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국시장.군수.구청장 협의회에서 주민소환제도를 약화시키는 내용의 법개정을 강하게 추진하고 있습니다. 다음주 월요일날은 국회에서 토론회도 한다는군요. 핵심은 사유제한입니다. 주민소환을 할 수 있는 사유를 제한한다는 것인데,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웃 일본만 하더라도 주민소환제가 도입되어 있지만, 사유에 대한 제한은 없습니다. 사유제한이 된다면 주민소환제는 빈껍데기로 전락하리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관련해서 올해에 자치행정이라는 잡지에 쓴 짧은 글과 작년에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에서 내는 시민사회와 NGO에 실은 글을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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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소환에 관한 법률 시행에 즈음하여


하승수(제주대 법학부 교수, 변호사)


지난 5월 25일부터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이 시행에 들어갔다. 작년 5.31.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의 임기가 1년이 지나는 시점인 오는 7월 1일부터는 주민소환투표 실시청구가 가능하다.

주민소환제(recall)는 선출직 공직자를 유권자들의 해임 찬반 투표에 의해 임기중에 해임시킬 수 있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지방자치 실시이후에 오랫동안 논의되어 오다가 마침내 도입되게 되었다. 그동안 지방자치단체장의 부패나 전횡, 독선이 문제되고 견제받지 않는 ‘제왕적 권력“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주민소환제도의 필요성은 계속 거론되어 왔다. 또한 지방의회 의원의 부패, 예산낭비, 자질부족 등이 문제되어 오기도 했다. 이러한 선출직 공직자들의 문제에 대해 주민이 통제할 수 있는 제도가 주민소환제도이며, 이 제도는 주권재민원칙과 직접민주주의의 상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제도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대표자들의 지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주민소환제도는 논란도 많고 대표자들이 가장 꺼려하는 제도이기도 하다.

주민소환제도의 시행을 앞두고 여러 가지 반응들이 교차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주민소환제가 주민들의 집단이기주의나 정치적 압력행사의 수단으로 지나치게 남발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또한 단체장이 소신있는 행정을 하지 못하고 인기영합적인 행정에 매몰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러면서 주민소환 사유를 구체화하는 등 법개정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현재의 주민소환제도가 너무 요건이 엄격하기 때문에 사문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하기도 한다. 그래서 주민소환의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2004년 7월부터 도입된 주민투표제도의 경우에 요건이 너무 까다로워서 3년이 가까운 기간동안 지역주민들에 의해 주민투표 청구가 이루어진 사례가 전무한 상황이다(그동안 이루어진 주민투표는 모두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장의 필요에 의해 이루어진 것들이었다).

이런 주장들 속에서 혼란스러울 수는 있지만, 이제 시행되려고 하는 주민소환제에 대해 성급하게 판단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민주주의 제도는 본래 시행초기에는 어느 정도의 혼란을 거치게 마련이다. 그래서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의 시행을 맞아서 몇가지 고려해야 할 점에 대해서만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주민소환의 대상으로 거론되는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이든, 주민소환을 하겠다고 하는 단체나 지역주민들이든 간에 우리 유권자들의 의식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87년 민주화 이후에 여러 과정들을 겪으면서, 우리 유권자들은 나름대로의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주민소환은 선출직 공직자를 임기 중에 해임하는 특단의 조치이기 때문에, 유권자들이 일반 선거때보다도 신중하게 판단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주민소환의 남용을 막기 위해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은 몇가지 장치들을 두고 있다. 우선 200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지사 소환처럼 소환여부를 묻는 투표와 후임자를 뽑는 선거를 동시에 치르는 방식은 새로운 후임자에 대한 선호 때문에 해임여부를 묻는 투표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경우에는 이를 배제했다. 즉 해임여부를 묻는 투표와 후임자를 뽑는 보궐선거를 철저히 분리했다. 그래서 해임여부를 묻는 투표에서 유권자들은 해임의 타당성에 대해서만 숙고하게 된다. 이것은 주민소환이 남발되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장치이다. 해임의 타당성이 없으면, 투표한 유권자 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얻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유권자들이 그 정도의 판단능력은 있다고 본다. 또한 주민소환을 추진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주민소환투표청구권자(19세 이상 주민과 19세 이상 외국인중 일정한 자격이 있는 자)총수의 10-20%에 이르는 서명을 받아야만 소환투표의 실시를 청구할 수 있다. 즉 시ㆍ도지사의 경우에는 10%이상,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의 경우에는 15% 이상, 지역구 지방의원의 경우에는 20%이상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서명을 받을 수 있는 기간도 시ㆍ도지사의 경우에는 120일, 시장ㆍ군수ㆍ구청장과 지역구 지방의원의 경우에는 60일로 제한되어 있다. 이처럼 짧은 기간내에 많은 서명을 받는다는 것은 실제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또한 유권자들이 주민소환투표의 실시를 청구하는 데에 아무렇게나 서명해주지는 않는다. 선출직 공직자를 해임하겠다고 서명을 요청하는데,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서명을 해 줄 유권자는 별로 없다. 그 외에도 소명기회의 보장, 주민소환투표운동 방법의 제한 등을 통해 남용가능성을 줄이고 있다. 이 정도의 남용방지 장치가 있는 이상 우리 유권자들의 성숙도를 믿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둘째, 소환될만한 사람은 소환될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의 공공재정을 낭비하는 대표자, 유권자들을 무시하는 대표자, 주민들을 통합하고 지역사회를 이끌어갈 기본적 자질을 구비하지 못한 대표자는 소환될 필요도 있다. 그래야만 주민소환 제도의 존재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경우에 주민소환이 이루어지는 것은 지방자치를 혁신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고, 지방분권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논리적 근거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주민소환제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해서는 좀더 지켜보면서,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주민소환제와 관련된 외국의 입법례 등 민주적인 제도 설계의 원칙에 대해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나오는 주민소환제에 대한 비판중 상당수는 주민소환제도의 본질에 대해 깊이있게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도 주민소환 사유를 제한하거나 구체화하자는 것은 주민소환제도의 본질에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주민소환제도가 도입되어 있는 일본, 독일에서도 주민소환의 사유에 대해 구체화하거나 제한하고 있지 않다. 미국의 대다수 주에서도 주민소환의 사유를 제한하고 있지 않다. 본래 주민소환제도란 대표자가 유권자들의 뜻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하고 행위를 할 경우에 해임시키기 위한 제도이기 때문에, 사전에 소환사유를 명시하거나 제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그 취지에도 맞지 않다. 그리고 비리와 부패 뿐만 아니라 독선과 전횡, 다수 주민의 의견에 반하는 정책결정 등이 모두 주민소환의 사유가 될 수 있는 것이 원칙이고, 외국의 사례를 보아도 정책결정을 포함해서 매우 다양한 사유로 주민소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서 현재 제정되어 있는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에서도 소환의 사유를 제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주민소환제도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고, 만약 주민소환의 사유를 제한한다면 그것은 주민소환제를 사실상 폐지하는 것과 마찬가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넷째, 한편 시민단체들이나 지역주민들은 주민소환제를 거론하는데 신중을 기해야 한다. 실제로 주민소환이 실행되려면 다수의 유권자들이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대표자의 잘못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데도 주민소환을 거론하는 것은 실제 주민소환을 할 의사나 능력이 없으면서도, 주민소환제를 위협수단으로 잘못 사용하는 것이다. 주민소환을 거론할 경우에는 실제로 주민소환투표청구권자 10-20%의 서명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대표자의 잘못이 심각한 수준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사정인데도, 주민소환제를 언급하는 것은 남용논란만 낳을 뿐이다. 그래서 시민단체들이나 지역주민들이 주민소환제를 ‘전가의 보도’처럼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주민들이 주민소환제를 잘못된 압력수단으로 사용하려고 할 경우에는 시민사회 내에서부터 건전한 비판을 가해야 한다.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주민소환제를 남용하려 할 경우에 대해서는 감시도 필요하다.

