의 위기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현실 민주주의가 가지는 이러한 결함은 지난 수년간의 대규모 개발사업을 둘러싼 갈등과정 속에서 구체적인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생태문제의 위기적 현상들이 가속화 되면서 생태계와 미래세대의 생존 권리를 강조하는 환경운동진영의 노력들이 다양하게 진행되어 왔지만 지금의 의사결정체계속에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결국 환경 가치에 대한 현실 민주주의 제도의 무감각과 무능력, 무책임성 속에서 분배와 보존에 대한 요구는 ‘선성장’(先成長) 논리 앞에서 무기력한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도된 환경운동진영의 개발정책 저지를 위한 사법적 해결 노력 역시 현실의 법제도적 장벽에 가로막혀 한계를 드러냈다. 새만금의 미래세대 소송과 천성산 도룡뇽 소송의 실패와 함께 결국 새만금과 천성산 개발사업 자체가 사법적 판결로 법적 정당성만 부여받게 되었다. 경주 방폐장 사례의 경우도 주민투표에 부여된 직접민주주의의 원리가 현실 속에서 제도적으로 왜곡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민주주의의 발전을 고민하는 진영에서 화두로 삼고 있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들 속에서도 환경운동 측면에서 주의 깊게 살펴볼 부분이 나타나고 있다. 즉 기존의 민주화가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시민(주민)들의 실질적 삶의 여건을 개선시키지 못했다는데 대한 비판 속에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기존의 정치적(절차적) 민주화를 사회경제적(실질적) 민주화로 확장시켜야 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는데, 자칫 향후 남은 민주화 과제가 경제문제로 환원된 ‘먹고사는 문제’로 연결될 경우 신개발주의의 영향력은 더욱 확장될 것이다.
이처럼 환경문제와 민주주의 사이의 관계는 간단치 않다.
우리는 그동안 경험적으로 환경문제 해결에 있어 민주주의는 중요한 선결 요건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 왔다. 환경문제가 지닌 복잡성과 불확실성의 문제들을 다룰 수 있는 높은 반응성과 책임성은 결국 민주주의를 통한 개방된 사회에서 언론, 출판, 집회 등의 자유가 보장될 때 가능하며, 특히 정부나 기업의 활동을 감시하고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시민사회 NGO들의 역할도 민주주의의 발전과 함께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점은 87년 이후 일련의 민주화 과정을 통해 경험해 온 바다.
하지만 지금의 환경운동은 민주화 이후 이루어져 온 일련의 정책결정 유형들과 환경운동과의 갈등에 대한 반응 양식들을 경험하면서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민주주의는 도대체 어떤 것인가?’ 라는 보다 심층적인 질문을 던지게 하고 있다.
현실의 대의민주주의는 1인(성인) 1표제에 기반한 평등성을 전재로 하고 있지만 이것이 유권자들이 정치적으로 동등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정보의 결핍과 이해당사자들의 욕구가 결합되어 생태학적으로 잘못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처럼 신개발주의의 영향력이 강력한 상태에서 소위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은 단기적이고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강력히 묶이게 되고 경쟁적 관료기구에 의해 파편화됨으로써 환경문제에 대한 진단과 해결에 한계로 작용할 가능성도 크다.
나아가 현실 민주주의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시간’(time), ‘공간’(space), ‘종’(species)의 측면에서 생태학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영토적 주권의 범위에서 벗어난 사람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 그리고 인간 이외 다른 형태의 생명존재들의 이해와 요구가 반영되는 것을 지금의 민주주의는 구조적으로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적은 민주주의의 확장이 자동적으로 환경문제 해결에 기여하지 않을 수 있으며 지금처럼 신개발주의가 지배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는 민주주의를 통한 사적 권리의 확장과 의사결정의 개방이 오히려 환경문제를 악화시키고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다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화운동의 부문운동에서부터 지금의 시민운동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환경운동이 맺어 온 민주주의와의 오랜 관계들에 대해 이제는 성찰적 진단이 필요하다. 환경운동은 민주주의 일반의 문제에 대한 인식에서 한걸음 더 아나가 환경친화적 민주주의, 생태민주주의, 녹색민주주의 등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자기결정’의 원리는 사회적 공공성에 대한 ‘책임’의 문제를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부문운동으로서 환경운동이 추구했던 민주주의 과제와 21세기형 환경문제의 위기적 특성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오늘날 환경운동이 직면한 민주주의 과제는 그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신개발주의가 만들어 내는 구조적이고 심층적인 영향력을 환경적인 측면에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보다 섬세한 진단과 접근이 필요하다. 신개발주의는 중층적인 권력구조를 통해 다차원적인 경로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신개발주의는 개발관련 업자와 관료를 포함한 ‘개발동맹’의 행위자들을 통해 작동할 뿐만 아니라(1차원적 권력), 보다 구조적으로는 개발 편향적인 법, 정책, 행정조직과 같은 ‘제도적 기제’를 통해 작동하고(2차원적 권력),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을 형성하고 있는 경제성장과 개발에 대한 가치와 같은 ‘이데올로기적 양식’을 통해서도 작동하고 있다(3차원적 권력). 이중 제도화된 권력과 이데올로기화 된 권력의 작동은 매우 은밀하고 강력하다. 이점에서 그동안의 환경운동은 1차원적 권력의 작동에 주로 초점을 맞춤으로써 ‘인물교체(물갈이)’ 차원을 넘어 제도 변화와 가치와 문화적 양식의 변화로까지 운동의 영역을 확장시키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개발가치에 기반한 권력의 중층적 작동메카니즘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민주주의 민주화(급진화)’ 프로젝트는 환경운동의 중요한 과제로 다가오고 있다. 민주주의의 ‘복원’과 ‘확장’, ‘심화’를 위한 생태민주주의적 프로젝트를 모색할 때다.
