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송숙 사무국장/이경묵 사무처장 정리 : 김현(시민자치정책센터 상근 운영위원)
“기름을 물 쓰듯 하다”, “돈을 물 쓰듯 하다”. 우리에게 물은 아주 흔한 존재다. 전 국토의 70% 이상이 삼림이고, 이름을 외지도 못할 정도로 중소형 하천이 지천에 널려 있다. 그래서 이경묵 사무차장의 말대로 ‘물을 물 쓰듯’하고 있는 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미 물 부족 국가로 분류되고 있고, 실제로 서울, 수도권을 벗어난 남부 지역은 물 부족 현상을 심하게 겪고 있다. 언론을 통해 땅이 쩍쩍 갈라지는 사진을 목격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는 이미 건기와 우기가 확연히 구분되는 국가로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겨울가뭄이니 봄가뭄 하는 조어들이 연일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것만 보도라도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어느 지역을 가든, 대부분의 하천이 건천화(乾川化)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내기도 한다. 물 부족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현상이다.
그래서 하천을 주제로 지역운동을 펼치고 있는 “안성천살리기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어 보인다. 이름에서부터 이 단체가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드러나기 때문이다. 안성천은 길이 76km의 짧은 하천에 불과하지만 한천. 진위천 등과 합류하여 아산만(지금의 평택호)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그 유역에 넓고 비옥한 안성평야를 발달시키고 있다. 안성 주민들에겐 없어서는 안될 보배라고 할 수 있다. 시민모임이 만들어진 계기를 물어보았다.
“95년 경, 환경과 생명에 대해 공부를 해왔던 한 교회의 교인들이 환경이라는 주제의 시민단체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었고, 안성천 생태탐사라는 행사를 진행하면서, 안성천이라는 명칭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하천이라고 하는 것이 모든 생명의 중심 축이잖아요.”
얘기를 들어보면, 시민모임은 여타 지역의 지역단체들과는 그 태생이 달랐다. 보통, 여느 지역이든 어떤 특별한 사안에 맞물리면서 지역단체가 형성되기 마련인데, 시민모임의 경우 “현재의 자연환경을 잘 지키자”는 취지가 농후하게 묻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종교적인 색채를 띤 종교단체는 더욱 아니라는 점에서 생명을 지키고자 하는 주민들의 순수한 자발성이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하천이라는 것은 문화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지역공동체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안성천 살리기’라고 하는 것은 지역공동체를 되살리자는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면, 농촌지역 같은 경우, 물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단순히 안성천 살리기가 하천을 살리자는 의미가 아니라 지역공동체성을 같이 복원하고 지역의 민주적인 절차를 복원하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계 4대 문명이 강을 중심으로 나지 않았습니까?”
이제야 ‘안성천 살리기’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천’은 모든 생명을 응축하는 그 무엇이다. ‘생명의 근원’이라고 거창하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농촌 지역의 하천은 생활, 문화, 환경의 중심이다. 하천이 망가지면, 그들의 생존권도 망가지고, 그들의 업도 사라지기 마련이다. 안성천은 안성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시민모임 사람들은 강조한다.
“......안성천의 수질은 아직 깨끗한 편입니다. 어제도 생태조사팀이 나가서 수질을 체크해봤는데, 상류는 맑고 깨끗한 편이고, 중류는 워낙 갈수기라 수량이 부족한 면은 있지만, 아직은 괜찮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곳은 생활하수로 인해 상대적으로 오염이 심한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천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재생력이 강하기 때문에 도심지를 벗어나 흐르면서 다시 복원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비록 수량은 부족하지만, 인상을 찌푸릴만한 오염이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설명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민모임에서 진행하는 안성천 살리기 프로그램의 기조는 하천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교육프로그램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작년까지 6회를 진행한 ‘푸른안성어린이학교’와 2회를 개최한 ‘푸른안성어린이탐사대’는 일종의 하천 교육프로그램으로, 자연 속에서 인간과 하천의 관계성을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도록 진행하는 것을 기본 방향으로 잡고 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공부를 하기 위해 하천을 탐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만 주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이 곳 아이들은 시골임에도 불구하고, 여느 도시의 아이들처럼 컴퓨터와 학원으로 내던져지고 있는 형편이다. 자연의 소중함을 느낄 여유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민모임의 환경교육은 미래를 위해서도 중요한 투자라고 할 수 있다. 어린이 교육프로그램과는 달리 주부생태기행단은 내용적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 단순히 교육프로그램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안성천의 발원이라고 할 수 있는 인근 서운산의 심층적 생태조사는 물론이고, 개인의 취미나 관심 사항을 넘어 지역사회의 생태지도자로서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올해가 벌써 4기 째를 맞고 있다. 송숙 사무국장도 이 모임에서 배출되었다고 하니, 생태기행단의 활동은 시민모임의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다.
