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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정의’를 위한 연대가 필요합니다
얼 쇼리스가 쓴 『희망의 인문학(고병헌 외 옮김, 이매진)』을 읽다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국 미시시피주 그린빌에 사는 로버트 위든씨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위든씨는 밤새워 일하지만 벌어들이는 돈은 최저임금을 조금 윗도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그의 아내도 패스트푸드 점에서 일을 하지만, 그들은 늘 너무도 가난합니다. 위든 씨 부부의 급료를 모두 합쳐도 먹고 살기가 빠듯할 정도입니다. 집세, 전기세 등 꼭 필요한 비용을 지출하고 나면 일주일 치 식비를 남기기도 힘듭니다. 21세기 미국에서 굶주림은 로버트 위든씨 가족에게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남의 나라 일만이 아닙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급속히 증가하고 사회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현실입니다. 이처럼 가족을 보살필 시간도 없을 정도로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로빈곤층(working poor)의 문제는 우리나라의 문제이기도 하고 전 세계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근로빈곤층에 해당하는 비율을 보면 남성보다는 여성들이 더 높게 나타납니다.
최저임금제도라는 것이 있지만, 지금의 최저임금제도는 허울에 불과합니다. 최저임금을 정하면 무엇합니까? 2008년 우리나라 최저임금인 시급 3,770원, 월급 787,930원(1주 40시간 근무)으로는 생활이 될 수가 없습니다. 비현실적이라고 비판받는 최저생계비(4인 가구 기준 월 126만 5,848원)에도 훨씬 못 미치는 금액입니다. 주 40시간 일을 하면,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인 생활임금(Living Wage) 정도는 보장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게다가 고용불안정은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저임금과 고용불안정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부딪히고 있는 이중고입니다. 이런 현실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까요? 사실 저는 그에 대해 답을 내 놓을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래도 작은 희망을 엿볼 수 있는 사례들도 있습니다.
얼마 전 성신여대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여성노동자들이 해고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여성노동자들의 임금은 월 실 수령액이 72만원 정도였다고 합니다. 최저임금에 딱 맞춘 수준입니다. 그런데 성신여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성신여대의 재정상태를 보니, 건축기금, 기타기금 등의 명목으로 9백억원 이상이 적립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 돈은 학생들의 등록금에서 주로 나왔을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돈을 적립하고 있으면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을 위협하고 최저임금만 약간 넘긴 수준의 저임금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지금 모습입니다. 대학생들이 낸 비싼 등록금을 따로 적립하고 있으면서, 청소를 하는 여성노동자들에게는 월 72만원만 지급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그러나 희망이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이번에는 성신여대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여성노동자들을 지지했습니다. 9,000여명 학생 중에 무려 6,500여명이 지지서명을 했다고 합니다. 이런 연대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그 여성노동자들은 복직되었습니다.
한가지 더 사례를 들면, 2001년 미국의 하버드대에서도 의미있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그해 4월 하버드대에서는 50여명의 학생들이 비폭력적인 직접행동의 한 형태인 연좌(sit-in)를 시작했습니다. 이 학생들의 요구사항은 자신들의 등록금 인하나 학습환경 개선이 아니었습니다. 이 학생들은 하버드 대학 캠퍼스에서 일하고 있는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생활임금(Living Wage)을 지급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대학이라는 하버드 대학에서 일하는 1,000여명의 비정규 노동자들(수위, 청소부, 시설관리인들)은 최저생계를 유지하는 데에도 못 미치는 시간당 6.5달러의 임금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학생들의 연좌농성은 3주에 걸쳐 이어졌고, 확산되었습니다. 학생들은 “빈곤과 인간의 존엄성 결여가 하버드 대학의 경제적 기반이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습니다. 이런 호소는 사람들의 양심을 울리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하버드대는 하버드대에서 일하는 하도급 노동자들의 임금을 시간당 10.25달러로 올리기로 약속합니다. 이것이 ‘하버드대 생활임금캠페인’이라는 사건입니다.
지금 나타나고 있는 저임금ㆍ비정규노동의 문제는 양심의 문제이고 윤리의 문제이며 정의의 문제입니다. 거창한 정의도 아닌 ‘소박한 정의’의 문제입니다. 최소한 사람이 일을 하면 생활은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고, 그것이 최소한의 정의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식을 무시하는 것이 지금의 사회흐름입니다. 이런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연대’에 있습니다. 위의 두 사례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연대만이 이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 곳곳에서,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부터 출발하는 양심과 정의에 기반한 연대가 필요합니다. 그런 연대를 통해 정의롭지 못하고 인간적이지 못한 이 사회의 흐름을 바꿔나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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