결국 주민소환은 하나의 제도에 불과하다. 그 제도가 본래의 도입취지에 맞게 작동할 수 있으려면 성숙한 노력이 필요하다. 일방적인 예단이나 판단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도 시행 이후에 실제로 제도가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보면서, 각자의 위치에서 주민소환제도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노력해 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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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소환제도의 특징과 시민사회에 주는 함의

하승수

** 제주대학교 법학부 부교수, 변호사,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


1. 직접민주주의의 상징 ; 주민소환제

87년 민주화 운동의 결과로 형식적 대의민주주의의 정착을 목표로 하는 87년 헌법개정이 이루어졌고, 1991년에는 5.16군사쿠데타이후 중단되었던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했다. 그러나 부활된 지방자치제도에서도 주민들의 참여는 봉쇄되어 있었고, 지방자치는 국가단위의 대의체제와 관료체제를 지방으로 축소ㆍ이식한 것에 불과했다. 지방자치단체는 중앙정부의 통제하에서 이양ㆍ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면서 여전히 ‘주민위에 군림하는 보다 작은 권력’으로 기능했다.

주민들의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대의제민주주의의 위기는 지방자치에서 오히려 더 심각한 형태로 나타났다. 선출된 대표자(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에 의한 부패와 무책임, 독선과 전횡이 심각한 수준으로 발생했지만, 주민에 의한 통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른 한편 지방자치의 부활이후 지역에서의 주민운동ㆍ시민운동이 활성화되면서 주민참여에 대한 요구가 증대하였다. 그에 따라 주민감사청구, 주민발의(조례 제ㆍ개ㆍ폐 청구제도)가 2000년 3월부터 도입되었다. 그리고 지방분권을 표방하는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중앙권력도 일정 수준의 주민참여를 긍정하는 태도를 보이게 되었고, 주민투표제도(2004년 7월), 주민소송제도(2006년 1월)가 잇따라 도입되었다.

그러나 직접민주주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주민소환제의 도입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표자를 유권자들의 해임 찬반투표에 의해 임기중에 해임시킬 수 있는 주민소환(recall)제도야말로 주권재민 원칙의 상징이고, 직접민주주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표자들의 지위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주민소환제도야말로 직접민주주의 제도중에서 가장 논란이 많을 수밖에 없고, 대표자들이 가장 꺼려하는 제도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경우에는 지역에서의 주민소환조례 제정운동, 시민입법운동을 거쳐 마침내 2006년 5월 2일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그럼으로써 주민소환제도는 2007년 7월 1일부터 시행되게 되었다.

그동안에는 주민소환제도와 관련해서, 주로 입법의 필요성과 당위성, 그리고 제도설계의 측면에서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이제 주민소환제도가 도입되어 시행을 눈앞에 둔 상황이 되었다. 따라서 그동안의 입법중심 논의를 벗어나 실제로 주민소환제가 한국의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민주적 제도라고 하더라도, 제도 자체는 절대선이 아니다. 제도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따라서 부정적인 양상이 나타날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제도를 작동시키는 주체의 역량과 의도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우선 주민소환제가 이미 도입되어 활용되고 있는 외국의 실제 사례들을 살펴봄으로써, 주민소환제라는 제도가 실제 작동과정에서 어떤 특징을 보이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 다음으로 한국에 도입된 주민소환제의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주민소환제를 도입한 국가들은 대부분 주민소환을 제안한 주체가 일정수 이상 유권자의 서명을 받아 소환청구를 하면 주민투표를 통해 해임여부를 결정하는 절차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상당한 차이들이 존재한다. 특히 사례를 소개한 외국의 입법례들과 비교할 때에 한국의 주민소환제는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한 차이가 제도의 실제 운영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외국의 실제 사례와 한국 주민소환제의 제도적 특성을 바탕으로 주민소환제가 한국 시민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 예측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주민소환제라는 제도가 긍정적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한국 시민단체들이 어떤 준비를 하고 어떻게 접근해야 할 지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2. 외국의 사례를 통해 본 주민소환제도의 특징

1) 미국의 주민소환

(1) 미국의 주민소환제 도입 현황

미국에서 주민발안, 주민투표, 주민소환과 같은 직접민주주의 제도가 대폭 도입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은 19세기말과 20세기초의 부패한 정치상황이었다. 정치적 충성도에 따라 공직이 충원되는 엽관주의의 폐해가 만연했고, 남북전쟁이후의 도시화, 산업화 과정에서 힘을 키운 지역정당보스에 의해 지방정부는 철저하게 사인화되었다. 선량하지 못한 정당보스가 부당한 방법으로 표를 매수하여 정치권력을 획득하고, 이들이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채 정치적 충성도만 높은 선거운동원들이나 헌금자들에게 공직을 배분함으로써 선량한 공직후보들을 몰아내었다(김영기, 2003:178-179).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지방자치 개혁운동이 전개되었다. 그와 같은 부패한 정치상황을 낳은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이 증대되면서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이 높아졌다. 20세기초의 혁신주의 운동(progressive movement)과 지방자치 개혁운동에 있어서, 혁신주의자나 개혁주의자들은 지방자치단체나 주에 있어서는 연방보다도 더 광범위한 시민참여를 제도화하기 위해 노력했다(小潼敏之, 2004, 288).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미국의 주민소환제는 1903년 1월 22일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시 시헌장(Charter)에서 처음으로 채택되었다. 그리고 1908년 오리건주에서 주민발의를 통해 주민소환제를 승인하기 위한 주헌법개정안이 주민투표에 부쳐졌고, 유권자 62%의 찬성에 의해 확정되었다(김영기, 2002:26). 그 이후 18개주와 콜럼비아 특별구(District of Columbia), 괌(Guam), 버진 아일랜드(Virgin Islands)에서 주정부 공직자에 대한 주민소환제가 도입되어 있다. 그리고 최소한 36개주가 지방자치단체의 공직자들에 대한 주민소환제를 인정하고 있다(MORGAN E. FELCHNER, 2004:30-31). 주민소환제를 최초로 채택한 로스앤젤레스시가 속한 캘리포니아주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County, City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민소환제를 채택ㆍ운영하고 있다(행정자치부, 2000:59). 

