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과 공무원이 함께 만들어가는 주민자치의 공간"
- 산본2동 주민자치센터

인터뷰: 윤성섭 사무장
이미숙 자원봉사자
정리: 하승우(운영위원)

군포를 방문한다는 생각에 약간 긴장되기도 했다. 글로만 접했었던 군포 시민사회의 발전. 쓰레기 소각장 반대에서 환경자치시민회로 자생적으로 성장한 군포의 이미지는 약간 낭만적인 기대와 아련한 환상을 줬다.

국철을 타고 가다 4호선으로 갈아타고 내린 곳은 금정역. 지하철을 나오자마자 눈에 띈 곳은 지하철역 출구에 위치한 행정민원실이었다. 서울로 통근하는 대부분의 시민들을 고려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역시 군포는 뭔가 다르구나.’

김현씨를 만나 차를 타고 산본 2동 주민자치센터로 향했다. 시선을 위로 올리자 눈에 확 들어오는 큰 글씨가 보였다. “시민은 주인입니다”. 고압적이고 딱딱한 얼굴을 한 공무원들만 기억하는 내게 그 글씨는 매우 낯설게 다가왔고 주민자치센터에 대한 궁금증을 자극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리 크지 않은 3층짜리 건물 속에는 부드러움이 흐르고 있었다. 빨간색 조끼를 입은 주부님이 왼쪽에 보였고, 낮고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접수창구는 주민자치센터로의 전환 이후 더 가까워진 주민과 공무원의 관계를 반영하는 듯했다. 그리고 접수창구 위에는 군포시 조례로 제정된 ‘민원사무착오 및 지체 보상제’를 알리는 팻말이 매달려 있고 우측에는 주민들을 위한 인터넷방이 보였다. 더 이상 낯설고 딱딱한 공간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만나고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공간, 내 기억 속의 딱딱한 동사무소는 그처럼 부드러운 주민자치센터로 변해 있었다.

지하철역에서 집어들었던 군포시 <큰시민소식>이라는 소식지에서 군포시청의 전종수씨는 군포시의 주민자치센터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첫째, 기관장의 의지, 둘째, 전자결재의 완벽한 시행, 셋째, 동사무소 업무의 본청 이관, 넷째, 생활민원의 해결대책 마련, 다섯째, 자원봉사자와 강사인력은행 구축, 조례/규칙의 정비를 들고 있다.

우리가 방문한 산본 2동의 배재철 동장님도 의지가 무척 강하고 많은 새로운 사업들을 진행했다고 한다. 설문조사 결과 장소가 협소하다는 의견이 있자 과감하게 동장실을 없애고 헬스장을 확장했다는 사실에서 그런 의지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산본 2동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것은 다양한 동아리 활동이다. 2000년 12월 7일 구성된 노래동아리를 선두로 해서 5개의 동아리(노래, 볼링, 발맛사지, 장구, 영어)가 활동하고 있으며 임원 선출, 회비징수 등 전반적인 업무를 스스로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노래동아리를 중심으로 봉사활동에 뜻을 둔 회원들이 사회복지시설을 방문, 봉사활동을 전개하는 등 훈훈한 지역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지금은 ‘능안공원 가꾸기’, ‘안전한 통행로 만들기’ 동아리를 새롭게 모집하고 있다). 현재 동아리 회원은 131명에 달하고 대부분의 회원은 주부들이다(산본 2동은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노래동아리는 소년소녀가장돕기 길거리 공연을 통해 3백2십만원의 모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리고 자원봉사자 활동도 활발한데 동사무소 민원을 안내하거나 자치센터 시설물을 점검하는 행정 자원봉사자, 홍보물 편집과 자치센터 회원을 관리하는 기획 자원봉사자, 우산이나 자전거를 수선하는 기술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있다.

이런 자원봉사자 체계는 산본 2동의 독특함을 보여준다. 특히 행정 자원봉사자는 넥타이 무료교환 창구와 양심우산 무료대여를 관리하는 동시에 행정을 직접 체험하고 운영을 도움으로써 행정에 대한 지식을 얻고 자원봉사의 기쁨을 얻는 이중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현재 행정 자원봉사자는 8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돌아가며 근무하고 있다). 주민으로 구성된 행정 자원봉사자가 있으니 고성을 지르거나 급하게 무엇을 요구하는 주민들이 없어져서 분위기가 한층 더 부드러워 졌다고 한다. 기획 자원봉사자도 딱딱한 공문서나 여러 장의 문서를 알기 쉽고 눈에 잘 들어오도록 한 장으로 편집해서 보내 준다고 한다.

