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의 인권과 참여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각이 조금이라도 변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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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은 부모가 정치인도
아니고 부자도 아니지만, 여성으로서 대통령에까지 도전한 중요한 정치지도자가 되
었다. 그런데 힐러리 클린턴이 정치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놀랍게도 힐러리 클린턴은 중학교 때에 공화당 자원봉사자로 활동한 적이 있고, 고등
학교 때에는 공화당 청년회에 들어가 적극적으로 활동했으며, 공화당 대통령후보의
선거운동에도 참여한 경험이 있다. 그녀의 지지정당은 이후에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바뀌었지만, 그녀는 이런 정치활동의 경험을 통해 정치지도자로서의 소양을 닦았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힐러리 클린턴이 미국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그녀는 고등학교쯤에서 학교를 그만뒀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청소년이 의견표명을 했다고 해서 학교에서 퇴학당하기도 하는 나라이다. 당연히
선거운동과 같은 정치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아마 힐러리 클린
턴이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다면,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에 좌절해서 정치에 무관심하게
되었거나 고등학교를 그만두게 되었을 것이다.
어떻게 미국에서는 가능한 일이 우리나라에서는 억압되고 금지되어야 하는가. 다른
나라도 아닌 이 나라 정치인과 관료들이 모델로 생각하는 미국인데도 말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청소년들의 참여를 극도로 억압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인한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에 청소년들의 집회참여를 막기 위해 교사들이 동원되기도
했다. 또 청소년들이 학내문제 등에 대해 의견표명을 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징계받
는 경우들도 종종 발생한다. 사안에 대한 찬반을 떠나서 청소년들의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를 이렇게 가로막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흔히 요즘 청소년들이나 20대들이 사회공동체의 문제에 대해 무관심하고 지극히 개인
적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그런 현상은 당연한 것이다. 만 19세가 되기
이전까지 청소년들은 사회문제에 대한 판단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그러다가
만 19세가 되면 갑자기 투표권을 준다. 그동안 사회공동체의 문제에 대한 관심이나 참
여를 금지하다가 갑자기 투표권을 주니 투표율이 높을 리가 없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
에서 만 19세의 투표율은 남자 38.6%, 여자 27.3%에 불과했다. 군대에서 부재자 투표를
하는 20대 초반의 남성을 제외하면 20대 남성과 여성의 투표율은 20% 초중반대에 머무
르고 있다. 이건 민주주의의 위기 수준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본이 흔들리는 것이다.
민주시민이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교과서에서 민주주의를 가르친
다고 해서 민주주의를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장 좋은 민주주의 교육은 민주주
의를 경험해 보는 것이다. 또한 교과서에서 국민의 권리에 대해 가르친다고 해서 권리
의식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가장 좋은 권리교육은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고 스스로의
권리를 행사해 보는 것이다.
이제는 청소년들의 참여를 허해야 한다. 투표권연령도 만 18세 이상으로 낮추고, 투표
권이 부여되기 전이라도 자발적인 정치활동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정치참여
뿐만 아니라 일상공간에서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학교나 사회에서 청소년들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금기시할 것이 아니라, 그들
에게 의견을 낼 기회와 통로를 보장해야 하고, 그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존중해야 한다.
청소년들이 의견을 표명하고자 할 때에 정부와 학교가 관료적이고 자의적인 통제를
가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서는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가 어둡다.
하승수 제주대 법학부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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