미국에서 주민소환절차가 시작되려면, 해당 공무원이 소환되어야 하는 이유를 밝힌 청원(petition)이 제출되어야 한다. 청원에는 유권자의 일정비율(주나 지방정부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그 직전 선거에서 투표한 유권자의 10-35%사이)의 서명을 구비해야만 한다. 캘리포니아주의 경우에는 지난 선거 당시 투표한 유권자 12%이상의 서명이 필요하다.


(2) 최근의 주민소환 사례

최근 주민소환사례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2003년 10월 7일에 있었던 그레이 데이비스(Gray Davis) 캘리포니아 주지사 소환사건이다. 주지사가 소환된 것은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일이다. 그레이 데이비스 주지사 이전에는 1921년 노스다코타(North Dakota)주의 린 프레지어(Lynn J. Frazier) 주지사가 소환된 적이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주에서 주지사가 소환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주차원의 주민소환제는 1911년에 도입되었다. 당시에 주민소환제는 주민발안(initiative), 주민투표(referendum)와 함께 캘리포니아주 헌법(California Constitution)에 명시되었다. 그 이후 그레이 데이비스 주지사 소환 이전에,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소환하려는 시도가 31번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그레이 데이비스 주지사 이전에는 그 어떤 시도도 실제 투표에는 이르지 못했다(California Secretary of State, 2003:10).

2003년 10월 7일에 이루어진 주민소환의 희생자인 그레이 데비이비스 주지사는 1998년 주지사로 당선되었고, 2002년에 재선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레이 데이비스 주지사에 대한 소환시도는 2003년 3월 95명의 제안자들(proponents)에 의해 시작되었다. 소환의 명분은 “캘리포니아주 재정을 총체적으로 부실관리하여 캘리포니아주의 부채가 380억 달러에 달하게 했다”는 것이었다.

소환에 앞장선 단체는 Paul Gann에 의해 설립된 “People's Advocate”라는 감세를 주장하는 단체와 일부 공화당 활동가그룹이었다. 이 소환운동은 처음에는 공화당의 핵심인물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으나, 2003년 5월초에 공화당소속 연방하원의원인 Darrell Issa가 참여하여 재정적ㆍ조직적 지원을 하면서 활성화되었다. 그러자 2003년 5월 말에는 소환에 반대하는 그룹이 형성되었다. 소환반대그룹은 노조지도자들과 민주당 활동가들이 주도했다. 이 그룹은 소환에 반대하는 서명을 받았다.

실제로 주지사에 대한 소환투표가 이루어지려면, 소환을 추진하는 그룹은 최소한 897,158명의 등록된 유권자들의 서명을 받아야 했다. 이 숫자는 그레이 데이비스 주지사가 선출된 2002년 당시의 주지사선거에서 투표한 유권자의 12%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그런데 제안자들은 2003년 7월 소환투표가 성립하는 데 필요한 서명수를 훨씬 넘는 1,356,408명의 유효서명을 제출함으로써 소환청구의 요건을 충족시켰다.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주민소환투표는 두 단계로 나뉘어 동시에 시행된다 유권자는 첫 번째로는 소환에 찬성하는지를 묻는 찬반투표에 투표를 하게 되고, 이어서 소환이 이루어질 경우에 대비해서 소환된 주지사를 대체할 후보를 선출하는 투표를 하게 된다. 첫 번째의 소환여부를 묻는 투표에 과반수 이상의 유권자들이 찬성하면 현직 주지사는 소환되고, 그럴 경우 두 번째 투표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한 후보가 소환된 주지사의 잔여임기동안 대체할 주지사로 선출되는 것이다.

그레이 데이비스 주지사에 대한 소환투표(recall election)의 실시가 확정되자 무려 274명의 후보가 후보등록을 신청했고, 결국 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해 135명의 후보가 확정되었다. 2003년 10월 7일에 이루어진 소환투표 결과, 유권자의 55.4%(441만 5천 341명)가 소환에 찬성하여 그레이 데이비스 주지사는 해임되었다. 그리고 대체할 후보로는 공화당 소속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374만 3천 393표(48.7%)를 얻어 당선되었다.


2003년 10월 7일 캘리포니아 주지사 소환투표 결과

소환여부를 묻는 투표

찬성(YES) 55.4%

반대(NO) 44.6%


대체할 주지사를 선출하는 투표

Schwarzenegger

48.7%

Bustamante

31.6%

McClintock

13.4%

자료원 : http://www.igs.berkeley.edu/library/htRecall2003.html#Topic3


이에 대해 그레이 데이비스는 소환대상이 된 공직자는 50%가 넘는 소환반대표를 얻어야만 지위를 유지하는 반면에, 대체하는 후보는 단순다수표만 얻으면 당선되는 모순을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주지사의 소속정당과는 반대되는 정당(공화당)의 핵심인물들이 깊숙이 개입한 소환운동도 논란거리였다. 현지사가 소환될 경우에 대체할 주지사 후보로 나선 후보들의 모금에 대해서는 규제가 되지만, 현 주지사를 소환하기 위한 소환운동(서명수집, 소환찬성유도 등) 자체를 위한 모금에 대해서는 규제가 없는 것도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이 캘리포니아 주지사 소환선거에 들어간 공식적인 정부의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캘리포니아주 국무장관에 의하면 캘리포니아주가 그레이 데이비스 주지사에 대한 소환투표를 치르면서 부담한 비용은 5천만달러가 넘는다(MORGAN E. FELCHNER, 2004:30-31). 

실제 소환투표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1988년 애리조나주에서는 미캠(Evan Mecham) 주지사의 소환을 위한 서명자수가 확보되어 소환선거일자까지 잡힌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애리조나주의 상원이 매캠 주지사에 대한 비리를 확인해서 소환투표 이전에 탄핵안을 가결하는 바람에 실제 소환투표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미국의 경우에 주정부 수준에서 소환제 활용이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는, 주지사의 경우에는 소환을 추진하는 조직이 주 전역에 걸쳐 서명자를 확보해야 하는 부담을 지기 때문이다. 또한 주정부 수준에서는 소환이 아닌 다른 해임방법(탄핵, 해임권고 등)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소환제의 사용이 활발하지 않은 이유로 지적되고 있다(김영기(Jimmermann), 2002, 86).