4. 환경운동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과제들
개인이든 조직이든 지나온 과정을 성찰하고 현재의 모습을 진단하고 미래를 조망함에 있어 ‘정체성’은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점에서 환경운동의 정체성 확립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우선 환경운동은 ‘내적’ 정체성 확립을 위해 스스로 기반하고 있는 이념과 가치를 보다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활동의 내용과 방향, 전략을 구성함에 있어 환경운동진영이 기반하고 있는 이념과 가치는 아직 충분하게 성숙되고 분화되지 못하고 있다. ‘환경’ 자체의 가치와 특성에 대한 고민들은 많았으나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 채택하고 있는 ‘운동’ 자체의 가치와 특성에 대한 고민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따라서 여느 시민단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활발하게 연대활동을 해 온 환경운동진영이지만 정부의 개발정책에 대한 ‘저항적 연대’가 중심이었고 단체 각각이 기반하고 있는 이념적 가치와 비전을 토대로 새로운 가능성 영역을 모색해 가는 ‘대안적 연대’의 경험은 상대적으로 미약했다.
90년대와 달리 지금의 환경운동은 ‘환경의 중요성’과 ‘보존의 가치’를 당위론적으로 강조하는 단계를 넘어설 것을 요구받고 있다. 따라서 관성적으로 이루어져 오던 연대의 방식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사회를 향한 장기적 비전과 실천적 전망에 기반하여 스스로의 의미와 역할에 해답을 찾아나갈 필요가 있다.
한편, 환경운동의 ‘외적’ 정체성 확립과 관련하여 환경운동의 영역을 확장하고 연대를 강화하고 실천 주체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환경운동이 지향하는 미래사회에 대한 보다 분명한 설계도가 필요하다. 도구화 된 국가주의, 신화화 된 성장지표, 대상화 된 시민사회, 제도화 된 무책임성 등 우리나라 환경운동이 풀어야 할 과제들은 복합적인 만큼, 여전히 추상화된 담론 영역에 머물러 있는 ‘지속가능한발전’, ‘순환형 사회’, ‘녹색국가’ 등에 대한 논의들을 현실의 실천 과제로 구체화 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지역간 불균형으로 상대적 박탈감이 심한 상황에서 경제의 세계화가 가져다 준 충격과 불안감이 개발과 성장에 대한 강박관념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상황에서 개발동맹의 영향력에 효과적으로 대항하기 위해서는 ‘환경-노동-복지-보건-여성-평화-농업-교육’ 등 사회 각 영역간의 경계를 넘어선 긴밀한 연대가 필요하며, 이 역시 사회변화에 대한 총체적이고 합의된 전망과 전략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또한 ‘환경보존은 곧 반(反)개발’ 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환경운동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는 근본주의적 인식과 현실주의적 실천전략을 유기적으로 결합할 필요가 있다.
당면한 문제의 본질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요구하는 근본주의적 입장에서 ‘선성장’(先成長)논리가 지배하는 현실에 대한 문명론적 진단을 통해 ‘분배’와 ‘보존’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 방향과 과제들을 찾을 필요가 있다. 즉 지난 세기 근대화과정을 이끌어 왔던 ‘파이 키우기’ 전략이 지금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상황에서 키울 수 있는 파이의 ‘크기’가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갈수록 파이의 ‘질’도 심각하게 떨어지고 있는 현실의 문제를 분명하게 드러냄으로써 ‘경제가 어려워 졌다’는 말로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무분별한 개발논리에 대해 ‘더 이상 썩은 파이를 키우고 나눠먹는데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분명한 문제제기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노력은 환경과 노동, 복지, 보건 등 삶의 질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문제영역들 간의 긴밀한 소통과 연대의 가능성을 만들어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민환경운동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는 ‘시간’ 이라는 변수를 중요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환경운동이 목표로 하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실현함에 있어 경제, 사회, 환경, 제도적 지속가능성을 구성하는 ‘용량’(capacity)에는 한계가 있으며 이것의 파괴는 비가역적인데 반해 현실은 개발과 파괴의 규모와 속도가 보존과 복원의 규모와 속도를 여전히 압도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환경운동진영을 둘러싸고 나타나는 정체성 논란 속에서 환경운동 내외부로부터 부여되어 왔던 신뢰의 기반 역시 한번 훼손되면 회복하기 쉽지 않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시간’이라는 변수는 시행착오 과정을 통해 점진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지난한 과정을 그저 낙관적으로 지켜보고 기다릴 수만은 없도록 만들고 있다. ‘위기라고 느낄 때 비로소 문제해결의 기회가 다가왔다’는 말을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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