시민모임에도 내부적인 고민이 많다. 경기도 남단에 위치한 안성은 그나마 개발의 어두운 그늘을 피할 수 있었지만, 지역민들은 개발에 대한 욕구가 강한 편이다. 실지로 고속도로를 벗어나 안성으로 진입하는 곳에 대규모 아파트 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러한 개발론은 지난 IMF 이후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4년여 동안 지역의 화두로 자리잡은 소각장 건설만 하더라도 지역민들의 정서는 그 정도의 개발은 필요하지 않냐는 식이다. 특히 개발이 몰아치면, 안성천이 어떻게 변할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다. 이와 관련해 시민모임의 분석을 들어보자
“......안성은 농촌지역이라, ‘자연’ 그 자체는 일상생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와는 다르게 ‘자연’에 대한 소중함이나 경외감을 특별하게 느낄 새가 없습니다. 5분-10분 정도 밖으로 나가면, 어렵지 않게 자연을 만끽할 수 있으니까요. 이런 생활이 너무 자연스럽기 때문에 ‘자연’을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을 거의 안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발’에 대한 지역민들의 생각은 그리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파괴된 환경에 대한 문제제기식 운동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미 환경파괴의 부메랑을 경험했기 때문에 누구나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생태적으로 안정된 지역을 그대로 유지시키는 운동은 버거워 보인다. 시민모임의 고민은 여기에 와 있다. 자연환경을 보존하기 위한 지역민들과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당면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개발은 이미 편서풍을 타고 안성으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모임의 또 다른 고민은 일이 흘러 넘친다는 것이다. 보수적 성향을 지닌 안성에서 시민단체는 오직 하나다. 시민모임이 그것인데, 안성천 살리기 사업이나 소각장 반대운동, 그리고 쓰레기 줄이기 운동은 그나마 환경단체로서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이지만, 시정감시를 비롯해 심지어 납골당 등 각종 현안 문제들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있다.
"시민모임의 경우, 안성 지역에서 유일한 시민단체다 보니까, 지역의 갖가지 환경사안은 물론이고 지역현안에 대한 문제를 고민해야됩니다. 이를테면 소각장 싸움만 해도 근 4년간 힘겹게 시민모임의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는 중입니다. 일단 지역민들이 지역에 문제가 생기면 시민모임으로 문의가 옵니다. 그러면 그 문제에 대해 머리 맞대고 고민을 할 수밖에 없고, 지금은 모든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작년서부터는 삼성생명에서 납골당을 짓겠다고 해서 대책위를 꾸리고 있는데, 안성천 살리기보다도 시민모임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 거죠."
시민모임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지역민들로부터 종합적인 시민운동을 종용받는다는 것이 송숙 사무국장의 대답이다. 시민단체의 신뢰성과도 무관하지 않지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지역의 시민단체라는 것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런 고민은 시민모임만의 고민은 아니다. 여타의 지역운동단체가 중앙의 종합적 시민단체의 운동방식과 동일한 이유는 다양한 시민운동단체가 부재한 측면도 있지만, 관이 무관심하거나 손을 놓고 있는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를 시민단체에 의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시민모임만 하더라도 시정지기운동, 지방선거 관련한 유권자운동, 의료생협운동 참여, 대안농 운동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런 주제들이 환경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지만, 작은 규모에 비해 부과되는 일의 양은 좀 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안성에는 지역민들의 권리발언을 모아내고 표출하는 단위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민모임이 이런 사안을 받아드리게 된 거죠. 농촌 같은 경우는 관을 두려워하는데, 시민모임이 관에 대놓고 반대하다보니, 지역주민들이 시민모임을 아주 센 단체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또 고민이 되긴 합니다. 쉽게 참여하는데 부담이 되는 거죠.”
지역의 모든 사안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주민들이 바라보는 시민모임은 상대적으로 강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런 현상은, 인터뷰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시민모임에 마이너스 요소가 되기도 한다. 아직도 관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도 있는 주민들에게 관과 당당하게 맞서는 시민모임이 다소는 부담스런 존재일 수 있다. 그러나 예전에 비해 시민모임에 대한 평가가 좋아졌다고 하니, 사업을 통해 주민들의 의식을 높이는 일이 관건이 아닐까 싶다.
안성천이 살기 위해서는 지역민들의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지구적 환경문제가 안성천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이미 가설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기상이변은 세계적인 흐름과 맞물려 있는 것이다. 건기, 우기의 뚜렷한 구분은 기상이변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또한 안성천을 살리기 위해서는 종합적인 사고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천 살리기 운동은 주변의 자연환경을 살리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그나마 안성천이 맑고 깨끗한 이유는 나름대로 주변에 숲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숲과 하천, 토양, 그리고 시민의식 등이 안성천 살리기 운동의 핵심인 것이다. 그래서 시민모임의 모토인 “하늘․땅․그리고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끝으로 안성천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물어보았다. 이 대답이 안성천 살리기 운동의 ‘키잡이’이다.
“안성천 교육프로그램은 물에 대한 관심을 더 높이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매월 안성천 가꾸기 행사를 내부 행사로 진행하는데, 도심지를 관통하는 하천의 경우 보통은 직강하 공사를 통해 주차장으로 만들곤 하는데, 친수공간이 많이 없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저희 단체 경우, 이런 교육을 통해 친수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려 합니다. 지금도 안성천에 나가보면 의외로 쓰레기들이 많이 떠 있습니다. 이는 하천에 대한 소중함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데, 하천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가질 수 있도록 운동하고 있습니다.” | |