미국에서 주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 공직자로서 처음 소환된 사례는 미국에서 최초로 주민소환제를 채택한 로스앤젤레스 시의 시의원이 1903년 소환된 것이었다. 그리고 1909년 로스앤젤레스시의 하퍼(A.C .Harper) 시장이 시장으로서는 처음 소환되었다. 소환된 이유는 자신의 정치적 추종자를 공직자로 임명한 때문이었다. 최근의 소환사례로는 2005년 12월 6일 워싱턴주의 스포케인시(Spokane)에서 짐 웨스트(Jim West) 시장이 소환된 사례가 있다. 소환된 이유는 섹스 스캔들 때문이었다. 소환운동을 조직한 쪽에서는 17,000명의 서명을 수집했고, 소환투표에서 65%가 소환에 찬성함으로써 소환되었다(http://en.wikipedia.org/wiki/Recall_election).

미국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민소환제가 활용되는 정도는 주에 따라 차이가 있다. 프라이스(Charles M. Price)가 1970-1979년 사이에 26개주를 대상으로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민소환제가 사용된 횟수를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그 기간동안 캘리포니아주가 396회의 소환투표를 실시했으며, 오리건이 280회, 미시간이 193회를 실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하와이, 메인, 미네소타, 노스 다코타, 와이오밍 주는 전혀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김영기(Jimmermann), 2002, 116).

2) 일본

(1) 주민소환의 역사와 현황

일본의 경우 2차대전 이후인 1947년 5월 지방자치법 제정이후 단체장과 의원에 대한 해직청구제도와 의회해산청구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지방자치법이 시행된 초기에는 일본사회에 민주화 운동의 열기가 높이지면서 단체장과 의원에 대한 주민소환이 많이 사용되었다. 첫 번째 해직청구는 1948년 5월 야마나시(山梨)현 아사히촌에서 일어났다. 촌장이 농지개혁을 열심히 추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촌민들로부터 해직청구가 제기되었지만, 촌민투표결과 14표 차이로 촌장의 유임으로 끝났다. 단체장이 처음 해직된 것은 1948년 6월로 아키타(秋田)현 고무라 촌장에 대한 주민투표에서 996표대 529표로 촌장의 해직이 가결된 것이었다(이호철, 1996:37-38). 또한 1950년 동경도 시부야구 구장의 오직(汚職) 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된 구장 소환운동은 6만 수천명의 서명을 얻어 소환에 성공하기도 했다(이지원, 1999:81).

1957년에는 후쿠오카현의 부지사와 출납장이 공금1억엔을 부정하게 유용한 사건으로 기소되었는데, 이에 따른 지사의 정치적 책임을 두고 주민소환이 제기된 사례가 있었다. 해직청구서명은 법정요건인 유권자 1/3인 72만여명을 초과해서 88만명을 모은 것으로 보여졌다. 그러나 선거관리위원회의 심사과정에서 대필이나 서명부의 하자가 발견되는 바람에 상당수의 서명이 무효로 처리되었다. 결국 유효서명수는 법정요건에 못미치는 65만명에 그치는 바람에 소환투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이후에 지사에 대한 소환청구가 성립된 예는 전무하다(兼子 仁, 1999:65p).

1965년에는 동경도의회 의장 선거와 관련하여 도의원간에 뇌물을 주고 받은 사건이 발생하여, 도의회 의장을 비롯한 17명의 도의원이 기소ㆍ체포되고 8명이 기소유예처분을 받는 대규모 사건으로 발전하였다. 이때에 도의회 해산을 청구하는 통일리콜운동이 시작되었다. 사회당, 공명당, 공산당, 민사당 및 노동단체들이 참여한 가운데 도의회 소환, 도의회 해산요구의 시민운동이 일어났다. 5월 19일에는 임시회의 개회중인 도의회 의사당이 다수의 시위대에 의해 포위되었고, 또 50만명 서명을 목표로 한 서명운동이 전개되었다. 이에 집권 자민당은 도쿄도 차원의 ‘불안요인’이 중앙정계에 파급될 것을 두려워하여, 6월 1일 국회에서 ‘지방공공단체의 의회해산에 관한 특별법’을 성립시켜 이례적으로 도의회 해산이라는 비상조치를 취했다(이지원, 1999:115). 그 이외에도 부패나 불법행위를 이유로 한 주민소환은 계속되고 있다. 아마가사키(尼崎)시 시민들은 1993년 부정출장을 이유로 의회를 해산시켜 버렸고, 후쿠오카현 오카와(大川)시는 시장선거에서 선거운동원이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것을 이유로 당선한 시장을 사임시키기도 했다.

일본에서 1947년부터 1992년 3월 31일까지 제기되었던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한 해직청구, 지방의회 해산청구, 지방의원 해직청구에 관한 현황을 보면 아래와 같다.


<표1> 지방자치단체장의 해직청구 실적(1947년 5월 3일 - 1992년 3월 31일)

구분

투표후 해직

투표결과 불성립

사직

기타

557

85(15%)

73(13%)

118(21%)

281(51%)

도도부현

4




4

시정촌

553

85

73

118

277(50%)

* “기타”는 증명서 교부만으로 끝난 경우나. 취하ㆍ각하된 경우 등이다.


<표2> 지방의원에 대한 해직청구 실적

구분

투표후 해직

투표결과 불성립

사직

기타

226

64(28%)

15(7%)

43(19%)

104(46%)

도도부현

1




1(100%)

시정촌

225

64(28%)

15(7%)

43(19%)

103(46%)

* “기타”는 증명서 교부만으로 끝난 경우나. 취하ㆍ각하된 경우 등이다.


<표3> 지방의회에 대한 해산청구 실적

구분

투표후 해직

투표결과 불성립

사직

기타

400

98(25%)

45(11%)

73(18%)

184(46%)

도도부현

5



4(80%)

1(20%)

시정촌

395

98(25%)

45(11%)

69(18%)

183(46%)

* “기타”는 증명서 교부만으로 끝난 경우나. 취하ㆍ각하된 경우 등이다.