또한 산본 2동에서는 주민자치센터 기금을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 센터의 시설물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회원들의 증가하는 욕구를 충족시키려면 기금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적정 수강료를 책정하고 불필요한 예산지출을 억제하는 등의 방법으로 기금을 확충하고 있다. 그 결과 2001년 10월 30일을 기준으로 약 1천7백만원의 기금(대부분이 헬스장 수입)을 조성하고 있다.

이런 활발한 활동이 주민들의 독자적인 활동만으로 유지되는 것 같지는 않다. 동사무소는 이런 자원봉사 활동을 팔짱끼고 지켜보기만 하지 않는다. 시청 자원봉사팀과 연계해 전문자원봉사 강사를 영입해서 수강료 부담을 줄이고 필요한 비품(장구, 악보대, 동아리 조끼 등)을 지원해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동사무소는 주민자치센터의 운영방향을 다음 세가지로 잡고 있다. 첫째, 주민자치센터의 방향설정. 주민의 욕구를 수렴해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동아리 강좌를 활성화한다. 둘째, 주민들의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참여 유도. 회원 스스로 참여하는 이벤트 행사를 개최한다. 셋째, 행정관서의 적극적인 지원. 동아리 활동에 필요한 비품 등을 지원한다.

또한 변화하는 주민욕구를 수렴하기 위해 2000년 5월 22일에서 6월 9일 동안 지역주민 34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반영해서 헬스장 확장, 편의시설 설치 및 헬스기구를 구입하고 운영시간을 연장했다. 이런 공식적인 설문조사만이 아니라 동사무소 직원과 동아리 회원의 정기적인 친선경기, 강좌별 쫑파티시 동장과의 대화, 강의실 입구에 주민의견 수렴판 설치, 간담회 수시 실시를 통해 다양한 경로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 대해 담당 공무원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산본 2동에서 1년 8개월을 근무하신 윤성섭 사무장님에 따르면, 주민자치센터 전환이후 업무가 많이 줄어들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주민들과의 관계가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주민들과의 관계개선만이 아니라 주민들이 행정을 이해하고 행정의 빈틈을 지적하는 사례가 많이 늘어났다고 한다.

윤성섭 사무장님은 스스로가 사회단체와의 협조, 지속적인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해서 좋은 느낌을 주셨다. 담당 공무원이 바뀌면 그 체계가 흔들리지 않겠느냐는 다분히 의도적인 질문(?)에 주민참여가 활성화되고 주민자치위원회가 잘 운영되면 그리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담담하게 대답하신다.

특히 윤성섭 사무장님은 시 차원의 조례제정만이 아니라 동단위의 규칙제정의 필요성을 제기하셨다. 자원봉사자들을 더 돕고 싶어도 뚜렷한 기준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고 기금도 투명하게 운영하려면 규칙으로 분명한 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한다.

직접 주민의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주민자치센터를 여기저기 누비며 주민들을 도와드리고 계신 자원봉사자의 시간을 잠시 빼앗았다. 40대의 이미숙 주부님은 작년 9월부터 행정민원봉사를 하고 계신다고 했다. 이렇게 밖에 나와 계시면 집에서 부담을 느끼거나 힘들지 않냐는 다분히 의도적인 질문(?)에 오히려 봉사활동에서 기쁨과 생활의 생동감을 느낀다고 하신다. 집 외에도 내가 갈 곳이 있다는 사실은 생활하는데 많은 활력을 주고 하루에 3시간 정도씩 일주일에 2~3번 근무하는 것은 큰 부담이 없다고 하신다. 남을 도우면서 많은 보람을 느낀다고 수줍게 웃으시며 주민들을 도우려 조용히 자리를 뜨셨다.

산본 2동 주민자치센터를 움직이는 힘은 담당 공무원이나 몇몇 주민들의 것이 아니다. 새롭게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의 역할과 책임을 깨닫게 된 주민과 공무원은 자치의 씨앗을 함께 심으며 그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능안공원 관리 등 몇 가지 문제가 남아 있지만 제도를 뒷받침하는 사람의 힘으로 그것을 극복하리라 기대한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면서 공무원과 주민이 함께 활짝 웃으며 자치의 낟알을 수확하는 광경을 떠올리는 것은 너무 이른 낙관일까?
(2001년 시민자치정책센터 하승우 운영위원 인터뷰)
Posted by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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