자료원 : 행정자치부, 2000:308-309


위의 통계들을 보면, 기초지방자치단체격인 시정촌(市ㆍ町ㆍ村)의 경우 시정촌의 장이 투표를 통해 해직되거나 투표 직전에 사임하는 비율이 36.7%에 달한다. 시정촌의원에 대한 해직청구의 경우에도 투표를 통한 해직이나 투표직전 사임 비율이 47%를 넘는다. 시정촌의회에 대한 해산청구도 투표를 통한 해산이나 사임의 비율이 43%에 달한다. 이런 점들을 보면, 기초지방자치단체격인 시정촌에서는 주민소환제도가 실제로 작동하고 있고 실질적으로 소환되는 비율이 매우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반면에 광역지방자치단체격인 도도부현(都ㆍ道ㆍ府ㆍ縣)의 경우에는 소환을 위한 투표(해직여부를 묻는 주민투표)가 이루어지는 경우 자체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정책결정과 관련된 주민소환의 사례

정책결정과 관련하여 주민소환이 이루어진 경우들도 존재한다. 1981년 원자력발전 추진을 둘러싸고 고치(高知)현 구보카와정에서 추진파의 촌장이 소환되기도 했다. 아래에서는 정책결정과 관련된 주민소환 사례중에서, 녹지지역에 미군주택건설을 추진하다 소환당한 사례와 원자력발전소 건설 주민투표를 거부하다 소환당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사례는 가나가와현 즈지(逗子)시의 사례이다. 1984년 즈지시에서는 녹지에 주택건설을 추진하던 시장이 주민소환운동으로 물러났다. 즈지시의 미시마(三島)시장은 1973년 즈지시 시장에 처음 당선되어 3번이나 당선되었던 시장이었다. 3번째 재임중이던 1982년에 방위청이 탄약고가 있던 이케노코(池子)숲 지역 80ha를 미군용 주택건설 후보지로 선정하고 일방적으로 통지해 왔다. 이에 주민측은 이케노코숲의 보존과 탄약고 지역의 전면반환을 요구하며 반대운동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미시마시장도 주민과 함께 반대에 나섰다. 그러나 1984년 3월이 되어서 미시마 시장은 정부가 제시한 33개 항목의 특별지원 등에 이끌려 이케노코 지역의 숲에 미군주택을 건설하는 것에 대해 조건부 합의를 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보수파가 다수를 점하고 있는 의회에서 시장의 결정에 대해 투표를 한 결과, 주택건설계획 찬성 15명, 반대 9명이라는 결과가 나와 시장의 결정이 승인되었다.

이에 주택건설을 반대하던 시민모임인 “이케노코의 숲과 아이들을 지키는 모임”은 시장 소환운동을 벌이기로 결정하고, 1984년 8월 주민소환에 필요한 서명수(선거권자의 1/3인 14,339명)를 대폭 상회하는 18,612명의 서명을 얻어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하였다. 이에 미시마 시장은 주민소환투표가 실시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사임을 하였고, 이후 실시된 선거에 다시 출마하였다. 그리고 “이케노코의 숲과 아이들을 지키는 모임”은 미시마 시장에 대항할 수 있는 다른 후보를 선정하고 이를 지원하였다. 그 결과 1984년 11월에 시행된 선거에서 미시마 시장은 15,346표를 얻는데 그쳐, 16,412표를 얻은 시민모임 지지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다(한국지방행정연구원, 1995:105-106).

두 번째 사례는 니이가타현 마키정(券町)의 사례이다. 마키정에서는 1969년부터 원자력발전소가 추진되었고, 그로 인한 주민들간의 의견대립이 존재해 왔다. 이에 1994년부터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관한 주민의 의사를 주민투표로 확인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들은 마키원자력발전소 주민투표 실행모임“을 결성하고, 1995년 1월 22일부터 2월 5일까지 자주관리에 의한 주민투표를 실시하였다. 이 투표에는 유권자의 45%가 참여하여 원자력발전소 건설 찬성 474표, 반대 9,854표가 나왔다. 그러나 정(町)장은 자주관리 주민투표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1995년 4월에 정의원 선거가 치러졌고, 주민투표 조례 제정파가 22석중 12석을 차지하게 되어, 첫 소집된 의회에서 주민투표조례가 가결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정장이 주민투표의 실시를 계속 미루자, 주민투표를 추진하던 측에서는 주민소환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유권자 1만231명이 소환에 찬성하는 서명부가 제출되어 소환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정장은 사임하였고, 뒤이은 정장 선거에서 주민투표 추진 측의 시장이 당선되었다. 그리고 새로 선출된 정장하에 실시된 주민투표에서 찬성 7,904표 반대 1만2,478표가 나와서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다수 주민의 의사임이 확인되었고, 원자력발전소 건설은 중단되었다(최종만, 1998:283-288).

위의 두 사례는 주민의사에 반하는 독단적인 정책추진을 하던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소환운동에 의해 사임을 하게 된 사례이다. 단순한 부패나 비행을 이유로 한 것이 아니라 정책결정의 비민주성을 이유로 한 소환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3) 그 외 주민소환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들

직접민주주의의 나라로 불리우는 스위스의 경우 베른 등 7개 캔톤(canton)이 주민소환제를 채택하고 있다. 1993년 개정된 베른 캔톤 헌법 제57조는 3만명의 유권자는 언제든지 캔톤의회 또는 캔톤 행정부의 전면개편을 요구할 수 있고, 새로 선출된 대표들(관청)은 퇴임한 대표들의 잔여임기를 채워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동 조항은 캔톤의회 또는 캔톤 행정부의 전면개편요구가 주민투표 신청후 3개월 이내에 이루어져야 하고, 주민이 이에 찬성한 경우에는 새로운 선거를 지체없이 실시할 것 등을 규정하고 있다. 주민소환제는 스위스의 독특한 조직원리인 동료제(collegial system)의 전통에 따라 개인이 아닌 관청에 대해서만 인정된다(안성호, 2005:233-234).

캐나다의 브리티시 콜럼비아(British Columbia)주에서도 1995년 소환제도가 법제화되었다. 그리고 2003년 1월까지 22번의 소환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실제 투표를 통해 소환된 사람은 없었다. 다만, 1998년 6월 주의원인 폴 라이츠마(Paul Reitsma)가 소환투표 직전에 사임한 사례는 있다.

한편 독일의 경우에는 1990년대초에 그동안 제한되었던 직접 주민참여의 문제에 중점을 두고 지방자치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이 단행되었으며, 그 골자는 전통적으로 지배해 온 대의민주주의 원칙에서 벗어나 지방수준에서 직접민주주의를 강화시키는 것이었다(정원식, 2003:231) 그래서 독일의 경우는 1990년대 들어 대부분의 주(바덴 뷔르템베르크주와 바이에른주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 주민소환제도를 도입하였다(이기우, 2003:21).

다만, 독일의 경우 주민발의에 의한 소환방식은 브란덴부르크주, 쉴레스비히 홀쉬타인주와 작센주에서만 인정되고 있고, 그 이외의 주에서는 일정수의 지방의원에 의한 소환청구만이 인정된다. 예를 들면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Nordrhein-Westfalen)주의 경우에는 직선 시장에 대한 소환발의는 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재적의원 2/3이상의 찬성 있으면 이루어진다. 물론 지방의원이 소환청구하는 경우에라도 소환여부에 대한 결정은 주민투표에 의해 이루어진다.

주민발의에 의한 주민소환을 인정하고 있는 브란덴부르크주의 경우 유권자의 15-25%, 쉴레스비히-홀스타인주는 25%, 작센주의 경우 3분의1의 요건을 충족하면 해임발의가 가능하다. 1990년도 이후 브란덴부르크주의 경우 23건의 해임청구(그중 16건은 주민발의, 7건은 의회발의)이 있었으며, 10명의 지방자치단체장이 해임되었다.

그리고 소환투표(소환결정)에 관해서는 유권자 총수의 25%(브란덴부르크주,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 니드작센주), 30%(라인란트 팔츠주, 자아르란트주, 작센 안할트주, 튀링겐주), 1/3(쉴레스비히 홀스타인주), 50%(작센주)의 투표참가와 투표참가자 과반수의 찬성을 통해 소환결정을 내리도록 하고 있다(한귀현, 2004:521).


4) 외국의 사례들이 보여주는 주민소환제의 특성

미국이나 일본의 사례들을 보면, 인구규모가 적은 경우에 주민소환제가 활발하게 이용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광역지방자치단체장보다는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소환이 더 용이하며, 지방자치단체의 장보다는 지방의원에 대한 소환이 용이하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그동안의 경험으로 볼 때에 한국의 광역지방자치단체에 해당하는 도도부현 지사의 해직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반면 일본의 경우 기초지방자치단체격인 시정촌의 장에 대한 소환은 203건(사임한 경우까지 포함)이나 이루어졌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에도, 1911년 주민소환제도가 도입된 이후 주지사에 대한 소환투표는 2003년에 실시된 그레이 데이비스 주지사에 대한 소환투표가 처음이었다. 반면 주의원에 대한 주민소환투표는 7차례 이루어진 경험이 있고, 그 중 4차례에서는 실제로 소환에 성공하기도 했다(MORGAN E. FELCHNER, 2004:31).

그리고 인구규모가 큰 대도시일수록 주민소환은 어렵고, 인구규모가 작은 도시나 농촌지역일수록 주민소환제가 실제로 작동되기는 쉽다. 일본의 경우에도 1955년 이후 급속한 도시화의 진전은 인구 100만 이상의 도시(기초지방자치단체)를 만들어냈고, 이런 대규모 지방자치단체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의 해직을 요구하려면 유권자 3분의1이상의 서명이 필요하기 때문에 해직청구가 실질적으로 곤란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일본에서는 해직청구(주민소환청구)에 필요한 서명요건(지방자치단체장의 경우 유권자 1/3 이상의 서명이 필요하고, 지방의원의 경우 유권자수가 40만까지는 1/3의 서명이 필요하고 40만을 넘는 숫자에 대해서는 초과숫자의 1/6의 서명이 필요하다)을 완화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편 외국에서도 주민소환제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가 공존하고 있다. 복잡한 절차를 거쳐 청구한 주민소환제도가 주민의 참여를 활성화시키려는 본래의 목적보다는 자칫 지방의회내의 여당과 야당간의 정쟁의 수단으로 전락하기 쉽다는 비판도 있다(송영철, 2001:306). 또한 주민소환투표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이 신중하게 이루어지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커비너(Covina)시에서 있었던 일이다. 1993년 6월에 커비너시의 유권자들은 전체 시의원들을 소환했다. 시의회가 6%의 utility tax를 승인했다는 것이 소환의 이유였다. 그러나 utility tax를 부과하지 않음으로 인한 수입결손으로 인해 시는 도서관과 소방서를 폐쇄하고 42명의 피고용인을 해고해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 이에 새로 구성된 시의회는 유권자들의 승인없이 오히려 8.25%의 utility tax를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이전의 시의원들을 소환한 근거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MORGAN E. FELCHNER, 2004:32). 이 사례에 대해서는, 결국 소환투표를 해서 새로운 대표자들을 뽑는 선거비용만 들어가게 되었고, 유권자들은 더 많은 세금만 부담하게 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반면 주민소환에 대한 옹호론자들은 주민소환을 통해 공공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높일 수 있고, 대표자에 대한 주민들의 통제를 강화한다는 점을 든다. 소환제는 유권자로 하여금 부패하거나 무능하거나 중요한 문제에 관하여 유권자의 입장을 정확하게 반영하는데 실패한 공직자를 해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정부에 대한 민중적 통제를 강화한다는 것이다(김영기(Zimmermann), 2002, 144p).


3. 한국 주민소환제의 특징과 문제점

1) 소환(recall)의 대상

일본의 경우 해직청구제도와 해산청구제도라는 이름으로 소환(recall)제도가 도입되어 있다. 일본의 해직ㆍ해산청구제도는 주민의 집단서명에 의해 도도부현의 지사나 시구정촌(市區町村)의 장, 지방의원의 해직(解職), 지방의회의 해산(解散)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이다. 이 경우에 ‘해직의 투표’라고 하는 주민투표를 실시하여 투표자 과반수의 동의가 있으면 해직 또는 해산되게 된다.

일본의 경우에는 지방자치단체장 뿐만 아니라 의회의 동의에 의해 임명되는 부지사ㆍ助役, 출납장(出納長)ㆍ수입역(收入役), 감사위원, 선거ㆍ공안ㆍ교육위원도 유권자 주민의 1/3이상의 서명에 의한 직접청구가 있으면 지방의회의 특별다수결의에 의하여 해직된다(兼子 仁, 1999:64-65p).

미국의 경우 주민소환 대상 공무원의 범위는 주와 지방자치단체에 따라 다르다. 법관을 주민소환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주가 있는 반면, 포함시키는 주도 있다. Kansas주는 임명직 공무원에 대해서도 주민소환제를 인정하고 있으며, 로스앤젤레스 시의 경우에도 임명직 공무원에 대한 주민소환제를 인정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에서는 지방의회 해산청구제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소환 대상이 되는 공직자의 범위가 상대적으로 좁다는 특징이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지역구 지방의원만이 소환의 대상으로 되고 있다. 다만, 제주도의 경우에는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이하 “제주특별자치도법”이라 한다)’에 의해 교육감과 교육의원까지 소환의 대상으로 되고 있다.

제주도를 제외한 지방의 경우에, 교육감이나 교육위원이 주민소환의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학교운영위원들에 의한 간접선거방식을 취하고 있는 선거제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반면 제주도의 경우에는 제주특별자치도법에 의해 교육감, 교육의원 직선제를 도입했기 때문에 소환대상에 포함되게 된 것이다.


2) 소환을 위한 법정 서명수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주민소환제도의 실효성(반대의 측면에서 보면 남용가능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주민소환청구를 위해 필요한 법정 서명수가 어느 정도 되느냐의 문제이다.

일본의 경우 해직 또는 해산청구를 위해 서명을 받아야 하는 유권자의 숫자는 원칙적으로 전체 유권자주민의 3분의1이상이다(兼子 仁, 1999:64p). 다만 지방의회 해산청구와 지방의원 해직청구의 경우에는 유권자 수가 40만을 초과하는 경우 40만 초과숫자에 대해서는 1/6이상의 서명을 요구하도로 완화하고 있다. 이러한 서명요건은 지나치게 높은 수준이다. 그에 따라 일본의 경우 광역지방자치단체인 도도부현에서는 주민소환제도가 사실상 사문화되어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일본보다는 서명요건이 낮다고 볼 수 있다. 주나 지방정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그 직전 선거에서 투표한 유권자의 10-35%사이가 서명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등록된 유권자에게만 투표권이 있고, 선거에서의 투표율이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서명숫자가 그렇게 높지는 않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직전 선거 투표자의 12%의 서명을 요구하는데 그레이 데이비스 주지사 선거 당시에 요구된 서명숫자가 897,158명 정도였던 점을 감안하면, 비교적 서명요건은 완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캘리포니아주의 전체인구는 3,300만명을 넘는다).

한국의 경우에는 시ㆍ도지사의 경우에는 주민소환투표청구권자(19세 이상 주민과 19세 이상 외국인중 일정한 자격이 있는 자)의 10%이상,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의 경우에는 15%이상, 지역구 지방의원의 경우에는 20%이상의 서명을 받아야만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다만, 제주도의 경우에는 주민소환투표청구권자 총수의 20%에서 30%의 범위내에서 조례로 정하는 숫자 이상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제주특별자치도법 제27조 제1항).

이러한 요건은 일본보다는 완화된 것이지만, 미국 캘리포니아주보다는 강화된 요건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시의 경우에는 시장에 대한 소환투표를 청구하기 위해서는 77만명을 넘는 서명을 받아야 한다(2004년 4.15. 총선당시 서울시 유권자수는 7,750,350명이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점은 서명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에는 서명을 수집하는 160일 이내에 이루어져야 한다. 일본의 경우 해직ㆍ해산청구서가 접수되어 청구대표자 증명서를 교부하였다는 것을 고시한 날의 다음날부터 도도부현의 경우에는 2개월 이내에, 시정촌의 경우에는 1개월 이내에 서명을 수집해야 한다(吉川俊一, 2003, 291p). 한국의 경우에는 서명을 수집할 수 있는 기간이 법률에 정해져 있지 않고, 대통령령(시행령)에 위임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 기간이 어떻게 정해지는가에 따라 주민소환제도의 실효성은 매우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서명수집기간이 지나치게 짧다면 사실상 그 기간내에 서명을 수집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3) 주민소환의 사유

한국의 경우, 제도의 입안과정에서 주민소환의 사유를 일정한 경우로 제한할 것인지가 논란이 되었다. 일본의 경우에는 제한을 하지 않고 있고, 미국의 경우에도 주민소환제를 도입하고 있는 대다수의 주에서 주민소환의 사유를 제한하지 않고 있다. 독일의 경우에도 주민소환의 사유에 대하여는 어느 주의 법률에서도 구체화하지 않고 있다(신봉기, 2004:197). 선출직 공직자의 부패, 무책임, 독선, 전횡을 주민의 힘에 의해 견제하고자 하는 주민소환제도의 취지로 볼 때에, 주민소환의 사유를 명시적, 한정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그 취지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사유로 주민소환이 필요하게 될 지를 사전에 예측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도 하다.

그러나 주민소환제의 남용가능성을 우려하는 측에서는 주민소환의 사유를 부패 등의 경우로 제한하려 하였다. 논쟁끝에, 결국 국회에서는 주민소환의 사유를 제한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지어 졌다. 그래서 국회를 통과한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에서는 주민소환의 사유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부패, 무책임, 정책결정과정에서의 독선이나 전횡 등 다양한 사유로 주민소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일본의 경우 해직청구와 해산청구의 중요한 사유로는 부정부패, 단체장과 의회의 대립, 시정촌합병, 학교교육, 경찰 및 공안문제와 관련한 것이 많았다(송영철, 2001:305). 1992년 4월 1일부터 1995년 3월 31일까지 있었던 지방의원에 대한 해직청구 사례들을 보면, 수뢰, 의회운영혼란, 행정손실 과다, 음주운전, 술좌석구타, 동료의원폭행, 각성제 소지 및 시민폭행, 공약위반, 업자향응접대 등 다양한 사유로 해직청구가 이루어졌다(행정자치부, 2000:310p). 미국의 경우에도 주민소환의 사유는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신봉기, 2004,:192).


4) 기타의 특징

미국 캘리포니아주 그레이 데이비스 주지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소환대상자를 소환할 것인지에 대한 투표와 후임자를 선출하는 선거를 동시에 치를 경우에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것은 후임자에 대한 선호가 현직에 있는 공직자를 소환할 것인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의 경우에는 '해직에 대한 투표‘와 후임자를 뽑는 보궐선거를 별도로 치르도록 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는 일본의 예에 따라 소환여부를 묻는 투표에 따라 소환이 결정된 이후에 보궐선거는 별도로 치르도록 입법되었다.

한편 주민소환청구가 남발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도 중요한 쟁점이 된다. 특히 선거 직후에 주민소환청구를 할 수 있거나 한번 주민소환투표가 있은 직후에도 또다시 주민소환청구를 할 수 있게 하면 주민소환청구가 남용될 우려가 있다. 그래서 일본의 경우에는 선거 또는 직전의 ‘해직의 투표’가 있은 후 1년간은 해직청구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한을 두고 있다(兼子 仁, 1999:64p). 미국의 경우에도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취임한 때로부터 6개월이 경과하기 전에는 주민소환에 의한 해직을 제한하고 있다(행정자치부, 2000:59).

한국의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에서는 “임기개시일로부터 1년이 경과하지 아니한 때”와 “임기만료일로부터 1년 미만이 남은 때”에는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할 수 없도록 하였다. 그리고 해당 공직자에 대한 주민소환투표를 실시한 날로부터 1년 이내인 때에도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할 수 없도록 하였다. 결국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의 임기 4년중 앞의 1년과 뒤의 1년동안에는 주민소환투표청구를 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주민소환투표청구를 할 수 있는 기간은 4년의 임기중 가운데있는 2년으로 제한되게 되었다.


4. 주민소환제가 한국의 시민사회에 주는 함의

앞서 본 외국의 사례들과 한국 주민소환제의 특징을 감안할 때에 주민소환제가 한국사회에서 실제로 어떻게 작용할 지를 소환의 실행가능성, 소환운동의 주체, 소환의 사유 등의 측면에서 예측해 볼 수 있다.

우선 실제로 주민소환제가 어느 정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인지의 문제가 있다. 현재 도입된 법률의 내용으로 볼 때에 서명요건은 일본에 비해 완화되어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은 숫자의 서명이 필요하다. 광역지방자치단체의 경우에 유권자 10-20%의 서명을 받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수준에서는 어느 정도 활용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인구도 3만정도에 불과한 농촌지역에서부터 100만이 넘는 도시지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편차를 보이고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인구규모가 적은 기초지방자치단체일수록 주민소환제도가 활용되기 쉬울 것이다.

또한 지방자치단체 전체 유권자를 대상으로 서명을 받아야 하는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한 소환투표청구보다는 비교적 좁은 범위의 유권자들에 대해서만 서명을 받으면 되는 지역구 지방의원에 대한 소환투표청구가 좀더 쉬울 것이다. 그리고 현재 지방의회의 부패나 무능이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에, 지방의원에 대한 소환투표청구는 상당히 활성화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두 번째로, 과연 누가 주민소환투표를 청구하고, 청구에 필요한 서명을 조직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전체 유권자의 10-20%의 서명을 모으는데는 상당한 노력과 비용이 들어간다. 한국에서  그러한 노력과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주체는 누구일 것인지가 문제이다. 일단 주민소환제도 자체는 중립적인 제도이다. 어떤 주체이든지 주민소환을 시도할 수 있다. 주민소환제도의 도입은 시민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요구한 것이지만, 제도의 활용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지역사회에서 가장 동원력이 있는 조직은 보수성향의 기득권이 있는 단체들이다. 그런 점에서 주민소환제가 한국의 지역사회, 한국의 지역정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도 있다.

한편 시민사회가 아닌 정치세력에 의해 주민소환제도가 악용될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한다. 선거에서 낙선한 후보자가 배후에서 조직하여 주민소환운동이 전개될 여지도 있다. 물론 입후보예정자는 주민소환에 관여할 수 없도록 하는 등 ‘주민소환에 관한 법률’에서도 악용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런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또한 특정한 이익으로 뭉친 집단이 주민소환제를 사용하여 정치적 압력을 조직하려고 하는 경우도 상정할 수 있다. 실제 주민소환제가 시행된 이후에 어느 정도 이런 움직임을 견제할 수 있을 지가 중요한 관건이다. 

그런 점에서 주민소환제가 도입의 취지에 맞게 기능하기 위해서는, 정치적ㆍ사적 이해관계에 사로잡히지 않은 주체들이 주민소환제도를 긍정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시민단체들단체들도 중요한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주민소환제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풀뿌리 조직력이 있어야 한다. 전체 유권자의 10-20%의 서명을 받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민단체들이 전체 유권자의 2% 내외의 서명을 받으면 되는 주민발의를 활용하는 데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렇다면 시민단체가 주민소환을 활용하는 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권자들로부터 쉽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부패의 문제나 지역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결정문제(예를 들면 2003년 전북 부안에서 있었던 방폐장과 같은)가 있을 경우에는 주민소환을 적극적으로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주민소환청구를 위해서는,주민소환의 계기가 된 사안을 중심으로 지역사회내에 ‘지역정치 개혁네트워크’같은 것이 형성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시민사회내에 광범위한 연대와 협력틀이 형성될 때에 ‘동원된 참여’가 아니라 ‘자발적 참여’에 의한 주민소환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 한국에서는 어떤 사유로 주민소환이 이루어질 것인가의 문제이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매우 다양한 사유로 주민소환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크게 보면 ① 부패나 무능, 도덕성과 같은 대표자로서의 자격ㆍ자질의 문제와 ② 정책결정과정의 비민주성이나 정책결정의 내용상의 문제들이 주민소환의 사유가 된다고 볼 수 있다. 그 중 후자의 문제들은 가치관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다른 판단이 가능한 문제들이다. 그런 점에서 주민소환의 사유는 진보적인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보수적인 관점에서도 제기될 수 있다. 기득권세력이 사회적 정의를 해치는 요구를 들고 나와 주민소환을 조직하는 경우도 나올 수 있다.

물론 외국의 사례들을 보면, 지역의 중요한 정책결정과 관련하여 주민들이 스스로의 삶과 지역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주민소환을 시도한 사례들도 있다. 결국 주민소환의 사유의 문제는 “현 시기 다수의 지역유권자들이 선출직 공직자를 임기중에 해임해야 할 정도로 심각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지의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주민들이 자신의 삶과 지역의 문제에 대해 평소에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5. 시민단체의 역할에 대한 의견

결국 주민소환은 하나의 제도에 불과하다. 그 제도가 어느 방향으로 작동할 것인지는 지역사회내에 존재하는 조직ㆍ세력들의 영향력에 의해 많이 좌우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주민소환제도의 도입이 장밋빛 전망만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다. 현재 지역사회에서 기득권을 가진 주체들의 영향력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민소환제도가 한국사회에 안착하고 민주주의의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시민단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시민단체의 입장에서는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주민소환이라는 계기를 통해 “공론의 장”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에 관심을 초점을 모을 필요가 있다.

한편 경우에 따라서는 시민단체가 주민소환운동의 직접적인 주체가 될 필요도 있을 수 있다. 그럼으로써 선출직 공직자의 부패, 무책임, 전횡, 독선을 견제하는 강력한 수단인 주민소환제가 올바로 활용되도록 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주민소환의 바람직한 모델이 되는 사례들을 만드는 것은 역시 시민단체의 역할이 될 수밖에 없다.

한편 시민단체들이 주민소환의 악용이나 남용을 억제할 수 있는 감시자ㆍ비판자적인 위치에 서야 할 경우들도 많이 존재할 것으로 예측된다. 주민소환제도가 정치적으로 악용되거나, 이익집단에 의한 압력수단으로 남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시민단체의 역할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주민소환투표청구가 실제로 성립하고 소환투표가 실시되는 상황이 된다면, 그런 계기를 통해 지역정치를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 것인지에 대한 전망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주민소환을 통해 유권자들이 각성하고 주체로 나서게 되려면, 어떤 노력이 있어야 할 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것이다.

보통 주민소환과 같은 사건은 특정한 계기에 의해 유권자들의 불만이 폭발할 때에 일어난다. 그러나 그 불만이 방향성없는 불만에 그치게 되면, 주민소환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주민소환과 같은 폭발적 계기가 있을 때에, 시민사회는 오히려 차분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주민소환제도의 도입이 한국에서의 민주주의를 보다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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